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는 조선족 만나본다 (15)

인천공항세관에서 내 가방안에 들어있는 돈뭉치를 보고 얼마냐고 묻는다. 확인이 필요한거라면서 봉투를 열어보기까지 하더니 돈액수가 500만원 미만인것을 보자 그냥 가도 좋다고 했다. 현금 1만딸라 이상 지니면 별도로 해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세관까지 무난하게 통과해서 나왔는데 함께 귀국길에 오른 지인의 짐이 해관에서 걸렸다. 휴대용으로 챙긴 짐속에 액체상태의 화장품이 있었는데 그걸 휴대하고 비행기에 오를수 없다는것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문에 그분은 1만 5000원의 운임비를 더 내고 화장품을 짐으로 만들어 부쳐보낼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출귀국비행기 짐을 짤때 화장품같은 액상물건은 휴대하지 못하므로 짐속에 넣어 함께 부치는것이 좋다.

다행히 내가 만든 짐은 규정량 20킬로그람을 조금 초과하긴 했으나 인천공항 사업일군은 《다음부터는 짐을 줄이십시오》 하면서 주의만 주고 그냥 통과시켰다. 인천공항 사업일군들의 태도와 써비스는 친절하고 일류다. 중국쪽 탑승구 수속은 E구역에서 하는데 워낙 항공기편이 많고 중국손님들이 많은지라 줄을 서서 대기하고있는데 행여 곧 출발할 비행기수속을 미처 끝내지 못한 손님이 더 있을가봐 공항사무일군이 《샹하이 손님!》 하면서 탑승수속을 여러 번이나 확인하고 재촉한다.

안내방송에서 11시 30분이면 출발예정이던 인천― 장춘행 비행기가 장춘지구의 기상악화때문에 연착되여 오후 3시 30분이 되여야 리륙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니나다를가 12시 리륙 예정이던 대련행 항공기도 출발시간이 12시 50분으로 바뀌고 또 후에는 1시 30분으로 연착되는 등 비행기시간이 자꾸 연착되다가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드디여 리륙할수 있었다.

대련에 도착한 후1시간이 넘게 한국에서 날아온 짐들을 찾아들고 출구에 나서니 동생인 광수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었다. 기차역 가서 짐을 맡긴 후 저녁식사하러 나갔는데 음식점에서 한껏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높은 목소리도 들리고 음식도 한가득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어주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 사람사는 냄새가 느껴졌다. 그러나 길에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과 함부로 빵빵 귀청 따갑게 울려대는 자동차경적과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무표정함과 불친절들이 더욱 가슴에 맞혀오고 또 당혹스러워지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차질없이 저녁 6시30분 대련 ― 연길행 기차에 올랐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마가을 풍경들이다. 한국은 떠나올 때도 아직 푸른 잎이 많았는데 연변은 푸른 잎새 하나 바라볼수 없이 단풍도 이젠 절정을 지나 지는 중인것 같다. 벼와 한전 수확도 어느새 다 끝나고 벌판은 허허하다. 이제 곧 겨울이 닥쳐올것이다. 보름이라는 시간은 비록 길지는 않으나 내가 그 시간동안 다녀온 15일간은 모든것이 변화를 일으키려는 계절갈림의 시간이였다.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다. 더우기 자연의 계절갈림에 서서 변화를 감지해야 하듯이 인생과 그리고 살아가는 삶의 계절갈림을 의식했다면 우리들의 인생도 깨닫고 느끼는 잠시동안의 시간문제일뿐이다.

이번 한국행에서 많은것을 배우고 듣고 느꼈다. 그 듣고 배우고 느낀것들이 나의 한국방문인상기를 통해 한국의 조선족들을 알고자 하고 또 한국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느낌이 있는 글로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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