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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연말부터 조선총독부 관보 데이터베이스가 역통에 연계되었다. 이번에 연계된 조선총독부 관보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국립중앙도서관이 힘을 합하여 만든 데이터베이스이다. 기존에 국립중앙도서관과 국가기록원에서 조선총독부 관보를 웹 서비스하고 있었는데 이를 더욱 다듬어서 보다 강력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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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3년 9개 월 만에 박재호는 집으로 돌아왔다.걸레 조각처럼 너덜너덜한 운동화를 신고 왔다.집을 떠날 때에 신고 갔던 그 신이었다. 그리고 떠날 때에 달고 갔던 죄명도 줄지도 붇지도 않은, 우파분자에 역사 반혁명분자였다.불과 한 달도 되기 전에 축출 영이 떨어졌다. 계급의 적은 도시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농촌으로 쫓아내어 노동개조를 계속하게 해야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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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동화 한 켤레 그것은 1950년 8월이었다. 그는 `18살에 이사하여 와서 30살이 되도록 산 구태를 떠나 서란으로 갔다. 박재호한테 서란은 결코 낯선 고장이 아니었다. 바로 세 번째로 맞은 처가가 있는 곳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박재호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서 결혼을 했으니 잔치 후 7일만에 첫 아내를 결핵으로 잃었고 그 후에 얻은 두 번째 처 역시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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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화 속에서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으면서 아시아를 강점하던 일본은 본토에 원자탄 세례를 받고 무조건 투항을 하였다. 대세는 일변하여 한민족은 장장 36년이란 일제통치 식민지치하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 박재호는 광복을 맞아 미친 듯이 를 부르다가 잠이 든 친구들의 행복이 어린 모습을 보면서 이라는 제목의 글을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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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산을 떠난 신경 행 열차는 늦은 저녁때에 안동에 도착했다. 밤 내내 다시 만주의 광야를 달려 봉천을 경과한 열차는 이튿날 오전에 신경에 도착했다. 부산을 떠나서 꼭 이박 이일의 기차의 노정이고 거기에 바다에서의 하루 밤 뱃길까지 합하면 사흘 낮이었다. 신경 역 부근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그는 곧장 구태현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공교롭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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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 향 길바로 그때부터 그들은 새로운 인생에 돛을 단 셈이었다. 희망에 부푼 가슴을 안고 그들 셋은 미래를 꿈꾸었다. 당분간 근검고학(勤儉苦學)하여 기량을 닦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화북(華北)으로, 조선으로, 동북으로 가서 누구든지 항일계통을 찾기만 하면 서로 소개를 하여 가입하자고 굳게 약속을 하였다.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 장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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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소 갈데 말 갈데 가리지 않고 일했지만 개미 채 바퀴 돌리듯 한자리 뜀이었다. 만선척식회사에서 소작을 맡은 땅이라야 가뭄에도 수해를 본다는 수렁논이었다. 그래서 가을에 탈곡을 마치면 회사에서 여름에 대부해준 좁쌀(小米) 빚을 물고 나면 벼 짚가리만 덩실하니 남았다. 이번에는 빚 때문에 야밤삼경에 솔가도주를 했다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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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2004년 10월 18일, 길림성 서란시(舒蘭市) 빈관(賓館)에서였다.작가 김태복(金太福 60세, 서린시 조선족중학교 퇴직 교원)선생은 서란에 살면서 보고 듣고 한 이야기들을 하는 중에 불쑥 박재호(朴在浩)라는 이름을 거들었다.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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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증종때였다.증종왕에게는 지지리 박색한 공주가 있었다. 용모는 메주덩이였으나 마음만은 착하여 자색이 어여쁜 몸종과도 무랍없이 사이좋게 지냈다. 어느날이였다, 공주가 거울을 들여다 보며 자신의 못난 얼굴을 한탄하고 있을 때 몸종이 바람결 처럼 쫒아 들어오며 어리광을 부렸다, “아유 마님 이 화창한 봄날에 방안에서 뭘 하세요.” 공주는 얼른 거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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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 연재 11 제8절 청나라조선인 명인 청나라 초, 조선기민의 후예 중 한패의 출중한 명인들이 솟아났다. 이들을 간단히 적어본다. 이사충(李思忠) 유명한 무관이다. 1644년 팔기군을 거느리고 섬서로 쳐들어가 동관을 점영하였고 강남으로 잔군하여 양주를 함락하였다. 장강남북 10개 주, 현의 반청세력을 숙청한 그는 그후 지방의 최고군사장관인 섬서제독으로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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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간 사업가의 노력으로 ‘만주국경찰사’(이하 ‘경찰사’)가 국내 처음 번역됐다.‘경찰사’는 일본의 만주국 건국(1932년 중국 둥베이 지방) 10주년을 기념할 목적으로 만주국 치안부가 편찬한 일종의 식민통치 자료다. 건국 원년인 1932년 3월부터 40년 12월까지 9년간 만주국의 치안상황을 기록했다. 번역된 ‘경찰사’는 89년 10월 중국 ‘길림성공안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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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문물전문가로부터 국가고품급 진품인 《금대균자오호탁복제반》과 동시기 전문적으로 제사에 사용되였던 《쌍어완》이 감정되여 세상에 알려졌다. 이 두가지 보물은 민간전설속의 장백산 《진산지보》로 녀진족들이 천지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제사도구와 관계가 있어 그 수수께끼가 풀릴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7월 15일 오래동안 장백산문화연구를 해온 원의와 그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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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瀅植 -----------상명大 초빙교수1939년 충북 충주 출생. 서울大 사범대 역사학과 졸업. 단국大 문학박사. 성신女大 부교수, 이화女大 교수, 국사편찬위원, 한국고대사학회장, 백산학회장 역임. 저서 「신라사」, 「백제사」, 「고구려사」, 「신라통사」 등. [洛陽市 동쪽 회맹진 뇌하촌 일대가 고구려·백제 遺民들의 집단 墓域인 듯] [연개소문의 아들·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6.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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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탁 wthong@wontockhong.pe.kr 사기에 의하면, 서주의 무왕(r.1049-43 BC)이 소공을 북연(北燕)의 통치자로 봉했고, 또 기자를 그 이웃인 조선의 통치자로 봉했다. 사마천(145-90 BC)은 붓으로 몇 글자 적어, 고대 한족 왕실 종친들을 선비족과 예맥-퉁구스의 영역으로 보이는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의 시조로 만든 것이다. 한긴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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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탁 wthong@wontockhong.pe.kr 탁발 선비는 전연(前燕)이 만들어낸 이원통치 체제를 답습 해, 처음으로 북중국 전체를 지배하는 이민족 왕조를 수립했다. 탈발규(r.386-409)는 모용선비 병사들을 자신의 군대에 흡수했고, 모용 선비족 지배층은 북위조정 내에 지배 귀족층을 구성하는 주요 씨족의 하나로 살아남았다. 북위의 문민 관료제도는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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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탁 wthong@wontockhong.pe.kr 4세기 5호16국 시대에 모용외와 그 후계자들은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정주 (漢族) 농민을 다스리는 관료적 행정조직과 (鮮卑族) 유목민을 다스리는 부족적 군사조직을 분리한 2원적(二元的) 통치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세웠다. 요서 초원지대는 부족 전통에 따라 군사적으로 조직을 하고, 요하 유역에 거주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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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元卓 (서울대 교수)후한(後漢, 25-220)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25-57)는 중국 남부와 월남의 북부를 다시 정복했다. 기원전 209년에 묵특의 지휘아래 유목제국을 수립한지 250여년이 지난 AD 47년, 흉노제국에 내란이 일어나 몽골초원 전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덕분에 요서 초원지대의 오환(烏桓)과 선비(鮮卑)는 제일 먼저 흉노의 지배에서 벗어날
동포문단
동북아신문 기자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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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漢族) 조정에 대한 흉노-선비(匈奴, 鮮卑) 등 이민족의 갈취(喝取) 행위는 화친(和親)정책 혹은 조공(朝貢)관계 등과 같은 완곡한 표현으로 포장이 되었었다. 소위 “야만족”을 정벌한다는 것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칭호의 수여, 다양한 공물(貢物)의 제공, 보조금 성격의 국경무역, 등을 대가로 하는 평화조약은
동포문단
동북아신문 기자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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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과 수수를 재배하는 비옥한 퇴적층의 황하 하류유역은 대마군산에 의해 몽골고원과 분리되어 있다. 황하를 따라 정주(鄭州) 서쪽으로 들어가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쥐구멍 모양의 긴 회랑이 펼쳐진다. 낙양(洛陽)을 지나 황하가 북쪽을 향해 급격하게 꺾이어 말편자 모양으로 오르도스 초원을 품게 되는 분기점을 통과하면 위수(渭水) 계곡과 장안(長安, 오늘날의 西
문화·문학
꽃잎.낙엽 퍼옴
2006.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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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포함하는 범 만주『선비-퉁구스』 역사-문화 공동체는 요서의 신석기 홍산(紅山, 4000-3000 BC)문화를 공유하고, 빗살무늬-민무늬 토기, 고인돌, 비파형 동검 등의 전통을 공유한다. 알타이계통 언어권의 홍산문화는 한장(漢藏) 언어권의 앙소-용산 문화와 전혀 다르다. 중국대륙 정복왕조 5개 중 4개가 바로 『선비-퉁구스』족 출신이었다. 중국 고
문화·문학
꽃잎.낙엽 퍼옴
2006.03.0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