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나드리 여행수기당선작[우수작]김용관

해마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여름 MT를 떠났다. 올해도 수련회를 마치고 어디로 MT를 떠날까 고민했다. 올해는 여름 수련회를 충북 괴산으로 갔기에 수련회 장소 근처에 문경이 있어 잠시 들러 보니 레일 바이크 타는 곳이 있었다. 그 곳을 알아 보러 가서 올해가 경북 방문의 해 이고 팜플렛에는 경북의 여러 지역이 소개 되어 있었다. 마침 학생중 하나가 영덕 출신이어서 영덕을 비롯 안동, 포항, 경주 등을 둘러 보기로 마음에서 정했다.


수련회 이후에 나와 나의 아이를 비롯하여 총 10명을 모아 즐거운 MT를 떠났다. 서울에서 경부선, 영동선을 따라 서원주 IC에서 우회전하여 중부내륙고속도를 타고 안동을 지나 영덕으로 향하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뚤려 심리적으로 목적지 영덕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안동을 들르고자 했으나 시간상 생략했다. 안동의 하회 마을과 도산 서원을 둘러 보고 싶었지만 영덕으로 곧장 향하게 되어서 조금 아쉬웠다. 영덕이 의외로 먼 곳이어서 몇몇 학생이 수강신청 때문에 아침에 조금 늦게 출발한 탓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영덕 바닷가에 도착할 때 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포항출신의 이명박씨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북방문에 가장 적절한 소식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영덕의 숙소에 도착하기전 길거리에서 복숭아를 사먹자는 의견이 있었다. 영덕은 대게와 함께 복숭아로 유명하다. 과수원에서 폼 잡고 사먹을려고 했는데 배도 고프고 하니 그냥 지나 가는 길에 사기로 했다. 영덕 출신의 학생이 경상도 사투리로 유창하게 말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5000원에 무려 30개 정도의 복숭아를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영덕의 인심이 어떤 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줌마의 마음은 마치 영덕 복숭아처럼 아름답고 꽉 차 있는 것같았다. 영덕 출신의 학생도 그런 점이 많았는데 영덕 사람들의 특징이 착하고 아름다운 내면성을 가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30개의 복숭아를 2박 3일의 MT 기간 내내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영덕 복숭아를 싸게 많이 먹고 싶은 사람들은 우리처럼 길거리에서 한번 사보도록 해봐라. 그러나 반드시 우리같은 행운을 얻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산호 민박에 도착하기전 먼저 해가 지기 전에 영덕 풍력 발전소에 들르기로 했다. 영덕 풍력 발전소는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저자 문화재청장 유홍준씨가 죽기 전에 가볼 33 곳 중에 하나로 추천한 곳이다. 멀리서 바닷가가 보이면서 유럽에서나 볼 수 있을 것같은 거대한 기둥에 달린 바람개비가 멋있게 우리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해안선을 따라 가며 우리는 드디어 바다와 바람이 조화롭게 만나는 곳, 아름다운 영덕 풍력 발전소에 도착했다. 발전소라는 말이 이곳의 멋을 떨어뜨릴지 몰라도 발전소는 발전소니 어쩔 수 없다. 이곳에서 발전된 전기로 영덕 군이 모두 불을 밝힌다고 했는데 얼마나 근거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마침내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는 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산 이라기 보다는 언덕(Hill)이다. 정말 그 거대한 바람개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넓어지고 시원해지고 커지는 느낌이었다. 유럽에 온 것 같았다. 게다가 주위는 바다 바다 바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하고 넓어졌겠는 가? 한 서울 학생이 말했다. “ 음 나는 여기서 태어났어야 해 ”그는 그곳을 자신의 제 2의 고향쯤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우리는 경북 방문 해의 스템프를 받고 주위를 둘러 보다가 넓은 잔디 구장과 풋살 경기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울에서 내려간 우리는 설마 그곳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공짜라는 것이 아닌가? 풍력발전소에 축구 잔디 구장이 있다는 것이 조금 풍광을 헤치는 감도 없지 않았으나 우리는 마음껏 풋살 경기장에서 젊음을 발산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영덕 사람들의 축구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는 데 그 축구 경기의 이름은 대게 리그 였다. 말만 들어도 시원한 경기일 것같은 생각이 들었고 대게들이 가위발을 휘두르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우리는 영덕 강구항이 근처에 있는 바닷가의 민박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바닷가라 모기들이 조금 있었지만 순진해서 인지 금방 잡을 수 있었다. 11시쯤 해서 식사도 마치고 가져간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시간이 남아서 민박집 도로 건너에 있는 시멘트 노견 불럭에 앉아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누웠다 일어나기도 하며 하늘의 별들을 바라 보았다. 정말 바람이 별에 스치우고 있었다. 시인의 말을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답고 시원한 밤이었다. 이런 밤에는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자랑하듯이 문자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 5시 20분 쯤. 평소에 늦잠을 자던 사람들도 다 6시가 되기전에 일어났다. 그리고 방파제에서 해돋이를 감상했다. 숙연한 모습으로 명상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이 어시장에 가고 싶다고 해서 나와 한 학생은 식사를 준비하고 나머지는 봉고차로 어시장에 갔다. 생동감있는 삶의 현장을 보고 배우고자 하는 다분히 교훈적인 행보였다.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이 돌아왔는데 회 두 봉지를 내 보이는 것이었다. 만 원 어치 회라는 것이다. 돈이 만원밖에 없는데 한 학생이 생각없이 무모하게 5000원치 생선회와 5000원치 오징어회를 달라고 했고 주위 학생들은 아주머니 날카로운 시선을 예상하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조금 어이 없는 눈빛을 하였지만 곧“ 아니 학생들이 여기 오는 데 겨우 만원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 하면서 만원어치 회를 썰어서 많이 담아 주셨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우리는 훈훈함을 느꼈다. 우리는 또 10명이서 그 만원어치 회를 먹을 만큼 풍성히 먹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영덕 어촌 민속 전시관을 들러서 장사곶 해수욕장에 갔다. 어촌 민속 전시관은 꽤 잘 만들어진 곳이었다. 물고기를 어떻게 잡는 지 자세히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온갖 물고기와 조개, 어패류, 게류가 그림과 사진으로 잘 나타나 있었다. 특히 영덕의 상징 대게에 대해서는 다양한 코너가 있었다. 어촌의 모습을 보고 대게를 비롯하여 물고기들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몸과 마음이 새로워짐을 느꼈다. 어촌 민속 전시관에 유일하게 현대적인 시설이 하나 있는 데 입체영화관이었다. 이곳 어촌 민속 전시관은 경복궁 민속박물관 이상의 깔끔하고 정교한 시설들로 알차게 만들어졌는데 게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은 입체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정규 시간이 있지만 사람 수와 영덕의 훈훈한 인심에 기대어 밀어 붙였는데 관장님이 허락해 주셨다. 드디어 영화시작. “ 대게의 여행” 인가 하는 입체 영화를 봤는데 모두가 감탄했다. 지금까지 본 어떤 입체 영화보다 나은 것같았다. 우리 아이는 “ 100만원 주고도 아깝지 않는 영화다 ” 라고 말했다. 1500원씩인가 주고 들어갔는데 잘 만들어진 전시관 같아서 보고도 흐뭇했다.

 

장사곶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우리는 경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경주로 가는 길에 우리는 포항에 두 유명한 대학에 들렀다. 하나는 한동대, 하나는 포스텍(포항공대)이었다. 이 두 대학은 독특한 전문성으로 유명했는데 방문은 퍽 유익했다. 한동대는 ALL 영어로 수업하는 대학이다. 그리고 무감독 시험으로 유명한 대학이다. 포항공대는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캠퍼스, 건물, 기숙사 모두 세계수준이었다. 이런 대학을 만들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며 무엇을 하든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 운전수(?) 가 갑자가 브레이크를 잡아서 깜짝 놀랬다. 옆을 보니 경찰관들이 단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국사 가는 길까지 계속해서 [전국 교통 사고 1위 도시 경주] 라는 플랭카드가 보였다. 이런 플랭카드를 보면서 얼마나 낯선 사람들이 전국 방방 곡곡에서 모여들고 있는 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또한 이렇게 솔직하게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경주공무원들을 통해서 서울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순수하고 진솔된 경주 공무원들을 통해서 순진함과 지방의 맛이 느껴지는 것같아서 좋았다. 신라의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 사람들의 품격, 신라인들의 특징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경주에 도착하여 숙박하고자 지나가며 한 팬션의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했다. 12만원을 불렀다. 꽤 좋은 시설을 갖추고 정당한 가격을 부르는 것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없어 불국사 쪽으로 더 가서 어림 없을 것같지만 유스호스텔을 알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알아본 곳이 불국사 ***** 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5만원에 취사를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좀 더 비싸 보이는 불국사 **로 갔다. 그런데 그곳 사람이 불국사 *****을 잘 알고 그곳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잠시 후 곧바로 한 대의 승용차가 우리를 안내하러 왔다. 크라이슬러였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자동차가 우리 승합차를 안내하러 온 것이다. 그것도 사장님이 직접 타고.. 그 사장님은 우리가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의례적인 물음 정도로 알고 서울 명륜동에서 왔다고 하니 그곳이 바로 자신의 아내가 살던 곳이라고 하면서 더욱 친절하게 섬기기 시작한다. 좀 한가한 철이니 부엌을 다 쓰고 필요하면 김치도 다 갖다 먹으라고 하였다. 우리는 5만원에 에어컨과 TV가 있는 넓은 방을 쓰게 되었다. 잠시 후 그 사장님 다시 오시더니 나를 보고 학생들과 함께 자면 되겠느냐고 하면서 지도자격인 나와 아이는 다른 방에서 주무시라는 것이었다. 사장님이 주신 열쇠를 가지고 가보니 아주 쾌적한 침대방이었다. 이렇게 태어나 처음 보내게 된 불국사의 밤은 천년의 고도의 분위기만큼이나 신비하고 쾌적한 밤이었다.

 

아침에 우리는 불국사를 찾고자 했다. 우리는 숙소 촌을 떠나서 어느 정도 멀리 떨어진 곳에 불국사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숙소 촌 아래로 내려 오고자 했다. 그런데 표지판을 보니 불국사는 숙소 촌 위쪽으로 되어 있었다. 예스런 풍으로 지어졌으나 그 크기나 시설인 현대풍임에 틀림없는 숙소 촌을 지나서 불국사 주차장에 이르게 되었다. 무슨 문제가 생겨서 주차도 공짜라고 하였다. 그리고 산등성이를 올라서 도착한 곳은 불국사. 한국 문화유산의 상징지요 신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이라 할 수 있는 그 불국사였다. 그러나 불국사의 조그만 규모도 실망스러웠지만 여러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불국사 앞에 있는 세계문화유적이라는 돌비는 불국사와 매우 어울리지 않았다. 글자체나 돌 모양이 불국사의 역사와 향기에 어울리지 않는 멋없는 근대적 돌 덩어리였다. 관람료 4500원은 너무 비싸고 관람한 후에 허망함을 주는 가격이었다. 솔직히 다보탑이나 석가탑도 조금 실망스러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관람료 정도이면 불국사와 석굴암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외부 방문객들에게 적정하고 마케팅 차원에서 나을 것같았다. 솔직히 거대한 숙소 촌에 비하면 불국사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러나 한편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이나 백제인들의 기백과는 다르게 따스하고 소박하고 정교했던 신라인들의 특징을 이해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석가탑과 다보탑에서 신라인들의 섬세함과 예술성을 접하게 되었고 신라의 특징과 힘을 느끼는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경주 방문은 역사적인 고대도시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뜻 깊다. 천년 고도 경주 방문, 불국사는 비록 내게 조금 실망을 주었지만 천년의 고도를 자동차로 달리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뭔가 깊은 맛을 느꼈다. 첨성대와 왕릉을 주위로 가장 현대적인 자동차를 타고 달릴 수 있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경북방문의 가치는 충분하였다.


요새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깊이가 부족하다. 또한 많은 것을 하지만 깊은 향과 맛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가? 이런 점에서 경주 방문은 그것 자체로 나의 영혼과 정신을 새롭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는 비록 어쩐지 부조화스런 불국사 주변 경관과 몇 가지 점들에 대한 아쉬움을 잊게 해주었다. 영혼과 정신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경주에 오라. 그리고 그 곳에서 1 박만 하여도 충분히 새로워질 것이다. 왕릉이라도 돌아보고 석굴암이라도 다녀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경북 방문의 해를 맞아서 경북도청에서 지정한 문경, 영덕, 경주의 다섯 곳의 명소를 둘러 보았다. 문경의 레일바이크, 영덕의 풍력발전소와 어촌 민속 전시관, 그리고 불국사 모두 모두 감동이 있었고 경북도민과 지자체의 정성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곳들이었다. 2007 경북 방문의 해라는 이벤트와 구체적인 방법들이 매우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스템프 받으러 다니는 재미도 솔솔했다.

 

불국사에서는 석가탑, 다보탑에 담긴 예술가의 혼과 함께 따뜻하고 진실된 경주 사람들의 혼을 접하게 되어서 감사했다. MT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영덕 출신의 친구는 내년에는 전라도에도 가보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정말 훈훈한 영덕 사람, 경상도 사람의 향기가 아닌 가 생각했다. 경상북도 방문은 경상북도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시설, 문화유산과 함께 와 함께 경상도 사람들의 따듯한 혼을 접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방문이었다. 전라도 사람으로서, 나의 처가가 경상북도에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경상북도는 2007년, 나에게 더욱 정감있게 다가왔다. 2007년 경북방문의 해를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경상북도 방문을 권하고 싶다.

 

특히 서울사람, 전라도 사람들에게..

[출처] [여행수기당선작-우수작]"나의 경북 방문 체험기"|작성자 경북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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