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아침 늦게 일어났다. 남수의 오토바이소리가 여러번 들려왔다. 남색운동복에 헬멧을 쓴 그가 유리창너머 보였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누워있고만 싶다. 바늘이 떨어진다. 고요한 물에 미세한 무늬가 인다. 가늠할수 없는 우물속 깊이다. 아늑하고 티끌조차 없다. 내 고향의 정적은 그랬다. 만시름 잊을만큼 너무나 조용했다. 오래간만에 단잠을 푹 잤다. 남수는 마을을 한바퀴 돌고 시내로 빠져나갔다 오는 길이였다. 시내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딸애한테 생활비를 갖다주었다, 우연히 유진씨의 아들놈을 봤노라, 애가 똑똑해서 장차 사위를 삼겠는지 고려중이다, 롱을 해왔다.

밥을 먹고나서도 나는 선화와 한 약속을 깜박 잊고있었다.

 

남수네집 뒤로 빠져 걸어갔다. 좁은 골목길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것이 불가사의했다. 복선녀네 옛집이 보였다. 아마 누군가 살고있을것이다. 또 한번의 이상한 정적이 내 심장을 느닷없이 뛰게 했다. 삼간초가, 우리가 살던 고향집이 눈에 띄워왔다. 이십년 가까이 찾지 않았으니 스스로 의문이 갔다. 곪은 맹장을 떼버리듯 정을 떼려 했던 자신의 처사에 의구심이 생겼다.

 

삽짝문앞에 서른너댓되는 꽤 곱살한 한족녀자가 서있다. 남수가 어쩐 일인지 낯을 붉혔다. 녀자가 까닭없이 코방귀를 뀌고 눈을 흘기더니 골이 잔뜩 난것처럼 돌아서 갔다. 어떤 예감이 가슴에 닫아왔다. 나는 손가락질했다. 남수가 그렇노라, 어깨를 으쓱했다.

“순전히 사고였다. 술먹고 취해서 자러 간다는것이 집을 잘못 찾았지.”

“그래? 같이 자긴 잔거고?”

남수가 피씩거렸다. 더 이상 친구를 난처하게 굴고싶지 않았다.

순간, 나는 굳어지고말았다. 기억속의 고향집은 그런대로였다. 벼집 이영을 이은 지붕이 비물에 썩어 곬이 깊숙이 패웠고, 네벽이 비스틈이 기울어져 주저앉을듯 위태로워보였다. 아무려나, 괜찮았다. 내가 왔으니까. 당신이 버텨주고있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까. 추억은 추적을 빌어 거듭 확인하고 광을 내야 삶의 보석이 될것이다.

남수가 집주인을 부르면서 문을 떼고들어갔다.

“로왕짜이마(왕형, 집에 있소)?”

 

우리가 이사를 나간후에도 몇집을 거쳤고, 지금은 한족영감이 살고있었다. 페품수구쟁이 왕씨가 집주인이란다. 헛간(고간)과 장작을 쌓았던 자리에 페품무지가 있고, 추억의 돼지울은 없어졌다. 터에 반은 남새가 자라고 반은 방치해둔데로였다.

정지문을 떼자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뜯어냈는지 허망이다. 서까래는 연기에 거슬려 훈제를 한듯 했고 거미줄이 얽혀 그네를 타고있다. 부뚜막에는 기름기 도는 조선솥 대신 입이 큰 한족가마가 걸려있다. 두꺼운 판자두껑이 반쯤 열려있다. 할매방에는 지저분한 고물단지들이 차있다. 페품에서 골라둔것 같다. 우리 방도 한족캉으로 고쳐놓았고, 천정과 벽은 신문지로 도배를 해놔 누렇게 뜬채 떨어져있다. 벽에 붙혀놓은 반라체 미녀상 몇점이 제법 윙크해왔다. 방안은 누런 먼지알갱이로 가득이 차있는듯 했다. 야간렬차가 밤을 새며 달려오는 이곳에, 대평원의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눈꼽 쥐여뜯으면서 내가 찾아왔을 자리에 당신의 새주인이 이토록 방치해두다니? 아아. 숨이 막힐것 같았다.

“나가자.”

내가 먼저 소매를 잡아끌었다.

“응, 이놈은 어디갔지?”

남수가 싱겁다는듯 중얼거렸다.

 

알고보니 아까 그 젊은녀자는 왕씨전처의 딸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왕씨를 찾는 남수가 잠간 이상해난다. 괜히 옛집에 들어가봤다, 싶다. 후회막심이다. 우리가 살아온 옛모습은커녕 미세한 숨소리조차 느낄수 없지 않는가. 모든것이 왕창 흘러가버린 내처럼 곬물이 빠지자 오물투성이 바닥을 방불히 보는듯 했다.

나는 그날의 일기장을 찢어버렸다. 그러나 세절들은 기억에 파잎같이 생생히 남아있다. 이쯤에서 도저히 당신을 쓰지 않을수 없다.

 

뜨락의 울밑에 또다시 봉선화랑 접시꽃이랑 피기 시작했다. 조숙종 나팔꽃이 바자를 감고서 아침저녁으로 나팔을 불었다. 연한 잉크빛에 보라빛의 꽃잎들, 나비와 꿀벌들이 찾아든다. 잠자리들은 투명한 날개를 번쩍이면서 울 가까이에서 날았다. 저녁노을이 비낀다. 노란 지붕에서 흘러내린 노을은 울과 뜨락에 짙고도 선연한 광선을 던진다. 그속에 앉아있으면 태양의 색조감이 알릴듯 싶다. 몸에 흔연히 감겨오면서 빛의 소리를 전해올것 같았다. 그런데 노을이 왜 그리 슬픈지 모르겠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거기에 깃든 마의 정적을 끝없이 가라앉히고있다. 그러면 빛이 사라는것을 보고, 어둠의 사신이 찾아오는것을 보고, 죽음같은 잠나락이 나를 잡아가는것을 볼것이다. 생존과 사멸이 그 빛에 공존하고있다. 생존은 사멸과 싸워야 다시 래일의 태양을 맞이할수 있으리라.

 

엄마는 유난히 노을빛을 좋아했다. 꽃밭에 김을 매면서 또 십팔번지를 불렀다. 고저장단 부드럽게 넘어가는 곡조속에 당신의 입김은 열두굽이 창자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리랑을 방불히 녹여내는것 같다. 당신이 슬퍼보였다. 왜 그 노래만을 그렇게 좋아할까? 어떻게 보면 희망가요 제나름의 아리랑이다. 마냥 흰저고리에 까만 베르베트치마를 입고 당신은 이제 연변 어디론가 떠날것이다. 해마다 그러듯 이날 이맘때면 당신은 집을 떠났다. 그날은 약속이라도 한듯 당신의 남편은 부재중이였고 할매도 놀러가고 없다.

“어머니 갔다오겠다 응?”

당신이 나를 보고 말했다.

“으응∼”

나의 대답은 확실하지 않았다.

 

옷고름을 추켜세우고 턱을 조금 들사하고 당신은 작고 갑싹한 몸을 돌렸다. 온건한 걸음을 떼갔다. 삽짝문을 열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당신이 떠난 빈자리에 노을빛이 응고되고있다. 내 마음의 슬픔마저 굳어져갔다∼

나는 열살 때쯤 엄마와 연변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후로 엄마는 한번도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룡정까지 가서 우리는 뻐스를 타고 비암산고개를 넘었다. 투도에서 내려 어둑스레할 때 외가집에 찾아들어갔다. 전기가 없어 초불을 켜고 옥수수밥에 시쿤 배추김치를 먹던 기억이 난다. 외할매랑 삼촌이랑 곱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지만 나는 웬지 낯설고 서먹하기만 했다. 말하는것, 행동하는것, 먹는것이 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들이 엄마의 엄마요, 형제란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도 내 엄마가 아닌것 같았다.

 

나는 웃목에서 잠을 잤다.

외할매가 한숨을 내쉬더니 엄마한테 소근거렸다.

“그래 가만있던, 너네남편 말이다? 해마다 이러구사 나부터 신경나 못살거다. 정말 무던도 합지비, 어디 가서 그런 나그네를 만나겠냐? 이젠 정신 좀 차리구 살려무나. 죽은 사람 자꾸 찾아간다구 그 량반이 눈뜨구 살아나겠느냐, 응?”

“못잊겠슴다∼ 누군 뭐 잊고싶지 않아 그런다우? 가슴에 한이 맺힌것을, 어혈이 질대로 져있슴다.”

당신은 흐느꼈다. 입막고 겨우 울음을 참는다. 내 가슴이 너무 갑갑해났다.

“에그 에그, 이년아, 언제 가야 이 에미 속을 안태우겠니 응?”

“팔자소관랍디다. 난들 어떡하라우? 흑흑∼”

그러더니 말이 끊겨졌다. 한숨소리가 련이어 터져나왔다. 이윽고 당신은 내곁에 와서 누웠다.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를 만졌다. 눈물이 채마르지 않은 볼을 내뺨에 붙혀왔다. 당신은 또 숨을 죽여 몇번 흐느꼈다.

 

이튿날 아침에 우리는 룡정을 되건너가 뻐스를 갈아탔다. 지금 생각해보니 개산툰쪽이였다. 차는 덜커덩거리며 반나절 좋이 달렸다. 당신은 내 손을 꼭 잡고 놓치 않으셨다. 정말 당신 손에서 벗어나고싶었다. 죽은 사람 보러 가는 기분인것을, 결국 짐작대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엄마와 죽은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혹시, 아버지같은 사람? 아버지를 만나기전에 좋아했던 남자인줄 나는 짐작한다. 이젠 죽었는데 왜 저러지? 정신 좀 나간게 아닐까? 나는 엄마를 리해못한다. 도무지 알수가 없다∼

뻐스는 두만강변을 따라 깊숙이 달렸다. 여나문집이 살고있는 마을이 보였다.

 

우리는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중턱에 올라갔다. 갑자기 꽤 너른 공간이 나타났다. 해빛이 잘 비쳐드는 펑퍼짐한 언덕에 파란 잔디가 깔려있고 주위에는 연분홍꽃들을 화사히 피운 나무가 둘러져있다. 당신은 진달래, 라고 했다. 산새소리 유난히 맑게 들려왔다. 잔디에 뒹굴고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주위에 천자만홍으로 피여있다. 사위를 둘러보다 나는 갑자기 몸이 얼어붙고말았다. 당신이 짐을 내려놓자 난데없이 솟은 봉분이 눈에 띄워왔었다. 그 안에 죽은 사람이 누워있을것이다. 나는 죽음이 무섭다. 삽시에 공기가 응고되여왔고 숨 쉬기마저 어려워났다.

“진규야, 왜 그러구 섰니? 호, 알았다 이눔아, 겁쟁이재에?∼ 그럼 저 아래에 가서 놀다오려무나, 갈 때 어머니가 부를께 응?”

“예”

나는 비로소 몸을 돌려 발길을 떼갔다. 강이 아슬하니 내려다보였다. 폭은 넓지 않으나 물이 맑았다. 물 건너쪽에 빨래하는 아낙네들이랑 고기잡으러 나온 애들이랑 눈에 잡혀왔다. 돌아갈 때 당신은 강 저쪽이 조선이라 알려주었다.

나는 자리를 찾아 주저앉았다. 가끔 당신을 돌아보면서 동정을 살폈다. 당신은 벌초를 깐깐히 해나갔다. 하다가는 섰고 섰다가는 또 해나갔다. 시름에 잠긴듯 아닌듯, 당신모습마저 참인듯 거짓인듯 보이였다. 방울새의 울음이 유난히 맑게 부서져왔다. 꽃잎에 봄바람 나부기듯 당신의 십팔번지가 간간히 흘러나왔다. 청신한 공기를 흔드는 고운 음색에 안온하던 해빛이 무지개빛을 띠기 시작했다. 아지랑이를 보듯 눈앞이 어질거려났다.

 

당신은 가방에서 갖고온 보를 묘소앞에 조심스레 폈다. 과일과 안주를 정히 차려놓고, 잔에 술을 따른다. 두손 맞붙히고 기도하듯 고개 약간 숙인채 무릎을 꿇고 가만히 있다. 내 눈에 무지개빛이 허연 공백을 만든다. 꿈을 꾸고있는가? 당신은 일어나 이번에는 묘소에 큰절을 세번 올렸다. 까만 베르베트 치마자락이 약간 치들렸고 흰 팔소매가 큰활을 그리며 너붓거렸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아니고, 나의 엄마도 아니다. 저 묘지안의 뼈가 썩고 흙이 되였을 죽은 사람에게만 속해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일어났다. 고함 지르며 손가질하려다가 넋을 잃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꽛꽛이 굳어진 자기가 우습꽝스럽기만 하다.

 

당신은 신경질환을 앓고 계셨다. 늘 불안해하고 히스테리적이였다. 괜히 솥두껑을 열었다 닫았다 자식들을 몰아붙히며 달달 볶아댔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집을 나갔고 할매도 마주치는것을 삼가했다. 숨이 막혀왔다. 바야흐로 폭풍우가 들이닥칠 징조였다. 제사날 며칠전은 해년마다 그렇게 죽을맛이다.

할매가 방에 홀로 앉아 청승스레 대통을 두드렸다.

“왼쑤(원쑤)다, 왼쑤여∼”

“할매 왼쑤가 뭐여? 엄마가 왜 저러지?”

당신이 무섭기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뭐가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돼지죽을 주다말고 진수형이 코를 찡긋해왔다. 기분 나쁘게 실실거렸다. 어떤 만화에 나오는 부랑쟁이 꼴이다. 무슨 소리가 터질지 몰라 나는 가만히 서있었다.

“진규야, 내 비밀 하나 알려줄까? 너네엄마 비밀말이다, 히히.”

그러니 열다섯살나던 해였다. 생일을 쉰 이틀이였으니까. 그는 우리 엄마를 한번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뒤에서 그냥 너네 엄마, 라 호칭했다.

“너네 엄마말이다. 정말 나쁜녀자이다, 히히.”

“왜 나쁘다구그래? 다들 형엄마가 나쁘다더라 마.”

“이 자식, 좀 맞게? 왜 우리 엄마를 욕하니?∼ 너네 엄마한테 딴 남자가 있다. 우리 아버지를 두고 몰래 딴남자만 생각하는 녀자가 어디 좋은 녀자니?”

“거짓말 마. 형이 머얼 어떻게 안다구 그래?”

“이 뻐꾸기야, 내 말을 믿지 못하겐? 증거물을 보여달라니?”

“무슨 증거물?∼ 씨, 어디 보자.”

나도 화가 잔뜩 치밀어올랐다. 견딜수 없었다.

 

진수형은 틀림없는 도적고양이다. 집이 빈녘에 엄마의 트렁크를 열었다. 열쇠를 장판밑에 깔아둔 낌새를 눈치챘었다. 제일 밑층에서 누른종이에 싼것을 꺼냈다. 괜히 가슴이 두근닥거렸다. 사진 두장이 나왔다. 2촌짜리는 낯선 군인의 독사진이고 4촌짜리는 어떤 처녀와 가슴을 붙히고 나란히 찍은것이다. 약혼기념, 1950. 2. 12 ― 란 글자가 세겨져있다. 얼굴이 동글사한 처녀는 스무나문살쯤 되보였다. 까만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갸우뚱한채 귀엽게 미소하고있다. 꽃나비 숨쉬듯 코망울을 볼롬거릴사 했다. 위불없는 당신이요, 내가 이 세상 태여나기전의 당신 모습이였다. 퉁방울눈에 시꺼먼 눈섭을 가진 군인과 깨쏟으며 알콩달콩 살자했을것이다. 어릴 때 두만강녘 산등성이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무덤에 저 군인이 누워있을것이다. 그날의 해빛이 눈앞에 허옇게 번져왔다. 약간 쳐들릴사한 까만 베르베트 치마자락과 흰팔소매가 큰활을 그리며 너붓거렸다∼

 

나는 밖을 나갔다. 뜨락에 노을빛이 흥건해있다. 짙붉게 어룽거렸다. 돼지울곁에 가서 안을 들여다보니 만사태평을 누리던 암퇘지가 꿀꿀거리며 일어났다. 다가와 내 손등을 앑아주었다. 머리속에 허연 공백이 생겨났고, 퉁방울눈이 점차 살아났다. 사내가 웃었던지 어쨌던지 기억에조차 없다.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진다. 당신이 너무 억울하다. 아아, 그런들 어쩌랴? 사내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그 남자와 엄마는 약혼까지 한 사이였으니까. 미워하려 해도 미움마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 당신을 용서한것은 아니다. 산사람보다 죽은사람을 더 좋아한 당신이 불가사의했다. 그때부터 나는 삶에 막무가내란것이 있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져 어쩔수 없게 된것, 책에서는 그런것을 운명이라 했다.

 

당신에 대한 나를 스스로 정립해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당신을 미워했고 때로는 당신이 견딜수 없어 도망치고싶었다. 그래도 당신은 나의 어머니였다. 캉가루주머니에 챙겨넣고 보다듬고 고와해주니 어떤 관습이 몸에 찌들게 밴것이다. 암컷의, 야수의 암내같은, 당신의것은 배척할수도 씻어낼수도 없었다. 세월이 갈수록 당신은 어떤 각질로 변해갔었다.

 

방에 앉아 양말을 기우며 엄마가 흥얼거렸다. 알콜이 들어가면 만시름을 잊는다. 온동네가 시내로 또 영화구경을 갔다왔다. 오래간만에 민족영화를 구경하게 된것이다. 몇년전부터 센세이숀을 일으켰던 꽃파는 처녀, 였다. 보고 또 봐도 싫증을 몰라했다. 나만 빼놓고 온집안이 출동한것이다.

 

구경을 끝내고 오자 동네에서는 소대별로 돼지와 소를 잡았다. 칼로 목젖이 있는데를 찌르면 피가 샘솟듯 한다. 그것을 받아 큰가마에 넣고 삶아서는 주위에 모인 사람들한테 골고루 나눠준다. 애들도 가맣게 모여 오골거렸다. 어른들은 소간마저 생것을 소금에 찍어 술안주를 했고 애들은 나눠받은것을 게눈감추듯 했다. 서로의것을 훔쳐먹기도 한다. 돼지피는 후에 수요되는 집들에 주어 순대를 만들게 했다. 양념과 찹쌀을 돼지피에 섞어 깨끗이 씻은 창자에 채워넣는다. 할매는 순대능수였다. 진호형과 나는 배를 두드리며 만포식을 해야 시름을 놓군 했다. 익은 순대냄새가 정지이며 방에 구수한 향기를 가득 채워왔다.

엄마는 어차피 고향생각, 그 남자생각을 할것이다!

 

할매의 궤짝에서 나는 우연히 빨간가위 증서를 발견했다. 군사증, 이라 쓴글 아래에 벼이삭단에 싸인 오각별이 그려져있다. 안을 펼치니 군사증. Νο 3039. 성명 김순웅, 생년월일 1929년 3월 8일, 민족별 조선인이라 적혀있고 본인수교, 란에는 아버지싸인이 있다. 발급기관 및 년월일, 에는 황해북도사리원 군사동원부 부장 소좌 고정환 1955년 1월 7일, 이라 적혀있다. 그러니 포로교환을 거쳐 제대할 때 재차 발급받은 군사증인것 같다. 출생지는 경북 의성군 단북면 효제리이고 전소속은 4려단 4대 7중 5소이고 직위는 부소대장 상사 겸 군의였다. 군대복무 경력란을 보니 46년 4월 20일 해방군 독립 3사 1퇀 3영 7중대 전사로부터 군생활을 시작한것이다. 혹 빠진것이 있다면 포로병생활시 전향경향이 없었다는, 어떤 증명서일까? 그것은 보귀한 청춘을 다 바쳐 싸운 내가 모르는 당신의 과거였다. 또 그런 과거가 오늘의 당신을 만들었고 어차피 우리 가정을 이뤄낸것이다. 달다해야 할까 쓰다해야 할까? 감개무량해났다.

마침 할매가 순대냄새를 풍기며 들어섰다. 눈을 흘기며 내손에서 증을 빼앗아 궤안에 넣고 자물쇠를 잠그었다. 무릇 아들과 관련된것이라면 아무리 손자라도 범접못한다. 너무 무섭게 구는 천도끼할매였다.

“못쓰게 만들면 어쩔려구 그래, 응?”

“아이 할매두, 아버지 일을 좀 알구싶어 봤는데 머얼 잘못했나요?”

“알긴 멀 알구싶다구 그래, 개뿔같이? 생떼같은 애를 황천에 보냈다가 돌려받은기라, 그동안 눈물 뺀것만해도 원통해서 못살끼다. 넌 절대 군에 가지 말거라, 들었냐? 그래서 진호녀석두 한사코 말렸니라. 이 할미 말 안듣더니 인자(이제) 후회할끼다, 음.”

“아버진 후회하더나요?”

“속이 문둥문둥 썩어 흙이 된걸 모를끼가 니가?”

“누가 군대가랬는것처럼∼?”

그 말에 할매는 손바닥으로 내등을 철썩 때렸다. 눈을 부라리며 혀끝에서 침을 튕겼다. 철딱서니 없는 말을 해놓고 나도 후회를 했다.

 

순대는 익었는데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 인애는 몇번이나 솥뚜겅을 열었다닫았다했다. 냄새라도 맡아야 허전한 속을 갈무리할것이다. 저년은 속에 거시(회충)가 들었다고 할매가 구시렁거렸다. 나는 당신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천도끼이야기가 생각났다. 천집을 돌며 바늘 천개를 모았다는것부터 전설이다. 그것이 령험을 내서 태아를 갖게 했다는것은 더더욱 묘한 전설이다. 이눔아,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소릴 못들었냐? 한다. 그런데 정성으로 풀릴 일만 아니잖은가! 그러니 부처님께 치성을 드린게 아니냐, 고 한다. 부처님이 있긴 있는지? 치성을 드리면 만사가 해결되는지도 의문이다.

“닌 뭐가 그리 의문이 많노? 사람 사는기 아무리 복잡하구 어려워두 맘 하나 잘 여미고 신념만 굽히지 않으문 하나두 두렵지 않는기라. 내 가야 할 길은 꼭 간다, 이러문 세상일은 언젠가는 풀리는기라. 니두 이점만은 꼬옥 명심하거라 이?”

할매는 칼퀴같은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아버지의 신념에 의문이 갔다.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삭이면서 머리숙여 살아가다니? 그러는것도 신념인가?

오래간만에 온식구가 오붓이 둘러앉았다. 아버지도 약주 한잔 하시고 오셨다. 엄마와 제법 롱을 했다. 웬지 다들 들뜬 기분들이다.

“당신 오늘 참 고와졌네, 이쁘다구. 그래도 술이 좋은거야. 저 얼굴 봐라, 진규야. 은근살짝 복사꽃이 폈잖구뭐냐? 니 엄만 어떻게 봐도 미인이다, 그지? 아쉽다면 후, 키가 좀 작다뿐이지, 암 작구말구..”

“아이, 사람 놀리재에? 애들하고 무슨 롱을,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소 양? 흥, 내 모를줄 알구, 당신 마음에사 한 녀자밖에 없지, 안 그러우? 쯧쯧.”

엄마가 실실 비꼬자 당신은 애들 눈치를 보면서 낯을 붉혔다..

“허엇, 당신이 고와서 칭찬하는 소리인데 말하는것 보지, 아무데서나, 쩟쩟.”

이에 할매가 입을 비쭉 내밀더니 께껴왔다.

“저러게 니 애빈 부실하다는기라, 팔부실이지 뭐노?”

“에, 할맨? 그래두 난 팔부실이 아버지가 좋다, 헤헤.”

인애가 냉큼 동을 달았다. 다들 폭소를 터뜨렸다.

창밖에는 어스럼이 포근히 덮히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느긋한 저녁이다. 어떤 상스럽고 좋은일이 느닷없이 찾아올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들고 아버지는 벽에 비스틈히 기대여 할매의 대통을 빨았다. 두볼이 한껏 오무라들었다. 입과 코에서 연기가 쏟아져나왔다. 한참 기침을 요란히 깇어댔다. 할매가 또 눈을 흘기더니 젖은 수건을 가져다준다. 당신은 부산히 눈물코물을 닦았다.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멋적게 골을 흔들었다.

“내 체질엔 맞지 않는가 보네. 참, 니도 어른이 됐으니 한모금 빨아볼래?”

“안요, 내 체질에도 맞지 않는데요뭐.”

당신이 말을 걸어오면 내 마음은 흔들렸다. 조만해서는 롱을 모르는 당신은 항시 몸짓과 행동으로 대화를 하셨다. 피로한지 축 처진 눈꺼풀을 내리깔리고 코를 두어번 곯듯 하셨다. 금방 눈을 번쩍 뜨신다. 내가 잤나? 하고 일어나 앉으셨다. 버릇처럼 턱을 만지작거렸다.

 

“나두 이젠 늙었나보다, 그지? 니 엄만 아직 새각씨같아 보이는데 큰일났다. 이러다 쫓겨나면 어쩌지? 우리 진규가 날 모실거지 응? 허허.”

당신은 당신답지 않은 롱을 하셨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웃음이 나가지 않았다. 두분 나이차는 여덟살, 그래서 당신은 사뭇 죄스럽게 생각하고있다.

“아버지두 건장하신데요뭐.”

젊다는 말을 나는 못했다. 허리마저 굽어가고있으니까.

 

“아니다, 이젠 기력이 다 빠졌다. 니 엄만한테 비기면 영감이 되였지. 내 눈에 니 엄만 언제나 새각씨야.― 당신은 팔굽으로 머리를 바치고 비스듬이 누웠다.― 니 엄만 말이다. 지금도 곱지만 새각씨때는 정말 선녀같았네라. 얼굴 살갗이 배꽃같이 희고 눈이 산멀구(머루)같이 까맸지. 작은입, 작은코도 그렇고, 꼭꼭 배기고 담차보였네라. 난 니 엄마와 하루를 살아도 좋을것 같았다. 평생 혼자 지내겠다고 결심을 열두번 더했지만, 운명이 그렇게 되더라∼ 후, 정말 한이 많은 분이다. 약혼한 남자가 조선전쟁에 나가 죽었는지 종무소식이였지. 삼년까지 기다리다가 부모의 억압에 못이겨 시집오긴 했지만, 그 한이 다 사라질까? 그래서 난 니 엄마가 나한테 어떻게해도 미워하지 않았다. 그 마음을 리해해준다∼ 그 사람의 사망통지서는 십오년만에야 왔네라. 니 엄만 만사불구하고 그 남자네집을 찾아가서 제를 지냈지. 아마 보름은 더 머물렀을거다. 날이 어둑어둑한데 후줄근해서 들어오는것을 보니 비맞은 병아리같더구나. 니 할매가 생난시를 해도 난 도무지 욕할수 없더라. 그 아픔을 내가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겠느냐? 녀자든 남자든, 그런 마음 갖기가 쉽지 않지. 그런 충절이 없다면 어찌 사랑이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니도 니 엄마한테 단단히 배워둘게 있네라. 물론 내켠에서는 상처 좀 받게 되지, 그래도 괜찮다 마! 일이 터지면 항시 상대방의 립장에서 생각해보는것이 편하네라. 그게 도의이고, 안그러냐?”

당신은 말씀하시다 말고 또 슬슬 코를 곯으셨다. 이삼분쯤 있다가 눈을 뜨신다.

“아아, 술만 먹으면 이런다니까. 또 잤지? 미안하다, 내가 어디까지 말했던가?>>

“그만 주무시지 그래요?”

 

말려도 소용이 없다. 전에 없던 일이다. 내 손을 끌어다 잡으시고 도닥이셨다.

“난 니가 너무 여려서 걱정이로다. 아버지따라 의술이나 배울래? 뭐라도 하나 배워야 할게 아니냐? 그리고 사내라면 이 세상 어떤 일도 이겨나갈 용기가 있어야 하니라. 사는것은 아름다운것만 아니지, 세상도 호락호락한게 아니구∼ 스스로를 참고 견뎌야 하는 인내력이 필요하네라. 물론 넌 나처럼 살지 말기를 바란다. 니 배짱대로 호기있게 사는것도 바람직하지!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답게 살아야 하니라. 근본이 흔들려선 안되지. 그런 점을 생각하면 니 둘째형 진수가 제일 걱정이로구나. 재간이 있단들 무슨 소용이겠니? 큰형 진호는 그래도 바르게 자라서 시름놓인다. 속도 깊구 사리도 밝고 앞뒤를 재며 분촌있게 처사하지, 넌 큰형한테 많이 배워야 한다, 꼭 명심하거라!”

“허, 내사 걱정안해도 괜찮아요뭐!”

“자식, 큰소린∼ 알았다.”

 

당신은 내 코등을 쓰윽 문다지고 빙그레 웃으셨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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