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저

조선족동포들에게 있어서 우리나라는 중국을 의미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는 그들이 같은 동포임을 말하면서 이와 같이 중국국민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면서 어떻게 중국국민임을 강조할 수 있느냐며 침을 튀기는 사람을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조선족은 분명히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국민이다. 따라서 조선족동포들이 중국국민임을 강조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명백한 사실에 대해 한국인들이 문제시하고 또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려는데 따른 오류일 뿐이다.

우리는 단일민족국가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민족과 국민은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을 구성하는 인구 5천만여명 대부분이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단일민족국가임을 자랑하며 타민족을 배타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중국 국민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조선족이라는 명칭도 중국당국이 그들의 국민을 구성하고 있는 소수민족의 하나로서 여타 민족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따라서 조선족동포들에게 있어서 민족과 국민은 별개이다. 즉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나라의 국민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족동포들에게는 그들이 중국국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사람들이 답답할 뿐이다.

물론 조선족동포들이 중국국민임을 주장하는 데는 이 같은 인식의 문제와 함께 중국국민으로서의 자부심도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 많은 조선족동포들은 당장 사는 것이 고단하기는 해도 중국정부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정책을 통해 조선족동포들이 민족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며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족동포들은 대체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조선족동포들이 다른 지역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한민족에 비해 거주국 즉 중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은 이들이 중국을 건국하는 과정에 기여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항일투쟁과정 및 국민당과의 내전 과정에서 조선인들은 한족 못지않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연변지역에만 약 6백여 개의 열사기념탑이 건립되어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최근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중국의 미래가 밝다는 인식도 조선족동포들로 하여금 중국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한국국적 취득이 가능한 조선족동포들 중 상당수가 중국국적을 포기하는 것이 싫어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족동포들이 당당하게 중국국민임을 강조하는 것은 좀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나치게 단일민족 국가라는 역사와 전통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외국인 1백만 명 시대를 맞고 있다. 그중에서 수만 명의 외국인이 국적을 취득해 우리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막연히 우리나라를 좋아해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서부터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하여 국적을 취득한 경우 등등 그 이유도 가지가지다. 한국국민 중에도 우리와 다른 민족이 적지 않게 섞여 있는 것이다.

또 700만 한민족이 세계 각국에 나가 살고 있으며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우리의 국적을 포기하고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해 살아가고 있다. 세계화를 구가하는 21세기는 다민족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동포들이 우리 국민이 아닌 중국국민이라는 것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조선족동포들이 우리의 국적을 취득하여 한국에서 살아가기보다 우리와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공유하는 가운데 중국에서 중국국민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 좁은 한반도에서 지지고 볶는 것보다 넓은 땅에서 멀리 내다보며 살아가는 것이 한민족의 미래에 더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을 피해 만주로 갔던 선조들 중에는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맘껏 꿈을 펼치려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 이상은 유효하다. 그들이 우리국민이 아님을 야속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런 동포가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자리잡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곽승지 :  연합뉴스 영문팀 팀장 / 정치학 박사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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