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리포트]똘레랑스와 불이사상; 사상적 패러다임의 전환- 곽승지 저

0. 똘레랑스와 불이사상; 사상적 패러다임의 전환

. 조선족 포용의 논리로서 똘레랑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세상을 각박하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대답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인류가 그동안 단절의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너와 나, 우리와 그들, 안과 밖, 부분과 전체 등등.... 모든 것을 나누어 차이를 드러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삶은 필연적으로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이 이렇게 단절에 길들여진 것은 인간의 이기적 속성 때문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다른 얘기도 가능하다. 근현대 이후 국민국가가 출현하면서 영토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국경을 획책하여 공간이동을 제한한 것이 가져온 영향이다. 공간적 단절은 인간 마음의 소통까지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필연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이제 다시 소통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21세기의 이러한 트렌드를 영토의 관점에서 보면 공간이동이 자유롭던 고중세 시대와 유사하다. 적어도 공간이동에서는 과거로 회귀한 셈이다. 공간이동의 자유로움은 필경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쳐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 인터넷세상에서는 이러한 트렌드에 조응하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소통의 시대에 적합한 문화사상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인위적 장벽은 거의 없다. 냉전시대에 철의 장막이니 죽의 장막이니 하던, 총칼로 엄격하게 구분하던 국경마저 이제는 특별한 장벽이 아니다. 우리는 그만큼 소통이 원활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분명 사람이 살아가는데 유용하고 또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어렵게 하는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문제는 소통의 장벽을 허물고자 했던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경계가 허물어짐에 따라 사람과 사람이 한데 섞여 살게 되면서 사람이 사람을 경원하고 질시하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기 까지 한다.

어떤 이유로도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차별하는 것은 악이다. 갈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해는 상대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소통의 시대에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소통의 시대를 관통하는 서구적 행동강령은 똘레랑스이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토대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신이여, 덧없고 힘든 삶의 짐을 우리가 서로 도와가면서 견딜 수 있게 하소서.”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종교갈등으로 무고하게 처형된 사건에 대해 투쟁하면서 종교적 광신 풍토를 해소하기 위해 언급한데서 유래한 똘레랑스란 말은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지마라” 라는 황금법칙은 똘레랑스를 위한 기본적 규율이다.

국가 간 또는 개인 간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는 힘이 지배한다. 힘이 지배하는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힘이 있는 쪽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똘레랑스의 실천 역시 상대적 강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에 갈등이 있다면 상대적 강자인 한국사회가 이를 풀기 위해 먼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 중국 설득의 논리로서 불이사상(不二思想)

똘레랑스가 소통의 시대를 관통하는 서구적 행동강령이라면 동양에는 관용과 조화 그리고 원융(圓融)의 세계를 지향하는 불이사상이 있다. 불이사상은 현대사회의 단절과 분리의 현상을 극복하는 사고의 전환 필요성을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사상은 여전히 현실주의적 시각이 지배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치질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역내 국가들이 공존공영 및 상생의 틀을 만드는데 유용할 것이다.

이찬훈교수는 오늘날 인류가 총체적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면서 그 이유를 현대문명의 분리 현상에서 찾는다.(이찬훈, 2002, 2006) 현대문명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분리함으로써 분리․경쟁․정복․지배의 논리가 만연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이 결국 현대문명을 파국으로 몰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른바 새로운 문명을 위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찾은 답은 불이사상이다. 불이사상은 이것과 저것, 하나와 여럿, 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 우주와 나, 자연과 나, 사회와 나, 너와 나 등 이 세상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통찰에 기초한 공생과 상생의 문명을 건설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불이사상은 크게 나누어 하나와 여럿이 둘이 아니라는 일다불이(一多不二)와, 유와 무가 둘이 아니라는 유무불이(有無不二)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일다불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의 관계 -- 이것과 저것, 이것과 다른 것들의 관계 -- 는 그것들을 하나라고 할 수도 없고 둘이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불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의 관계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는 상호 의존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유무불이는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님을 말한다. 세상만물은 고정된 자성이 없고 여러 가지의 관계에 따라 일시적으로 성립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고 있음과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불이사상의 핵심은 양극단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있다. 원효대사는 이를 “둘이 아니되 하나를 고집하지도 않는다”(一多相容不同門)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일다불이이자 유무불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우주와 나는 둘이 아니며(梵我不二),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自他不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生死不二)는 관점에 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비로소 나, 나의 것, 나의 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된다.

결국, 인간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문제는 생각과 논리에서, 세계관에서, 문화에서 생긴다.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가치있다고 여기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을 제도와 문화로 구현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인간이 처한 상황은 인간의 생각 논리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변과 조선족은 한국과 중국에 공히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연변 및 조선족과 관련된 문제는 한국과 중국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두 나라가 이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제정치는 기본적으로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을 기준으로 편을 나눈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관계의 대명제가 이를 웅변한다. 어떤 명분 보다 국가이익에 부합하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탈냉전적 상황에서 이데올로기 보다 경제적 실리가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면서 더 분명해 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냉전시대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현상의 하나이다. 따라서 연변과 조선족을 동북아시아 미래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경제적 논리 못지않게 현상에 대해 미래지향적 사고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요구되는 것은 기존의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구성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시각을 통해 지역국가 간 공존공영을 모색하려는 의지이다. 불이사상도 기존의 국제정치 패턴과 시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논리가 될 것이다. 즉 연변과 조선족은 중국에 속해있지만 중국과의 정치사회적 인연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과의 문화 정서적 인연이 소중하다고 해서 한국과의 인연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이들을 매개로 한국과 중국은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이사상을 수용하면 현실적 갈등 요인을 뛰어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로부터 미래로, 연변이라는 소지역에서 동북아시아라는 대지역으로 사고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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