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부문(우수상)-노기제/미국

와아, 해방이다. 한 달 동안 완전하게 자유를 만끽하리라.
지난 몇 년 동안 심심찮게 들려오던 맥킨리 산 등정계획이 가시화 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른 건 나였다. 물론 남편은 남편대로 평생 마음으로만 소망해오던 일이 실행단계에 이르렀으니 그 기쁜 마음이야 내 얄팍한 해방감에 비길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작년에 결성된 미주 산악연맹에서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50개 주 최고봉 등정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미 전역에 산재해 있는 산악인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후 신문지상에는 어느 주의 최고봉은 누구누구가 정상정복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줄줄이 소개되었다. 그 중에는 주민들이 참여해서 성공을 하기도 하지만 어느 산은 주민이 소화할 수 없어서 남가주에 사는 산악인들이 원정을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 부부의 산행은 30여 년 전 한국에서 시작했다. 그것도 처녀 총각 시절부터다. 산에서 처음 만나 찜하고 연애하다 결혼했으니 산이 맺어 준 부부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이민 길에 들어선 우리에게 등산이란 취미생활이 이어질 리 없었다. 그 당시 산악회란 단체도 물론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바꿔가며 의식주 해결에 총력을 다 해야 했다.


남편은 전공 따지고 적성 따지고 할 선택권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저 주유소 건 밤 청소 건 일자리만 있다면 가리지 않고 했다. 언어를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나라로 날아 온 혹독한 보상이리라. 이민가방 두 개에 채워 온 것은 여기선 입을 일도 없는 정장 몇 벌에 거나한 학벌과 준수한 외모뿐이다. 생활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조건들뿐이다.


숨죽이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전공도 찾고 취미생활도 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함께 산행을 할 뜻맞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로스엔젤레스 인근의 산들을 직접 찾아 나설 수도 없다. 내 나라 내 땅에 있는 산처럼 쉽게 찾아 나서게 되질 않았다. 새로운 취미도 시작 해 봤지만 남편에겐 등산처럼 기쁨을 돌려 받는 취미란 없는 듯 했다.
그 때 마침 신문에 등산 동호인 모집 기사가 있었다. 일 년에 60불 회비를 내면 산행 일정을 알려주고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등산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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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심사숙고하는 우리 남편이 선 듯 응할 리가 없다. 그대로 지나쳤다. 그 기사를 오려두고 가끔 남편의 눈치를 살피면서 졸라대기를 거듭하다 드디어 산행을 함께 할 회원을 모집할 때 가입하기를 감행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의 등산 취미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 모두가 한국에서 등산 깨나 하던 실력파들이다.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산행이 있을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격 주 산행이 보통이고 동문 산악회나 교회 산악회까지 합치면 매주 산행이 있는 셈이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여 단체를 만들고 이민자의 애환을 산행으로 달래며 중년의 말기에 선 남편을 바라본다. 그 많은 세월동안 단행하지 못한 높은 산 원정이란 꿈을 이제 겨우 펼치려는 모습이 비장하다.
주말 산행이야 당일치기가 일쑤다. 가끔 2박 3일 산행도 있다.  일 년에 두 세 번 연휴가 되면 3박 4일도 간다.  씨에라 쪽으로 산행을 가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휘트니 산도 있다. 이름도 가지가지인 산길을 번갈아 가며 가끔은 정상을 밟지 못하고 돌아 올 때도 있다.


그 동안 산악회에선 에베레스트, 푸모리, 안나푸르나 등 원정등산 행사가 있었지만 극히 소수의 회원들만 참석을 했었다. 장기간 일터와 가정을 비워야 하는데 그런 여건에 무리해서 선 듯 나설 수 있는 회원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함께 동행하지 못하는 남편의 쓰린 마음을 나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어쩌면 일부러 모른 척 했나보다.
보통 한 달 이상을 요하는 일정을 무슨 재주로 빼낸단 말인가. 약국을 한 달씩이나 닫을 수도 없고, 약사를 구해서 부탁을 한다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 뿐인가. 약국을 운영 할 지배인도 구해야 한다. 원정 가는 비용까지 계산하면 진짜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남의 고용인이라면 휴가를 이용해서 훨씬 적은 비용으로 다녀올 수도 있었겠지만 이래저래 가슴앓이만 하던 처지였다. 그 간절한 마음 모를 리 없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남편은 언제부터 계획을 하고 있었는지 이번 이민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실시되는 맥킨리 산 등반 팀에 등록을 마쳤다. 그리곤 훈련에 들어갔다. 결의가 대단하다. 약국사정이 어떤지 묻지도 못했다. 약사 구하기가 힘들어서 애를 태운다.


우리 형편에 그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며 평생 소원하던 원정에 참여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기로 했다. 왜냐하면 남편이 집을 비우는 한 달 동안 난 무지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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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점심 싸주는 번거로움도 없고, 저녁 반찬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게다가 요 모양 조 모양으로 들었던 잔소리도 없을 테니 그 해방감이야말로 원정 가는 남편보다 내가 몇 배 더 신이 나 있었다.
아예 나도 한 달간 여행을 떠날까, 한국엘 갈까, 클럽 맫(CLUB MED)에 가서 수상스키나 실컷 타고 올까. 행복한 궁리를 끝도 없이 하면서 남편을 배웅했다. 비행장에 남편과 일행을 두고 돌아서는 데 알라스카의 써늘한 빙하가 내 가슴을 엄습했다.
불현듯 알라스카에 위치한 맥킨리 산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싶어졌다. 제발 내 남편과 그 일행에게 무서운 입김 내 뿜지 말아 달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무사히 돌려보내 달라고. 시퍼렇게 쩍쩍 벌린 크레바스를 용케도 이리저리 피해 가도록 도와 달라고. 무서운 추위에 동상 걸려 손가락 발가락 잘리는  일없도록....그렇다. 맥킨리 산이 무슨 힘이 있단 말이냐.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한다. 가기 전 장로님 가족과 함께 드린 예배 때 이미 다 말씀 드렸듯이 하늘에 맡깁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게 하시고, 일행에게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그들과 항상 동행 해 주시기만을 기도한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다. 아니. 아무 욕심도 낼 수가 없다. 그저 살아서 돌아오기만 바랄 뿐이다.
휴가를 떠날 수도 없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 날마다 그를 기다리며 집을 지킨다. 밥을 먹는 일도 의미가 없다. 자는 일도 불편하기만 하다. 집은 왜 이리 큰가. 아침이면 이불 속에서 나올 필요가 없다. 아침 챙겨 주고 도시락 싸서 출근시킬 그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남편 없는 사이 누군가에게 살짝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옛날 싱그럽던 때를 회상 해 보리라고 생각도 했었는데 아무도 생각이 안 난다. 누구와도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동창생과 만나 담소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련만 그것도 싫다. 온 몸의 맥이 다 빠지는 듯 기운이 없다. 내가 잠깐이라도 허튼 몸짓을 한다면 당장 남편과 그 일행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한 달이란 왜 이리 긴 시간일까. 아직도 며칠을 더 보내야 한단 말인가. TV 뉴스시간에 보이는 알라스카의 일기예보에만 눈을 고정시킨다. 날씨가 맑고 좋아야 산행이 쉽다. 눈바람이 없어야 무사할 수 있다. 해를 바라본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소식 없느냐고 물어들 온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피가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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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원정대가 아무 탈없이 잘 들 진행중이면 소식이 없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레인져(산지기)를 통해서 매스컴에 알려진다. 헬리콥터도 그럴 땐 뜨게 되어 있다. 그냥 아무 소식 없기를 바라며 날짜만 가기를 기다린다. 돌아올 비행기 표에 찍힌 그 날짜가 되면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했던 고 상돈 산악인이 그 푸르른 젊음을 묻은 곳이 바로 알라스카에 있는 맥킨리 산이다. 다른 산들은 포터(짐꾼)를 동행하면서 짐을 지게 하니까 산행이 쉬워진다. 그러나 맥킨리 산엔 그런 조건들이 없다. 한 달 예정이면 그 동안의 식량을 비롯해서 모든 장비들을 본인이 메고 썰매로 끌고 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체력소모가 크다는 뜻이다.


일생에 한 번으로 족하다. 다시는 안 보내련다. 또 가겠다면 그 땐 나도 따라나서야겠다. 제발 무사히만 돌아와 주면 된다. 무리하지 말고. 안전하게. 그저 안전하게. 정상을 꼭 정복하겠다는 욕심도 내지 말고. 떠났던 모습 그대로 내 곁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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