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는 급기야 어스름이 녹아내리고있다. 앞집 지붕우로 비낀 하늘은 약간 남빛을 띠였는데 굴뚝에서 흰연기가 그림같이 나붓겼다. 이제 어둠이 잠식하면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금빛쪼각달이 반공에서 헤염칠것이요, 골목길에 애들이 뛰노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올것이다. 당신은 다시 팔베개를 하고 코를 곯았다.

  이때 어디선가 느닷없이 소란스런 소리가 일었다. 인애의 목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려왔다. 아버지, 오빠, 해가면서 뛰여왔다. 왜 그리 헤덤비냐? 엄마가 꾸지람을 했다. 애는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렸다.

  “잡혀갔어, 김치굴에 숨었다가, 헉헉∼ 남수오빠말이야, 헉헉, 형 있잖나? 군대간 형이 잡혀갔어요, 헉헉∼”

  “뭐, 남수네 형이? 김치굴에는 왜?”

  “몰라, 헉헉, 공안대(형사)들이 와서 이렇게 수갑을 채우고 끌구갔지뭐야.”

  “뭐?”

  나는 무작정 밖을 내뛰기 시작했다. 십자가에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있다. 흡사 불온상태에서 일렁이는 검은 물결만 같았다. 남수형을 태운 찌프차가 마을을 빠져나가 역부근에서 굽인돌이를 한다. 헤드라이트불빛이 보였다. 남수네식구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 시내에서 돌아오지 않았단다. 아무도 없는 사이에 집을 습격했고 마침내 움에서 죄인을 찾아 끌어낸것이다. 왜 그렇게 숨어있었는지 의문이다. 부대에서 죄를 짓고 도망했을거라는 추측이 우세였다. 이를테면, 남녀문제나 상해죄, 뭐 그런데로 초점이 맞춰졌다.

  나는 괜히 가슴이 두근닥거려났다. 복선녀가 나를 보더니 대뜸 곁에 묻어왔다. 내 옷깃을 잡아끈다. 술렁이는 무리를 떠나자 얼굴에 빠르게 입김을 풍겨왔다.

  “너네형한테 전화할수 있을까? 련락 좀 못할까?”

  “전화 없다더라. 멀리 떠난다고 편지 왔다. 왜 그러는데?”

  “안야, 그저∼ 괜히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알아볼수 없을까?”

  그 말 듣자 내 가슴도 들컥 내려앉았다. 불길한 생각이 갈마든다.

  (혹시?∼ 아니, 아니야!)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재수없게, 무슨 소리를 해?”

  “누가 머얼 어쨌게? 그냥 걱정돼서 그러는거지∼ 괜찮겠지뭐.”

  그녀가 내팔을 잡아흔들었다. 우리는 남수네걱정을 하면서 동구밖을 빠져나갔다. 설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사랑은 계속 진행할것이다. 나의 독거미는 꼭 찾아봐야 한다. 나의것은 렴치없이 벌써 일어서고있었다.

  그때로부터 우리 가정의 암울한 시간은 시작되였다. 복선녀의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왜 그런 아픔이 하필이면 우리한테 찾아온걸까?∼

  나는 천지신명께 묻고싶었다. 웨치고싶었다!

  남수, 내 친구, 넌 캉에 혼자 우두커니 걸터앉아있다. 몇끼 굶은 닭이며 돼지들이 아우성을 쳤다. 부모들은 시내로 현공안국을 찾아갔다. 아직까지 체포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가서 기다리라는것이 답이다. 넌 네형이 움안에 숨어있은것을 안다. 가만히 밥도 날라주고 동정도 살펴주고 심부름까지 해주었다. 움안에 전등을 끌어다 어둠을 밝혔다. 물론 그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긴 했지만 네형은 비좁은 굴안에서 쉼없이 그림을 그릴수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생생히 살아있듯한 필치이다. 그것마저 죄증의 단서로 모조리 걷어간것! 빈움안은 이제 형체없이 비여있다. 네형의 모습은 물론 냄새마저 맡을수 없다. 더부룩한 머리와 수염과 정기없이 우묵해진 눈을 금시 보는듯 했다. 니가 뚜껑 열어젖히고 움안에 내려갈적마다 쭈크리고 앉아있을 니형 모습이 선해났다.

  “수고한다. 널 고생시켜 미안하다.”

  “수곤? 우린 형제 아닌가뭐?”

  넌 당연하다는듯 대답했을것이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마, 자수하고싶다. 이 움안에서 더는 못살겠다. 내가 두더지인가? 왜 이렇게 살아야지? 휴, 한번의 실수가 평생을 그르쳤구나, 왜 그런 망동을 했을까? 정말 후회되는구나!”

  “아버지가 자수하면 안된다오. 돈을 마련해 줄테니 어두컴컴한 대흥안령같은데에 들어가 살라나? 목숨부터 연명하고 볼판이라우. 무슨 죄인데, 응?”

  “넌 몰라도 된다. 휴”

  넌 형의 죄를 모른다. 누구도 알려주려 안했다.

  움안에서, 넌 니형처럼 앉아있다. 고개 내밀고 들여다보는 나에게 바보같이 웃어보인다. 다리 부러진 새끼곰이 함정에 빠진 꼴이다.

  “아마 진호형과도 관계된다는것 같더라, 모르긴해도∼”

  “뭐, 니 뭐라꼬?∼ 금방 뭐라꼬했나?”

  내목은 반공에 매달려 대뜸 붉어졌다. 넌 고개 푹 숙이고 아무말도 안했다. 니놈은 진호형의 일도 알고있는것 같다. 그런데도 말 안하다니? 니놈도 죄수같아 보인다. 숨긴 죄, 알고도 말하지 않은 죄! 내목은 허공에서 너덜거리며 너를 단죄했다. 진수, 네 이놈, 니놈의 한마디가 끝내 화를 끌어들였구나! 난 니놈과 한 가랭이를 끼고 사는게 너무 싫다. 다리 부러진 노루 한곳에 모인다는 속담이 생각나 지긋지긋해난다!

  비가 내리고있다. 올듯말듯하다가 지저분해지고있다. 비옷을 걸친 손님 둘이 우리 집을 찾아들었다. 얼굴이 너부죽한 사십대의 사내들이다. 직업성으로 굳어진 딱딱한 표정에 온집식구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코수염쟁이가 신분을 밝혔다. 현 형사대에서 나왔다. 김진호가 누군가? 번연히 알면서 아버지한테 묻는다. 당신은 몸이 굳어져있다. 우리 형인데요. 내가 대답했다. 그 사람은 흘낏 나를 보더니 당신한테 같은 물음을 반복했다. 제 맏아들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떨려났다. 이마에 식은땀이 번들거렸다. 바람 맞은듯 입귀를 간헐적으로 실룩거렸다. 공포로 일그러진 집안식구들의 얼굴이 흔들리고있다.

  사내들은 점잖게 집안수색을 했다. 형의 목책이며 물건들을 빠짐없이 챙겨넣었다.

  “대체 무슨 일인고? 니들은 누군데 남의 집에 와서 함부로 이 작단을 하노 엉?”

  할매가 팔다리를 사시나무떨듯 했다.

  “맏손주놈이요 부대에서 죄를 짓고 잡혔어요. 흥, 흥, 어떻게 교육했기에 감히 조국을 배반하지? 우린 죄증을 수집하러 왔거든요.”

  “머, 머, 조국∼ 배반한 죄라꼬요? 그눔자식이?∼ 설마?”

  아버지는 삽시에 낯이 까맣게 죽었다. 쥐여짜내는것 같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이제 곧 판결이 나올거요. 음, 그때까지 기다리시죠.”

  조선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내는 틀림없는 조선족일것이다. 비웃듯 동정하듯 이상하게 반짝이는 눈빛이 나는 너무 싫다. 니가 뭔데 그러냐?

  그들이 가고 불안한 며칠이 처진 빨래줄처럼 흘러갔다.

  비는 그칠줄 모르고 질질 짰다. 할매는 한시도 진정못하고 처마밑에 매달려 서성거렸다. 엄마는 이상하게 다듬이질만 했다. 전날 이불홑청을 뜯어 빤것이다. 절주를 잃지 않은 다듬이소리는 끊임없는 넋두리같았다. 불안스럽고 청승맞았다. 집안 구석구석을 두들겨대며 굿하고있다. 밖에서 치적거리는 을씨년스런 기운들이 방치에 맞아 아우성쳤다. 숨으려 해도 숨을 곳 없는 곳곳에 짓찢겨져 랑자해져갔다. 숨이 꽉꽉 막혀왔다.

  아버지는 고간에 들어앉아 나올줄 몰랐다. 약간 어둑스레하고 침침한 공간에는 초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수 좁게 만든 침대에 걸터앉아 희미하게 비쳐드는 광선을 빌어 당신은 알지 못할 환약을 부벼댔다. 이곳은 당신만의 공간이다. 아무도 침범못하는, 당신한테 얽혀진 경험과 지혜가 이 공간에서 끊임없이 발휘되고 이어져왔다.

  당신은 이미 하루동안 미음 한술 입에 넣지 않았다.

  할매가 화가 나서 지팽이로 고간문을 두드려댔다.

  “이 녀석아, 죽을락꼬 환장을 했노? 밥 묵자, 의?”

  “안묵을라는디요, 안묵겠다는데 와 그러노?”

  당신이 외려 성을 부럭부럭 냈다. 짜증섞인 사투리가 나오면 누구도 감당못한다.

  “그럼 나두 안묵을란다.”

  할매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맘대루 하소 의.”

효자인 당신은, 당신답지 않은 말을 서슴없이 뱉았다.

밥상은 인애가 캐온 산나물에 된장찌게가 전부였다. 늙은 능쟁이에 대가리가 엄지같은 달래, 산에서 뜯어온 닥치싹, 남새밭에 심은 상추, 밥상에 인애와 엄마하고 셋이 둘러앉았다. 할매는 건너방에서 대통만 빨았다. 엄마는 상추에 산나물을 싸서 된장을 발라 볼이 미여지게 잡수셨다. 먹어라, 먹어라, 먹어야 살지! 당신은 끊임없이 우리를 재촉했다. 누구와도 상관없이 제 새끼만 배곯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 당신이 밉도록 다욕해보였다. 랭혈동물같았다. 나는 끝내 밥술을 내던졌다. 밖을 뛰쳐나갔다.

“에이씨, 엄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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