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박사의 퓨전로드맵 8]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가을, 미국으로부터 초유의 금융재앙이 불어 닥쳤다. 대미 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직접적인 손실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도 달러가 폭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거의 원폭투하를 당한 듯한 상황의 미국금융계는 물론이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아시아까지 강력한 후폭풍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의 실물경제 회복은 최소 1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이 사태를 지켜보던 일본의 한 경제전문가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의 경제리서치 회사 다이와 소켄의 샤오 민제 책임 이코노미스트는 이번의 경제위기는 올해 2/4분기부터 한·중·일 중심으로 회복세로 돌아서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얘기다. 세계 경제의 물꼬는 늘 미국이나 유럽선진국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심각한 금융위기가 한·중·일 삼국으로부터 풀리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의 경제 회복과 성장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회복되고 이어 주변 국가들과 세계가 그 혜택을 볼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경제권력이 서구사회로부터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국제경제를 연구하는 한국인 경제전문가들도 같은 시각이다. 맥킨지 한국 금융기관 전문가 그룹의 리더인 김용아 파트너는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다소 아시아를 주춤하게 했지만 그러나 아시아의 성장엔진은 여전히 힘차게 박동하고 있다고 전제하며 최근 아시아 경제를 이끌어가는 네가지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그 첫 번째는 아시아경제의 회생이다. 1980년대 아시아의 총생산은 세계 총생산의 19%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7년 현재 36%로 성장했고 2020년이 되면 45%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는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유럽과 북미가 부상하기 까지 아시아가 누렸던 황금기를 되찾아 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같은 지역내에 있는 우리의 경제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두 번째는 중간시장이 발달하고 있어 세계일류 대국중심의 고가시장과 중국, 인도와 같은 저가시장의 사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우리 한국과 같은 나라가 점유할 수 있는 시장규모가 전체 시장의 50%규모로 확대됐다.

세 번째는 아시아전역에 도시화와 사회간접자본 투자 그리고 교육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20년 뒤에는 아시아의 도시인구가 10억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보다 약 두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응하는 다양한 사회간접자본투자가 이루어질 예정이어서 건설, 철강, 중공업 분야에서 경쟁력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10년 내에 경영자급 산업인재가 적어도 10만명이상 추가로 요구될 것이며 중간직급 수요는 지금도 매년 평균 25%씩 증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1500개 이상의 신규 대학과 직업학교가 필요해진다. 교육인프라가 발달한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국가간 연대현상이다. 10년전만 해도 아시아국가 들 사이에 연대현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2010년까지 한국을 비롯한 32개국가를 연결하는 총연장 만 4천킬로미터 길이의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가 건설된다. 26개 국가를 연결하는 철도네트워크도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싱가폴 국립대학 리콴유 정책대학원 학장인 키쇼어 마부바니 교수도 그의 저서 <헬로 아시아>에서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갈 글로벌 리더는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중국과 인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세계 인구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비서구가 성장하면 세계는 더욱 평화로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아시아의 도약은 서양의 개념을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므로 서구 입장에서도 이를 환영하고 이같은 변화를 서구가 수용하면서 세계질서를 재편성해야만 세계 평화와 안정이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찍이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양대에 걸쳐 국가경제발전에 큰 공을 세웠던 남덕우 전 국무총리께서 쓴 「동북아중심국가로 가는 길」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에 따르면, 21세기 메가트랜드의 하나는 아시아시대의 도래이며, 세계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서양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5년부터 아시아지역 내의 무역총액이 아시아와 서양(서구와 북미)사이의 무역 총액을 능가하였다. 또한 1960년경의 동아시아 경제는 세계 GNP(국민총생산)의 4%를 차지하는 데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동아시아의 경제규모가 유럽이나 북미를 능가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의 급부상은 세계 변화의 중심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경제규모의 확대와 중국의 급부상은 남덕우 전 총리가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더 크고 빠르게 진척되어 왔다.

더구나 최근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국제경제의 추세는 지난 1월 말 스위스 취리히 스위스호텔에서 개최되었던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의 정황을 살펴보면 더욱 실감나게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키쇼어 마부바니 학장은 이번 ‘다보스 포럼’의 신흥시장 라운드테이블에 패널로 참석한 자리에서 “리버스라는 용어가 얼핏 보면 부정적인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며 “신흥국가들이 선진시장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경계해야 할 것은 리버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아니라 보호주의 강화ㆍ글로벌라이제이션의 후퇴를 의미하는 리버설 오브 글로벌라이제이션(Reversal of Globalization)󰡓이라며 “현재 가장 위험한 것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위축되고 보호주의가 팽배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리버스 글로벌라이제이션(Reverse Globalization)이란 신흥시장과 선진시장 간 역학관계가 180도 변화됐음을 의미한다. 서구기업들은 1997∼1998년 아시아 경제가 극심한 외환위기를 겪을 때 매물로 나온 알짜 아시아 기업들을 사들인 뒤 아시아 경제가 회복됐을 때 비싼 값에 되팔았다. 최근에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신흥시장 기업들이 선진시장에서 자산과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무역흑자를 키우고 저축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한편 석유, 오일달러 등으로 무장한 신흥국가들이 선진시장에서 본격적인 기업 쇼핑에 나섰다는 얘기다. 글로벌 경제·정치권력의 균형이 신흥시장으로 이동하는 ‘리버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증거다.)

그는 또 “그동안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서구경제 주도로 이뤄진 서구화(Westernization)의 모습이었다면 앞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아시아 국가가 주도하는 아시아화(Asianization)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는, 내수시장으로서 아시아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제라드 라이온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높은 외환보유액ㆍ저축률, GDP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재정적자 규모 등 아시아 국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경기부양 수단이 많다󰡓며 “이를 제대로 활용할 경우 더욱 강한 경제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마디로 지구촌이라는 대형 기구를 역동적으로 달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이전처럼 구미 각국이 아닌 바로 이 아시아, 그것도 우리를 포함한 중국과 일본이 있는 이 동북아라는 의미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동아시아의 경제규모가 유럽이나 북미를 넘어서는 날이 멀잖아 올 것이다. 그 동아시아의 핵심국가가 바로 한국, 일본, 중국이며 이를 동북아라고 부른다. 즉 아시아대륙시대는 동북아시대를 의미하는 것인데, 최근 이 세 나라의 돌아가는 상황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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