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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밀렸던 일들을 완성하고 항상 밤늦어 잠자리에 들게 되는 토요일을 보낸 일요일 아침, 다급히 눈을 떠보니 20분전 7시, 가을의 바깥은 아직 햇살이 얼굴을 비치지 않은 침침한 거리다. 나는 책 “연금술사”를 가방에 넣고 약속대로 우리 재한동포문인협회 젊은이들이 꾸리는 일요일 모닝 독서토론 클럽의 장소로 급급히 발길을 옮겼다. 어느 회사 사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7.09.2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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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중국조선족포탈사이트 해란강닷콤에서는 중국 연길시 “김광선성형미용병원”에서 협찬하는 “김광선컵 나의 한국생활수기”수필 공모활동 펼칩니다. “김광선컵 나의 한국생활수기” 작품 공모는 세계 조선족(인)을 상대로 한국의 생활, 유학, 사업하면서 보고 느낀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합니다. 심사평의를 거쳐 해란강닷콤상, 인기상, 최대 클릭상을 선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4.01.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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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지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조선족 7만여 명이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에 진출했는데 다수는 불법입국 했다. 그들은 한인들이 모여 사는 뉴욕, 로스안젤레스의 네일숍, 지압가게, 식당 등에서 일한다. 그들의 가족은 중국 동북이나 연해, 내륙의 대도시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 흩어져 산다. 그들은 지구적 차원의 이산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2.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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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나는 중국 강소성 염성사람이다. 염성은 아주 작은 도시라 중국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곳 염성에 한국의 기아자동차와 많은 계열사들이 진출해 있다. 4년 전 그 시골에 대학을 갓 졸업한 귀엽고 착한 한 여자가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겠다고 중국어도 모르면서 찾아왔다. 그 여자는 염성이라는 시골에서 점점 유명해졌다. 중국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2.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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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중국동포 뉴스를 보면 ‘코리안 드림’이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돈 벌러 온 사람들의 얘기다. 그들의 고통, 슬픔을 담은 많은 글들은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폭로하고 있다. 즉 그들이 얼마나 한국의 주류 사회와 격리되고 있으며, ‘코리안 드림’은 결국 그들만의 ‘꿈’으로 끝난다는 얘기다. 같은 동포로서 그들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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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북아신문]요즘 서울 교보문고 등 서점가에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며 부쩍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한 저자들은 작가도 아니고 저명인사도 아니다. 다만 중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한국에서 유학한 후 한국 정착을 시도하고 있는, 서울대나 부경대, 동서대 등 국내 대학과 국내 유명회사들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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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매일 아침 난 꿈에서 깬다. 드라마보다 더 생동하고 영화보다 더 스릴 넘치는 꿈들이다. 꿈속에서 나는 항상 달린다. 누군가에게 쫓긴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달린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다. 뒤를 돌아보면 어둠뿐이다. 더 이상 달릴 수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는 순간, 꿈에서 깬다. 살아있다는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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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区)에 남구로라는 지하철, 버스역이 있다. “ㅓ”형으로된 도로의 남북과 동쪽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남구로 버스역은 아마도 먼 옛날에 산등허린인 것 같다. 도로의 량옆에는 2~4층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데 반경1000메터 주위에는 인력사무소가 무려16개나 있으며 려행사, 상점, 식당, 직업사무소, 시장, 노래방 등 없는것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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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인씨가 본지에 보내온 글입니다. 모국에서 무엇에 쫓기듯 살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본지에서는 계속 동포들의 '하고 싶은 말' 사연을 받습니다. 이메일로 글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ys048@hanmail.net. 전화 : 010-9357-3368 편집자 주] [서울=동북아신문]저는 3년 전, 남편이랑 방문취업비자로 입국했구요, 현재는 전업주부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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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인간은 흔히 세상살이에 익숙해질수록 순수하고 리타적인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이악스럽게 자신의 몫에 집착하게 된다.욕심은 탐욕을 부르고 움켜쥔 돈이 저절로 굴러 돈으로 만들기도 한다.자기만 잘 살고 잘 먹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와는 상관없다는식의 리기주의적사고가 만연되여 있는 이 현실에서,세상의 한구석에는 거센 바람에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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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지금은 중국에서도 애완견을 많이 기르고 있지만 개에게 물려도 광견병 왁친을 사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병원, 위생방역소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5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아니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왁친을 사려고 동분서주했던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때는 1987년 여름이였다. 그때 나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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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목사님이 사장님에게 선물해준 책, 어느 책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감사기도”란 네 글자에 매료된 적 있다. 이혼까지 생각 하고있는 결혼 10년차 여인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설교말씀을 듣고 매일 술에 절어 사는 남편을 대상으로 감사의 기도를 들이는데 “코 골며 자는 남편을 보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저토록 술에 취했어도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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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중국 용정시 출생인 나는 소위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사회교육, 학교교육, 가정교육을 잘 받지 못하며 자라다보니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난다. 입국할 때 꾀죄죄한 옷을 입고 함경도 사투리를 쓰면서 인천공항 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할까봐 간이 콩알만 하여 몸을 잔뜩 오그렸던 모습이 어제 같다. 자그만 치 천만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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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나는 어제 선배선생을 만나러 1호선 전철을 타고 석계역으로 갔다. 출구에 나가서 휴대전화기를 열어 보니 약속시각이 아직도 반 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바삐 서두르다 나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버스정류소 저쪽에 간이 포장마차가 보였다. 나는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어묵을 먹었다.한참 먹고 있노라니 버스를 타는 쪽에서 와짝 떠드
문화·문학
박수산
2011.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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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묵집, 내가 두달 동안 고정일당으로 일했던 곳이다. 주인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그런지 가게 분위기가 다른 집과 틀리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모님이 우리를 향해 할렐루야 하신다. 술 좋아하고 담배 피는 사람은 가게에서 쓰지 않으니, 벌교언니가 금연 금주하느라 고생이다. 벌교언니는 나와 같은 날 일일파출부로 온 주방 설거지언니다. 첫날,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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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수기 쓰는 지금, 중국 천진이다. 40여일이 지나도록 겨우 눈 한번 살짝 내린 정도, 먼지 날리는 케케묵은 공기, 물 샐 틈 없이 막히는 도로, 어딜 가나 북적대고 소란스러운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왔지만, 바로 적응해버린 나다. 십여 년을 살았고 계속해서 살아 나가야 할 곳이므로, 모든 불편함도 당연지사로 여겨질 때까지 별로 시간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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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2010년의 달력 한 장만 남겨놓고 만감이 교차하는 이 순간, 내가 한국에 온지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이 짧고도 긴 1년 동안 내가 겪어온 일들을 돌이켜보면 기분이 묘하면서 절로 웃음만 터져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왜 그때 그 순간에는 심하게 나를 괴롭혔던지 그때의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한 마음만 남게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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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1999년, 먼먼 길 기차역까지 날 배웅하고, 돌아서며 눈물을 훔치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내 인생을 바꿔 놓을 줄 생각도 못했다. 나에게 거절당하고 울던 엄마, 나에게는 가슴 아픈 추억이다. 길림 가는 기차 안에서 내처 울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결정을 내렸다. 나는 길림화공병원에서 하던 양의연수를 마무리하고, 병원에 사직서를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0.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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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1999년 말, 입국한지 얼마 안 된 나는 동생 친구의 소개로 서울대 한 교수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 하게 되었다. 그때, 그 집에는 아기 엄마의 친한 친구이자 큰 아이 선우의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계셨는데, 한 주에 두 번 씩 다녀가곤 했었다. 그는 갓 입국한 나에게 갈아입을 옷이 변변치 못한 것을 보고 자기가 입던 옷들을 가져다주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0.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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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끼고 우회전, 편의점 골목 직진, 문자에 찍힌 대로 풍전이라는 회사를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일하러 왔습니다."했더니, "아, 면접 오셨어요?"하면서 회의실로 안내한다.그렇네. 면접도 안보고 무슨 일부터 해? 전화만 한번 달랑 해본 용역업체에서 교포도 된다고 보냈으니 작업반장이 현장에 데려가 바로 일 시킬 줄 알았다.인사부 부장이라는 명찰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0.12.0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