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2002년 월드컵이 한일공동개최로 결정됐을 때, 한국 여론의 절반은, ‘하나마나한 월드컵이다. 외국팀은 인지도가 높고 관광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할 것이다. 우리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식으로 실속도 못 챙길 것이고, 돈은 장삿속 밝은 일본에서 다 챙길 것’이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막상 한일공동개최가 결정되고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한국은 일본잔치의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라던 우려가 얼마나 지독한 패배의식이자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이었는가가 여실히 입증됐다.

원정경기에서는 현지적응훈련의 질이 결정적으로 승패를 좌우한다. 경기가 다가오자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라도 더 현지적응훈련을 해야 하는 각국 대표팀들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류비용과 인건비가 싼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팀들은 일본보다는 하루라도 더 마음 편하게 연습 할 수 있는 한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히딩크호가 이끄는 한국팀이 4강이라는 신화를 이루어내자, 일본에서 경기를 치른 팀들까지도 한국 관광을 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세계적인 관광대국 일본의 나리타 공항은 그 땐 한국행 관광객들이 거쳐가는 경유지에 불과했다. 결국, 국민사기 고조와 대외적인 국가이미지 제고, 그리고 관광 등의 부수입 면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더 실속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일해저터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존심 강한 민족이기에 일본으로부터 받은 지독한 역사적 상처와 불쾌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현실적인 이해득실을 따지는 데서 지혜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려의 핵심은 한일해저터널이 본격 추진되면 큐슈지역 관문도시인 후쿠오카가 국제물류기지의 중심으로 발전하고 부산항을 비롯한 우리 남해안의 주요항구들은 중간통과역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비행기에서 이 지역을 내려다보라. 한국의 부산과 일본의 쓰시마는 하나의 포구 안에 있는 두 개의 나루와 같다. 쓰시마와 부산간 거리는 불과 49.5킬로다. 적어도 수천 킬로, 많게는 수만 킬로를 넘게 이동하는 대륙 간 물류이동에서 49.5킬로 거리에 있는 이들 두 개의 항구는 하나의 물류기지나 다름없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손을 맞잡고 부산과 쓰시마 간의 지리적인 장점을 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올린다면, 이 접경지역은 세계에 이름난 국제첨단물류관광지로 계획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또한 국내의 입장에서 보면, 거제도 및 가덕도(부산신항)와 부산만 일대를 한데 묶어 싱가폴과 홍콩을 능가하는 부산-가덕도-거제도간 광역항만도시경제권 (TRI-PORT : 항구-공항-고속철도가 연결되는 국제항만도시)을 조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는데, 이렇게 만 된다면 태평양시대의 농축된 기류를 한반도를 거쳐 동북아시아 대륙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블랙홀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더구나 시대는 물류산업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물류중심지의 우위권을 놓고 각축전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러시아가 TSR(Trans Siberian Railway)을 지금의 블라디보스톡에서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까지 연결하면서 철도를 광궤로 시설을 현대화했고, 중국과 일본이 노선을 둘러싸고 한판 승부를 걸었던 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은 러시아가 중국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이르쿠츠크 주 타이세트에서 중국의 국경을 따라 아무르 주 스코보로디노까지 연결하는 2,369킬로미터의 구간을 중국의 송유관과 연결하기로 했다. 일본과는 연해주에서 사할린 섬을 지나 일본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사업을 논의 중이다.

일본은 2001년에 신종합물류시책 대강을 발표하고 물류기본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에 물류현대화 발전계획을 마련해서 황해연안지역에 외자유치를 위한 6개의 산업 클러스터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동북아의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상하이와 베이징간 1,300km 고속철도건설 등 내륙지역의 인프라 확충과 함께 연안도시의 항만시설 확충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마디로 주변국 모두가 서로 나서서 어떻게든 국경을 허물고 길을 내어 인접국과 연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한반도만 덩그러니 고립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반도는 지리적 조건이 동북아의 중심에 있으며 세계 및 동북아 지역내의 모든 공항, 항만과 효율적인 네트웍을 구축할 수 있는 최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반도 주변상황을 살펴볼 때, 반경 2,000km이내에 인구 500만명 이상의 도시가 수십개가 운집해 있으며, 또한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비롯한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중국, 일본, 한국이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첨단 핵심 기술과 자본재를 중국과 북한이 요구한다. 특히 남한의 100배 면적을 가진 중국은 거대한 산업 생산지이자 소비시장이다.

그 앞에 있는 한반도는 중국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큰 물류산업의 호기를 낚을 수 있으며, 특히 동북3성 및 베이징, 텐진, 산둥성 등 발해만 지역경제권과 맞물려 중국 동북부지역의 물류 허브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동북아 물류산업에 있어서 만큼은 천운을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내 상황은 어떤가. 현재 북한이 중국을 모방해서 추진하고 있는 신의주특구와 나진·선봉지구는 북한의 체제 한계로 인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한국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정책이 여전히 규제가 심하고 지역간 형평성 문제에 걸려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경제자유구역제도는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나 속도를 낼 수 있을 뿐 우리같은 정치풍토에서는 정부가 굳이 이를 주도하는 것이 오히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차원의 경제구역개발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지구촌에 국경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물류와 사람의 이동은 갈수록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국토 전체를 자유경제구역개념으로 경영해서 성공한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와 네덜란드다. 우리도 지리적 잇점을 활용해 국토전체를 물류중심지화 하는데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주요 항만들은 인근의 상하이나 홍콩에 물동량을 추월당하고 있다. 특히 중국 상하이는 배후지역의 경제성장과 물동량 증가에 힘입어 처리실적이 연간 30%씩 늘어나고 있다. 부산은 겨우 13%수준이며 그나마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해저터널을 건설해 우리 물류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고 동북아시대에 물류산업의 허브로 도약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일해저터널은 중국과 러시아를 한반도를 통해 일본과 연결함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통해 중국횡단철도(TCR, Trans China Railway)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way) 등 ‘철의 실크로드’와 Asian Highway를 연결함으로서 수많은 인력과 차량의 이동은 물론 각종 제조업의 원자재, 부품, 중간재, 완제품등이 각 지역의 수요에 따라 ‘One Stop’으로 공급 유통될 것이며, 나아가 식량, 광물, 에너지(특히 시베리아의 석유와 가스)등의 풍부한 자원을 대량 소비지역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서로의 필요에 의해 협력관계가 누증적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 없어 상호간에 힘의 균형이 유지되므로 특히 우리같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가 고 부가가치를 얻는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일해저터널의 입지와 노선 설정은 지역경제발전 뿐만 아니라 국토균형개발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참고로, 일본의 ‘일·한터널연구회’에서 추천하는 한일해저터널의 루트는 큐슈의 가라쓰를 출발해 쓰시마 하도(下島)를 경유해서 거제도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에 반해 부산시에서는 쓰시마 상도(上島)에서 부산역으로 직결되는 노선을 희망하고 있다.

사실 유로터널의 경유에서도 알 수 있지만, 해저터널 자체만으로는 경제적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SOC 기반시설 운용 측면에서 보면, 해저터널 출입구 주변에 조성되는 대규모의 물류단지와 배후 공단 및 지역도시와의 연계성을 높이는 일이 경제지표를 끌어 올리는데 더욱 중요한 이슈가 된다.

그런점에서 보면 쓰시마-부산 노선은 대도시인 부산이 KTX와 직결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배후에 물류단지 및 공단을 조성할만한 가용면적이 부족하다는 점이 결정적인 단점이다.

이 경우, 유로터널이 입지한 영국의 켄트(Kent)와 프랑스의 깔레(Calais)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깔레 지역에 조성된 터미널은 700ha에 달하며 유럽에서 가장 큰 육상운송단지로 개발되어 영국의 히드로 공항보다도 규모가 크며, 단지 내 철도 연장이 50km, 도로연장이 50km에 달하는 규모다. 그런데 부산의 경우엔 가용부지가 거의없는 상태다.

반면에 거제도 지역은 배후에 가덕도(부산신항)와 진해 및 김해 평야지대가 곧바로 연결됨으로써 대규모 물류단지와 공단을 조성할 만한 가용면적이 충분하다.

그래서 장기적인 종합대책으로 볼 때는 거제도 노선을 택하여 거제도-가덕도(부산신항)-김해-부산을 연결하는 거부(巨釜)경제권을 형성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토 여건을 감안할 경우, 국토 균형개발을 위해 가장 시급한것은 수도권 중심의 단핵구조를 다핵구조로 바꾸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 집중을 야기하는 수도권에 필적할만한 대응권의 육성이 필요한데, 한일해저터널이 건설될 경우, 한반도 동남부 및 남해안과 직결되는 거부(巨釜)경제권은 명실공히 국토균형개발에 최대치의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일해저터널을 성사시키면 대내적인 국토균형개발에도 도움이 되지만, 대외적으로도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동북아시대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는 최우선 국가임을 입증시키는데 아주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일본으로 하여금 아시아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을 터주고 또한 중국으로 하여금 그들이 필요로 하는 남북한 안정과 일본 진출에 따른 대외무역경제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물류비용 절감을 위해 기술과 자금을 풀어 한반도 전체를 제조산업과 IT기술을 접목한 ‘중간재 첨단부품 R&D 기지’로 특화시키는 일에 기여함으로써 만성적인 한일간 무역수지의 불균형을 개선시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며, 또한 한국은 일본과의 밀접한 협력관계를 통해 최종소비재 제조공장인 동시에 세계 최대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을 사용자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남해안이 어떤 바다인가. 한려수도를 따라 물결치는 그 푸른 바다는 열두척의 배로 일본수군 10만명을 전멸시킨 충무공의 혼이 서린, 우리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이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의 땅에서 일본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도모하며 화해와 휴양과 선린의 터로 발전시켜나간다면 이 또한 얼마나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인가.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감정적인 불편함을 뒤로 미루고 자신과 이웃나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한일해저터널을 성사시켜야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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