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부문(가작)-진경자/독일

담당의사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내일 퇴원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은 스잔느 자신이었다. 제 몸을 추스르기에도 벅찬 중환자가 아무도 기다려 주는 이 없는 텅빈 집에 돌아가겠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의 갑작스런 퇴원 결정은 근무시간 내내 짜뿌드드한 독일의 겨울 날씨 마냥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오늘만이라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그녀 곁에 있어 주고 싶어 서둘러서 일을 마치고 그녀의 병실로 갔다.

오후 6시. 어둠이 스름스름 깔리고 저녁 미사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메아리 쳐왔다. 스잔느가 누워 있는 병실은 복도 맨끝에서 두 번째, 면회실 맞은편에 있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체를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잇는 그녀의 모습이 밀랍 인형 같았다. 미동도 않고 초점 잃은 시선으로 나를 힘겹게 바라보았다. 항암제 독성으로 머리카락 한올 남아 있지 않은 맨머리가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민둥머리가 부끄러워 언제나 털모자로 수줍은 듯 감추어 왔는데 털모자를 어디로 팽개쳤는지 민둥머리 그대로였다. 이제 털모자를 쓸 기력마저 없는 걸까 아니면 여자의 본능마저 포기한 걸까.

나를 알아보았는지 깊고 푸른 눈가에 보일 듯 말 듯 실낱 같은 미소가 번졌다. 나는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그녀의 손은 마른 나뭇가지 마냥 앙상하지 전혀 체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겨울철, 저고리 앞섶을 비집고 따뜻한 가슴속에 나의 언 손을 녹여 주시던 어머니같이 나도 그녀의 차디찬 손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 온기가 그녀의 손에 전해졌는지 미동도 않던 그녀가 한 손을 슬그머니 빼내어 바스락바스락 침상 옆 탁자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냘픈 눈빛은 애원하듯 간절해 보였다. 한동안 머뭇거리고 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간호사 진! 지금 입고 있는 스웨터를 나한테 주었으면 해요. 이 돈으로 새로 사 입으시고요.
 힘들게 말을 마친 스잔느는 클라라 슈만이 그려진 푸른색의 100마르크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아니, 스잔느! 이 낡은 스웨터가 어디에 필요하세요?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며 물어 보았다.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당신 스웨터를 갖고 싶어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낡고 보잘것없는 이 스웨터가 어디에 필요한 걸까. 내일이면 퇴원하기로 이미 수속이 끝났고 그녀의 체내에는 암세포가 심장의 박동까지 멈추게 하려고 맹렬한 기세로 뻗어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녀의 말을 해아릴 수가 없었다.
 이년 전, 병동 앞뜰에 핀 라일락 향이 병실마다 아리도록 풍겨 오던 5월 라일락 향 마냥 산뜻한 금발 미녀가 남편과 함께 우리 병동을 찾아왔다. 가는 허리, 목이 길고 날씬한 몸매에 베이지 색 니트가 퍽 인상적인,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햅번을 닮은 미녀였다. 병동 안은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로 더욱 화사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신의 시새움일까, 그 아름다운 그녀의 몸에는 악 성 암 세포가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남편의 극진한 간호와 사랑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한껏 받으며 그녀는 수술대에 올랐다. 입원한 지 4주 후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퇴원했던 그녀가 일년 후에 혼자 병동을 찾아왔다. 그 곱던 얼굴은 까칠하게 윤기를 잃었고 학처럼 긴 목은 보기 흉할 만큼 주름 투성이었다. 완전히 뿌리가 뽑힌 줄 알았던 암 세포가 몸 어느 구석에 숨었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입원한 그녀를 내가 자주 맡다보니 알게 모르게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았고 동정의 마음은 더욱 깊어갔다. 노랑색을 좋아하는지 그녀는 처음 입원했을 때 잠옷에서 실내화까지 흡사 노랑 병아리처럼 귀엽고 아름답게 자신을 꾸몄었다. 지금은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을 커다란 병원 잠옷 속에 웅크렸고, 호수처럼 푸르고 큰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꽃 한송이 없는 그녀의 병실은 겨울 들녘처럼 황량했다. 언제 누가 가져왔는지 손길이 닿지 않은 사과 두 알이 그녀의 얼굴처럼 물기가 말라버린 채 침상 모퉁이에 놓여 있을 뿐, 병실은 허무한 새의 비애가 짙게 감돌았다.
 같은 병실도 입원한 환자에 따라 병실의 분위기가 바뀌기 마련이다. 처음 그녀가 우리 병동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정신과 의사인 남편은 주변 환자의 부러움을 독차지할 만큼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간호했고, 잉꼬새 마냥 입을 맞추며 사랑을 입에 달고 다녔었다. 그때는 병실 안이 화사한 봄날 꽃향기 그윽한 뜰처럼 훈훈했었다. 일년이 지나 다시 입원한 지금은 쓸쓸하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가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여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두어 차례 잠깐 얼굴만 내밀던 남편은 이미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대학병원 부인과 병동에서만 3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나의 직업이 간호사이고 오랜 병원 근무로 신경이 무디어질 때도 되었건만 어제까지 내가 돌보던 환자가 밤사이에 영안실로 옮겨진 걸 생각하면 번번이 눈시울을 적시게 되곤 한다. 자기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나 개가 죽어도 울고불고 심지어 무덤까지 만들어 놓고 동판으로 사진까지 만들어 놓기도 하지만, 서구 사회의 생리는 한편 매몰차고 잔인해 정나미가 떨어지는 때도 많았다.
 임종을 앞둔 부모를 병원에 둔 채 지중해로 휴가를 떠나는, 자기만의 생활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잔느의 남편처럼 건물은 달라도 같은 대학병원 내에 근무처가 있는데도 임종이 가까워오는 아내 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남편도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자진퇴원을 원하는데도 그의 모습 영영 나타나질 않았다. 헤어졌을까, 병든 그녀를 버렸을까?
 스잔느는 1주 전에 일인용 병실로 옮겨졌었다. 일인용 병실은 돈 많은 환자가 입원하면 특실이 되지만 중환자가 입원하면 임종을 조용히 맞이하도록 하는 최후의 안식처가 된다. 그런 사실을 스잔느는 남편이 의사여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진퇴원을 원했을 것이다.
 스잔느! 당신이 내 스웨터를 갖고 싶다면 세탁해서 내일 가져올게요.
 안돼요, 세탁하면 안 돼요! 난 그대로가 좋아요. 당신의 체취가 묻어 있는 그 상태가 좋단 말예요
 절규하듯 말을 마친 그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말없이 스웨터를 벗어 그녀의 팔에 안겨 주고 슬며시 병실을 나왔다. 코끝이 시큰하니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빈 복도에 한참을 서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내 체취가 풍기는 스웨터를 간직하고 싶은 그녀의 처절 하도록 외로운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젖먹이 어린애가 칭얼거리며 잠을 못 이룰 때 엄마의 옷을 덮어주면 쉽게 잠이 들고 하듯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세월, 이역 만리 외국 당에서 환자들의 환부나 닦아주고 환자들의 시중이나 들며 63세 정년까지 일을 해야 하는 나의 직업에 늘 회의를 느끼던 지난날들이 새삼스러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인간애가 스며 있는 나의 낡은 스웨터를 갖고 싶어 하는, 죽음과 맞선 스잔느로 인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무는 자기가 서야 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서 사계절을 받아들여 적응할 줄 안다는 수녀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신이 주신 제일 좋은 자리라 믿으며 자연법칙에 순응할 줄 아는 나무를 닮은 삶을 살아가야지.
 스잔느? 내일이면 영영 퇴원할 그녀를 위해 오늘 밤만이라도 안온하게 지켜 주리라. 어디선가 때 아닌 라일락꽃 향기가 금방이라도 풍겨올 것처럼 초겨울 밤하늘은 유난히도 맑다.
 내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스잔느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사흘 뒤 아침이었다.
 
 코리안넷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