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휩쓴 '文革' 조선족 '文靑'인들 비켜 갔으랴
격동기 직접 겪은 '하방세대' 작가군
체험 바탕으로 뛰어난 작품들 내놓아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두만강변 주막에서 하방세대의 조선족 작가 우광훈(왼쪽) 선생과 자리를 함께한 필자.
대륙에서 1960년대 말부터 10여 년간 매년 강제로 농촌에 이주 당한 도시 청년(학생)들을 '하방세대'라 한다. 이들을 가리켜 회의하는 세대, 사고하는 세대, 황폐한 세대, 방황하는 세대, 실패한 세대 등등 다양한 이름이 따르는 것은 그들 모두가 다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보면 해방과 전쟁을 동시에 겪은 세대와 비슷하다 할까.

이들의 독특한 생활 경험과 인생 체험은 오히려 개인의 귀중한 자산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극좌 노선의 희생자'로 '황당무계한 시대의 비극'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의 심정은 복잡한 것 같다. 수천만 도시 청년의 하방은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주운동이었다.

중국 조선족 문단 대표 작가인 우광훈, 이동렬, 이혜선 소설가는 모두 그 하방 세대이다. 우리의 전후 문학이 그러했듯이 중국의 조선족 문단의 소설 또한 당분간 그들 세대들을 뛰어넘는 작가가 출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설에 있어서 경험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나는 그들과 지난 십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차례 교류를 가졌고 많은 대화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서로의 가치 세계가 엇박자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문혁이나 하방에 대한 나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에 환상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문화혁명이나 하방운동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별로 없었다 할 수 있다.

오히려 그 당사자인 그들이 비판적인 것에 놀랐다. 그들 역시 우리 사회에 대해 대단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우리 사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한국의 전후 세대들이 도덕에 좀더 무게를 둔다면, 중국의 하방세대들은 자유에 더 무게를 둔다.

지난 여름 하방세대의 대표 작가인 우광훈 선생과 두만강변에서 탁주를 마시며 긴 시간 그의 소설 '흔적'과 하방세대로서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현대 중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던 문혁을 바로 볼 수 있었다.

문화혁명 때 부친이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발목에 족쇄를 차고 다녔다는 작가 우광훈은 하방이 만들어놓은 소설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한창 자랄 때 먹을 밥이 없었고, 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기 없었고, 출근하여 돈을 벌어야 할 때 일자리가 없었으며, 중년에는 직장에서 밀려나야 했다.'

그는 하방세대를 스스로 자조하는 유행어로 그렇게 소개했다.

그의 대표작 '흔적'의 주인공은 자신의 여러 모습이 투사된 인물이다. 문화대혁명 세대이면서 우파분자의 아들이다. '따구쟈'라고 부르는 산촌에 내려가 갖은 수모를 받는 중 예쁜 아가씨를 만나 사랑했지만 우파분자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실패한다. 그 뒤 다시 도시로 돌아와 여러 직업들을 전전하면서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결국 죽기로 했는데 뜻하지 않게 구원자를 만나 새 삶을 살게 되고 비구니가 된 첫사랑의 여자도 만나게 되지만 환속을 고집하는 그녀를 두고 귀향하는 것으로 끝난다.

'흔적'은 강권정치와 극좌 노선에 대한 고발이지만 그것보다 하방 세대들의 정신 타락과 신앙 위기 그리고 사랑이 죽은 시대에 대한 조명에 더 큰 무게가 있다. 주인공은 절망 끝에 스님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는다. 전통적이고 혁명적이고 주도적인 의식형태가 아닌 종교의 계시에 의하여 소생된다.

문화대혁명세대가 그렇게도 신앙하던, 아니 그것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 바칠 수 있었던 그 의식형태에 대한 반발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화대혁명의 파괴성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나타났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유린에서 나타났다. 그 흔적을 지워버리기는 정치나 경제를 회복하는 것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 세대가 경험했던 엄청난 삶의 파고는 소설의 입장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었고, 조선족 문단의 폭과 깊이를 한 단계 올려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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