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를 비교할 때 그 배렬순위를 두고 이의가 없도록 상식화되여온터다. 한것은 의례 천편일률적인 통념으로 먼저 남자를 앞에 놓기때문이다. 

  가령 남녀혼합석을 가진다고 할 때 문제제기가 참 미묘하게 번져져나간다. 어떤 술좌석에 남녀비례가 비슷하게 대칭되면 례외겠으나 만약 성별비례에서 남자가 렬세면 어찌 될가? 그것도 녀자 여럿에 남자 한명꼴로 합석했다면 어찌 될가 하는 질문이다. 두말없이 대번에 이색적인 시각으로 뒤집혀질거다.

  ㅡ하 글쎄, 봉황무리속에 수탉 한마리가 끼였구려! 쯔쯔쯔.

  ㅡ어쩐지 보기 구차하네. 남자라는게 시시하게 치마들속에 섞이다니...

  동석 전체를 비난하는게 아니라 남자 하나를 쓸까스르는 힐책이다. 동좌(谿麟)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자성군체에 웅성객체가 동반했다는 질투비슷한 빈정일지도 모른다. 

  간혹 좌석이 마련되면 응당 남자다수 녀자소수로 점찍는 체질화 역시 남자우선 녀자차요로 된 성별외곡이렸다.

 M시 영어학부졸업생들은 1년후 동기생파티를 가졌다. 모임이랬자 고작 7명이였다. 대부분이 출국하고 하해하다보니 M시에 남은 동창생들은 일곱뿐이였다. 양창민은 부푸는 심정으로 호텔커피숍에 흘러들었다. 약정된 장소에 나타나자 온통 녀자들로만 일색일줄이야...사연을 알고보니 세명 남자들은 공교롭게도 사스전역으로 북경에서 돌아오지 못했던거다. 그들은 며칠전에 북경으로 상무고찰과 비자신청, 관광을 떠났다가 각기 모두 격리되였다.

활발하고 선의적인 녀우들이 자주 고무격려하자 그도 인차 정서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양창민의 의도적노력은 쉽사리 성공을 몰랐다. 객관적긍정을 받기엔 마냥 유감을 보였다. 그가 호텔과 스낵, 다방, 스탠드바를 옮겨 다닐 때마다 아주 괴상하고 민망해하는 눈초리들이 집중사격을 보내왔던거다. 계집애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제비족이나 건설방쯤 오인된거다. 

  나중에 그는 슬그머니 줄행랑을 놓았다. 잠적한 동행자를 찾느라 핸드폰이 울렸다. 양창민은 부아통이 터진채 꽥 소리질렀다.

  ㅡ게사니무리에서 오리는 사라진다. 파리가 봉황둥지에서 탈출한거다! 빠이빠이

  그 중퇴자가 바로 나의 오촌조카이다.

걔의 진실한 목격담이자 체험담을 통해 나는 사회대학에 금방 발을 들여놓은 햇내기의 고충을 읽었다. 걔의 곤혹을 무마해줄걸 잊은채 나는 세습적인 고전심태에 못내 찜찜해났다. 하다면 어두운 아지트나 러브호텔에서 남자 하나가 뭇녀자와 그룹섹스로 육탄투신에 나선건 떳떳하단말인가!

  가령 양창민이 녀자이고 상대들이 남자였더라면 반감은 없을줄로 확신한다. 그러나 조물주는 그런 명복을 선천적으로 하사부여하시지 않은 모양이다. 적어도 남자를 주도적위치에 놓고 녀자를 수식용이나 부속물로 안배한것 같다.

  녀자가 타는 자전거뒤에 남자가 올랐다면 어떻게 평가될가?  녀자가 모는 오토바이뒤에 남자가 앉았다면 어떻게 평판할가?

  녀자가 운전하는 하이야옆에 남자가 동석했다면 어떻게 지껄일가?

  녀자가...남자가...

  이번엔 경우를 바꾸어 꽤 아이러니한 퍼즐을 제기하도록 하자.

  녀자가 홀로 외길을 걸어가면 남자가 동행을 발싸심해 뒤따른다.

  녀자가 홀로 차에 오르면 남자가 얼른 쿠션이나 옆자리를 양도한다.

  녀자가 홀로 한숨쉬면 남자가 은근히 걱정으로 눈치를 살피며 궁금해한다.

  녀자가 홀로 산다면 남자가 제꺽 자기도 홀애비라고 자아소개를 서비스한다.

  알고보니 녀자를 미천하게 기시하면서도 녀자가 중요한게 남자다. 녀자가 좋으면서도 비쌔는게 남자다. 호감을 숨기고 진정을 파묻고 위선존엄을 부리는 성향이 남자다. 남존녀비ㅡ남녀로소ㅡ남녀칠세부동석ㅡ남좌녀우ㅡ남녀로유ㅡ남부녀대ㅡ남녀유별ㅡ남녀평등ㅡ남흔녀열(켕隙큽릠)ㅡ남녀공학ㅡ남창녀수(켕나큽?)ㅡ남녀동권ㅡ...무릇 남녀를건드릴라치면 무조건 녀자를 뒤에 배렬한건 먼 력사착오이다. 또한 가까운 근대현대의 재생내지 습답이다. 그러한 경직속에 녀자는 그냥 남자부속물로 종속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줄로 알고 자유박탈, 인권유린을 일삼케 되잖는가! 오도된 사회생리와 가정관념이다. 녀자가 간혹 외박외식을 한다면 온 가족이 총동원되여 광고홍보로 수소문하는 민감성이다. 녀자가 만분의 일의 실수로 CO₂를 발산했다면 하느님이 알프스산에서 로케트로 스키를 탄듯, 염라대왕이 태평양에서 낚시로 고래를 잡은듯 기문일화를 만든다.

  녀자집중권에서 해탈되려 하면서도 녀자본체를 탐닉하는게 남자직경의 본능이다.

  녀자구심력을 배척하려 하면서도 녀자원심력을 구하는게 남자반경의 관능이다.

  당연히 녀자는 초롱속의 새로 갇혀서 끈의 조종을 받아야 하게 된다. 녀자를 일일이 클릭하면 그 개개의 감옥은 집과 직장, 회사를 벗어나 옹근 사회가 령역범주를 확장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남자애가 울면 “에익, 시시하게스리 녀자애들처럼 울다니...남자는 피를 흘렸지 눈물은 몰라”하고 으시댄다. 눈물이 녀성의 무기인듯말이다. 남자가 울면 조소를 받고 녀자가 울면 동정을 받는다는 설교에설가! 아니다. 적어도 녀자가 예속적으로 당하기 마련이라는 고루한 견지에서 남자를 선차적으로 우상도금한거다. 그렇다고 녀자를 경원시하라는 악의 권장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인격절대치를 보장하라는거다.

  이제부터라도 부디 남녀순위거나 계칭분야를 언급할라치면 의례 녀남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자. 녀주석, 녀대통령, 녀추장, 녀서기, 녀청장, 녀총리, 녀황제가 많지 않아도 인문교제에서라도 그렇게 칭하도록 시도하자. 하여 필자도 제목을 굳이 녀자와 남자로 달았음을 부언하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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