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 문학인 소개 1 - 박옥남편]

   송화강 원줄기를 따라 현성과 120리나 상거해있는 벽동툰에도 작년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우리아버지를 비롯한 동네청장년들이 하나둘 해외로무송출대오에 들어 마을을 떠나면서 촌장인 야림이 아버지가 현 전신국과 련락을 달아 주선한 덕분이였다. 마을사람들은 촌장이 이번만은 촌민들을 위해 쓸만한 일 한가지를 해놓았다고 칭찬을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전화가 없을 때 엄마는 120리를 뻐스를 타고 현 우정국에 가야 아버지의 전화를 받을수 있었지만 지금은 간벽을 사이둔 이웃인 야림이네 집에 건너만가면 곧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게 되였으니 말이다.
   대구시인가 하는데에서 일을 한다는 아버지는 첫 두달은 전화도 자주 오고 돈도 3천원씩 두번 부쳐왔다. 치약을 비롯한 생활필수품을 회사에서 다 배분해주기에 자신은 돈이 필요없다며, 그래서 월급을 한푼도 다치지 않고 그대로 부친다고 했다. 3년후면 떠날 때 저당잡힌 외삼촌네벽돌집 집조와 그동안 간간이 빌려 쓴 빚을 다 돌려주고도 얼마간의 목돈도 벌어갈수 있을거란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보내오군 했다.
   아버지한테서 처음 돈이 왔을 때 나는 엄마에게 그 돈으로 색텔레비죤을 사자고 했다가 퉁을 맞았다. 살림살이에 물샐틈없기로 소문난 엄마가 서뿔리 그 돈을 깨여쓸리가 없었다. 두번째로 돈이 왔을 때 나는 우리도 남들처럼 전화를 놓자고 했다가 역시 거절을 당했다. 엄마는 내 운동화 한컬레를 산후 나머지는 몽땅 야림이네 빚을 갚는데 넣어버렸다. 아버지가 길을 떠날 때 로비로 꾼 돈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14인치 흑백텔레비죤을 보고있고, 전화도 옆집인 야림이네 집에 가서받아야 했다.
   야림이네는 25인치 칼라텔레비죤도 있고 전화도 마을에서 맨 코치로 놓았다. 요즘은 또 마을 네거리에다 2층으로 된 새 기와집까지 짓는다고 한족청부업자들이 풀방구리에 쥐드나들듯 들락거리고있었다.
  《진수옴매 있내? 날래 와서 전화받으라우. 진수아바지래 전화왔어야. 도카꾸나야.》 야림이 엄마는 우리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올 때마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우리 집쪽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면 우리 엄마는《네.》하고 끌신을 찰찰 끌며 부리나케 야림이네 집으로 건너간다. 엄마에게 있어서 아버지한테서 오는 전화는 삶의 활력소이고 생의 희망이고 인생의 전부인것 같았다.
   그런데 첫몇번은 그런데로 전화심부름에 열성을 보이던 야림이 엄마가 그후론 그게 대단히 귀찮은 모양,
   《이보라우, 전화받으라우야.》하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몽종하게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그것보다 더 줄여서 단마디로《전화!》하고 고함을 지르기가 일쑤다.
   그것이 너무 페가 된다싶어서 부름을 받는 즉시로 엄마는 설겆이를 하던 손이면 물 묻은 손 그대로, 터밭에서 기음을 메던 손이면 흙 묻은 손 그대로 달려가며 송구스러워 연신 허리를 갑삭거렸다.
   아버지는 돈을 더많이 벌려고 친구따라 서울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보내온 이후로 이상하게도 전화가 뜸해졌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자리를 찾았다고 하면서도 돈은 그이상 더 부쳐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요즘 그때문에 잔뜩 화가 나있었다. 어제저녁도 나와 엄마는 이웃집에서 전화벨소리가 울려나올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기하고있었지만 야림이 엄마의    《전화받으라우야.》하는 소리는 끝내 듣지 못한채 나는 꼴깍 잠이 들어버렸다.
   엄마의 얼굴은 오늘아침까지 굳어있었다 .
  《오늘 기말시험을 치른다고 핸?》
   엄마가 아침밥상을 봐가지고 구들로 올라오며 묻는 말이였다. 엄마가 나의 공부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것은 아주 오래간만의 일이였다. 엄마는 요즘 아버지의 소식말고는 다른 일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있었던것이다. 개학날 돈을 타갈 때도《엄마, 돈.》하고 손을 내밀었더니
  《요즘애들은 공부 좀 하는게 왜 이리두 돈이 든대냐? 우리네쩍엔 단돈 5원이면 한학기를 버텼구만. 돈을 밑으로 펑펑 나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돈벌러 나갔단놈은 살았는지 뒤졌는지 강원도 포수매로 소식도 없고. 내가 이러다간 미치고 환장하겠구나야!》
  그러면서 나를 째려보았던 엄마다. 아버지한테서 돈이 오지 않는것이 마치 그 피를 이어받은 나때문이기라도 한듯말이다. 남편이 미우니 그 새끼도 고운데 없는지 엄마는 아버지때문에 받는 열화를 요즘 나에게 풀고있었다.
  《이 집 샥시 집에 있남?》
뒤집에 사는 칠성이 할머니가 정주문을 따고 들어오며 이빠진 소리로 기척을 보냈다.
  《날래 들어오시라요.》
   엄마는 밥상을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응답를 했다.
  《상구 아침밥상이가? 이 집 장국내미 한번 도쿠나야. 집구석이 폐난하문 장맛도 좋다구 했지와? 진수아바지래 돈 많이 벌구있는갑구나. 긴데 갱아지도 부지런한 갱아지가 더운 똥 얻어먹는다구 했갔다, 논머리 장콩밭이레 범이 새끼치게 생겼더라우야. 오늘낼루 손을 좀 봐야 쓰갔더라. 안기랬다간 싸콩도 몬건져야. 요즘 진수옴매두 기놈의 화투판에 낄쑥끽쑥하는것 같더라만 그따우데 신경쓰믄 집안 조지구 돈만 날리디. 깡마른 촌구벅에 사는 꼴목사니들에 장독이래두 두둑허야디 된장또가리마저 없음 겨우내 뭘 먹구 살간? 비맞은 낭구도      해발 좋은 오늘 같은 날에 툭툭 흩어만 놓으믄 한겻에 다 마르갔구만.》
몸도 정신도 80난 로인같지 않게 짱짱한편인 칠성이 할머니는 동네안 뉘집 살림살이든 삐치지 않는 곳이 없어 동네 아낙네들이 얼마쯤 미워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 존재였다.
   철따라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동네 아낙네들에게 살림살이에 관한 지휘도 잘했고 꾸지람도 아끼지 않았으며 바쁜 일손을 돕기도 잘하는 칠성이 할머니는 소나기 퍼붓듯 잔소리를 한줄금 쏟아놓고는 이쪽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삽작문을 나서고있었다. 다른때 같으면    《네네.》 하며 마당끝까지 배웅을 했을법한 엄마가 오늘은 만사가 귀찮은지 심드렁하니 장국에만 밥을 맛없이 입안에 뚜벅뚜벅 떠넣고있을뿐이다.
   마을 네거리엔 이웃 동네인 따린즈에서 출발해 현성으로 가는 봉고차가 벌써 와 대기하고있었다. 지나는 길녘도 아니고 공로에서 2킬로쯤 들어와앉은 벽동촌이였으나 유별나게 출장이 잦은 이 조선족동네를 한족기사아저씨는 코스를 돌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꼭꼭 들러주었다. 그래서 편리하긴 했지만 그대신 차비는 2원을 더 얹어 받았다.
   출장차림의 야림이 엄마가 대문에 열쇠를 잠그며 나를 보고 소리쳤다.
  《우리 야림이 보거던 나 개성갔다구 알려다우.》
   굽높은 구두를 신은 발이 불편한지 별스레 뒤뚱거리는 야림이 엄마의 엉덩이가 오늘따라 더 커보였다. 언제 보나 맵시는 갓 뜯어온 군밤둥우리같았지만 현성백화상점을 통째로 들어왔는지 옷가지는 벌벌이 볼 때마다 다른것이다. 동네치고 야림이 엄마만큼 현성출입이 잦은 녀인네도 드물었다. 나들이를 자주 할뿐만아니라 사들이는 물건도 많았다. 거금을 들여 남못가는 일본으로 류학까지 보낸 아들이 작년가을까지 학업이 끝나서 요즘은 처음 같지 않게 돈도 척척 잘 벌어 부쳐온다고 자랑을 널고 다니지만 내막을 좀 아는 사람들은 남아도는 촌의 토지사용권을 람용하는 촌장이 남몰래 벌어다주는 돈을 렴치없이 마구 써대는 녀편네라고들 뒤에서 쑥덕거렸다. 남편이 촌의 권위겠다, 아들이 돈을 잘벌겠다, 엄마말마따나 못생긴 녀인이 복은 억수로 많았다. 사철 논밭일은 야림이 아버지가 일군을 대여쓰다보니 자기 집 논밭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를만큼 야림이 엄마의 팔자는 싸리나무밑의 개팔자처럼 편했다.
   봉고차를 타는 사람들은 야림이 엄마외에도 태식이와 덕산이, 그리고 동네아낙네 몇이 더 있었다.
  《태식이 이놈아야, 니는 쌉쌀개매로 어디로 맨날 이렇게 싸다니노?》
   덕산이가 태식이의 뒤통수를 한대 쥐여박으며 뇌까리는 말이였다.
  《내가 요즘 챈쩡(비자내다) 맞으러 다닌다아이가,챈쩡.》
  《또 그놈의 챈쩡타령이가? 인제 입에서 신물도 안나나?》
  《쳇, 그기 그케 쉽게 터지모 이 벽동바닥에 코박고있을놈 하나도 없다마.하긴 야림이 엄마는 등 떠밀어도 안가겠지만도. 돈 잘 벌어들이는 아들 있겠다, 남한테 주기 아까운 남편 있겠다. 안기래예? 》
  《하모, 이제 벽돌집도 고래등같이 덩실하니 짓고 가긴어데로 가겠노? 넘들은 이 마을 다 떠나도 야림이네만은 이 벽동바닥에 앙이 나도록 살아야하겠심더. 그치요?》
   봉고차는 그렇게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주어담고 마을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학교마당엔 웬 뜨락또르가 들이닥쳐 부르릉거리고있었다. 기름이 게발린 작업복을 입은 낯선 기사가 뜨락또르 뒤쪽에 달린 쌍줄보습날을 점검하고있었다. 때아닌 때에 들이닥친 뜨락또르는 여기가 조용한 학교운동장이란것도 망각한듯 시름없이 듣그러운 엔진소리를 마음껏 지르고있었다.
   교실엔 학생들이 벌써 다 와있었다. 다 왔다고해야 일곱명, 이것이 벽동소학교의 전체 재교생수다. 1학년생은 하나도 없고 2학년학생이 하나, 3학년학생이 나까지 해서 둘, 4학년학생이 둘, 그리고 5학년학생이 하나, 6학년생이 하나, 그게 전부였다.작년까지만 해도 학생이 열두명이 있었지만 부모들을 따라 큰 도시로 전학해간 학생도 있고 부모들이 외국으로 돈벌러 떠나면서 이모집으로, 큰아버지댁으로 맡겨져 외지학교로 가버리는 학생이 비일비재 생겨나 이젠 일곱명밖에 남지 않았던것이다. 게다가 개학초기 한어과를 맡았던 총각선생마저 싸이판인가 하는데로 돈벌이를 떠나다나니 우린 학급이 다르고 수업받는 내용이달랐지만     이렇게 한교실에 모여 수업을 보고있었다.
   시험칠 준비로 번잡스러울줄로만 믿었던 교실안은 의외로 호젓했다. 내가 제자리를 찾아앉기를 기다려 담임선생님은 시험과는 관계가 없는, 음악시간에만 열던 낡은 발풍금 뚜껑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그러는 선생님의 얼굴은 오늘 아침 우리 엄마의 얼굴만큼이나 굳어있었다. 우리 아버지의 담임선생님으로도 지내셨다는 선생님은 교장선생님과 부부간으로 20여년을 이 마을학교에서 쭉 교편을 잡고있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한나도 없었다. 아기를 낳지 않은게 아니라 낳을줄 모른다고들 했다. 선생님의 손끝에서 우리가 다 아는 곡이 흘러나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학기초 싸이판으로 총각선생님을 떠나보내놓고 담임선생께서 배워준 노래였다. 우리는 무언중 같이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보니 칠성이는 종이비행기를 접어 앞에 앉은 야림이의 머리우에 얹어놓고 시물거리고있었다. 언제 보나 지꿎고 얄미운놈이였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내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선생님은 드디여 건반에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학생동무들, 오늘은 동무들이 이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받는 수업시간입니다. 우리 벽동소학교가 그 력사적사명을 드디여 끝내는 날이 되였습니다. 다음학기부터 동무들은 현성소학교에 편입되여가 공부하게 됩니다.》
  《우-》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상야릇한 소리를 냈다. 전같으면 버릇이 없는 소행이라고 막 야단을 쳤을 선생님이 오늘은 한마디 꾸중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시험을 보지 않고 우리 벽동소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요.》
   이야기라는 말에 모두가 금방과 달리 반짝 좋아하는 눈빛을 냈다. 이야기라면 나부터도 도시락을 쌀만큼 굶주려있는 시골학생들이였던것이다.
  《우리 벽동소학교는 평안북도 벽동이란 곳에서 살다온 여덟가구의 집단이주민들이 세운 마을입니다. 그래서 마을이름이 처음엔 <팔가자>로 불리우기도 했지요. 벌이 너르고 마를줄 모르는 송화강이 곁에 있어서 벼농사에 안성맞춤한 자리라고 여겼기때문에 마을의 원로분들이 여기에다 보짐을 풀었던것입니다. 생각과 같이 논농사도 잘되였고 특히나 송화강에서 자연번식하는 물고기들이 흔해서 논꼬에 비끄러맨 발채마다엔 크고작은 물고기가 넘쳐났다고해요. 농부들은 아침마다 그 물고기들을 거두어 집집에 한대야씩 돌리는게 큰 골치거리일 정도였댔답니다.》
   여적 보도듣도 못한 천방야담같은 태고연한 소리에 아이들은 입을 하 벌리고 선생님의 입만 쳐다보았다.
  《1954년에 마을에 소학교가 설립되였는데 그때부터 마을이름도 <벽동>으로 불리웠고 6 명의 학생에 두분의 교사가 계셨답니다. 비록 교통은 말할것없이 불편했지만 논농사가 기막히게 잘되고 물고기가 흔하다는 소문이 퍼져서 이주민들이 쓸어들기 시작했는데 70년대초반에 이르러 마을의 주민호수는 100가구를 넘겼고 학생수도 190명이나 되였다고 합니다. 교사분도 두분에서 열한분으로 불어났구요. 이게 바로 그때 찍은 전교사생집체사진이랍니다.》
   선생님은 마분지로 만든 갈색 봉투안에서 색이 바랜 16절지 크기의 흑백사진 한장을 조심스레 꺼냈다. 4간초가교사를 배경으로 하고 찍은 실외사진이였는데 주위의 나무가지가 앙상한걸로 보아 초봄이 아니면 늦가을인듯싶었다. 190명 학생을 렌즈안에 다 담으려고 얼마나 죄여앉혔는지 어떤 학생들은 얼굴만 빠끔 빌려주고 몸뚱이 전체가 옆의 아이들에게 푹 묻혀있었다. 푹 퍼진 솜신을 신고있는 애, 개털모자를 이마빡까지 내려쓴 애, 예쁘게 나오려고 인상을 쓴 애, 사진속의 아이들의 모습은 가관이였다.
   《비록 70년대가 동란의 년대이긴 했었지만 우리 벽동소학교는 전에없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학생들마다 스케트를 잘 탓는데 제3회, 제4회 현스케트운동대회를 우리 벽동소학교운동장에서 개최하는 영광도 있었답니다. 그리고 이것은 <6.1아동절>을 맞아 향내 유일한 조선족학교의 신분으로 학생운동대회에 참가하여 받은 영예증서들이랍니다. 무려 40여장이나 되지요. 그때 학생들은 향운동대회에 나가면 경기종목마다 맡아놓고 1등을 해서 이웃 한족학교 학생들의 시샘을 자아내군 했답니다. 》
    선생님의 얼굴은 상기되여있었고 목소리는 흥분에 젖어 떨고있는듯했다.     《이무렵은 학생수가 급속히 불어나서 이 4간초가집에서 다 같이 수업을 할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급학년이 오전수업을 보고 고급학년은 기다렸다가 오후수업을 보아야하는 형편에까지 이르렀답니다. 그래서 마을분들은 가가호호 돈을 내여 지금의 이 교실청사를 짓기로 했답니다. 마을치고는 맨 처음으로 지은 기와집이였어요 .이 풍금도 그때 산것이랍니다. 이젠 고물이 되여 소리도 잘 어울어지지 않지만… 그때 이 집을 짓고 사람들은 기뻐서 하루종일 마을잔치를 벌렸댔답니다.》
   선생님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 서려있었다.
  《그런데 그후론 학생수가 더 붇지 않았어요. 오히려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답니다. 나라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해서부터였답니다. 》
  《선생님,<산아제한>이란건 무엇이지요?》
2학년생인 차옥이가 선생님의 말씀을 중동무이하고 질문을 내놓았다.
  《그건말이죠, 매 집에서 아이 하나만 기르기를 제창하는 제도였죠. 인구가 너무 많은것이 사회경제를 발전시키는데 방해가 된다고 나라에서 내린 국책이였답니다. 그땐 아이를 많이 낳으면 벌금을 안기기도 했는데 한집에서 얻는 일년수입만큼이나 벌금액이 많았어요. 그래서 누구나 무서워서 아기를 더 낳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아기를 많이 낳지 못하게 동네어머니들을 집단으로 병원에 데리고가 단산수술을 받게 하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동네엔 아기들이 많이 태여나지 못했답니다.》
   나는 우리 외가집 숙모가 딸아이만 줄줄이 셋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고 닥달하는 외할아버지의 고집에 못이겨 아들을 낳으려고 딸아이를 둘씩이나 자식 없는 한족집에 주어버린 과거가 있다는 이야기를 엄마한테서 들은적이 있었다. 그땐 어딘가 애석하기도 했고 분개하기도 했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외숙모의 행위가 얼마간 리해가 되는것 같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도 그 수술을 받았나요? 저에겐 동생이 하나도 없거든요.》
차옥이가 또 종알거렸다.
   《안야요, 동무네 어머니들은 그 수술을 받지 않았어요. 차옥이 어머니세대들은 하나만 낳아서 많이 배려하며 키우려고 자원적으로 아기를 더 낳지 않은것뿐이랍니다. 》
   나는 나에게 형도 동생도 없는게 우리 엄마가 역시 나를 배려해서였을가, 동생이 있었으면 나하고 같이 놀아도 주고 형이 있었으면 나의 뒤심이 되여 나를 업신여기려는 눈치가 있는 저 칠성이놈에게 겁도 놔주고 했을수도 있지 않는가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번창했던 벽동소학교가 오늘은 그 막을 내리게 되는군요. 아쉽게도 동무들은 이렇듯 유서깊은 벽동소학교의 마지막급 학생들이 되였습니다. 동무네도 서운하겠지만 선생님의 마음은 형언할수 없을만큼 슬프답니다. 래일부터 이곳은 더는 학교가 아니고 저 운동장도 더는 우리들이 뽈을 찰수 있는 운동장이 아니예요. 래일부터 이곳은 이웃 한족동네의 양들이 잠을 자는 양우리가 될것이고 저 운동장엔 양들이 먹을 사료용 풀이 무성하게 자라날것입니다. 이 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동무네는 경기툰과 쌍하촌에서 올라오는 학생들과 함께 한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된답니다.》
    교실안은 물뿌린듯 잠누룩해졌다.
   《거기엔 차가 붐비고 행인도 많아서 지금처럼 아무데나 쏘다녀서는 안되여요. 그리고 처음으로 하는 기숙사생활이기에 친구들과 다투지도 말고 잘 어울려야 합니다. 춥거나 아프거나 할 때는 서로 배려하는 법도 배워야 하구요. 집을 떠나면 한마을에 살던 친구들이 바로 친형제인것이랍니다. 》
   선생님은 마치 먼길을 떠나는 자식을 타이르듯 오밀조밀 부탁도 많았다.
   나는 선생님의 두눈에 물기가 번지는것을 보아낼수 있었다. 어디선가 코물을 자꾸 들이키는 소리가 듣그럽게 들려왔다. 맨 뒤줄에 앉은 6학년학급의 녀학생이 울고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홍역처럼 옆의 애들에게로 옮겨져 크지 않은 교실안에 슬픔을 그들먹 채워놓았다.
나는 나의 코마루도 문뜩 찡해나는 느낌이 들었다. 눈굽 어느쪽에선가 물기가 스물스물 배여나와 눈확을 꽉 채웠다. 눈까풀을 조금만 깜박여도 그 물기가 눈확을 촬랑 넘어서며 부서진 구슬알처럼 아래로 주르륵 떨어질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떨구지 않으려고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뒤로 젖혀올렸다.
    얼결에 창밖이 내다보였다. 기름때가 찌든 작업복을 입은 기사아저씨가 뜨락또르엔진실로 들어가더니 핸들을 잡은 손을 한껏 가슴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뜨락또르의 육중한 기체가 저돌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하며 뒤에 매달린 보습날을 끌었다. 보습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지며 딴딴하고 반듯하던 운동장을 발기발기 찢어놓기 시작했다. 습기가 다분한 검은 흙이 굴뱀처럼 꿈틀꿈틀 뒤집혀올랐다가 이랑을 지으며 고스란히 옆으로 나누웠다.
하학종이 울렸다.
    여느때없이 처량하게 울렸다.
    그리고 여느때보다 갑절 길게 이어졌다.
    다른날 같으면 벌써《우야-》하고 교실문을 박지르고 밖으로 줄달음쳤을 학생들이 긴 종소리가 다 끝나도록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일어서질 않았다.
선생님은 손수건을 꺼내여 부지런히 눈가를 문질렀다.
    그리고 하학을 선포했다.
   《이 시간 이만… 돌아들 가시오.》
   바깥에선 뜨락또르가 신나게 운동장을 누비고있었고 낯선 사나이 몇이 포족한듯한 웃음을 띄우고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있었다.
   교장선생님은 교무실안의 짐을 꿍지느라 여념이 없어 우리가 열린 창너머로 들여다보는줄도 모르고계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발부리에 바위돌이라도 처맨듯 무겁기만했다. 평소에 그렇게 지꿎기만하던 칠성이녀석도 오늘만은 그럴 기분이 안나는지 머리를 수긋하고 내뒤를 따라 터벅터벅 걷기만 할뿐 그 어떤 지꿎은 장난을 개시할 눈치가 통 보이지 않았다. 그뒤로 눈가가 벌겋게 익은 야림이가 아직도 그 기분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눈가를 찔끔찔끔 문지르며 따라오고있었다.
    나는 오늘이 마치 동네집에 초상난 날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동네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던 날도 우린 이렇게 침울하진 않았었다. 애도곡을 울리며 떠나가는 령구차를 그저 먼발치에 서서 입을 다물고 구경만 했었지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마을안은 생명이 있는것은 일시에 모짝 떠나가버린듯 별스레 조용했다. 조용하다못해 스산하기까지 했다.《광났다,광!》 하며 짝짜그르 떠들어대던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마저도 오늘은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문에 자물쇠도 잠그지 않은채 어디론가 가버려 방안은 호젓하고 괴괴했다. 파리 몇마리가 가마목에 앉아있다가 놀라 윙하고 자리를 떠버렸다. 가방을 벗어 구들목에 던진후 텔레비죤을 켤가고도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방안에 그대로 죽치고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창문을 꽁꽁 걷어닫은 탓인지 가슴이 답답해났다.
    마당끝에 있는 고간에 들어가 낡은 모기장을 뜯어만든 반두를 끄집어냈다. 이런 땐 시원한 물가에 가서 노는게 최상일것 같았다.
   야림이가 마당끝에 앉아있었다. 열쇠가 없어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것 같진 않았다. 아직도 무거운 그 기분에서 헤여나오지 못하는것 같았다.
   《느거 엄마 개성간다구 했어.》
   나는 그제야 야림이 엄마의 부탁이 생각났다.
야림이는 대답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삽작문을 나서자 뒤에서 불렀다.
  《니 어데 가?》
   아직도 코맹맹이소리가 다분했다.
  《미꾸라지 건지레. 왜? 너두 갈래?》
   야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스적스적 따라나섰다.
 
   들은 좋았다. 풀색도료를 엎지른것처럼 들판은 어디라없이 푸른색천지였다. 마을안도 그랬지만 들판도 사람그림자 하나 찾아볼수 없이 고즈넉했다. 만도리가 끝난 벼논은 바야흐로 이삭을 잉태하며 검푸르게 짙어가고있었다. 어디선가 가끔 뻐꾸기 울음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왔고 이름모를 풀벌레들이 풀숲을 소요를 떨고있었다.
   논틀밭틀을 가로세로 지르며 가끔 뒤를 돌아다보니 야림이가 그냥 그대로 곱다라니 따라오고있었다. 미꾸라지가 있음직한 곳을 나는 알고있었다. 2년전 모내기를 하는 엄마와 아버지에게 물심부름을 나갔다가 논머리에 있는 체수에 빠진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작은 자연늪이였다. 그때 거기엔 미꾸라지가 바가지로 퍼낼수 있을만큼 박신거리고있었다.
   멀리 논밭 한가운데 있는 풀막이 보였다. 우리 아버지가 손수 지어놓은 A자형 풀막이였다. 떼장을 떠다 기초를 쌓고 가둑나무가지로 지붕을 서린 풀막은 네사람이 편히 누울수 있을만큼 그안이 꽤 넓었다. 일을 하다 비를 피하는 요긴한 장소이기도 했고 모내기때나 벼가을철엔 싸간 찬밥을 먹고 잠시 허리를 펴는 유일한 휴식장소이기도 했다. 마른풀을 두툼히 깔고 비닐장판지까지 펴놓아 제법 아늑하기까지 했었는데… 그러나 아버지가 돈벌이를 떠나고 이웃마을 왕가가 우리 집 논밭을 양도받아가면서 풀막도 왕가의 소유가 되여버렸다.
   논머리의 물웅뎅이는 그대로였다. 바지가랭이를 걷어붙이고 물 복판에 들어가 두손에 반두채를 나누어들고 둬번 물속을 휘휘 내둘렀다. 2년전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이 반두로 여기서 미꾸라지를 잡았던것이다. 그대로 흉내를 내본것뿐인데 과연 새끼손가락만큼한 미꾸라지가 세마리나 걸려나왔다.
  《있다, 있어!》
  나는 뚝가에 멀거니 서있는 야림이를 향해 환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증말? 얼마나 커? 나 좀 보자!》
   야림이는 방금과 달리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바르고 뚝 아래로 천방지축 달려내려왔다. 반두그물속에 든 세마리의 미꾸라지를 확인한 야림이는 손벽까지 짝짝 쳐댔다.
  《더 해봐, 빨리 더 건져봐!》
   송화강물을 먹고 서식하던 우리 할아버지때의 그 고기들의 후손이 틀림없으렷다. 물줄기를 따라 논고며 개울이며 늪이며에 그 서식처를 옮기던 족속들이 이 좁은 웅뎅이 생활환경에도 적응을 할수 있는 놈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놈들은 그 씨가 말라버렸는가보다.
로획물은 기대했던것보다 많았다. 그물속에 든 놈들을 옮겨담고 좀 더 깊은 곳을 훑어보고싶었다.
  《이걸 어디 담을데 없남?》
   내가 담을 그릇을 찾아헤매자 야림이가 자기의 치마폭을 벌렸다. 그바람에 분홍색 빤쯔가 로출되여 내 눈을 자극했다. 그런데도 야림이는 서두르기만 했다.
  《안야, 저기 풀막안에 가봐. 거기에 밥그릇을 싸왔던 비닐봉지라도 있을지 몰라.》
  《알았어, 내 얼른 갔다올께.》
   야림이는 허둥지둥 풀막쪽으로 뛰여갔다.
   미꾸라지 몇마리를 포획한것이 이처럼 흥분되는 일일진대 팔딱시같은 고기들이 발채마다 꼴똑꼴똑 넘쳤다는 그때는 얼마나 거늑하였을가? 우리 아버지도 언젠가 그렇게 말했다. 벼가 익어 논물을 뺄무렵이면 시꺼먼 메기따위들이 꼬리로 벼대를 마구 갈겨대서 개구장이들이 그 소리를 찾아 벼밭을 마구 무질러놓아 어른들한테 볼기짝을 숱해 얻어맞았다고 했다.
  《야림아! 야림아!》
   홀연 풀막쪽에서 야림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고보니 얼굴이 파리하게 굳어버린 야림이가 초경길을 따라 마을쪽으로 냅다 뛰여가고있었다. 그 서슬에 놀란 개구리들이 풀쩍풀쩍 논밭속으로 내리꼰졌다. 야림이의 하늘색치마꼬리가 기발처럼 휘날렸다.
   나는 반두를 든채 뚝우로 기여올라갔다. 낯색이 지지벌개진 야림이 아버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채 내곁을 총총 스쳐지나갔다. 별로 찌물쿠는 날씨도 아닌데 런닝그바람인 야림이 아버지의 이마머리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혀있었다.
   반두를 든 손으로 풀막으로 들어가보니 이상하게도 엄마가 거기에 있었다. 오늘따라 볶은 머리가 애푸수수해보였고 발목을 조인 통 넓은 바지를 입은 옷매무시가 어수선했다.
  《엄마!》
   내가 그렇게 불러도 엄마는 나와 눈길을 부딪치려 하지 않고 두손으로 애매한 머리만 이리저리 우비고있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막안은 예전보다 스산했고 구질구질했다. 습기때문인지 발구린내같은 퀴퀴한 냄새가 감돌았다. 엄마는 움쭉 일어나 문어구에 놓아두었던 손호미를 챙겨들고 풀막을 나섰다. 칠성이할머니의 꾸중을 듣고 마음먹고 콩밭기음을 매던중이였는가보다.
 
   다른 집들에서 저녁을 한창 쓰고있을무렵. 야림이엄마가 꺼멓게 일그러진 얼굴을 해갖고 우리 집 정주에 벌컥 들어섰다. 자발없는편인 녀인인줄은 알고있었으나 오늘은 례사가 아닌듯싶었다. 분기가 태중한것이 곧 떠박질이라도 할것 같은 성난 황소상이였다. 점심을 대충 끝내고 오후내내 나와는 마주보기도 싫은양 벽쪽을 향해 누워만 있던 엄마는 그때야 늦은 저녁을 짓고있었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문가에 두었던 뜨물통이 야림이 엄마의 발길에 날려 저만치에서 나뒹굴었다. 뒤이어 부엌에서 쓰는 쪽걸상이 엄마의 면전을 향해 날아갔다. 엄마는 얼굴을 싸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양재기며 사발 따위의 식기가 정주칸바닥에 패댕이쳐졌다. 이남박의 쌀이 사방으로 튕겨나갔고 미꾸라지가 담긴 초롱이 엎질러지며 쏟겨져나온 미꾸라지들이 락엽처럼 발밑에서 나뒹굴었다.
  《언제부터가?! 언제부터 배가 맞아돌았내?! 쌍간나이새끼들, 먼곳에 냄편 일하래들 보내놓구 기래두 되는거내?! 뒤딜 간나이새끼들,환장들을 했구나야, 기것두 시퍼런 대낮에 애새끼들한테 좋은 꼴목싸니들을 뵈서 도칵꾸나야. 얌전한 갱아지가 부뚜막우에 올라가 똥싼다구 했디? 네년이 바로 기렇쿠나야. 한 용마루를 쓰구 사는 처지에 이런 식으루 날 놀려두 되는거내? 내래 언제부터 눈친 좀 챘다만 기래두 설마설마했디 뭐간?! 아무리 목이 마르기로서니 날 이렇게 우습게 여기믄 안되디, 그티?! 긴데, 이렇게 내 골통을 뒤쪽에서 쎄리다니, 네년이 내손에 뒤디고싶어 기랬디? 기래슬라므니 발광들을 했디?! 그티?!》
   야림이 엄마는 미꾸라지가 토해낸 분비물같은 걸쭉한 거품을 량쪽 입가로 구질구질 내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림이가 건너와 자기 엄마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것 노으라우 ! 내 오늘 저깐년들을 다 무질러버려야갔어! 》
야림이엄마는 또 한번 엄마에게로 육박해가 이번엔 두손으로 엄마의 머리끄댕일 덥석 잡았다.
  《아갸갸!》
   엄마가 비명같은 소리를 터뜨렸다.
   이런땐 어떻게 해야 하는걸가? 나는 더 생각할새 없이 패댕이쳐진 양재기따위들을 집어들고 야림이 엄마에게로 던졌다. 그리고 소리쳤다.
  《물러가! 물러가란 말이야!》
   야림이도 울며 자기 엄마의 옷자락을 한사코 당겼다. 앞집의 귀머거리할매까지 알고 올만큼 동네사람들이 다 알고 마당으로 모여와 수근거렸다. 그렇게 법석을 떨어도 야림이 아버지만은 코끝도 뵈지 않는게 이상했다.
   야림이 엄마는 얼마를 더 그렇게 기승을 부리다가 동네아낙네들에게 끌리워 자기 집으로 건너갔다.
   살천스럽기만 하던 야림이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자 체통에 걸맞지 않게 이번엔 서럽게 서럽게 펑펑 울어댔다. 울면서 하는 주담같은 사설이 간벽을 사이두고 간간이 들려왔다.
  《넘들은 나를 두덩우에 누운 소팔자라고 허지만 내 팔자가 뒤웅박팔자구나야. 내래 넘들 안썩이는 속을 요렇게 썩고있는줄을 동네선 알가 모르겠네. 이건 동네 씨퇘지도 아니고 절구통이래도 치마만 둘렀다 하면 죄다 걸쳐보는구나야, 기래두 내래 챙피해서 입 다물고있는줄은 모르고 난 그저 집지키는 된장독인줄로만 알디…엉엉… 집구석에 돈 좀 있는거 동네 밑파는 년들 치마밑에 다 밀어넣고 기래두 일촌지장이랍시구 꼬둘락거리고 다니는 꼴상판이야.내래 분해서 살간? 분해서 살갔나 말이야?!》

   자정이 되여서야 야림이 엄마의 푸념같은 넋두리는 드디여 끝이 나고 사위는 괴괴해졌다. 엄마는 밤새 큰 숨소리 한번 내지 않고 아래목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물을수도 없었고 묻기도 싫었다. 낮에 풀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금 알것 같기도 했다.
   정주간 흙봉당에서 흙을 고물처럼 뒤집어바른 미꾸라지들이 뒤척이며 내는 소리만 없다면 집안이 꼭 무덤속같다고 생각했다. 무덤안이 바로 이럴것이리라. 소리도 없고 빛도 없고 희망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시체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것 말이다.
   문뜩 아래목에 누워있는 엄마가 시체같이 느껴졌다. 어쩜 저렇게 미동도 하지 않고 장밤 누워있을수가 있을가? 이제 날이 밝으면 야림이 얼굴을 어떻게 대할가? 알은체를 해야 하나 모른체를 해야 하나? 아버지의 전화를 이제 어디 가서 받아야 하나? 나에겐 그것이 제일 큰 걱정이였다. 저녁을 먹지 않아서인지 시장기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저녁을 짓지 않은 부엌엔 먹을만한게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그렇게 궁싯거리다가 흐리마리하게 잠이 든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밖은 날이 활짝 밝아있었다. 카텐도 치지 않은 탓에 뒤창으로 해살이 뻗쳐들어 방안은 명랑했다. 아래목을 내다보니 엄마는 없고 베고누웠던 베개만 덩그러니 엎드려있었다. 여느때같으면 밥짓는 냄새가 몰몰 풍겼을 정주가 굿해먹은 집처럼 스산하고 조용했다.
    끌신을 꿰고 막 밖으로 나가려는 때 엄마가 들어왔다. 왼쪽 눈언저리가 썩은 과일처럼 시퍼렇게 터져있었다. 그뒤로 때아닌 식전에 왕가가 따라들어왔다. 왕가네 집에 가서 왕가를 데려온것 같았다.
  《입는 옷가지만 빼고 가장집물을 몽땅 남길테니까 알아서 보라니깐.》
데리고 오면서 먼저 무슨 얘기가 있었댔는지 엄마의 말을 왕가는 듣는지 마는지 집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또 바깥으로 나가 지붕을 올려다보고 그러기를 한참하더니 식지와 중지 두손가락을 펴들었다.
  《2천이요.》
  《콩밭은?》
   엄마가 물었다.
  《꿰서 그렇지.》
  《콩밭꺼정 해서 2천이라구?》
  《그까짓 솥뚜껑만한 콩밭이 뭐가 값 간다구?》
  《그래두 2천은 너무 애하다니까.》
  《싫으면 고만두슈. 난 바쁜게 하나두 없슈.》
  《썩어질새끼.》
  《에- 욕하지 마슈. 사달라고 조른건 아주머니니까.》
   왕가는 다른것은 못알아들어도 욕하는것만은 심통히도 잘 알아듣는 한족이였다. 말끝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며 게여올려서 붙임성이 무척 좋아보이기도 하고 비굴하기까지 해보이더니 관건적인 시각엔 매몰찬데가 있었다. 매를 꿩으로 본것 같았다.
   엄마가 큰 결심이라도 내린듯 모두숨을 내쉬며 수락을 했다.
  《좋아.》
  《그럼 그렇지, 기실은 나두 매일 논일하러 다니기가 좀 불편해서 사는것뿐이지, 이까짓 초가집을, 그것두 독집도 아닌것을 욕심나서 사는게 아니잖우, 이 왕가니까 그래두 이만한 가격으로도 사주지 다른 사람 같으면 턱이나 있수? 안그렇슈, 아주머니?》
   왕가는 설레발을 쳤다. 그러면서 점심에 와서 계약서를 쓰고 돈을 주마고 했다.
  《꼭 현금이여야 한다니까.》
   엄마가 왕가의 뒤를 따라가며 복걸하듯 웨쳤다.
  《알았슈.》
   왕가가 돌아간 뒤 엄마는 입을만한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짐 두짝을 만들어놓고 엄마는 부엌에 불을 지폈다. 밥이 끓자 엄마가 정색을 하고 나를 불렀다.
  《진수야 , 엄마가 집을 팔았다.》
   나는 엄마의 담담한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엄마가 어딘가 무치하다고 생각되였다.
  《어차피 다음학기부턴 너도 현성에 가 학교를 다녀야 한다더구나. 현성에 가서 공부하는데는 돈이 무척 든다더라. 느거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으니께 이젠 엄마가 나가서 돈을 버는길밖에 없다. 개학때까지 외가집에 가있거라 . 돈이 벌리는데로 부쳐줄께.》
   나는 엄마말이 다 끝나기도전에 문을 박지르고 나왔다. 엄마가 오늘같이 가증스러울수가 없었다. 밖은 해살이 좋았으나 나는 딱히 갈데가 없었다. 발길이 향하는데로 터벅터벅 걸었다.
   갈이가 끝난 학교마당는 드디여 검은 흙밭으로 변해있었다. 저곳에서 우린 얼마나 재미있게 뛰놀았던가. 일군 몇이 갈아번진 운동장둘레에 비닐실로 뜬 그물을 늘이고있었다. 양무리를 가두어넣으려는 심산인것 같았다. 밤도적을 경계해서 망치로 창문에 널빤지에 못을 쳐박는 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왔다.《벽동소학교》라고 썼던 학교간판이 도끼날에 두쪽으로 쪼개져 교실창문우에 거꾸로 덧박혀있었다.
   글소리 랑랑하던 교실이 이제 이렇게 양우리가 되는것이로구나. 나는 초연해지는 기분을 어쩔수 없었다. 문뜩 저 집에 들어올 양들이 나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있던 집도 없어졌는데 양들은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좋은 벽돌기와집에서 살게 생겼으니 말이다.
   누군가 그렇게 서있는 나의 곁으로 다가와 내 어깨에다 손을 얹었다. 뒤돌아보니 칠성이녀석이였다. 이상하게도 여느때 없이 푸근한 소리가 칠성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울지 마.》
   까치 두마리가 백양나무우듬지에 둥지를 틀며 알아들을수 없는 말로 저희들끼리 재깔이는 소리가 자냥스럽게 들려왔다.
 
                                                       - 2005년 9월
 
* 단편소설《둥지》는 <도라지>(2005년 제2기)에 발표되였습니다.

[출처:조글로포럼 forum.zogl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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