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겐이치(大前硏一)는 지난 10년여 동안 동아시아국가들의 상호경제교류 문제를 연구해온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이다. 그는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무역권을 형성했던 중세 유렵의 한자(Hansa)동맹을 본떠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이 하나의 경제틀을 만들어 활발한 교역을 펼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에 대해 제의한 바 있다.

그의 상상력은 국가 간의 관계를 경쟁적 또는 단절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서로 협력함으로서 상호보완적인 존재임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한중일과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제각각 독특한 강점을 갖고 있으며 상호 보완적 존재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인식의 전환에 따라 얼마든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일관되게 주창하고 있는 이른바 지역국가론이다.

오마에는 자신의 한 저서에서 국민국가 단위로 경쟁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하며 글로벌시대에 경쟁의 중심은 지역국가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따라서 유연성 개방성 전문성을 갖추고 세계와 직접 소통하는 지역국가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가 세계화시대에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 이미 세상은 유아독존적 사고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서로 긴밀한 유대를 통해 융합하여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오마이 겐이치는 애플사가 공전의 히트를 한 아이팟의 사례에 주목한다. 이 제품은 애플이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제품화를 추진했지만 제작에는 미국과 동아시아국가들의 여러 기업이 참여했다. 이렇듯 성공적인 제품 하나를 만드는데도 합종연횡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 학문 역시 학제간 연구가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대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는 이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는 말로 풀어내고 있다.

0. 인연의 끈을 이어가자

.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낙천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우리가 죽어 하늘나라로 가면 비익조가 되고 이 땅에 영원히 살면 연리지가 됩시다 (上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비익조는 한쪽 눈과 한쪽 날개만을 가지고 있어 두 마리가 함께 불어있어야만 하나의 몸체가 될 수 있는 전설의 새다. 그래서 비익조는 흔히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다.

연리지라는 말에도 비슷한 뜻이 담겨 있다. 금슬이 좋았던 부부의 무덤 앞에 나무 두 그루를 심었더니 두 나뭇가지가 달라붙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애틋한 부부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시인 정호승은, 비익조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사랑을 하여야 하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랑을 “눈을 마주치는 것”이며 “마음속에 있는 것” 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사랑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도 안 된다. 진실로 사랑을 하다보면 자연히 원했던 삶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 진실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나머지 하나의 날개를 얻는다는 것이다.... 사랑을 잃으면 우리는 다시 날 수 없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먼저 사랑해라.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마라. 줄 생각만 해라. 그러면 자연히 사랑을 받게 되고, 우리는 영원히 나머지 한쪽 날개를 얻게 된다.”

한국사회와 연변 조선족사회는 비익조와 연리지가 되어야 한다. 정호승이 말하는 것처럼 상대의 한쪽 날개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도록 먼저 사랑하여야 한다.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주기만 하는 사랑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 유치환(柳致環)이 아니어도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것이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흙으로 당신과 나를 빚으니 기쁘기 이를 데 없네요. 다시 무너뜨려 물을 부어 이리저리 섞어 또 당신과 나를 빚지요. 내 진흙 속에는 당신이 있고 당신 흙 속에는 내가 있지요 (我泥中有你 你泥中有我)....” 중국 원나라 때 명필 조맹부의 처 관도승(管道昇)이 다른 여자를 첩으로 들이려는 남편에게 보내 그의 뜻을 꺾은 사(詞)이다. 불이사상을 연상케 하는 이 글 또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명구다.

이와 같은 당위론적 사설이 아니어도 연변과 조선족을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는 많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변과 조선족동포는 20세기 우리민족이 겪었던 민족문제를 풀어가는 통로다. 우리와 가장 지근거리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를 외면하면서 한민족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연변과 조선족동포를 끌어안아야 하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민족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다. 그 소명은 또한 동북아시아공동체로 이어져 있다. 한민족공동체와 동북아시아공동체의 미래는 연변 및 조선족사회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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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지 : 연합뉴스 영문팀 팀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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