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48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근래에 각계각층에서 상용한자(常用漢字)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그것도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 교육을 실시해야 된다는 여론이다. 광복 이후 한자 혼용은 급격하게 줄고, 신문․잡지마다 거의 한글 전용이 되었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대학교육까지 받은 사람들마저 언어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사실일 것이다. 사생활은 물론 공공(公共) 업무마저 감당해 내지 못하고, 빈번한 착오(錯誤)와 실수(失手)로 여러 가지 사회 문제까지 발생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적(戶籍)과 주민등록표의 표기(表記) 착오이다. 성명을 동음자(同音字)나 탈획자(脫劃字)로 잘못 표기한 사례가 급증하고, 이름을 대도 한자(漢字)를 몰라서 제대로 적지를 못한다. 본관(本貫)과 성명도 잘못 적어서 새로운 창씨(創氏)까지 여럿 발생되었다. 성명은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만 고쳐질 수 있는 것이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글로 된 문서와 글들을 읽고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읽기는 읽는데 한자어(漢字語)의 뜻을 몰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학생들도 상용한자를 혼용한 교재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인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개개인에게 책임 지울 수 없다. 한 마디로 국어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큰 책임이 있다. 국민들이 국어(國語)에 대한 잘못된 의식(意識)도 이런 사태를 몰고 왔다고 할 수 있다.

북한(北韓)은 광복 이후 20여 년 동안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한글만 전용했었다. 그러다가, 1968년부터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상용한자 2000자를 가르치고 있다. 한글 전용을 그렇게 강조하며 살던 그들이 왜 한자 교육을 새로 하게 되었을까? 상용한자도 모른 채 한글 전용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었고 삶이 고통스러웠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상용한자의 교육은 국어교육이 아니라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상용한자나 한자어의 교육은 분명히 국어교육이다. 한문이나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고, 그 전단계(前段階)도 아니다. 한자와 한자어를 제법 알아도 한문은 외국어처럼 따로 배워야 안다. 현대문인 백화문(白話文)을 쓰는 중국인들도 한문은 따로 배워야 안다.

그리고, 한자 학습도 우리는 우리 음(音)으로 읽고 우리 뜻으로 배운다. 중국인은 중국어로, 일본인은 일본어로 각각 배운다. 보기로 ‘東京’을 일본 사람들은 ‘토요쿄오’로, 우리는 ‘동경’이라 부른다. ‘東西’를 우리는 ‘동서’로 읽고 방향(方向)이나 동서양(東西洋)의 뜻으로 생각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뚱시’로 읽고 때로는 ‘물건(物件)’이나 ‘상품(商品)’의 뜻으로 사용한다. 똑같은 한자요 한자어라도 각기 자기 나라의 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또한, 우리말은 70%가 한자어이다. 그 활용도(活用度)도 매우 높다. 그런데, 한자어는 한자로 되어 있고 대부분은 그 한자의 뜻들이 합쳐져서 형성된 한자어의 뜻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한자의 자석(字釋)과 자음(字音)을 알면 그 한자어의 독음(讀音)과 의미도 알 수 있다.

보기로, ‘아비 부 父, 어미 모 母, 아들 자 子, 계집녀 女’ 넉자를 익히면 그들로 된 한자어 ‘父母, 子女, 父子, 母女, 父女, 母子’를 스스로 알게 된다. 여기에 ‘기를 양 養’을 알면 ‘養父, 養母, 養父母, 養子, 養女, 養子女’처럼 다른 한자와 결합된 한자어들까지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한자(漢字)를 자형(字形, 모양)과 함께 자석(字釋, 뜻)과 자음(子音, 소리)을 동시에 학습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로 상용한자를 알면 많은 한자어들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히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중학교용 교육한자 900자가 형성한 한자어가 국어사전에 63,000개나 실려 있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留念)하여야 할 것이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자를 가르치지 말자고 한다. 한자를 알아도 쓰지 말자는 뜻이지만, 한자를 몰라야 쓸 수가 없을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어휘(語彙) 구조와 사용 빈도(頻度)로 보아 그래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한글만 쓰던 북한이 왜 우리보다 더 많이 보다 일찍부터 한자를 가르치게 되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글에서는 불편(不便)과 지장(支障)이 없는 한 한글로만 써도 된다. 문학작품이 좋은 보기이다. 그러나, 한글 전용은 활용도(活用度)가 높은 상용한자를 알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영어(英語)를 아는 이는 한글로 적은 ‘아이 러브 유’를 알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이 러브 유’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말뜻은 알지 못한다. 상용한자를 모르고 한글 전용을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오늘날 한글 표기가 대부분인데도 상용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도리어 우리의 언어생활에 많은 곤란과 불편이 생기고, 오해(誤解)와 곡해(曲解)까지 발생되고 있는 사태를 보고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글 전용은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상용한자의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당겨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상용한자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3개년은 보충(補充)과 활용(活用)의 기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