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의 연변리포트

 연변으로부터의 부메랑

우리사회가 연변에 대해 적극적이고 충분한 애정을 보이지 못함에 따라 연변 또한 우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불만은 대체로 지엽적이고 개별적인 것에서 시작되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핵심적이고 포괄적인 불만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조선족동포들이 약자의 입장에서 개별적이고 사소한 문제조차 한국정부와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하려 하는데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동병상련한 입장에 있는 동포사회에서 공감을 얻게 된다. 예컨대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한국에 오지 못하거나 브로커로부터 사기를 당해도 이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한국정부와 한국사회 전체가 지탄의 대상이 된다.

적지 않은 조선족동포들은 한국에 급한 볼 일이 있을 경우 정상적인 사업비자 발급이 늦어지게 되면 으레 여행사에서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단체로 한국에 입국한 후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개인적 업무를 본다. 이 경우 여행사는 일정액의 벌금을 징수하는데 조선족동포들은 이에 대해 전후사정을 살피지 않고 한국정부가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돈을 쓰게 된다고 탓한다.

중국 장춘에서 연길로 가는 기차 안에서 겪은 일화 한토막. 자리에 앉아 기차가 출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술에 취한 한 조선족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 자연스레 상대에 대해 불만을 말할 때 흔히 하는 욕지거리가 뒤따른다. 잠시 조용해진 틈을 이용해 옆에 있던 동료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더니 심양 한국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으려다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비자발급이 안된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조선족동포들, 특히 한국에 오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비자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들을 도외시한 채 무조건 한국에 대해 불만을 퍼붓는 조선족들을 대하다보면 이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비자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또는 한국사회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그들에게는 한갓 구실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과 한국사회가 조선족을 동포로서 제대로 대접하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그들이 모국으로 생각하는 한국을 마음 편히 왕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조선족동포들의 어떤 불만도 다 한국과 한국사회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탈 한국화에서 친 중국화로

적지 않은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보인다. 일부사람들은 심지어 한국을 모국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또 한국사람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려 하지도 않는다. 설령 한국 및 한국사회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동포애를 바탕으로 한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려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정신적 유대를 통한 형이상학적 관계가 아니라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 맺어진 형이하학적 관계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중수교 15주년이 지나 한중관계가 강화되고 있는 것에 반비례하는 듯하다.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관계맺기 역사가 길어지면서 오히려 관계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조선족사회 내에서 조선족문화 또는 조선족끼리의 관계가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조선족사회가 한국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회로부터 얻는 경제적 과실마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과실은 그대로 취하지만 마음에서는 홀로서기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체계화되거나 조직화되지는 않았으나 개인적 차원의 주장은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2007년 봄 베이징에서 열린 학술회의서 한 조선족학자는 한국정부의 대조선족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조선족사회가 독자적으로 자생력을 기르기 위한 네트워크 구축 필요성을 역설하고 스스로 그 일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중국 베이징중앙민족대학의 김병호교수는 조선족이 한국이나 북한이 아닌 “중국의 조선족”임을 강조하며 “조선족의 장원한 생존공간은 중국이고 참다운 대우를 받을 나라도 중국”이라며 “조선족은 허망한 욕망과 환상을 버리고 착실하게 중국 땅에서 살아가면서 민족문화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조선족 논객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조선족이 한국사회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늘어놓는 가운데 “‘우리는 이제 중국사람이다’라는 관념을 확고히 하고 중국에서의 자강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조선족이 한국에서 울분을 참으며 눈칫밥을 먹어야 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그 이유를 한국과 한국인의 은사(恩賜)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자강(自强)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변 조선족사회에서는 최근 조선족이 언어생활의 지향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주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다. 조선족의 언어적 장점이 한국의 경제발전과 깊이 연관된다는 점에서 한국어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지지를 얻고 있지만 조선족 말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며 독자성을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연변의 생활문화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연변의 전통문화를 독자적으로 유지‧발전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갈등 틈새를 중국정부가 끼어들고 있는 점이다. 중국은 조선족동포들이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한국에 경도되는 것에 대해 경계해 왔다. 연변조선족을 신장의 위그르족, 내몽골의 몽골족, 티벳의 티벳족과 함께 55개 수수민족 중 문제의 소지가 큰 민족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한편에서는 조선족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소수민족정책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시혜적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조선족들을 지원하면서 한국사회로부터 냉대(?)받고 있는 조선족들의 감정을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족동포들 사이에서도 이른바 ‘신화교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신화교란 기존에 해외에 나가있던 구화교와 구분해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해외로 나간 새로운 화교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한족뿐 아니라 중국국적을 가진 여타 소수민족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에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국적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들도 신화교에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선족동포들은 한민족으로서 화교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따라서 아직은 이러한 주장이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족동포가 30만 명을 넘어서고 이들 중 한국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경우 조선족동포들도 점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곽승지 :  정치학 박사/ 연합뉴스  영문뉴스 북한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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