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 방명일

화사한 진달래꽃이 쫘악 덮힌 경남의 험준 수려한 산, 오주영이 거제도 장승포를 떠나 여기서 벌목 작업을 한지도 넉달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양산, 울산, 기장, 김해 등지로 다니면서 소나무 재선충 퇴치 작업을 하는중이다.

소나무 암병으로 확진된 재선충은 일본 화물선 원목에 잠입해 기여들어 번개불 속도로 영남, 호남의 광활한 산야에 퍼졌다. 한국 남부 지역은 이미 소나무 멸종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성충이 날으면서 알을 낳는데 유충은 소나무껍질 사이를 빈틈없이 오가며 즙액을 먹어 치운단다. 번식이 엄청난 유충은 몇일 사이 백년 로송도 기가 막히게 죽여 버리는데, 일본은 재선충 전쟁에서 철저히 실패하여 이미 퇴치 작업을 포기하고 말았다는 뉴스가 전해왔다.

“오씨, 산에 오르기 힘들지요?”

맨 앞에서 산 정상에 오른 김영길씨가 어깨에 메고 가던 기계톱을 내려놓고 벙긋 웃으면서 묻고 있었다. 부산에서 25년 살았다지만 의연히 강원도 방언을 집착하고 있는 강원도의 사내다운 사내다. 오주영은 김영길씨와 마주설때마다 그의 매너는 많은점이 중국의 의형님 리남순씨와 비슷함을 감지했다. 코대가 쭉서고 매서운 눈길을 던져주는 독특한 센스도 리남순 형님을 마냥 련상케 하였다. 세상은 언제나 오묘한 만남이 있기마련,오주영은 여기서 사람들과 낯을 익힐때 고향 벗들과 비기면서 타향살이의 괴적함을 해소하기도했다. 중국에선 한국이 꿈이더니 한국에서는 또 머나먼 고향 흑룡강, 그리고 친근한 벗들을 잊을수 없어 속을 태우기도한다.그래 이것이 인생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괜찮아요…진달래에 눈을 팔다보니 힘든줄도 모르겠네요.”

오주영은 비닐을 꾸겨 넣은 포대를 내리우고 멈춰서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그들과 근 백보쯤 떨어진 산아래에 덕수, 종수, 용호, 곽아저씨 ,그외 새로 가입한 두 사람이 코를 땅에 닿도록 허위허위 올라오고 있었다.

“종수야! 젊은 놈이 왜 제일 꽁무니에 떨어졌어?!”

김영길씨가 목청을 높히며 소리를 치자 여섯 사람은 약속한듯 걸음을 멈추었다. 김영길씨가 머리우로 쳐든 대병소주가 포착되자 술을 즐기는 그들은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년장자인 곽아저씨 다음, 김영길씨가 형님이였고 종수, 덕수, 용호 등은 오주영보다 한두살씩 적었다. 그들이 사력을 다하듯 황소숨을 몰아 쉬면서 올라오자 김영길씨는 솜씨 빠르게 가방을 열고 삶은 계란과 정제염을 꺼냈다. 그리고 1희용 종이컵에 소주 한잔씩 부어 차례로 주었다. 금정구 금사동의 김영길씨는 장장25년 기계톱 작업을 했기에 솜씨가 경지에 이르러 부산 광역시의 린근 각 군에서 벌목 작업이 있을 경우 앞 다투며 그를 초청했다.

“오씨는 포천 더덕술을 마셔 봤어?”

김영길씨가 가방에서 막걸리병을 꺼내면서 묻고 있었다.

“아니요. 부산 동동주와 경남 막걸리 밖에 모릅니다.”

“그럼, 잘됐네.”

김영길씨가 소주잔을 다 비우게하고 포천 더덕술을 한컵씩 부었다.

“자, 들지요.”

“듭시다.”

“야! 진짜다! 더덕술이 옳군요!” 오주영의 입에서는 저절로 감탄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소시절 어머니 따라 산나물 뜯으려 뒤동산에 깊숙히 들어 갔을때 수림속을 진동턴 그 더덕향이 오늘 이 막걸리에서 물씬 풍기였던것이다. 오주영은 이순간 옛고향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영아,탁주한잔 쭉 들거라. 그래야 해질때까지 배겨내지.”어머니가 작식 솜씨를 확인받고 싶은 모양, 고추장 양념을 빨갛게 버물려 구운 산 더덕 한개를 짚어 입에 넣어주고 막걸리를 쭈르륵 따라주기까지하면서 말씀하셨다.

“야! 어머니가 만든 막걸리 진짜 최고다! 더덕 구이도그렇고….”

 

두냥컵으로 한개 마시자 창자에 불이 붙는듯 뜨거워 났다. 모내기에 지친 허리와 다리로 찡하면서 청주가 흘러 전파되는 느낌이다.찰옥수수로 빚은 탁주를 걸린 청주인데 표층에 기름이 동동 더있었다.한컵 더 입안에 쏟아 넣자 핑그르 돌아가고 혀꼬부랑 소리가 나가기 시작는다.어머니는 논배미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이웃들에게도 청주를 한잔씩 권하고 술통이 텅 비여서야 시름놓고 집으로 향해갔다.

 

오주영은 고향 상념을 집착하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탁주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

“옛날엔 집집이 탁주를 빚었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막걸리 만들 엄두도 못내요.…”

“허허허. 여기도 똑같아. 공장에서 생산할뿐 주민들이 탁주 만든다는 얘기는 못들었거든…”

민속문화의 실추를 안쓰럽게 여기는 오주영의 심정에 동감을 보내고 김영길씨는 몸을 일으켜 작업을 시작했다.

“윙 --- 윙 ---”

기계톱이 돌아갔다.

김영길씨는 8kg 무게의 톱을 파리채처럼 가볍게 휘두루면서 땅바닥의 장애가 되는 잡목을 깔끔히 정리한후 병든 소나무 밑둥에 톱날을 접근시켰다.

“아래로 넘어진다!”

 

사람들은 소리치면서 위로 피해섰다. 그러나 나무는 그들의 판단을 어기고 서쪽 방향으로 쓰러졌다. 김영길씨가 작업이 편리하도록 공간이 넓은 곳으로 베여 넘긴 것이였다. 산아래 방향으로 무게 실린 아름드리 나무를 엉뚱한 측면으로 넘어 뜨리려면 보통일이 아니다. 김영길씨의 일 솜씨에 오주영은 찬탄을 금치 못하며 높히 소리쳤다.

“대단한 솜씨군요!”

“우지끈 --- 쾅!”

60여년 자랐던 소나무가 지축을 흔드는 듯한 굉음을 내면서 쓰러진다. 김영길씨는 오주영이 칭찬하는 말을 듣고 햇볕에 그슬러 검스레한 얼굴에 박씨같이 흰 이를 약간 드러내며 피씩 웃어 보이고 다시 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윙 --- 윙 ---”

 

평소에 말수적고 느릿해보이던 김영길씨는 벌목 코드에 들어서면 수렵에 나선 표범처럼 날쌔고 민첩했다. 약간 구부정해보이는 등허리, 강철같이 억센 팔로 기계톱을 다루는 양상은 로보트가 움직이는듯 정확성, 안전감을 풋풋히 주고있었다.쓰러진 나무는 잠간 사이에 토막 토막 절단되였고 가지도 거의 같은 싸이즈로 깔끔하게 잘라졌다. 김영길씨의 1점의 오차없이 기계톱 다루는 렌즈가 시야에 포착되면 마냥 리남순씨의 무술 동작이 눈앞에 삼삼거린다.호랑이를 주먹으로 때려죽인 무송의 제 39대 후손에게서 원앙권술을 전수받은 리남순씨,엊저녁 통화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주영아우, 내래 농장을 떠날수 없슴메…..왕창순,리량, 황영, 왕수란씨 모두 늘상 자넬 외우고 있슴메, 농장 개척자라고… 여긴 지금도 여전히 손대안, 마로우, 서용학과 대립되여 골치아픈일들이 있소와요….농토 분쟁외에 토종닭장, 당면공장 경영중, 왕창순등이 그들과 마찰이 생기너꺼니, 내래 그들을 도와 농장을 지켜야함메…” 소년시절, 집안현에서 유수현으로 이주하여 줄곧 한족들속에 묻혀 살면서 고스란히 보존한 리남순씨의 독특한 평안북도 사투리다. 오주영은 돈벌이에 혈안되여 농장을 관두고 연해지대, 한국으로 떠났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차돌처럼 배겨서 농사를 짖고있다.중국은 옛부터 종족간의 힘겨루기 문화가 뿌리깊은곳이다. 싸울땐 형제와 패거리가 총동원되는데 수가 많고 드센쪽이 압도적이다.80년대 엄청난 투자로 일쿼놓은 수십 헥타르의 농토를 버리기 아까와서 그들속에서 독불장군처럼 버텨낸다는건 장난이 아니였다. 조선족들중에는 리남순씨처럼 흙속에 묻혀 사는 인재들이 기실 너무 많았다. 리남순은 젊은시절,하얼빈 깡패두목 왕비도를 꺾고 “흑룡강 제일”의 인정을 받은 인물이였건만 오주영과 함께 신농장을 개척하고 흙에 파묻혀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아니라면 손대안 등 망나니들에게 농토는 벌써 빼앗겼을것이다.한국 열풍에 서른두호의 농호가 떠나 버리고 유일무이로 그만 남아있다. 벌써 지천명에 가까운 쉰살을 넘겨보는 리남순씨가 장차 늙어 죽은후 이 농장을 누가 지켜낼것인가?! 오주영은 이 순간 농장을 버린 자신이 극도로 미웠고 귀중한 농장이 바야흐로 소실됨을 통탄하였다.

“오대장님, 술이 많지 않숨둥? 적게 마십소! ”정열의 눈길로 시선을 마주하며 술을 따르던 윤혜진의 관심어린 말이였다.마누라 황금희가 곁에서 함께 술그릇을 들고 있음도 망각했던지 그녀는 오주영을 남편처럼 살뜰히 보살피고있었다.오주영의 추앙으로 부녀 대장직에 당선된 윤혜진, 곱상한 이목구비에 나주배처럼 아삭아삭한 성품의 여자다.오주영은 현처량모인 마누라의 눈을 피하면서 그녀와 사랑을 불태우고 있었다.

“오주영 아우는 주량이 크너꺼니 걱정말라구. 자, 나도 한잔 더…”황금희의 기분이 잡칠까봐 집중력을 돌리려고 애쓰는 리남순 형님의 고마운 처사였다.

“술이 비슷하믄 시작하자구!…”

리남순씨가 오주영을 앞질러 찬물에 뛰여들었다. 농장 개척 성패를 결정짖는 숭엄한 보막이 첫 작업이다.북방의 <5.1절>은 아직 도랑물이 아이스처럼 차거웠다. 남정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하해하는 펭귄떼처럼 물속으로 “풍!” “풍!” 뛰여 드갔고 아낙네들은 불도젤이 밀어 오는 진흙덩이를 안고 씨름하며 이악스레 나르기 시작는다.

“내래, 구령을 웨치너꺼니 스나들은 따라 부르고 가시네들은 응원하라구!….” 리남순씨가 가슴까지 물속에 잠군채 망치를 휘두르면서 유머로 소리쳤다.차거운 물속에서 턱을 덜덜 떨면서 버드나무단우에 벼짚, 흙을 덮고있는 사원들의 추위를 덜어 주기 위해서 일부러 흥을 돋구는 그였다.오주영보다 두살우인 그는 언제나 혐님 노릇을 하느라 로고 많았고, 명분이 대장인 오주영을 도와 각항 어려운 문제도 차질없이 풀어 나갔다.

“좋다! 유수(榆树) 리씨, 어서 불러라!…”

 

사람들은 작년가을 수백립방 토방작업시 리남순씨가 부르는 구령에 맞춰 높은 보둑으로 목도를 메던일을 떠 올리며 물속에서 허리를 펴고 열광했다.

“허기영 여차! ”

“허기영!”

“새농장을!”

“허기영!”

“건설하자!”

“허기영!”

그때의 가슴을 죄이던 장면이 영사막처럼 눈앞에서 움직인다.

“야하,버쩍 들었!”

오주영은 굵은 밑둥을 골라메면서 고함을 쳤다. 마치 그때 윤혜진의 앞에서 힘자랑을 하느라 커다란 청석돌을 안고 물속에 처넣던 느낌이였다. 오주영은 벌목작업중 열심히 일을 하면서 항상 중량이 무거운것부터 골라 메였다. 때로는 큰 것이 100kg이상 되였다. 큰 토막은 밑부분을 들어주어야 메는 사람이 일어설수 있었기에 서로 손발을 척척 맞추면서 운반하였다. 부자간에도 노동이 사랑이라 했으니 노동은 사랑과 신뢰의 기존이였다. 수개월 동고동락은 오주영과 그들의 감정을 부드럽게 융합하고있었다.

“우지끈 --- 탕!”

“우지끈 --- 쾅!”

톱 엔진의 숨막히는 소리에 잇따라 병충해 입은 소나무들이 련속 넘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김영길씨가 베여 놓은 나무를 한군데 쌓아놓고 약을 친후 비닐을 덮고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흙으로 사면을 꽁꽁 덮으며 나아갔다.

“스톱 ---”

 

김영길씨의 작업 중지령이 떨어졌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다. 땀벌창이 된 그들은 샤워를 금방 마친듯 신상이 푹 젖었다. 상의를 벗어 비틀어 짜니 땀이 물처럼 흐른다. 그걸 나무 가지에 척척 걸쳐놓은후 도시락과 물통을 찾아 들고 자리를 정해 앉았다. 산판 노가다일을 한단락 끝내고 술한잔 나눌때만큼 즐거울때가없다.청신한 산소에 실린 솔향,진달래향이 미치도록 후각을 자극하여 술맛은 꿀맛이다. 곽아저씰 제외, 모두 독신들이였다.하느님이 세상의 독신 남자들을 모두 여기 금정산으로 보냈는지 착각된다. 덕수와 종수는 로모가 계셨기에 어머님이 챙겨준 도시락을 가져왔지만 김영길씨와 용호 그리고 오늘 새로 가입한 두 친구는 손수 지은 밥을 챙겨왔다. 반찬은 모두 가운데 집결해놓았는데 곽아저씨의 반찬이 짱이였다. 멸치볶음, 소고기졸임, 계란볶음, 북어국… 군침을 흘리게 한다.금년 예쉰을 훌쩍 넘은 곽씨도 97년도에야 흑룡강의 어느 시골 조선족 여자와 결혼했던것이다.

 

“곽아저씬, 12세 년하인 마누라 손에 밥을 잡수시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반찬만 봐도 군침이 돕니다그려.”

김영길씨가 체면을 돌보지 않고 곽씨의 반찬을 남먼저 집으려다가 실례같아서 손을 주춤하면서 부러움을 진솔히 표시하였다.

“내가 뭐라고 했노? 어서 장가들 가야 한다꼬, 지금 베트남, 태국에서 예쁜 여자들이 시집을 많이 오고 있잖능겨? 더 늙기전에 서둘러야 한다꼬.”

김영길씨의 말을 들은 곽아저씬 관심조로 권고하고 있었다. 오주영은 그들의 대화를 남의 일처럼 여기지않고 귀담아 들으면서 소주를 종이컵에 부어 연장자에게부터 한잔씩 돌렸다. 곽씨가 한 고향 흑룡강의 여성을 아내로 삼았다고하니 친매부를 만난 절친감을 느끼게 되였다.곽씨는 호의로 한마디 했는데 덕수,용호,종수가 생각밖에 무리한 언어로 쏘아댈 줄이야!

“쉰살이 내일 모레인데 이제 장가 들어 뭘하능겨?”

“외국인 여자와 살다가 가정 망친 인간들이 너무 많다꼬! 독신으로 지내는 우리가 얼마나 편한데예?”

덕수와 종학이의 비뚤렁 소리를 듣고 오주영은 흠칫 놀랬다.그들은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부담으로 여기고 있는것이다. 종수가 개떡처럼 역하게 내뱉은 말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곽씨의 얼굴에는 먹장 구름이 드리웠다.

“에헴.”

곽령감은 큰소리로 헛기침을 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씩씩거리였다. 한평생 노가다 일만 해왔기에 여간한 분을 참고 견디지 못하는 직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꾹 참으며 지냈다.

“아저씨,피로가 확 풀리게 어서 한잔 합시다.그리고 옛날 중동에서 고생턴 이야기도 화끈하게 해 주시고요….”

오손도손 모여앉은 오참석의 분위기가 냉전시기처럼 팽창해지자 오주영은 잔을 들어 고향 매부와 같은 곽씨 앞으로 내밀었다.

“임마! 한매 맞고싶으냐?1앞으로 쓸데없는 소릴 절대하지 말어!….”

 

김영길씨는 곽씨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하여 종수를 호되게 꾸짖었다. 곽아저씬 몸을 구십도로 회전하여 아까 부어 놓은 술잔을 들어 오주영, 김영길 두 사람과 부딪친후 훌쩍 마셔버렸다. 그런후 상대도 돌보지 않고 혼자 식사를 졸촐히 하였다. 반찬도 몇 술 뜨지 않고 밥만 드신후 일어서 양지 바른쪽의 잔디우에 누워서 코를 드렁드렁 구르기 시작했다.

어쩐지 장가들라는 권유만 나오면 거부감을 느끼는 이 친구들이 참 재밌다. 청개구리가 반대 방향으로 뛴다는 이야길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종수, 덕수, 용호, 그외의 친구들은 소주 한 잔씩 나누고 서로 낄낄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 하고 있었는데 년장자 곽씨의 부부생활이 부럽지도 않으며 또 그들과 상관없는듯 싶었다. 김영길씨와 오주영은 묵언으로 술만 축내였다.오주영은 열흘전 울산 부근 산에서 파전 안주로 막걸리 마실때 곽아저씨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70년대 곽씨도 돈벌일 위해 아내를 홀로 두고 사우디로 떠났다. 건축 현장 40도 고온에도 차질없이 근무했다. 7년후, 귀국한 곽씨는 기절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붙어 살다가 남편 귀국 소식을 접하고 비축금을 전부 빼내여 둘이 함께 미국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그때 집에 와서 보니까 한심하더라꼬. 사내들은 외국에서 목숨을 내걸고 일을 하는데 아낙네들은 바람을 쓰느라고 모두 미쳐버렸능기라. 집에 있던 사내놈들은 계집 벼락, 돈 벼락에 야단났다꼬….”

곽아저씨의 이야기는 오주영에게 중국의 조선족들도 옛날 한국인들의 걷던 길을 후배처럼 고스란히 따라 가고 있음을 충분히 인식케 하였다. 한국 바람에 집집이 깨여진 질그릇처럼 파손되였다. 순간 오주영은 혜진이를 떠올렸고 마누라 황금희를 울렁이는 가슴속에 파도처럼 부대끼고 있었다. 자신이 개척한 하얼빈 신농장에서 혜진이와 벌어졌던 러브 스토리, 그때문에 속을 썩이던 마누라, 아! 세월이 흐를수록 조강지처에 대한 그 죄송함이 더 커가고 있었다. 한국에 나온지 이미 3년을 넘겼다. 자식들을 돌보느라 중국에 남아있는 현처량모였던 황금희, 돌부처가 아닌 그녀도 작년 가을부터 애인 바람에 몰입한다는 소문이 귀구멍으로 아프게 들려왔다. 혈기 왕성한 마누라가 오죽 외로웠으면 외도를 했겠냐마는 도량이 작은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 들일수 없는 재난이였다.사내들의 흉금은 바늘 구멍처럼 작다는걸 오주영은 이제야 절실히 느끼였다. 남의 여잘 건드리는건 당연케 여기지만 립장이 바뀌면 굉장히 속을 썩이는것이 바로 사내들이다.귀중한 인생살이,서로가 자유롭게 사랑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마땅하지않는가? 루루천년 내려오던 일부숭상제를 서서히 장송하는 현실을 오주영은 인정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찍 시작하고 일찍 퇴근하자. 저녘은 내가 사줄테니까.”

오늘 오찬을 기분없이 끝낸 김영길씨가 피우던 담배를 땅에 조심스레 문질러 불을 꺼버리고 작업 시간을 앞당겨 일어섰다. 김영길씨는 해병대 훈련 감독이였으나 퇴역후 집에 돌아 오니 약혼녀가 재벌과 눈이 맞아 달아났다. 화김에 재벌을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고 그죄로 관직을 삭탈 당하고 산판 벌목을 선택한것이다. 때문에 김영길씨는 가슴에 한이 맺힌 배우자 말만 나오면 기분 잡쳐 밥맛을 잃는다고했다. 아까 친구들이 곽씨를 힐난할때 악마같은 옛추억이 그의 가슴을 괴롭혔던것이다.

“영길형님, 오늘 저녁 어느 술집으로 가능겨?”

저녘에 술 한 잔 있다는 말을 듣고 종수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하며 눈치없이 캐여 물었다. 그러나 기분이 상한 김영길씨의 입에서 고운말이 나올수없었다.

“하,답답한 인간.그런건 퇴근길에 의논해도 돼잖아?! 어서 서둘러 일부터해야지!”

“예,예, 알겠습니데이”

김영길씨의 퉁포처럼 내갈리는 소리에 한방 얻어 맞은듯 화뜰 놀랜 종수는 왜소한 체구를 일으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윙 --- 윙 ---”

기계톱이 돌아갔다.

“우지끈 --- 쾅!”

“윙 --- 윙!”

“눈치없는놈, 비켜서라! 저쪽으로!”

 

김영길씨의 웨침소리, 아름드리 소나무가 넘어지는 굉음. 기계톱 엔진의 애처러운 소리가 요란히 울리는 가운데서 그들은 날파람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제일 마감 굵은 토막을 가지우에 짖누르고 살충제를 뿌리면 재빨리 비닐을 덮는다. 지면에는 먼저 삽으로 홈을 파고 비닐이 땅속에 묻혀서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런후에는 밧줄로 비닐우에 망을 쳐서 바람에 뜨지않도록 해야 오케이다.

“한잔 먹구! ---”

 

이 소리는 김영길씨가 수십년 동안 휴식을 알리는 경보라고 덕수가 말해주었는데 오주영의 귀에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듣기였다. 휴식시간이 되였다.

그들이 작업중인 산주봉은 사면 팔방을 내려다 볼 수있었다. 낙동강이 은띠처럼 구불구불 뻗어져 김해 평야를 누비며 남해로 흘러 들어 가고 있었다.

모두 지쳤기에 술을 요구하지 않았다. 우유와 빵 한개씩 먹은후 드릅 따려 내려갔다. 곽씨는 젊은 마누라에게, 덕수와 종수는 로모에게 싱싱한 야생 드릅을 드리고 싶다고 했고, 기타 사람들은 자기가 먹을 반찬감을 챙겨야 한다면서 내려갔다. 오주영은 김영길씨와 아침에 먹다 남은 포천 더덕술을 부어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기, 낙동강이 보이잖아?”

김영길씨가 자호감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굉장히 커보입니다. 강폭이 중국의 송화강만큼 넓어 보이네요.”

“봉곡, 남지 어간에서 남강이 합류되여 흐르니까 여기 하류는 넓을 수밖에. 한국의 강에 대해 내가 간단히 소개할까요?”

“참, 좋은 이야깁니다. 어서 하시지요.”

오늘 같이 화창한 봄날에 진달래 꽃향기를 만끽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뜻깊은지 몰랐다.오주영은 그러잖아도 한국의 하천에 관심이 있었는데 너무 기쁜 일이였다. 그는 포천 더덕술을 김영길씨에게 나머지 몽땅 부어 주면서 이야기를 기다렸다.

“하하하, 오씬 대자연에 무척 관심있어보이는구만. 매일 무료로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구경시켜 드렸으니 그값을 톡톡히 받아야 하겠군.”

두사람은 호탕하게 웃었다. 김영길씨는 이야기를 간단히 함축하였다.

“한국(한반도)의 강은 총길이가 4백 킬로메터 이상이 6개인데. 강의 길이는 주류와 잔류, 수원까지 합친 것이라네. 압록강이 790km 이니 제일 크고 낙동강이 525km 이니까 두번째로 큰강이오. 두만강이 521km, 한강이 514km, 대동강이 439km이며, 금강이 401km이니까 여섯번째로 꼽히지요.”

“기억력이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낙동강은 순위가 두번째군요.”

“그럼. 한반도에서 차남(次男)이라구 봐야지. 6.25 전쟁때는 낙동강이 제일 큰 강 역할을 했지요. 수개월 동안 핏물이 흘러 넘치는 곤혹을 치렀으니까!”

김영길씨의 이야기는 오주영이 거제도에서 신현 포로 수용소를 참관하던 기억을 되살렸다. 인민군 15만명, 지원군 2만명, 의용군 3천명이 포로되여 수용하던 곳을 관람시키고 있었다. 숙소, 식사칸, 그리고 포로들이 시위를 할때 사용하던 오성붉은기, 조선 국기, 모택동, 김일성 초상화가 그대로 보존되여 있었다. 전쟁이란 참혹한 것이며 쌍방이 엄청난 사상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광복은 맞았으나 한반도가 쏘,미 두 강대국의 분할로 처참히 동강난걸 알고 있겠지?”

“예.”

“그후 남북은 이데오르기 분쟁으로 몸부림치다가 또 어처구니 없는 동족 참살 전쟁까지 일어났지요. 만약 한국 전쟁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삼팔선을 없앴지도 모르지요.”

 

김영길씨의 이야기는 오주영의 가슴속에 서린 한을 해일처럼 타래쳐올렸다. 일제강점으로 배달민족은 민들레꽃씨처럼 세계 각지로 뿔뿔히 흩어져야만했다. 남부 녀대하여 낯설고 거칠은 만주땅으로 쫓겨가 고생하시던 조부모와 부모님들, 도대체 어데가 고향이고, 어데가 타향인지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우리 세대들, 이 모든 죄악을 누구에게 물어야 한단 말인가?! 김영길씨의 이야기가 거의 끝날무렵 드릅 따려 내려같던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등뒤에서는 곽씨의 컬컬한 노래소리가 들렸다. 산을 오르 내리는데는 젊은이들도 못 따른다는데, 어느결에 남쪽으로 에돌라 드릅 노다지판을 만나 한짐 짊어지고 와있었다. 귀여운 마누라에게 싱싱한 드릅을 안겨줄걸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있었는가 싶었다.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이 날리면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에헤야ㅡ 데헤야ㅡ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ㅡ ……..

 

6.25 동란 시기의 노래였다. 오주영은 이 노래만 들으면 웬지 가슴이 착잡해지군한다. 김영길씨와 금방 민족의 비극을 이야기 하고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한다.

“자, 일어 납시다.”

그둘은 황혼속에 흰띠처럼 구불 구불 흘러가는 낙동강을 멀리 봐라 보면서 곽씨가 신나게 부르는 <처녀뱃사공>노랠 감수하고있었다.

“수일후 여기 작업을 끝내고 영도에 일하려 갈거네. 저 벚꽃 꽃망울이 곧 터질 것같잖아? 영도는 벚꽃 세계라구요”

김영길씨가 큰 버꽃 나무를 가리키면서 눈물겨운 력사를 말해 주었다. 일본은 버꽃을 국화(国花)라구 정하고 사쿠라로 부르고 있지만 기실은 조선땅에서 훔쳐간 것이였다. 이전에는 일본땅에 버꽃 그림자도 없었다. 일제 강점시기 조선의 버꽃이 아름다운 걸 발견하고 대량으로 옮겨갔으며 민부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조선의 모든 버꽃을 도끼와 톱으로 찍어 버렸다. 우리 민족의 철천지 원쑤 일제가 버꽃을 조선 반도에서 씨 말리려고 애를 썼지만 버꽃은 지금 더 름차게 자라고 퍼지고 있지않는가?!

 

하루의 마지막 작업을 개시했다. 휴식을 좀 초과한것같아 모두 열심히 일을 하고있었다.기계톱소리와 함께 고목들이 련이어 쓰러지는데 석양빛에 끝내주게 이뻐 보이는 진달래가 억망이 된다.요즘은 진달래가 만개되여서인지 작업중 마누라 황금희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리고 윤혜진씨의 얼굴도 교체되여 눈앞에 사라질줄 모른다. 참말로 미묘한건 정감의 교류일까? 조선족사 건립 당일 저녁 촌 사무실에서 단한번 있었던 러브가 평생 그의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마냥 가슴을 설레이게한다. 자식 셋을 낳아 키워준 안해 황금희가 보금자리였다면, 윤혜진씨는 유혹의 끈을 칭칭 휘감고 끄당기는 신비의 존재였다. 마누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도 또 옛 애인을 끈질기게 집착하는 무모한짖, 오주영은 자신이 진짜 바보임을 오늘에야 가슴 깊히 느끼고있었다.

김영길씨의 퇴근령이 내렸다. 공구는 모두 풀숲에 감추고 맨 몸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해발 9백메터 금정산 주봉에서부터 여덟 사람은 나래돋힌듯 아래로 달리기 시작는다.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즐거운 하산, 오주영은 이 순간 머나먼 고향을 잠깐 잊고있었다.주봉에서 내려 화사한 진달래꽃밭속에 들어섰다. 마치 물우에 떠서 날아 가는 느낌이였다. 고향을 깜빡했던 오주영의 머리속에는 중국 명나라때의 신화“팔선과해 각현신통 (八仙过海各显神通)”이야기가 떠올랐다. 동쪽 나라 어느 신선의 초청을 받고 산동성 봉래(蓬莱)에서 출발한 여덟 신선은 연석에서 목란꽃을 만끽하고 귀로에 오른다. 그들의 재주를 시기하던 동해 룡왕이 길을 막고 싸움을 걸었다. 여덟 신선은 힘과 지혜를 모아 끝내 룡왕을 격패했다. 길이 열렸고 개선가를 부르게 된 여덟 신선은 저마다 특이한 신통술로 동해를 건너게 되였는데, 하선고(荷仙姑)는 대나무 조리(竹笊)를, 철괴리(铁拐李)는 쇠지팡이(铁杖)를, 려동빈(吕洞宾)은 퉁소(洞箫)를, 한상자(韩湘子)는 꽃바구니(花篮)를, 장과로(张果老)는 종이나귀(纸叠驴)를, 한종리(汉钟离)는 북(鼓)을, 람채화(蓝采和)는 박판(拍板)을, 조국구(曹国舅)는 옥판(玉版)을 사용하면서 동해를 무사히 건넜다.

 

금정산 아래에 거의 도착할무렵 그들은 바위사이로 엇바뀌여 출현하면서 면사포처럼 하얀 안개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여덟 시선이 신통력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장면을 방불케하였다. 오주영이 최선을 다해 달음박질로 내려 왔을때 그들은 벌써 개울에서 세면을 하고 있었다. 산정상에서는 신호 불가능턴 휴대폰이 하산하자 곧 신호가 울린다.

“주영씨, 저의 음성이 알리능겨? ….그래, 나야, 윤혜진…황금희를 절대 곡해마입소. 예.그 사람 잘못 아니라꼬….제발 부탁합니데이…” 옛날 연변 왕청현의 사투린 찾아볼 수 없이 완벽한 부산 방언으로 마누라 황금희를 변호해주려는 윤혜진의 양상이 음파로 전달되여왔다. 주방일이 바쁜지 전화가 끊어졌다. 오주영은 땀에 절인 작업복 입은 그대로 바보처럼 멍하니 안개속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2010년 2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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