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부문(가작)-박능재/캐나다

우리 집 뒤뜰에는 사과나무 두 그루가 마치 우리 가족의 이민사를 말해주듯 커다란 나무가 되어 서있다. 그러니까 이십 년 전 내가 이 집을 사서 두 번째 이사를 하던 해로 기억된다. 때마침 봄철이라 사과나무 묘목 두 그루를 사다가 심었는데 이것이 자라 많은 사과가 열리는 늠름한 모습이 된 것이다. 조석으로 창문을 통해 사과나무를 바라볼 때면 나의 이민의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을 느끼게 한다.

북극 초입에 위치한 고원 도시 에드몬톤에도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잠깐 사이에 온 천지가 연초록 색으로 뒤덮여 버린다.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은 뒤뜰에 나가 따스한 햇빛 아래에서 작년에 떨어져 쌓인 나뭇잎들과 해묵은 잔디를 손질하기에 바쁘다. 화단도 가꾸고 멋대로 뻗어나간 나뭇가지들도 전지를 해준다. 손바닥만한 텃밭이지만 여름 한 철 먹을 상추 시금치 근대 쑥갓 등의 각종 채소 씨앗을 뿌린다.

아침에 없던 새싹들이 신기하게 뾰쪽이 땅 표면을 뚫고 올라오고 헐벗은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 눈이 트는 광경을 보며 창조주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 때마다 서있는 사과나무를 보면서 종자가 좋은 사과나뭇가지를 얻어다 접목()을 시킨다면 좋은 사과를 따먹을 수 있을 턴데 하며 생각은 했지만 곧 잊어버리곤 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동냥을 한 나는 과일나무나 꽃나무를 접목시키면 더 질이 좋은 과일이 열리고 더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말을 들었다. 언젠가 정원에 장미를 사다 심었는데 일 년 후에 뿌리에서 생명력이 강한 들장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접목된 장미임을 알았다. 생명력이 강한 들장미 뿌리에다 장미를 접목시켜 아름다운 꽃이 피고 강인하게 어디서나 잘 자라는 새 품종을 만든 것이다. 접목 즉 접을 붙이는 것은 식물체의 일부분을 모체로부터 잘라내어 다른 식물체 위에 접착시켜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방법이다. 동물에 있어서의 우량종 교배와 같은 품종 개량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이곳 에드몬톤은 겨울이 길고 추운 고장이라 과일이 맛이 없고 꽃이 향기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사과나무를 많이 가꾸지만 좋은 사과가 열리지 않고 대부분 재래종 능금이라 더러는 사과잼이나 사과술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대부분 사료로 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추위에도 견디는 좋은 종류의 사과나무들이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년 전 봄에 나는 이웃집에 있는 크고 맛이 좋은 종자의 사과나무 가지 몇 개를 얻어다가 우리 능금나무 가지에다 접목을 했다. 여러 개의 접목 가지 중에서 더러는 죽고 몇 가지는 성공했다. 금년 봄에는 다른 나뭇가지들처럼 접목된 가지에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을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접목할 때는 세심한 주의와 꼭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똑같은 굴기의 가지라야 하고 접목한 부분을 정밀하게 잘 밀착시켜야 하고 접목된 부위가 바람이 불 때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켜야 한다. 접목한 지 일 년이 지난 후에 죽은 가지들을 확인하고서야 이런 주의 사항을 알게 되었다.

갖은 몸살과 아픔을 떨치고 접목된 가지에 건강한 잎과 꽃이 활짝 핀 것을 볼 때 또 다른 생명력의 탄생에 대한 보람을 느끼면서 올 가을에는 맛있고 탐스런 사과가 빨갛게 익어 첫선을 보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기대가 된다.

내가 지금 넓고 광활한 캐나다 땅에 이민 와 사는 것은 어찌 보면 접목과도 같은 상황이 아닌가 싶다. 거대한 캐나다라는 나무에 하나의 작은 한민족의 가지가 접목되어 동화되고 개발된 나무가 되려고 수고하고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 온 십수 년이 마치 우리 집 뒤뜰에 접목되어 새로운 삶을 사는 사과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국 한국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우리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수많은 외침을 받으며 어려운 일들을 수없이 겪을 때마다 온 민족이 단결하여 난관을 극복했으며 민족 고유의 문화를 계발 유지 발전시키는 데 총력을 다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국민 교육면에서도 예의도덕이 분명했던 동방예의지국으로 알려진 민족이다. 그뿐이 아니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재능이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도 탁월한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같은 한민족의 일원인 내가 캐나다에 이민 와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나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간직하고 한민족의 우수한 점들을 접목된 캐나다를 위해 공헌하는 한 사람이 되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다. 이것은 바로 캐나다뿐만 아니라 나의 모국이 되는 한국과, 한민족을 세계 만방에 빛내는 첩경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 사과나무에 접목된 우수한 품종의 나뭇가지에는 개량된 새 모습을 과시하듯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것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마치 캐나다에 이민 온 우리 한민족의 모습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이 기회에 감히 주장하고 싶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빛내고 이 우수성이 세계 만방에 공헌할 수 있도록 많은 우리 민족이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 접목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하도록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이민정책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코리안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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