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52>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우리나라의 전통 건물들은 바라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멋진 느낌을 받는다. 외곽을 형성하는 선(線)들도 그렇고,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면(面)들도 그렇다. 가까이 다가서 보면 또한 단청(丹靑)이 근사한 아름다움과 미묘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셋 가운데에서도 궁궐은 궁궐대로, 사찰은 사찰대로 각기 독특한 분위기와 품위를 풍겨 주는 것은 단청이 제일이다.

   이러한 단청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가 있다. 명승지마다 서 있는 사찰 건물에는 아주 흔하며, 궁전이나 누정(樓亭) 비각(碑閣) 정려문(旌閭門) 같은 데에도 많다. 신성(神聖)이나 품위(品位)를 갖추어야 하거나, 누구나 사랑하고 보호하여야 하는 건물일 경우에는 대개가 단청을 해 놓는다. 이런 사실에서 단청은 아름다움과 함께 어떤 깊은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청(丹靑)은 형태를 갖춘 조각품이나 시설물은 아니다. 선과 빛깔과 문양으로 표현한 일종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무광택(無光澤)이기 때문에 역광(逆光)에서도 제 빛깔을 잘 발(發)하여 누구나 자세히 보고 감상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단청은 일반적인 그림이 아니다. 그렇다고 추상화라고 할 수도 없다. 그림은 그림이되 건물을 장식하여 어떤 특별한 기품과 남다른 분위기를 나타내게 하는 특수한 그림이라 하겠다.

   단청은 구조물들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도 지니고 있다. 평면이면서도 단순한 평면이 아니게 하고, 입체적이면서도 더욱 미묘한 입체로 느끼게 한다. 평면적 다면미(多面美)와 함께 다양한 비입체적 입체미(立體美)를 단청은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단청은 건물의 각부 구조가 착각으로 뒤틀리거나 처져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또한, 단청은 벌레의 침식을 막고 방습(防濕)의 효과도 있어서 건물의 부패를 방지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단청은 신비감을 주고 잡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뜻도 가지고 있다. 정 다산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단청의 적청황흑백(赤靑黃黑白)의 다섯 가지 색은 오행사상(五行思想)과 관계가 있으며, 여기에는 현세(現世)의 강녕(康寧)과 내세(來世)에의 기원(祈願)이 깃들어 있다고 하였다. 우리들의 사상과 철학을 단청 속에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단청들은 그 빛깔과 문양이 동양의 다른 어느 나라의 것보다도 다양하고 아름다워 특별한 맛과 멋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과 효과도 대단하다. 강한 선과 화사한 빛깔과 다양한 무늬로 되어서 개별적으로 보면 별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이 함께 어울려 나타내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 화려하거나 우아하게 만들기도 하고, 장엄하거나 차분한 느낌이 들게도 한다. 때로는 권위와 위엄을 느끼게도 한다.

   우리나라의 “궁궐 단청이 장엄하고 화려하다”고 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은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경복궁이나 덕수궁을 돌아보라. 근정전(勤政殿) 내부의 단청은 등황색(橙黃色)을 많이 쓰고 문양도 섬세 다양해서 화려하고 웅장하다. 이것은 왕권(王權)의 위엄(威嚴)과 영화(榮華)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수덕사(修德寺) 대웅전이나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의 내부 단청은 녹색(綠色)을 많이 써서 차분하고 엄중한 분위기를 갖게 한다. 이는 사찰의 무심무욕(無心無慾)과 엄숙(嚴肅) 적막(寂寞)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향교(鄕校)의 벽면(壁面)들이 주로 주황색(朱黃色)인 것도 성현(聖賢)들의 존엄(尊嚴)과 성전(聖殿)으로써의 정숙(靜肅) 온아(溫雅)함을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단청은 예술로서의 미와 멋을 표현하고, 건물의 품위와 분위기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벽사와 방충 방습의 실용적 효과에, 현세(現世)의 강녕(康寧)과 내세(來世)의 기원(祈願)까지 담고 있다. 우리의 미적 감각을 표현하면서 우리의 삶과 정신의 정수(精粹)를 뽑아 담아낸 특별한 자산(資産)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런데 단청은 멀리서보다 가까이서 바라보아야 제맛이 난다. 멀리서는 굵은 선과 각 면의 아름다움만이 보이다가, 다가서면 이들이 어울려 나타내는 다양한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미묘한 분위기와 신비감에 잠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깊은 의미까지도 깨닫게 하곤 한다. 그래서 단청은 적당히 가까워야 제맛이 나고, 가까이서 바라보아야 그 미와 맛과 의미를 느끼고 깨달을 수가 있다.

   단청은 하나의 미술품이다. 동시에 입체감을 주는 조각 아닌 조각품이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삶의 분위기와 함께 우리의 품위와 정신까지 나타내고 있는 살아있는 예술품이다. 하나의 표현양식을 통하여 이처럼 멋지고 기품 있는 맛과 훌륭한 정신과 깊은 의미까지 담아내고 있는 선조들의 착상(着想)과 의장(意匠)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 생각이 날 때면 가끔 궁궐이나 사찰을 찾곤 한다. 그리고 멀직이서는 고향 산천과 같은 선(線)과 면(面)의 어울어진 아름다움을 맛보고, 가까이 다가서서는 아버지의 모습 같은 단청(丹靑)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과 사상을 생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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