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단편소설 -연재1-

  아래는 다만 나를 비롯해서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는, 그리고 어린 그 계집애만의 비밀였던 슬픈 이야기다…

    시내안의 몇집 식당에서 나는 음식찌꺼기를 담는,―말하자면 돼지먹이를 담는 도람 곁이 그 계집애 어린 시절이 요람이였고, 일년 사시장철을 하루라도 빠뜨림이 없이 매일 그 도람통에 날라들이는 먹이로써 계집애의 엄마는 한해에 40여 마리의 돼지를 길러왔다고 하는 것이다.

계집애가 비로소 그 도람곁을 떠나게 된 것은 소학교 2학년에 다니게 되면서부터였지만, 그냥 하학하여 집에 돌아올 때면 착한 계집애는 시교의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가파른 올리막이에서 삼륜차를 밀고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옆에서 같이 밀어주어야 했다. 그렇게 계집애는 어느덧 열여섯살이 되였고, 그 계집애의 엄마가 거의 2십여 년을 그렇게 돼지를 길러 4, 5만원의 거금을 모아놓고 나자 이번에 계집애의 아비는 그 돈에다가 2만원어치의 가옥증서까지 덜컥 저당잡혀 놓고 대한민국에로 돈 벌이를 간다며 떠나버린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하는 것이다. 아, 그러니까 세상에는 이같이 매정스러운 일도 다 있었구나! 그것은 방금 꽃이 피기 시작했던 봄이어니, 그 뒤로 맥을 놓아버린 엄마는 심화를 썩이다 나중에는 20여년을 밀고 다녔던 삼륜차와, 그 도람통까지 모조리 헐값으로 이웃집 ‘되눔’개장수에게 팔아버리고 말았다는, 그 근처의 모든 동네들에서 다 아는 사연이였다.

    그때로부터 계집애 모녀는 제집이 없고, 아비가 없고, 웃음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길에서 누가 밀고 가는 삼륜차를 보아도 슬펐다. 또 그 짐승이나 다를바 없는 ‘아비’가 전에부터 몰래 눈 맞아 지냈던 녀자와 함께 영영 떠나버리던 때가 바로 봄이였던지라 피여나는 꽃을 보고도 슬픔에 젖군했다. 학교를 갖다와서 멀거니 세방앞에 나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계집애의 마음속에는 서러움뿐이다.

지금 계집애는 초중 3학년 학생이요, 고중까지의 학업을 모조리 마치자면 아직도 2, 3년을 더 학교에 다녀야 하겠지만 당장 내년 새 학기의 학비부터 어떻게 물어내겠는지가 큰 문제였다. 내가 들어 알기에 요지음도 계집애의 엄마는 하루 20원씩 하는 중국사람들의 삯김을 매여서 쌀도 사고 콩기름도 사고해서 그런대로 굶지만은 않고 살아가고 있는것요, 계집애는 여름방학기간에 꽃을 팔아서 학비를 마련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같이 삯김을 매러 다니는 시교의 무직자남편을 믿고 사는 아낙네들을 대놓고 시룽시룽 한다는 소리가 상대가 오직 '한국사람'이라면 나이 일흔, 여든이라도 좋고, 결핵병, 문둥이환자에게라도 시집가버리고 말겠다고 하는 것이며, 딸은 저녁마다 거리에 나가 꽃을 팔아서라도 얼마던지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고 보니 계집애는 오라지 않으면 또 그 하나뿐인 살붙이 에미마저 잃어버리게 되지 않았는가.

    계집애가 보기에 엄마는 더는 어제의 착하고도 불쌍하던 엄마가 아니였고 그들 모녀의 이야기만 입에 오르면 곧 혀를 쯧쯧 차며 무한한 동정과 련민을 보내주군 했던 마을아낙네들의 훔쳐보는 눈길도 그렇게 밉지않을수가 없었다. 그 눈길들과 함께 아낙네들의 구린내나는 입이 그렇게도 소상한 이야기들을 너 한마디 나 한마디씩 서로 주고받지 않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
    계집애는 눈물이 핑 돌았다. 가로등 밑에서나, 아니면 커피숖, 노래방같은 간판들이 잔뜩 매달린 유흥가를 오가면서 계집차고 다니는 사내들에게―꽃을 사서 이 언니께 선물하세요! 하고 매달리는 일이 계집애에게는 그렇게도 부끄러운 일이였다. 그리고 그 오빠에게서 꽃을 선물받는 언니들의 꽃물 든 얼굴 또한 그렇게도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계집애는 어떤 운수좋은 날에는 3십 원이나 4십 원씩 벌어도, 또는 밤 늦게까지 꽃 한송이도 팔지 못한 채로  맥없이 자전거를 타고 셋방에로 돌아오는 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이불을 머리에까지 덮어쓰고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울어야 했다. 이래도 그냥 걱정되고 정드느니 그 하나뿐인 엄마였고, 보고 싶으니 사람마다 침을 뱉는 그 아비 뿐이였다.

    그러나 봄에 열렸던 꽃이 아직 지지않고 활짝 피여있을 때에, 그리고 아직 여름방학이 미처 가기도전에 계집애에게 이 모든 정을 다 잊게 만드는 한 얼굴이 갑자기 나타나줄 줄이야!

 그렇게 서럽고도 슬프던 마음이 즐거워지고 엄마에게보다도 더 정이 갈 줄은 미처 몰랐다. 더는 저녁에 나가서 꽃도 팔다말고 계집애는 아침 나절부터 저녁 늦도록 마당에서 돌아치며 누구를 위해선가 손에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일손을 돕고 있었다. 개장수 로얼은 이깔나무 수십대를 베여다가 기둥을 박고 거기에 기와를 얹는데 그 곁에서 엄마가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고, 로얼의 절름발이 아들 셋째란 놈은 새로 만드는 개굴주변에다가 높은 담장을 쌓느라 흙을 반죽하는데에 계집애는 뽐프를 자아대느라 온 얼굴이 땀투성이로 되였다.

어찌 알았으랴! 바로 이 못난이 중에서도 못난 셋째란 놈이 아니더면 국화 필 서리 아침에 떨어진 오동 잎새를 울리며 오는 가을바람같이 차겁도록 여적 웃음을 모르던 계집애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 봉긋한 꽃봉오리가 가지런히 꽃살을 드러내보이며 하나 둘 피여나고 있는 귀여운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 셋째란 놈이 아니더면 웃는 계집애가 이리도 사랑스러운 줄을 누군들 알아주기나 했을것이랴? 그가 절름발이면 어떻고 「되눔」이면 또 어떠랴! 나이 서른을 넘기도록 장가 못 들고 얼굴만 새까맣게 탄, 그리고 시누렇게 드러나는 셋째란 놈의 그 뻐드렁이도 계집애에게는 다 좋다.

그것이 불어내는 하모니카 소리는 무슨 애상을 달래는 것인지 그것을 불 때에 어리는 셋째란 놈의 얼굴은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것이다. 마을 동구 밖을 나와서 저 멀리에 공항 쪽으로 뻗어나간 참외밭오솔길로 걸어가는 계집애의 뒤를 셋째란 놈이 절뚝거리고 따라가며 하모니카를 불어댄다. 막 하루 일을 마치고난 개장수부자에게 참외를 사다 대접하고자 이 길에 나선 것은 아니다. 계집애는 셋째란 놈이 절뚝거리면서라도 꼭 자기 뒤를 따라올 줄 알았든 까닭이다. 하모니카를 다 불고 나서 셋째란 놈은 가까이로 쫓아서 ,

    “쑈메이메이(녀동생), 히히”
    이러며 그 싯누런 뻐드렁 이를 드러내놓으며 웃어 대드니 계집애의 어깨우에 한쪽 손을 얹어놓고 같이 걷는다. 이래도 계집애는 그 손을 물리쳐버리거나 또는 사이 간격을 두려고 하지 않으며 바짝 붙어서 퍽 친근하게 왼 팔을 셋째란 놈의 허리에 감아붙이는 것이다. 셋째란 놈은 너무 기뻐 끝없이 헤벌쭉거리고 웃는다. 그리고 넌짓이 손바닥을 펴서 계집애의 오른 어깨팍을 만져도 보고 쓰다듬어도 보는것이다. 그러며 슬슬 계집애를 꼬드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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