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박사의 퓨전로드맵 연재

2002월드컵이 끝난 직후 외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2002월드컵이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얼마나 높여주었는지 실감했을 것이다. 그 전에는 미국이나 유럽을 가면 아시아인에게 대개는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하고 물었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에는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혹시 코리안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생긴 것이다. 왜소한 체격의 한국선수들이 유럽 강호들을 차례로 무릎꿇게 만든 것이 단순히 홈그라운드의 잇점 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고 또 호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애써 끌어올린 한국의 긍정적인 대외이미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연구에서 드러난 거짓과 불법행위들이 세계인들을 경악시킨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다시한번 세계인들의 격찬을 한 몸에 받으며 한국인의 저력과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과시했다. 그 과정에서 히딩크에 비견되는 또 한사람의 스타감독이 탄생했다. 야구감독 김경문, 그는 특히 선수들을 신뢰하는 힘으로 선수들이 필드에서 잠재적인 능력까지 아낌없이 발휘하게 하는 마법으로 컨디션이 바닥이었던 타자 이승엽, 큰 경기에 경험이 전혀 없었던 약관 스무살의 투수 류현진에게 세계 최강팀을 능히 압도할 만한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베트남에서 한 한국인 대학생이 사귀던 베트남 여대생을 살해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을 지켜보던 베트남의 한 수사당국자는 유감을 표하기 위해 달려간 외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화를 잘 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려요.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 비춰진 한국의 양면성이다. 단 한번의 월드컵 유치로 많은 선수들을 세계적인 축구명문클럽에 진출시킨 나라, 뛰어난 상상력으로 매년 세계적인 영화제를 깜짝 놀라게 하는 걸작들을 만들어내는 나라, 세계적인 과학자와 예술가, 목사와 건축가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나라, 그러나 그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 캠퍼스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매너의 스포츠인 골프장에서 캐디를 때려 물의를 빚는 등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 민족, 자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며느리들을 학대해서 결국 자살에 이르게 하는 배타적인 민족.......

그래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서구 열강들의 눈빛은 늘 불안하다. 뛰어난 재능과 상상력을 가진 민족, 그러나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이면을 갖고 있는 나라. 그래서 완벽하게 신뢰하기엔 뭔가 부족한 나라, 이것이 한국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다. 여기에 북한의 핵문제도 한몫 단단히 한다. 세계인들에게 신흥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있는 두 나라, 중국과 일본, 그 사이에 있는 우리의 이미지는 냉정하게 말해 아직은 선진국이 되기엔 뭔가 약간 부족한 그런 나라일 뿐이다.

그것은 이웃국가와의 관계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여름 베이징올림픽이 치러지는 기간 내내 우리는 당혹스런 경험을 했다. 거대한 한류시장인 중국에 강력한 반한감정이 확산됐던 것이다. 계기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여자양궁경기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반한감정은 올림픽경기가 치러지는 기간 내내 곳곳에서 볼상 사납게 불거져 우릴 불안하게 했다.

그 한 켠에서 일본인 관람객들은 오성기와 일장기를 함께 흔들며 적극적으로 중국선수들을 응원했다. 일본은 경기침체의 위기를 겪는 동안 중국의 등극을 지켜보며 중국을 향한 외교노선을 노골적인 ‘친화작전’으로 선회했다. 일본은 중국을 더 이상 적대적인 경쟁자로 대하지 않는다. 아시아패권을 공유할 파트너로 대우하면서 일본 특유의 민첩함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지역내에서 자기 위치를 찾는 데 중국과의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급변하는 위상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단언컨대 앞으로 중국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력은 지난 반세기 미국이 이 나라에 미친 영향력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날 것이다. 지난 2세기, 세계적인 역사대국에서 세계 최대의 빈곤국가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중국은 한반도문제에 막강한 힘을 미쳤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아래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는 사실, 그런 중국의 진면목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의 조상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우리가 종종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오긴 했으나, 우리 조상들은 전 역사를 통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중국의 변화에 민감했다. 그것은 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살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생존전략이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세계의 중심 질서를 이루고 있는 오늘까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당당한 독립국가로 중국과 대등하게 외교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비결은 바로 준비된 관계정립이었다. 조상들은 치열하게 중국과의 관계정립을 연구했고 준비했고 실천에 옮겼다.

이를 위해 선조들은 중국식 예와 가치관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그 결과 비록 한반도의 작은 나라였지만, 세계의 중심이라 자처하는 중국을 감동시키는 우방이 됐고, 심지어 공자는 생전에 ‘진정으로 예를 알고 이를 지킬 줄 아는 동이의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그런 조상들의 비범한 능력과 치열한 노력 덕분에 강대국이 약소국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그 정글과 같은 시대에 ― 물론 종종 나라를 잃을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 그들과 철저한 신의와 예의 관계를 유지하며 독립적인 국호와 자국의 영토를 지키며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중국의 저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며 지난 100년간의 경험만을 앞세워 묘한 우월감에 빠져있다. 물론 70년대 이후 우리가 이룩해온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정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해내지 못한 감동적인 성과요, 자랑스런 역사다. 그러나 오늘날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이 불과 4천만의 인구로 우리가 이룩한 것과 거의 같은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건 경이로운 기록이다. 그와 함께 얼마 전까지도 한국을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로 바라보던 그들의 시각이 현저하게 변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두 마리의 거대한 공룡, 즉 13억의 경제대국 중국과 세계 2위의 경제강국 일본 사이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이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시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으로 갈수록 그 나라가 갖고 있는 재화가치만큼이나 주변국과의 관계능력이 그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면에서 한국은 아직 국제사회에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분명 전쟁의 폐허위에서 순식간에 개발도상국의 단계를 지나 선진국의 잠재력을 갖춘 중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건, 차원이 다른 싸움이다. 비유하자면 아마추어가 프로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아마추어의 세계에서는 50점짜리와 80점짜리가 싸운다. 당연히 80점짜리가 연승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80점에 머물러 있는 한 그는 프로세계에서 단 1 승도 올릴 수 없다. 프로의 세계는 99점짜리와 100점짜리의 싸움과 같다. 100점이 되어야 선진국이고, 99점의 함량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중진국에 불과하다. 1%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다. 그러니 80점짜리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기란 그만큼 치열하다.

때문에 지금 한국이 경주해야 할 것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1%인데 그것이 필자는 ‘관계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설 수 없다. 마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긴 했지만,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했던 것처럼. 그리고 월드컵 4강을 이룩하고도 그에 못지않은 부도덕과 비인간적인 사고들로 우리의 우방에 종종 실망과 불안감을 안겨준 것처럼, 더구나 동북아에서 가장 작은 영토와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로서 인구 13억의 중국과 세계 2위의 경제강국 일본과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하기 위해서라도 ‘선진국의 잠재력을 가진 만년 중진국’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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