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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된 필름을 들고 암실에서 나오자 어느 사이엔가 여동생 미경이가 와 있다. 잔뜩 울상이 된 꼬락서니를 보니 또 남편과 한바탕 접전을 벌인 모양이다. 자리에 누운 채 운신을 못하는 미경의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온종일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 확인하는 것뿐이다. 방년 25세의 젊은 여자답지 않게 미경의 얼굴에는 수심과 애수로 초췌하고 구겨져있다. 언제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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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오면 될까요?”가격 같은데도 관심이 없다.“내일 아침에나 점심에 오시면 될 겁니다. 모두 한 장씩만 현상하실 건가요?”“네. 아마 사진이 잘 안 나왔을 거예요 상관 말고 죄다 현상해주세요.”잘 안 나왔다는 말로 은근히 자신의 사진기술의 미숙을 암시하면서도 아가씨는 얼굴표정을 흩트리지 않는다. 한결같이 정교하고 절제된 모습이다. 잘 나오지 않았을 거라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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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해!” 정도는 사진첩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미경은 점심때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오전 내내 손님들도 둬 서너 명 다녀갔을 뿐 한가했다. 늘 다니던 단골들이 건너편 사진관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서도 정도는 입가에 쓴 웃음을 지을 뿐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단골들도 정도의 눈길을 피해 저만큼 멀리 에돌아 다닌다. 사진 현상하러 손님 몇 명이 다녀갔지만 필름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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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권유하는데다 하체불구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매제가 불쌍해서 받아주었더니 그런 은혜는 모르고 제멋대로다. 요즘은 맞은편의 중국집배달을 하는 홀아비아저씨와 눈이 맞아 돌아가느라 사진관일은 아예 뒷전이다. “이 계집애 나오기만 해봐라! 종아리를 분질러놓던지 해야 정신을 차릴 건가 봐.” 가족사진, 백일기념사진, 환갑잔치사진 몇 장만 덩그러니 전시된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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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혜영 소설가 [장혜영 주요 작품] 장편소설: "바람의 아들", "살아남은 전설", "무지개 그림자", "여자의 문", "희망탑" 학술저서: "한국을 해부한다" 대학교재 중단편집" "하늘과 땅과 바다" 번역작품: "러시아에서 만난 여인" 외1편 일본에서 출판 (공저) 1장 이상한 사진 보광동삼거리. 말이 삼거리지 도심지처럼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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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로부터 이십여일후 내몸은 귀국선 선창가에 실려있었다. 바다바람이 제법 세찼었다. 흰갈매기들이 반공에서 그림같이 하늘거리였다. 푸르른 바다물은 일렁이는 생명의 세계였다. 바라만 보아도 온갖 번뇌가 말끔히 씻겨나갈것 같았다. 나는 여권 비자기일이 종료되였기에 일단 귀국을 결정했다. 복선녀, 복선화 두 자매가 인천부두까지 바래다주었다. 배에 또 한 녀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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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나는 새벽녘에 오줌이 마려워 깨여났다. 곁에 복선녀가 혼곤히 잠들어있다. 당신은 흡사 당신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당신이면 꿈이고 당신 아니면 생시일것이다. 입에서 혀차는 소리가 부지중 튀어나왔었다. 나는 흩어진 당신의 머리를 매만지였다. 문을 열고 나가자 발밑에 난데없는 쪽지가 떨어졌다.― 오빠, 잘 주무셨어요? 두분의 행복을 빕니다. 축하해요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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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쉼터에 돌아온 나는 긴 잠을 잤다. 눈을 뜨니 숲에 저녁노을이 불타고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숲에, 환각속에 노을이 피빛같이 나붓겼었다. 노을을 밟는 구두가 있다. 바지가랭이가 처져 흐느적거린다. 속이 간지러워 구두를 잡아당겼다. 가운데가 툭 끊어져나갔다. 웬 녀인의 긴목이다. 머룽머룽한 눈과 기름한 얼굴의 목줄! 나는 소스라쳐 깨여났다. 가슴이 두근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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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우리 셋은 아침 네시에 일어났다. 인차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에서 덜깬 숲속에서 어둠은 채 사라지지 못했었다. 선화가 앞서고 복선녀가 뒤를, 내가 마지막을 따라섰다. 당신은 자주 돌아보았다. 이것저것 자꾸 주어섬겼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학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으로 불리웠다. 관악산 정상에는 지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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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나는 침실로 돌아왔다. 편이약방 음식상은 깨끗이 치워져있다. 복선화가 묻는듯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는 어깨 으쓱하고 네활개 뻗고 누웠다. 그녀의 마디 거칠고 빳빳한 손이 내 이마를 쓰다듬어왔다. 눈에서 부지중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찬 입술이 나의 왼쪽눈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더듬어잡았다.자식, 요정같은게…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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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나는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사상에 문제가 있는줄 안다. 서술이 엉뚱한데로 빗나가고있다. 생뚱같이 어둠을 말하다니? 나의 의식은 어차피 내가 살아온 사회속에 굳어져있고 관습에 젖어있다. 때로는 딸애조차 나의 언행을 문제삼아 시비하고 무시한다. 나는 자기가 한심하게 생각된다. 쉼터에 대한 서술에도 억지가 있다. 나는 자기의 주인공들을 쉼터에 끌어들이고 싶지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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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숲길에서 당신과 나는 감성을 얘기한다. 나는 당신의 아래 허리에 팔을 두른다. 차는 가끔 요동을 한다. 허리의 살결이 드러나 손바닥만큼 만져졌다. 당신은 모르는척 한다. 나의 의식은 손가락끝에서 피어나는 감각을 읽어간다. 숲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듯 싶다. 헤드라이트불빛은 숲의 형태나 위치, 거리에 따라 주는 느낌이 각이하다. 어둠속에 웅크린 숲과 문득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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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나는 복선녀, 당신을 찾을수 밖에 없다. 당신의 자가용에 앉아 서울 시내를 드라이브하다가 여의도 한강 강변에 가서 자리를 찾아앉았다. 당신이 내 무릎을 슬거머니 건드려왔다. 나는 물새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전설속의 현란한 깃털을 방불케하는 불빛만이 거짓같이 강물에 비껴있었다. 왜 그래? 말 좀해봐, 뭘 고민하는데 그리 풀이 죽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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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나는 고열로 사흘을 앓아누웠다. 감기몸살이라고 한다.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열병이라도 하지 않았나 은근히 두렵기도 했다. 곁에 복선녀가 지켜주고있었다. 유진씨한테서 련락이 와 곧바로 입원시켰다고 한다. 곁의 환자나 가속들이 우리를 부부로 착각하고있었다. 나는 당신의 손을 잡았다. 꽤 말라있었다. 고개 돌려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잔뜩 지친 꼴이었다. 눈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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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두 녀인이 입을 막고 돌아섰다. 저만큼 앞서가며 소근거린다. 남수의 와이프가 돌아보며 어서 따라오라 손짓한다. 그녀의 존재가 거짓 그 자체같았다. 흰것에 감싸인 녀인의 고만한 몸매도 나부죽한 얼굴도 왼쪽입술 사이로 보일까말까 하는 덧이나 저런 제스처마저도 내 눈에는 허상에 불과했다. 친구의 결혼식에 갔을때 유난히 눈에 사물거렸던것은 그녀의 덧이였다. 뽑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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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나는 딸애와 통화를 하고있다. 처녀꼴이 잡혀가는 진이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진이의 목소리는 언제봐도 똑똑 부러져있다.아빠, 아빠나 자기 걱정함다예? 서울서 잘자시구 잘입구 잘노시구, 돈은 어머니가 법니다. 그러니 아빤 자기 벌어 자기 쓰면 된답니다. 나두 이젠 돈만 있으문 절로 살수 있음다. 내 걱정은 하나두 안해도 됨다예?ϙ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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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나는 한달을 고민했다. 달빛, 감미로운 술, 찜통더위와 십칠년만에 만난 옛련인, 그리고 침대우에 뒹구는 나의 라체― 나는 구경 누구인가? 라체는 무얼 의미할까? 당신의 낯에는 추호의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유진이서껀 거의 매일 파티를 열었다. 동창, 친구, 친지, 동사자, 고향마을사람들, 줄줄이 련락이 왔고 인연이 닿아왔다. 나는 내가 알았던 사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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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나는 넌출들에 주렁진 포도송이를 보았다. 검붉은빛을 띤 송이에 잎새 사이로 곱게 새여든 달빛이 환영처럼 연연히 비껴있다. 고향, 그녀네집 뜨락의 포도넌출이 떠올랐다. 그 아래에 앉아 복선녀는 책을 보고 기타를 치고 소일을 했다. 그녀는 자기 피부색에 맞춰 흰옷을 즐겨입었다. 흰옷, 흰그림자, 흰달빛, 흰웃음, 희고도 길게 이어지는 키스신, 기억은 가끔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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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나는 당신곁에 앉아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당신인가요 나를 떠나보낸 당신인가요? 나의 당신과 나를 떠나보낸 당신 사이에서도 나는 당신의 매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돌아버서며 뱉는 타액의 끈적함이나 욕설에서 튕기는 주매(呪罵)의 메스꺼움이나 혹은 슴슴함이나 가식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겠으나 나는 나속의 당신을 보았고 당신은 당신속의 나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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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복선녀를 기다린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나를 보면 무슨말부터 할까? 생김새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흰자위 선명한 크고 맑은 눈만은 아무래도 그대로일것이다. 가슴이 조금씩 뛰고있음을 나는 감지했다. 아침에 희미하게 끼였던 안개는 이미 사라졌고 밝고 신선한 해빛은 청신한 공기속에 투과되여 뜨거워지고있다. 광화문 교보문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7.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