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

 내가 처음으로 직장인 생활을 하게 되면서 돈화림업국 제2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던 20세기 70년대의 중반, 그때만하여도 80년대가 아득하게 멀어만 보였고 90년대, 나아가서 2000년이라는 시간적 개념은 거의 없다시피 모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세월은 어느 덧 2000년도 한참 지난, 2010년이 선뜻 다가 왔다.

우리 민족도 한(조선)반도에서 중국대륙으로 건너 온지 대충 헤아려보면 이미 백년을 넘기고 있다.

작년의 5월, 나는 우연한 걸음에 용정시실험소학교를 다녀오면서 그 학교가 이미 103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나는 '백년의 의미'라는 수필을 연변일보에 발표했다. 잇따라 작년 9월에는 할빈시도림조선족중심소학교가 100년을 맞아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민족사와 함께하는 백년'이라는 제목으로 축사를 써 보낸 적이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니 중국조선족도 중국에서 벌써 10차례 이상 세월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며 심지어 풍토가 변하는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의 말씀에서 들었던 서울이야기, 그때는 서울이 묘연하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멀고 먼 변두리에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그런 경지와도  같아 평생 가볼 수 없는 곳으로만 여겨졌던 것이 지금은 금방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지척(咫尺)으로 된다.

1883년도에 한국 경상북도서 출생하셨고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이미127세 초고령인 할아버지 김우갑(金又甲)씨가 만약 구천에서도 알고 계신다면 어떤 감개(感慨)를 터뜨릴  지 모르겠다. 지구촌이 바야흐로 우리 생활의 현실로 되고 있다는 점이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각하고 생동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충격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경제의 세계화와 문화의 다원화(多元化)가 분명히 당전 인류사회의 특징으로 되고 있다. 즉 경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 세계가 통일적인 기틀 속에서 순환하고 운행되고 있다. 그래서 시세에 따라 일단 경제위기 같은 재난이 닥쳐오게 되면 전 세계가 함께 진통을 겪어야한다. 그러나 문화는 오히려 다원화를 추세로 하여 자신의 가치를 체현하고 있다. 나라에 따라서, 민족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부동한 핵심으로 구축된 가치관을 에둘러 형성되고 있는 문화는 나라적인 특색과 민족적인 특색과 지역적인 특색이 제마 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같은 민족이면서도 거주 지역에 따라 문화는 부동한 특색을 지닌 형태로 표현된다. 주지하다시피 한(조선)반도 본토에서도 남북이 갈라져 문화가 적진(积淀)되어가고 한(조선)반도 외의 700만으로 호칭(号称)되고 있는, 전 세계에 분포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은 거주하고 있는 그 나라와 지역에 따라 또 부동한 문화를 이루어 간다.

그중 우리 중국의 조선족은 이미 백년이라는 역사와 더불어 자기의 터전을 중국이라는 비옥한 대지에 풍요롭게 개간하였고, 모어문화를 고수(固守)하는 한편 중국문화의 영양분을 적당하게 흡수하고 소화함으로써 중국특색이 슴베여 있는 중국조선족문화로 키워가고 있다. 중국특색이 있는 중국조선족문화가 백여 년이라는 시간을 걸쳐 지금까지 이르기에는 너무나 많은 곡절과 역시 너무나 많은 희열 속에 부대끼면서 이루어져 왔다. 여기에는 해방 후 나라적인 혜택으로 이루어진 훌륭한 민족정책도 있고, 우리 민족 자체 스스로의  애로를 뚫고 나가는 생존의 지혜도 많이 내포된 것으로 알려진다. 향후에도 역시 우리는 우리 중국조선족의 문화를 훌륭히 지켜가고 살려가야만 우리 자체의 생존과 아울러 그 가치를 만방에 현시할 수 있다.

문화의 허다한 영역에서도 가장 성스럽다고 할 만한, 우리 조선족 문학을 발전시키는 사명을 지닌 연변작가협회도 어언간 50여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민족문화 내지 민족사의 차원에서 철학과 사회과학분야의 건설 중책을 짊어진 연변사회과학계연합회도 이미 30여년의 여정을 걸어 왔으며, 민족교육과 후대양성의 행로에서 가장 선두에 위치하여 "전초지"와 "최후의 보루"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국조선족소년보도 장장 60년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뽐내고 있다.

나는 나의 그리 짧지도 않고, 또 그리 길지도 않은 직장 생애에서 상술한 연변작가협회와 연변사회과학계연합회 및 중국조선족소년보에서 선후로 임직하고 지냈던 경력을 더 없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2009년 12월 17일, 나는 중국조선족소년보발전연구회성립대회에서 발표했었던 준비경과 보고에서 중국조선족소년보 내지, 우리 민족의 교육과 문화건설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나름대로의 관점을 피력한 적이 있다.

- 중국조선족소년보는 우리 민족교육 내지 민족문화건설에서의 전초지이고 또 최후의 보루입니다. 우리 민족의 말과 글로 공부하는 소년아동들은 일단 학교에 입학하면 과외 시간에 볼수 있는 우리 민족의 글로 된 신문은 유일하게 중국조선족소년보 뿐입니다.  중국조선족소년보가 바로 우리 민족의 교육과 민족의 문화건설에서 가장 선두에 위치해 있다는 점으로 가히 “전초지”라고 자리 매김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상술한 의미와 이유에서 만약 중국조선족소년보까지 생존 위협을 받을 경우이면 우리 민족교육과 민족문화건설이 뿌리가 흔들리고 아울러 대가 끊어집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감히 중국조선족소년보를 우리 민족의 교육과 문화건설에서의 “최후의 보루”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보겠습니다.


- 중국조선족소년보가  우리 민족교육과 민족문화건설의 “전초지”이자 또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은 우리 민족 지성인들의 보편적이며 공동한 각성으로 부상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긴박하게 느껴봅니다. 이 과업은 곧 바로 중국조선족소년보발전연구회의 효과적인 탐구로써 점차적으로 풀어 나가면서 전반 사회의 관심과 각성을 환기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인간의 수명은 대체적으로 백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민족의 생존과 더불어 그 역사는 시대를 이어 유구하고 불후하다. 백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민족은 지금 어떻게 그 의미와 함께 그 이미지를 더욱 훌륭히 살려 가야할것인가? 경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이 문화가 시대와 역사의 가치 체현에 거부할 수 없이 부호(符号)적인 증명을 하여 준다.

                                          2010. 1. 23
 
# 이 글은 '문화시대'(문학과 예술) 2010년 제1기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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