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농촌공동체를 유지하던 조선족은 너도나도 도시로 진출했다. 개혁개방을 맞아 제한된 땅에서 얻는 수확으로 도저히 더 잘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돼서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진출을 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수많은 조선족들이 ‘코리안 드림’의 유혹에 이끌려 한국으로 몰려들었고 불법체류자를 비롯해 입국사기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어서 조선족여성의 한국으로 시집가기 붐도 일어 2000년 말 현재, 약 6만 명의 여자들이 한국으로 시집갔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조선족 공동체를 유지해 가야 하는 조선족 여성 3명중 1명이 한국으로 가버린 것을 의미한다. 현재 조선족의 출산인구는 급하강선을 타게 되어 10년 전에 비해 4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조선족의 중국 내륙과 한국으로의 진출은 조선족 사회의 부를 일군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10억 달러 이상이 송금됐으며 휴대해 들어온 돈까지 합치면 2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부의 창출과 더불어 조선족사회는 많은 귀중한 것들을 상실하게 됐다. ‘조선족의 문화영토’로 인정되던 조선족 마을의 공동화와 해체, 그리고 그에 따르는 조선민족학교의 폐쇄, 민족 정체성의 혼돈, 그리고 민족공동체의 존망과 직결되는 전통적 가치관을 잃어가고 있다.

 

급변하는 조선족 사회는 지금 민족교육체계의 붕괴, 민족 문화영토의 상실, 출산인구의 기하급수적 감소 등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조선족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중국 돈’을 벌어야 성공한다

 

중국 조선족 기업은 아직도 대부분 요식업, 유흥업, 여행사 등 단순서비스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이윤마진이 빈약하다. 더욱이 같은 지역에서 유사한 비즈니스로 시장을 공유하고 있어서 동족 기업간의 소모적 경쟁이 빈발하다.

 

조선족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중국진출 한국기업과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본, 기술, 상품, 경영노하우, 비즈니스 모델 등 많은 기업들이 자체의 생존공간을 한국인이나 한국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자체의 발전공간을 제한하고 있다. 조선족은 다른 민족 못지않게 일찍 시장경제 체제에 뛰어들었고 또한 이중, 삼중 언어의 우세도 있지만 중국 500대 기업 서열에 든 조선족 기업이 없고 상장기업도 없다. 다른 소수민족은 있는데 왜 우리는 없는 것일까. 그들은 언어의 우세도 없고 우리처럼 해외 관계도 없지만 ‘중국 돈’을 버는데 전념했기 때문이다.

 

 

1. 재외동포의 방문취업제를 위한 실무 한국어능력시험이 치러진 다롄(大連)외국어대 뤼순(旅順) 신캠퍼스에 모인 조선족 동포들이 인산인해를 이룬채 입실을 기다리고 있다.

2. 중국 대도시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들은 여러 명칭으로 된 단체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칭다오 조선족 여성협회 신년회

 

즉, 중국 현지 특성에 맞춰서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을 펼쳐야 한다. 중국 진출한 기업들중 제조업 분야는 점차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하기에 자신들의 생존공간을 한국관련 기업으로 제한시켜왔던 조선족 기업들은 미래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중국의 10대 부자 중 6명이 부동산업자다. 이들은 땅장사를 하는 ‘대지주’다. IT등으로 돈을 버는 다른 나라의 부자와는 다른 것이 중국의 특색이다. 그러므로 중국특색에 따라 ‘중국 돈’을 벌어야 한다.

 

생존을 위해 민족문화 계승 절실

 

중국 연해도시와 내륙뿐 아니라 한국, 일본, 미국, 남미 진출 등 조선족은 명실 공히 글로벌민족이 되고 있다. 흩어져버린 조선족사회가 하나의 민족사회로 생존하려면 부동한 자연환경과 문화 환경에 노출돼 있는 민족 구성원들이 계속 조선족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문화의 문제는 민족교육, 민족문화예술, 언어 등을 포함해서 생각할 수 있는데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1996년 1천200여 개의 조선족학교가 2005년에는 400개로 줄어들었다. 학교가 줄어드는 속도는 조선족 출산인구의 감소속도와 거의 맞먹는다. 도시공립학교의 인적자원과 공간을 활용해 민족교육을 발전시키는 방법도 있다. 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 부속초등학교에 120명의 조선족 학생을 입학시켜 정규교육과 민족교육을 접목시키는 교육을 실험적으로 펼쳐 훌륭한 효과를 거둔 적이 있다.

 

우리민족의 신문, 문학지나 문예지를 살려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도움이 필요하다. 문학인, 예술인도 전통만 고집 말고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학협동을 통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에 이중언어 구사는 큰 장점이다. 현재 2만여 명의 한족 학생들이 한국에서 유학을 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반해 조선족 젊은이들은 점점 우리말을 소홀히 하고 있는데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조선족네트워크 구축이 필요

 

중국 대도시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들은 여러 명칭으로 된 단체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이 등록되지 않은 무허가단체지만 어렵게 조선족 문화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운동회, 설맞이 모임, 장학회 모임, 동호인 모임, 경로행사 등 활동내용도 다양하다. 이런 활동들은 조선족들이 바다에 뿌려진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지만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제 각 지역 단체들은 현지 정부의 민족사업을 협조하는 위치에서 NGO의 합법적 지위 확보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더 효과적으로 민족문화를 계승할 수 있고 주체성도 이어갈 수 있다.

 

이제 세계로 흩어진 조선족의 사회와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글로벌조선족네트워크’의 구축과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150년 이상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일개 소수민족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해왔다. 이제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조선족사회가 살아남는 길은 세계화에 걸맞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가는 동시에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출해 나가는데 힘쓰는 길 밖에 없다.

 

황유복  /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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