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삼촌은 조선전쟁에 나가 훈장도 받았다.” 조선족과 만나 어느 정도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면 한번쯤 접하게 되는 말이다. 조선족동포들은 조선족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음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이런 말을 처음 듣게 되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남북한 간에 총부리를 겨누며 골육상잔을 경험한 것도 모자라 제3국에 사는 동포까지도 전쟁에 참여했다니. 더욱이 그 전쟁에 참전한 것을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은 또 뭐야.

실제로 연변의 산과 들을 지나다 보면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혁명열사기념비‧전적비 등을 쉽게 접하게 된다. 조선족동포들이 항일투쟁, 국민당정부와의 내전 및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세운 공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 수가 무려 수만 개에 이른다.

-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동포들에게 있어서 한국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다. 미제국주의자들이 북한을 침략하고 중국을 공격하려는 것에 대항한 이른바 ‘항미원조 보국위민’의 전쟁이다. 따라서 조선족동포들에게 있어서 그 전쟁에 참전한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배경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 해방 후 귀환하지 않고 중국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조선족동포들은 중국공산당을 도와 공산정권을 수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결정을 쫒아 한국전쟁에 앞장서 참전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조선족동포들은 중국과 한국(남북한)의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어 이들의 한국전쟁 참전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일이었다.

- 한국전쟁이 일어날 무렵 조선족동포들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서 중국공산정권의 당당한 국민으로 자리 메김 해 가고 있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공산정권은 소련과 함께 아시아에서 미국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중국공산당에게 있어서 미국은 제국주의의 원흉으로서 타도의 대상이었다. 조선족동포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당국의 선전선동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한국전쟁의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비극적 상황을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은 황당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조선족동포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민족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조선족동포들이 받는 민족교육에서 역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제6장 공존을 위한 미래전략

삶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그러니 용기를 내는 수밖에 없다.

약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거나,

어떤 일이든 사전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이는 사람은

인생을 놓치게 될 것이다.

낯선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힘을 키우지 못한다.

- 안젤름 그륀의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중에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함께 공존공영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연변과 조선족사회가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및 지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의 복잡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러한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어느 순간 그런 가치를 평가받게 된다 하더라도 상황이 돌변하여 일순간 얘기치 못한 역풍을 만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의 가치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전제로 미래사회에 대한 희망을 품어야 한다. 노신이 말한 것처럼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애초에 없던 길도 지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길이 된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희망을 품은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면 현실이 된다.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의 가치에 대해 평가하고 그것이 한민족과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그런 미래를 믿으며 상상하고 또 상상하여야 한다. 상상의 긍정적 힘을 믿어야 한다.

다음은 치밀한 전략을 수립하여 섬세하게 준비하여야 한다. 연변과 조선족의 미래가치를 현재화하는 것은 한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이 속해있는 중국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국이 이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공감하고 또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나서도록 추동해야 한다. 한민족공동체를 위한 민족내부의 단결 못지않게 중국이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 길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당위론적 주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고도의 전략과 치밀한 전술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중국을 끌어내려는 노력과 함께 당장 연변과 조선족사회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에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막연히 기다려서는 안 된다. 엄청난 미래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연변과 조선족사회는 그런 미래로 나아갈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연변과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그런 미래를 만들어낼 비전도 능력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함께 그들을 부추기고 이끌며 준비하여야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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