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마주친 가슴 아픈 이별 장면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나는 어미와 차마 붙잡지 못하는 자식의 슬픔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10여년 전 만주를 여행할 때 목격한 가족의 이별 장면. 이런 장면은 최근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족과 이별한 조선족은 대개 한국으로 와 이별을 감내하며 돈을 벌려 한다.
이별의 개산툰 역, '이별의 부산 정거장'처럼 보슬비도 오지 않았고, 12칸 긴 기차도 아니었다. 한여름 하오 달랑 두 칸을 단 기차에 손님도 한산하다. 조용한 이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도 슬픈 이별을 봤다.

한낮, 두만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한층 감미롭다. 아니 차라리 한가하다. 띄엄띄엄 기차에 오르는 손님이래야 스물 남짓 국경의 작은 기차역은 외롭기 그지없다. 두만강 기차 종점 개산툰은 연변 지역에서는 드물게도 조선족 지명이 아니라 한족 지명이다. 한족이 개척한 마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족들이 많이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름만은 한족식이다. 달랑 두 칸짜리 기차는 텅텅 비어 열려진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바람도 한가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넓게 빈자리를 잡고 외로워질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런데 창밖의 풍경이 자못 심상치 않았다. 예닐곱 살 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열두어 살 쯤 되어 보이는 누나에게 매달려 때를 쓰고 있었고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절망스런 표정으로 주저앉은 채 아이들 쪽을 보고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려 하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 쪽으로 가 눈빛이라도 맞추려 한다. 하지만 아이는 떠나는 엄마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고 누나의 가슴에 매달려 때를 쓴다. 아이도 엄마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애꿎은 누나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이러저러 아이를 잘 설득시켜 정거장까지 오기는 했지만 막상 떠나려는 순간에 아이가 참을성을 잃어버린 바람에 아니래도 무거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우는 아이에게 상황의 초점이 맞춰 있지만 실상은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어머니나, 동생을 달래고 있는 누나도 그 상황에 울고 싶은 것은 같은 심정이다.

기차가 조금씩 움직였다. 급하게 기차에 오르는 엄마는 안타깝게 아이들 쪽을 보며 손을 흔든다. 아이는 여전히 얼굴을 주지 않았고, 그제야 누나가 어린 동생 때문에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손을 흔든다.

"몸조심 하시라요…."

엄마는 큰 소리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밥 잘 먹고…엄마 곧 올께…."

매정한 기차는 엄마의 목소리를 사정없이 지워버린 채 속도를 낸다. 이내 산모퉁이를 지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엄마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닦는다. 아이의 울음으로 짐작할 수 없었던 슬픔의 깊이가 내 가슴에 전해져 온다.

무엇 때문엡.

엄마라는 여인의 옆에 놓인 커다란 가방으로 봐서 한국으로 가는 것 같다. 그 아주머니는 앞으로 한국 땅에서 그 가방보다 더 큰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싸우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픈 장면이었다.

저렇듯 한 가정이 가져야할 단란한 시간들을 다 빼앗아 돈을 번다한들 그것이 과연 잘한 선택일까….

연변을 여행하다 보면 그러한 이별의 장면은 흔하게 볼 수 있다. 흔할 정도가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대도시로 나간 조선족의 숫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 가구에 한 명 이상은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가정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어야 할 가장과 주부들이 상당수 섞여 있어 교육문제가 심각하다. 작게는 가정의 파괴와 크게는 중국 내 조선족 사회의 붕괴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조선족들의 인구 유출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남보다 더 잘살아 보겠다는 욕망 하나로 모든 문제를 접어두고 먼 고국으로 바다를 건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는 한 조선족사회의 해체는 시간적인 문제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그 주범이다.

개산툰의 슬픔, 그 근원에는 한국이 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