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문학인 작품선 2]

언덕과 같은 산더기의 저쪽에서 꼬장꼬장한 바람이 불어왔다. 난지는 그 바람을 마주하고 서서 살아가는 운명의 현장을 잊고 있었다.

  여기는 필경은 사람이 살았던 적이 있던, <<안발자(雁脖子)>>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던 마을이었다.

  수년 전까지 만도 두 호인가 세 호인가가 마지막 농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인간의 체온들이 사늘하게 식어간 집들에서 쥐들과 쪽제비들이 살고 있었고 이제 이사를 준비하여야 하는 참새들이 처마에 둥우리를 틀고 있었다. 난지는 언제인가의 사람들의 체온을 느끼기고 있었다. 썩어서 흩어지는 이영의 짚에서, 거멓게 그을은 부억의 아궁에서, 난지는 언제인가 있었던 따스함을 상상할 수 있었고 어른들의 주절거림과 아이들이 까불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약속 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멀리에서 수림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붓하고 다정하던 마을은 이제 페허로 남아 시들어가고 자연의 먼지로, 흙으로 돌아가기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곳은 이제 운명을 하고난 뒤의, 실존의 싱싱한 기억을 더듬을만한 순간이 아니라 죽어서 썩은 뼈다귀만을 널어뜨린 곳이었다. 그래서였던가 난지는 거울앞에 서있는 듯한 감과 함께 다정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날에인가  난지는 갑자기 고향마을에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점점 짙어져서 참을 수 없는 덩어리로 굳어졌고 그저께 아침에 눈을 뜨자 결심으로 단단해져 이번의 행차가 이루어졌다. 기차를 타고 세시간, 자동차를 타고 다섯시간, 다시 찌프를 세내서 두시간 푼한 길이였다. 그처럼 고향은 오지라도 형편없는 오지었고 시골이었다.

  <<안발자>>라는 말은 기러기목이라는 뜻이었다. 마을 이름이 안발자가 된것은 마을이 구부정한 기러기목처럼 생긴 산자락의 밑에 들어앉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다 태를 묻었다고 생각하니 난지는 좀은 재미가 있어졌다.

  안발자를 떠날 때 난지는 가슴이 다 부풀은 성숙한 소녀였다. 그때로부터 20년 만에 찾아보는 고향이었다.

  야, 이 간나야, 마당에 마늘 뽑아오라.... 이 간나야, 돼지도 사람 믿고 사는 짐승이다. 죽 주어라... 난지의 아버지는 난지의 이름을 잊은 사람이었다. 무슨 놈의 원쑤를 졌는지 아버지는 난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간나라고 불렀다. 세상에 태여나 인간의 소리와 짐승의 소리를 분간할 수 있었던 그때부터 난지는 아버지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난지는 아버지가 자기의 친아버지가 아닌 줄로 알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갈 것 같다는 기별이 와서 큰언니의 집으로 갔을 때 운명을 하는 아버지는 뒤늦게 들이닥친 셋째딸을 퀭해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목대뼈가 울꺽하더니 숨이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난지는 끝내 아버지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난지는 가족의 넷딸중에 셋째였다. 셋째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하였지만 난지가 태여나 일년이 되도록 아버지는 그에게 이름마저 지어주지 않았다. 엄마가 임신 때, 엄마의 배가 부르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무던히 기분이 좋던 때가 있었다. 마을의 아낙들이 이번에는 무조건 아들이라고 했고 저렇게 배가 쑥 빠진걸 보니 아들이라도 무던히도 박달나무같은 아들일 거라고 쑥덕거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입이 째지게 웃었고 사내답게 촌지서(주: 공산당 당서기를 이르는 말)앞에서도 고개를 쳐들 수 있었다. 그러나 열달이 되여 엄마가 난지를 내싸질렀(아버지의 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지의 아버지는 고추가 없는 뻔뻔이라는 말 한마디만 듣고 촌지서네 집에 찾아가서 눈물 찔끔 짜며 술 몇잔을 얻어먹었고 사양원이(주: 당시 농촌은 집단농사를 하였으므로 모든 가축은 한곳에 모아 사양하였음) 자는 우사의 구들에서 코를 불며 온밤을 잤다.

  안발자라는 마을은 모두 열여덟호 반이 되는 자그마한 촌이었다. 반이라는 것은 그 중에 혼자 사는 중국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왼쪽손목이 없는 그 사내는 로동개조를 온 우파(주: 사회주의적인 좌파와 대조되는 우경이라는 말이었는데 지식인들이 그 주요 숙청대상이었음)였는데 가지(仮肢)를 해넣은 손에 언제나 하얀 실장갑을 끼고 있었다. 마을에서 유일한 한족이요 또 유일하게 대학공부까지 했다는 그 사내는 시골에 와 일년이 되자 조선족들과 어울리며 조선말을 배웠고 난지가 세상을 알 때 그도 자기와 같은 조선족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

  난지가 태여나 돐이 되었을 때 그 장안중이라는 우파는 난지의 아버지에게 난지라고 지어주시우 라고 말했고 그때부터 난지는 확실한 <<간나>>로부터 확실한 <<지난지>>로 호적에 등록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중국말로는 어떨지 모르나 조선족 사람의 발음으로는 이상하기 만 한 이름이 붙어졌다.

  난지라는 이름은 중국말로는 이쁜 이름이었다. 시골동네의 구석에서 태여난 난지에게 이런 이쁜 이름이 차례진 것은 운명의 장난이요 미래 난지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각자의 예언인지 몰랐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남자가 그랬었고 그녀의 동창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어떤 영감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었다. 그때 그 장안중이라는 우파는 책 가위가 떨어져 언제 출판이 되었는지 소설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삼류소설을 읽고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발등이 깨지게 눈물을 흘리며 어느 부자집 도련님에게 사랑을 바쳤다가 배반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소설속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 난지었고 장씨는 갑자기 그 이름을 기억하고 난지의 아버지에게 말해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난지가 그 이름을 가진 것은 싱거워도 한참은 싱거운 노릇이었다.

  이쁜 이름과는 달리 난지는 까부는 아이로 자랐다. 아버지의 구박이 심했던 탓이었던지 아니면 우로 언니 둘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난지는 남자애들과 다를배 없이 까불고 탈싹거리고 쉴새 없이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쉴새 없이 아버지의 간나라는 호칭을 머리 뒤끝에 붙이고 다녔다. 이 간나야, 이 개간나야...

  아버지로서는 천만가지 이유가 있었겠지 만 난지로 놓고 보면 상당한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세번째로 여자애가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난지는 참으로 재수 없는 <<간나>>로 되어버린 것이었다.

  난지의 아래로 다시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빌어먹을 년이라고 녀펜네의 엉뎅이를 걷어찼지만 공사(주: 중국의 개혁개방 전 집단농사를 하던시기의 농촌 행정구의 가장 큰 행정기구)의 계획생육위원회(주: 60년대 후반부터 계획생육을 실행하면서 전문 기구를 내옴)의 여간부가 안해의 절육수술을 강요하고 그날로 절육수술을 하자 아버지는 체념을 했는지 숯구이를 하는 심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자라고는 아버지밖에 없는 가족에서 셋째딸 난지는 무관심속에서 무병하게 잘도 자랐다. 언니들이 학교로 갈 나이가 되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자 난지는 언니들의 등넘어로 가갸거겨를 깨쳤고 난지의 나이가 학교로 가야 할 때가 되자 아버지는 학교로 가는 언니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저 간나도 데리고 가라.

  하염없이 주눅이 들어 있는 난지의 어머니가 언니들이 쓰던 책가방을 난지에게 메워주는데 우파인 장 안중이 돼지굴을 치러 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난지의 아버지에게 지금 조선말 공부를 해서 뭘 하려고 그러오?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말을 잘 해야 이담 큰 일을 할 수 있는게오. 적어도 이담 살아가는데 더 좋을건데... 하면서 장 안중은 이 무식한 사람아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간나들이 공부를 해서 무슨 출세를 하겠소? 조선말이든 중국말이든 학교라는거 다니면 되는게지. 난지의 아버지는 학교에 보내주는 것만 해도 대덕이라는 투였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니까. 중국에서 살자면 그래도 중국말이 첫째가 아니겠소? 이담 사회에서 살자면 그래도 중국말을 하는 사람이 더 유리할거우... 사람이란게 편안하게 잘 살자는 게지 다른 게 있겠소? 우파이긴 했지만 장 안중은 지식인이라는 딱지가 있었기에 농부들과 같은 그런 한치보기는 아니었는가 싶었다.

  설복이 되여가는지 난지의 아버지는 고개를 틀어보였다. 그런데 한족(주: 중국 사람은 자기들을 한인(汉人)으로 부르기에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한족(汉族)으로도 부름)학교로 가자면... 난지의 아버지는 다른 근심을 하고 있었다. 하긴 두 딸은 마을의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십여리 떨어진 공사의 소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그런대로 큰 근심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난지가 한족학교로 다니려면 안발자에서 북으로 십여리 떨어진 임장(주: 임업도 국유기업에 속하였기에 채벌장을 이렇게 부름)마을로 다녀야 하였다. 아버지는 어린 여자애가 혼자서 그 먼 길을 다닐 수 있겠는가가 근심인 모양이었다.

  참, 시골에서 뭐가 그렇게 무섭소? 장보러도 애들이 혼자 다니는데. 삼림철길을 따라 걷는데 싱겁게 근심은 뭐요? 래일 나 임장에 일보러 가야는데 내가 데려가 입학을 시키겠소. 장 안중은 아첨에 가까운 담보를 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이튿날 난지는 짝손이 우파와 함께 임장 마을로 갔고 그의 오른손에 손목을 잡힌채 임장 마을의 소학교(주: 초등학교) 일학년에 입학을 했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삼림철길을 따라 타달타달 걸어 귀가를 하는데 친구도 없고 동무도 없어 적적하고 무섭기가 말이 아니었다. 억울하고 눈물이 마구 흘렀다. 우파새끼 개새끼, 우파새끼 개새끼... 난지는 걸으면서 짝손이 장 안중에게 어린 마음이 줄 만한 저주를 다 퍼부었고 이상하게 자기 만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저주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침 아버지가 소똥내를 풍기면서 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난지는 아버지의 등뒤에 대고 처음 배운 중국말을 했다. 초우니마(씹할것)!

  이 간나 뭐라니?! 이 간나 벌써 되눔 말을 하는구나!? 아버지는 눈알을 뒤집으면서 난지의 자그마한 엉뎅이에 발길질을 했다. 난지는 저만큼이나 채워져 넘어졌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한다면 꼭 참은 것이었다. 비실비실 일어나며 난지는 속으로 다시 더 악독하다고 여겨지는 한마디를 던졌다.

   말가비(에미씹할)!

  소학교에 입학해 반년이 자나자 난지는 유창한 중국말을 박밀듯 구사하기 시작하였고 아버지와는 의도적으로 중국말만을 해댔다. 그리하여 난지에게는 간나라는 호칭 외에도 되놈이라는 호칭 하나가 더 붙었다.

  이 되놈 간나야. 돼지풀 뜯어오면 손목이 썩어 떨어지니?

  난지는 마을길을 따라 조금 걸어올라갔다. 화사한 여름의 태양이 정오를 향해 기여가고 의심스러울 만치 하얀 구름 몇송이가 산야의 상공을 헤여가고 있었다. 난지가 살던 집은 이미 무너지고 없었다. 빈 터만이 횡뎅그렁하고 그 앞으로 조금 나가니 네 귀를 버티고 있는 집이 보었다. 금희라고 불렀던가? 필경 자기와 비슷한 나이또래의 여자애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확실한 이름은 기억에 까마득해 있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하냥 찌프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였는데 마을에서 대장(주: 집단농사를 하던시기의 가장 작은 농촌행정단위를 생산대라 불렀음)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었다는 기억이 있었다. 경상도 말을 하는 사내었는데 언제나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먼저 거시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있어 마을 애들은 그 사내를 부를 때면 무슨 대장이라 하지 않고 거시기라고 불렀다.

  한쪽이 무너져 버린 길다란 우사가 보였다. 그 앞으로 기와를 얹었던 집이 창틀마저 뜯기운 채 뼈만 앙상하게 서 있었다. 집체호(주: 문화혁명중 모택동의 지시로 도시의 학생들이 농촌에 가서 농사를 해야 했고 그들이 사는 집을 이렇게 부름)자리었다. 어느날 도시에서 지식청년들이라는 사람들이 온다고 온 마을이 야단을 떨었고 넉톤짜리 <<해방표>>트럭을 타고 단발머리와 쌍태머리를 한 처녀애들 일여덟과 초록색 상의를 입고 머리를 짧게 깍은 남자애들 일여덟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허연 얼굴과 커다란 이불짐, 치약, 비누들에서 난지는 처음으로 도시의 냄새를 맡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난지는 언제나 외기러기로 외로웠다. 등교도 혼자였고 하교도 여전히 그러했다. 해가 나는 날이면 그림자라도 있었지만 비오거나 눈이 오는 날, 삼림철길 위를 걷는 난지의 가냘픈 모습은 처량하다기보다 고독이라는 그 자체었다. 그래도 집체호의 언니, 삼촌들은 중국말을 잘하는 난지를 좋아했다. 임장학교의 애들은 모두 월급쟁이들의 자식들이었고 그들에게서 난지는 서투른 도시의 물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집체호의 언니, 삼촌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을 애들처럼 난지라는 이상한 이름 때문에 지어진 별명을 불러주지 않는 것이 좋았다. 거의 매일마다 일이 있든 없든 집체호의 언니들 방에 깃쑥거렸고 그들에게서 브래지어를 재단하는 법을 배웠고 경도(주: 달거리의 중국식 표현)라고 부르는, 지금까지 달마다 찾아오는 시끄러움의 낱말을 처음으로 들었었다. 그런데다 그곳에는 그를 보기만 하면 머리채 한번이라도 당겨주고야 놓아주는 아저씨 진삼이가 있었다.

  제비 한마리가 난지의 머리를 스치며 날아갔다. 그러나 어디에 자리를 잡고 내릴 생각은 없는지 고도를 서서히 높히더니 아득히 먼 시야밖으로 사라져갔다. 난지는 페허속 마을에 제비의 둥지가 있을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다. 농촌에서 자란 그였고 시골이라도 형편 없는 시골의 여자애였지만 난지는 시골과 농촌의 상식적인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을 걸었다. 풀냄새와 무엇이 썩는 냄새가 싱싱한 숲의 대기속에 녹아 있었다. 시야에 낮다란 초가가 안겨왔다. 이영은 절반 없어졌으나 창틀과 문은 그대로 달려 있었고 그 문에는 놀라우리만치 녹쓸어 벌겋게 된 자물쇠가 열려진채로 걸려있었다. 그것은 장 안중의 집이었다. 짝손이 우파의 집, 홀아비네 집, 주인이 없는 한 그 집은 영원히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다. 온 동네에 장 안중네 집을 내놓고 자물쇠를 잠근 집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안발자생산대의 단간짜리 잡동사니 창고였다. 장 안중네 집은 영원히 비밀의 집이었다. 신비랄 것은 없었으나 안발자의 사람들은 그가 살림을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자는지 무엇을 해먹는지 본 사람이 없었고 빨래를 해서 걸어놓은 것마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는 농촌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닭이나 개마저 키우지 않았고 영원히 혼자였다.

  이상하게 만 들리고 이쁘기는 하나 뜻마저 희미한 이름을 지어준 짝손이 우파 장 안중은 난지가 열다섯살이 되는 해 어느날 갑자기 마을을 떠났고 죽는 그날까지 다시는 안발자에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가 운명을 하는 그날, 난지는 며느리의 신분으로 그의 곁에 서 있었고 시아버지를 보내는 그 자리에서 난지는 그렇게 큰 슬픔을 느끼고 있지않았다.

  장 안중이 안발자를 떠난 이듬해 난지는 현성의 직업고등학교에 입학이 되어 현성(주: 한국의 읍에 상당함)으로 들어갔다. 대학으로 통하는 고등학교 진학시험을 포기하고 직업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은 가정형편이 그의 대학공부를 뒤바라지 하기 힘든 원인이 있었지만 근원적인 원인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집과 아버지를 떠나고 싶었던 난지였다. 입학하는 날 난지는 해방의 자유를 맛보았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부풀어 있었다. 학교를 한달간 다녔는데 집에서 큰언니 숙자가 결혼하니 오라는 기별이 왔다. 스믈두살의 언니는 스믈한살에 푸채구라는 이름을 가진, 흑룡강성 경계에서 몇리 떨어진 시골의 남자와 약혼이 되여 오가더니 끝내는 결혼이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지는 다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고 싶지 않다며 소식을 가지고 온 장 안중에게 한마디 만 했다.

  뿌취!(안가요!)

  그뒤로 장 안중은 몇번을 더 난지를 찾아왔다. 언니의 결혼식 따위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마을에서 같이 살았댔다는 이유때문에, 이름을 지어준 조선족 계집애라는 그 하나의 감정때문에 장 안중은 먹거리를 사가지고 와서 난지의 숙소에서 반시간 가량은 있다가 갔다. 조선족 사람들은 참 훌륭한 사람들이야, 근로하고 선량하고. 조선족 마을로 가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은 자살하고 말았을 거야... 그 어려운 세월에...

  그러는 동안 시집을 간 언니의 배가 붇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장 안중이도 한달에 한번 꼴로 왔다가 갔고 언제인가 둘째언니 금자가 불볕에 타서 새까만 얼굴을 한채로 왔다가 고사리며 말린 물고기따위를 내놓고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에 금자는 동생을 한없이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지금은 호도거리(주: 개혁개방후 땅을 농민에게 나누어주어 호를 단위로 농사를 함)를 하느라고 땅을 나눈다고 했다.

  이제는 집체농사를 안하고 개인으로 농사를 짓는단다. 아버지는 제비를 쥔다는게 머절싸하게 생산대창고를 쥐었지 않겠니? 정호네랑 은희네랑은 소를 쥐었는데. 그잘난 창고를 해 뭘하니? 넣을게 있니 팔아먹기라도 하겠니? 페물이지.

  둘째 언니 금자는 큰언니가 없는 집안에서 큰 노동력으로 호도거리 농사를 해나갈 일이 벅찬지 한숨을 쉬며 갔고 난지는 평생 농사군은 면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가만히 웃어보았다.

  난 죽어도 농사를 지을 사람은 아니야!

  장 안중이가 또 왔다. 이번에는 손에 먹거리를 들고 있지 않았다. 습관이 되였을가? 난지는 좀은 서운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추석명절인데.

  그랬던가? 난지는 월병을 들고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추석명절이 닥쳐왔다는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관심이 없어서였을가? 아, 그래요? 추석이 벌써 되였어요? 난 모르고 지냈는데.

  공부를 하느라 바빠서 잊었던거야. 어서 가자. 안발자에서 살 때 보니까 너의 조선족들도 추석은 굉장히 쇠는 것 같더라. 그렇지?

  글쎄요. 저는 추석이면 생산대에서 소를 잡던 기억밖에 없어요. 소를 잡는 장정들이 소간을 생것채로 알소금에 찍어먹으면서 술을 마시던 것 하고...

  조선족들은 정말 생것을 잘먹더라. 소고기도 생것, 물고기도 생것, 노루고기도 생것. 회라고 불렀지? 생것하고 원쑤를 졌나?

  난지는 장 안중에게 안해가 없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구경하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장 안중은 안발자의 홀애비었으니까.

  장 안중의 안해는 오십대 중반을 넘어선 퇴직 공직원 여성이었다. 우파의 안해라는 심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온 여성답지 않게 풋풋하고 꿋꿋했고 기살아 있었다. 아야, 이렇게 이쁘기라구야. 애아버지가 이쁜 애라니까 공연한 수다인줄 알았더니 정말이구만. 난지라고 한댔지? 열여섯살이라, 숙녀이구만. 애아버지가 난지 아버지는 세상 없는 좋은 분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이쁜 딸을 두었네. 딸만 넷이라더니? 지금은 딸가진 사람이 부자래요. 자, 앉어요... 애, 모산아, 손님이 왔는데 인사를 안해?

  장 안중의 안해는 중국 아낙네들과 다를바 없이 수다스럽고 목소리가 높았다. 줄총을 놓듯이 터져나오는 말이 실로 꿰맨듯 술술 풀려나오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며 머리가 텁수룩하고 게을러보이나 잘생긴 총각이 나오더니 시무룩이 웃으며 난지에게 니 라이라(왔어?)를 한마디 했다. 그러고는 어머니를 도와 채를 가져다 밥상에 차리기 시작했다. 장 안중은 그러는 아들을 보며 농기계공장에 다니는데 지금은 북경의 어느 대학의 기계공학과 통신학부에서 공부를 한다고 묻지도 않는 말을 자랑스레 했다. 한어를 한족들과 못지 않게 구사할 수 있었던 난지는 자연스럽게 모산을 오빠라고 불렀고 모산도 한족들의 습관에 따라 메이메이(누이)라고 불러주었다.

  장 안중이 난지의 이름을 지어야 했고 난지가 중국학교로 다녀야 했고 다시 장 안중의 아들 모산을 만나야 했던것은 귀신의 조화라고야 만 해야 되는 운명의 농간이 아닐 수 없었다. 기가 막혀서!

  난지는 안발자라는 마을이름을 만들어지게 한, 산이라고 하기에는 싱거울만치 낮은 뒤산으로 올라갔다. 기러기의 목에 해당하는 휘우듬한 산세를 등지고 마을이 앉았고 기러기의 머리에 해당하는 동쪽끝머리에는 커다란 바위가 서있었다. 기러기의 몸둥이라 할만한 서쪽의 험준한 산앞에는 안자포자(기러기늪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늪이 있었다. 늪에는 붕어와 잉어가 많았고 붕어처럼 생겼으나 커야 어린애 손바닥만큼이나 큰, <<납지>>라고 부르는 고기가 바가지로 퍼도 잡힐만큼 많았다. 성미가 급하고 잡식성이여서 낚시밥이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물어 낚시군들에게는 성가신 놈이었다. 때때로 늪에서 메사구나 가물치가 잡히기도 했는데 언제인가 아버지가 자기 키만큼이나 큰 가물치를 잡아온 것을 보고 좋아서 주무르다가 아버지에게 걷어채우던 기억을 난지는 잊지 않고 있었다.

  시원하게 미풍이 불어왔다. 멀리서 안자포자늪의 고요한 수면이 거울처럼 안겨왔다. 산의 투영이 늪속에 비친것이 어느것이 그림자인지 가려볼 수 없을 정도였다. 늪을 옆에 하고 있었던 논밭자리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어쩌면 농사를 하고있는 논인줄 착각할 정도였다. 마을에는 아직도 여러채의 집이 남아 있었다. 영금네 집과 머리에 부스럼이 자꾸 나서 <<썩박골>>이라는 별명을 달고다니던 을석이네 집, 그리고 집체호, 우사, 둘째 언니 금자가 아버지가 머절사에게 제비를 쥐었다던 소대창고, 그리고 장 안중이 살던 집...

  장 안중의 아들 장모산은 난지를 알고나서는 자주 난지의 학교로 찾아왔다. 노루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받는 신세였으므로 자주 식당으로 데리고 다녔고 난지가 냉면을 잘먹는다고 자기는 먹지도 않는 냉면집도 자주 찾아갔다. 난지는 너무 이쁘다. 너같은 여자 색시로 만들었음 좋겠다. 그러면 난지는 오빠는 한족이잖아. 중국여자 색시로 맞아야지. 그래야 생활습관도 같고... 라고 대꾸했다. 그러다 어느날 좋은 영화가 있다고 모산이가 표 두장을 사가지고 왔다. <<이 집사람을 봐>>야.

  그래? 고마와. 나두 영 보고 싶었는데...

  그날 영화를 보는동안 모산이는 난지의 손을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서는 자연스럽게 공원으로 갔고 공원의 벤취에 앉아 모산이는 난지의 가슴을 문질렀다. 아파. 좀 살랑살랑 만져. 부서지겠어.

  히히, 깨지지는 않고?

  그럼 못만지게 하겠어.

  잘못했어. 너 가슴 너무 잘 익었어. 막 먹구싶어. 그러면서 모산이는 난지의 웃옷을 들치고 자기의 입술을 무르익은 가슴에 가져갔다. 모산이의 혀끝이 젖꼭지를 감으면서 힘있게 빠는 순간 짜릿한 질감이 하신까지 쭉 뻗왔다. 아, 아... 그만해...

  언제인가 비슷한 체험이 있었다. 집체호에 갔다가 발견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란 무엇인가를 깨치던 그 순간 이와 비슷한 전률을 느낀적이 있었다. 그날은 학교로 가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었고 낮이었으므로 난지는 집체호의 언니들과 장난하고 싶은 생각이 난동해 살그머니 집체호문을 열었다. 여자들 방문을 살그머니 땃으나 비어있었다. 싱거워진 난지가 돌아서는데 남자들 방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생긴줄 알고 난지는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이런 일 봤나?! 바지를 까내리운 진삼이아저씨와 집체호의 언니 혜숙이가 한참 남녀의 일을 치르고 있었다. 진삼아저씨는 혜숙언니의 량태머리를 거머쥐고 헐떡거리고 혜숙언니는 진삼아저씨의 허리를 잡아안고 머리를 휘저어대며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어찌나 몰입해있었던지 난지가 들어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때 난지는 처음으로 자기의 아래배를 거쳐 뻗쳐오는 짜릿한 흥분을 느꼈었다. 난지는 나가야 할지 기척을 내야 할지 머리속은 하얗게 바래워져 있었다. 일이 끝나갈 무렵에야 고조에 올랐던 한쌍은 난지를 발견하고 기절초풍을 했다. 너, 너 어떻게...

  오늘 본 일 절대 다른 사람과 말해서는 안돼. 알겠니?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해서는 안돼. 그럼 이 언니는 영원히 농촌에서 썩어야 돼. 난 난지만 믿는다. 알았어?

  그때 난지는 무수히 고개를 끄덕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때 했던 승낙을 실행해 주었다.

  모산이는 열심히 난지의 가슴을 빨았고 난지의 아래는 이미 바다가 되어 있었다. 모산이의 손이 난지의 하신으로 내려왔다. 이, 이럼 안돼.

  어느새 난지의 팬티는 내리워졌고 난지는 처녀성을 잃는 아픔을 체험했다. 나 이제 모산이 사람이야. 책임져.

  너를 색시로 맞을게. 나는 조선족여자들이 좋아. 일 잘하고 부드럽고 남편공대 잘하고. 우리 아버지도 조선족은 아주 좋은 민족이라고 하더라. 정이 많고 부지런하고 깨끗하다고 하더라. 내가 보기에도 조선족은 정말 깨끗한걸 좋아하더라. 그렇지?

  그렇기는 하지만 다 깨끗한건 아니야. 중국사람들도 깨끗한 사람들은 조선족들 뺨치겠던데 뭘.

  어디선가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고요하던 안자포자늪의 물이 떨면서 우중충한 산들이 륜곽을 떨어버렸다. 페허로 된 마을의 길위에 자그마한 돌개바람이 일며 먼지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숲이 흐느끼는 듯 설레이고 어느새 날아왔는지 검은 구름들이 여름의 화사하던 해살을 가리고 있었다. 풀벌레들의 노래가 멈추어지고 시장끼가 느껴왔다. 그제야 난지는 아주 바보스러운 착오를 범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마을이 페허로 된것을 보면서도 세낸 차를 돌려보낸 것이 시장끼를 느끼는 순간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를 절감했다. 향까지 십여리, 난지가 학교를 다니던 임장마을까지 역시 십여리었다. 이 십여리 안에서 먹거리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말 그자체었다. 정신이 빠졌어. 죽을라고 그랬나?

  이 간나야, 좀 똑똑해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았다.

  모산이와의 련애는 순탄한 편이었다. 장 안중은 난지를 며느리감으로는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안해 조씨는 탐탁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으나 확실하게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았다. 모산은 난지 앞에서 완전히 설설 긴다는 것이 완벽한 표현일 것이었다. 난지는 그러는 모산이가 좋았고 자상한 장 안중이가 오히려 친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행복했던가? 그랬을 것이라고 난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자 장 안중의 주선으로 난지는 시 복장공장으로 들어갔다. 그가 배운 전공이 패션디자인이였으므로 <<아주 잘된 것>>이었다. 출근, 첫봉, 그리고 연애, 일상은 계획이 없었음에도 계획이 되어있었다는 듯 반복이 되었다. 모산이는 풀방구리에 쥐나들 듯 난지의 공장기숙사를 보라는 듯 들락거렸고 공장에서는 좀은 이상해하는 눈길들을 보내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두 사람은 짝은 된다고 여기는 모양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련애가 결혼에까지 치달아올랐을 때 저항은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달려들었다.

  모산에게는 청화대학에서 대학원공부를 하고 출국을 할가 박사학위를 딸가 망서리고있는 누나가 있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도리대로라면 오히려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 할 그 누나가 반기를 들줄이야.

  사랑은 지극히 랑만적이고 범국제적인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시인들이나 얼뜨기 작가들이 구사하는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거야. 서로 민족이 다르다는건 문화가 다르다는 의미인거다. 문화라는건 피속에 용해되어있는 것이어서 서로 살다보면 그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문화적인 모순앞에서는 누구든지 무기력해지는거야. 옛소련이나 동구라파의 현실을 봐. 신앙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민족적인 모순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갈라지고마는거야. 너희들이 사랑한다면 축복할만한 일이겠으나 결혼까지는 가지마. 사랑으로 끝내! 그게 더 바람직할거야.

  귀신이 붙었는지 모산이의 어머니까지 여기에 합세를 해왔다. 누나의 말을 나는 모르겠다만 민족이 다르면 처음에는 좋다가도 사십쯤 되면 거의다 헤여지고 말더라. 민족이 다르면 모순이 생겨도 서로 민족이 달라 그렇다고 생각하기에 모순해결이 안된다고 하더라. 부지런하던 조선족여자도 중국남자한테 시집오면 남편부리기를 종놈부리듯 하고 여자한테 절절 매는 중국남자도 조선족여자를 안해로 맞으면 게으르기 짝이 없어진다더라. 그게 다 민족이 서로 다르기에 생기는 모순이야. 남자와 여자가 사는건 사랑 하나만 때문이 아니야.

  일이 이렇게 되자 장 안중의 태도는 영 죽밥이 되었다. 글쎄, 너희들이 좋다며는 할 수 없겠지만 어머니나 누나의 말도 참고가 될만 하구나. 결혼은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므로 랭정하게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라. 인생을 살아가는게 감정 하나만으로는 살 수 없는거다.

  누구에게나 다 진리가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만이 아무런 도리가 없는듯싶었다. 모산이는 화통을 터뜨렸다. 씨, 저렇길래 우파가 된거야. 어떻게 우파가 되였는지 알아? 우리 집에 해방전에 만든 일본제가위가 있었대. 근데 입다물고 있을 거지 무슨 회의를 할 때 일본제가위가 지금 만드는 가위보다 질이 더 좋다고 했다나. 그래서 우파가 된거야. 싱겁게. 뭐 사회주의가 만든 가위를 자본주의나라인 일본이 만든 것보다 못하다 했으니 사회주의에 불만이 있기때문이라나. 제기, 저렇게 주견이 없으니까 남들이 무작정 잡아먹은거야. 더러워서, 그 한마디에 이십년이나 죽여주 하고 살아버린거지. 난지, 사랑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거야. 그렇지 않아?

  난지가 모산이와의 결혼을 선언했을 때 아버지는 아예 말이 먹히지 않았다. 이 간나야, 시집갈데가 없어 되눔한테 가니? 너같은걸 낳고 배아프다고 지랄한 네 에미가 불상하다.

  평생 소리 한번 높이 말해본적이 없던 어머니마저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네가 뭐 모자라서 한족한테 시집가?! 그 인물에, 그 지식에, 조선족남자도 이마 두드리며 골라서 갈텐데. 미쳤다, 미쳤어. 아무리 새시대라고 민족이 변하니?

  언니들과 동생은 아주 바보를 바라보는 눈길이었다. 정신이 있기나 한가? 난지는 결혼식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백원짜리 단간방을 세맡고 모산이와 동거에 들어갔다. 누가 뭐라든 나는 내멋대로야!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하고 서쪽 하늘가가 가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난지는 언덕과 같은 산을 내렸다. 장 안중이 살던 집 앞에 이르자 갑자기 이 집이 이대로 남아서 있는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 안중이 떠난후로 이 집은 흉가로 되어 사람이 살지 않았다. 이십여년간 빈 집으로 마을의 개들이 흘레를 하다가 드나들거나 개구장이들이 숨박꼭질을 하면서 이용이 되었을 뿐 어른들은 그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언제인가 사원회의(주: 집체로 농사를 할 때 농장원을 사원이라 부름)에서 누구인가가 저 집을 허물어버리자고 제의를 해왔으나 허무는데 로력이 들고 어쩌면 사람이 살만한 집을 허문다는 것이 겸연쩍어졌는지 흉가니 망하는 집이니 하는 것은 미신이라고 일소해버리고 그대로 둔 것이 호도거리를 지나 오늘까지 버티어 온 것이었다. 난지는 자물쇠가 잠겨있지 않고 열려진대로 걸려있는 문을 밀어보았다. 문고리가 다 삭아서인지 문이 그대로 안으로 넘어지며 부옇게 먼지를 올렸다. 난지는 얼굴을 찡그리며 안쪽에 머리를 기웃거렸다. 남쪽으로 길다란 구들이 보이고 북쪽 봉당에는 무슨 잡동사니를 올려놓느라고 만들었던 통나무로 된 대가 있었다. 장 안중은 조선족구들을 중국식구들로 고쳐서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장 안중이 안발자라는 이 마을로 로동개조를 오기전, 이 집은 성이 고씨라고 부르는 전라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지리산 산자락의 어느 마을에서 왔다는 그 사나이는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가 스며든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몇달후 그 사내의 함경도 후처는 아기를 낳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숨이 넘어가버렸다. 그 후로 이 집은 흉가로 외면을 당하다가 장 안중이 오게 되자 새집을 지어줄 수도 없고 우파였으므로 당연히 그를 이 집에서 살게 하였다. 그런 것을 장 안중은 쥐도 새도 모르게 조선식 구들을 중국식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 사연의 내막을 알고 있는 난지는 아니였으나 조선족식의 집체에 한족식 구들이라는 이상한 조합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과거를 보는 듯 하여 가슴이 답답해왔다. 멀리 산넘어 어디서 번개불이 번쩍하고 구름을 그었다.

  조선족은 초식동물이가?

  중국사람들은 뭐 육식동물이야?

  난지와 모산이는 동거살림을 하면서 가벼운 다툼을 하기 시작하었다.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서로가 불편하고 서로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장 안중은 드믄히 와보았으나 시어머니가 될 사람은 코도 안내밀었다. 두 사람의 월급으로는 빠듯한 살림이였으나 시댁에서는 한푼의 지원도 하려하지 않았다. 장 안중이라고 다를바 없이 모든 경제권은 안해에게 맡기고 있었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한족들은 안해가 하라면 하는대로 한다면서 집안 일은 왜 나 혼자 몫이야? 나도 출근하는 사람인데.

  조선족여자들 남편공대 잘한다는 게 거짓말 아니야? 빨래는 내가 다 했잖아?

  빨래가 얼만데? 두 식구 빨래가 그렇게 힘들었어? 일주일에 속내의 한번 빨지도 않는 주제에. 냄새나, 모욕 좀 해!

  어느날 휘줄근해서 모산이가 퇴근해왔다. 저녁 술 좀 마시자.

  술은 무슨 술, 술마실줄 모르지 않아? 기분 나쁜 일 생겼어?

  공장이 파산했어. 호도거리를 하면서 대형농기계를 쓰는 사람이 없어졌대. 자동차공장과 합작하여 부속품 납품을 한다더니 그것도 안된대.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 나 혼자 월급으루?

  실업보조금 준대. 백 이십원.

  이튿날 모산의 집에서 소식이 왔다. 장 안중이 중풍에 걸려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었다. 모산이와 난지는 천방지축 병원으로 달려갔다. 웬일이애요?! 저를 알아볼 만 해요?

  장 안중은 초점없이 눈을 굴리더니 난지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입술이 움찔거렸다. 다만 그뿐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모산이는 화를 내고 있었다. 엄마가 나빠. 저렇게 되려면 증상이 있었겠는데 그렇게 등한할수 가 있겠어? 아버지땜에 한생을 망쳤다고 사람취급을 안했어. 초우타마(씹할것)!

  일주일 후 장 안중은 죽었고 그가 운명하는 순간 난지는 소리를 내여 울었다.

  장 안중의 추도회는 삼류소설만 써본 사람으로는 섭섭한 규모가 아니었다. 조객이 많은 것은 물론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난지는 며느리의 신분으로 조객들에게 인사를 하었다. 조객들은 비통한 표정을 짓고 난지의 손을 잡아주었다. 비통하겠습니다... 비통을 힘으로 바꾸시오... 자중하십시오...

  장례식이 끝나자 난지는 모산이에게 집으로 가. 어머니 혼자 계시지 않아? 라고 했다.

  같이 가지 왜?

  난 안가.

  어머니도 위안할 겸 같이 가는게 도리지 않아? 너두 우리 식구지 않아?

  안 간다지 않아. 그리구 이제 우리 헤여져!

  너 환장한거야? 금방 아버지 추도회가 끝났는데 그런 말이 당하기나 한거야?! 좀 충분하게 도리를 갖고 살아.

  내가 뭐 너희들 식구 책임지자고 이 세상에 태어났어? 도리 좋아하시네. 너 누나두 아버지가 죽는다는데 오지두 않았어.

  모산이는 주먹을 휘두르려고 으르렁거렸다. 마디(제길), 누나는 심수에서 일하고 있지 않아?!

  심수가 뭐 태평양 건너야? 아버지가 병나서 소식 보냈지 않아? 기차를 타도 왕복은 되겠어. 아버지가 죽어간다는데 비행기를 타면 안된대? 그만둬! 이제는 지겨워졌어. 알아? 지겹구 지긋지긋해!  그 주먹으로 한번 때려봐. 남자같은 사내었다는 인상이라도 남게스리... 난지는 바락바락 악을 썼다.

  그러나 모산이의 주먹은 끝내는 난지의 몸에 떨어지지 않았다. 밤낮 고추만 처먹더니 지독해도 고추보다 더 독해졌구나, 이년아!

  넌 밤낮 기름만 처먹어서 나긋나긋해졌니? 좆가졌다는 새끼가!

  며칠후 모산이는 엄숙한 상통을 하고 자기에게 속하는 물건을 주섬주섬 주어 모았다. 삼륜차부들이 짐을 싣기 시작하자 난지는 필요한거 있으면 다 가져가 라고 했다. 모산이는 축 처진 어깨를 추스르며 머리를 저었다. 필요한거 없어. 집에 가면 어머니와 함께 있을테니까 살림도구들은 두고 써. 이불도 그렇고. 집에 텔레비는 있으니까 네가 보도록 해. 미안해. 우린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사람들이 만난거야. 그러나 고마워. 너하고 있은 시간이 좋왔어. 정말로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후에 어떻게 할거야?

  몰라. 계획하고 산것도 아니고 계획이 있었대야 그대로 살아진 것도 아니지 않아. 좀더 따스하게 널 대해줘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했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는건 아니지만 너두 불행한 인간이야. 좋은 색시 만나서 잘 살아줘. 나같은 여자 만나지 말고.

  떠나가면서 모산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것을 바라보며 난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이 바보새끼야, 좆차고 태어났으면 어깨 좀 힘주고 살아봐!

  난지는 장 안중이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들에서 썩은 냄새가 풍겼다. 어쩌면 손가락 하나로 다쳐도 당금 무너질듯 위태위태해보였다. 창문틀이 떨어져나가 광선이 좋으련만 날씨 탓인지 집안은 음침하고 천년을 묵은 동굴같아보었다. 거미줄들이 흔들렸다. 바람이 세차지는 것이었다. 난지는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하늘에는 구름이 까맣게 덮혀 있었다. 수림이 쏴-아-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나기가 오겠구나!

  난지가 혼자서 산다는 소식을 듣고 큰언니 숙자가 찾아왔다. 나두 인제는 시내에서 살란다.

  큰언니 숙자는 미인은 아니었으나 허여 멀쑥하고 복성스럽게 생긴 여자였다. 지금 농촌에서는 모두 시내로 돈벌러 온다고 야단이다. 젊은 사람이 없다.

  애는 어쩌고?

  애는 시집에 두었다. 이제는 다시 시집으로는 안가겠다. 시집살이 지긋지긋하다, 애.

  그럼 아저씨는 어쩌고?

  너 모르고 있었니?! 죽은지 일년이다. 애두, 지금 세월에 과부로 살 수는 없지 않니?

  죽-었-어?!

  큰아저씨는 겨울에 노루옥노를 보러갔다가 옥노에 곰이 걸린 것을 보았다. 곰이 옴짝 않기에 가까이 다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고 들여다 보다가 곰이 정신을 차리고 무는 바람에 머리통이 왕창 부서져서 죽었다.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찾았을 때까지 곰은 아저씨의 머리를 입안에 가득 채운 그대로였다. 재수도 없는 사람.

  난지는 아저씨가 죽은줄은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언니는 난지의 주선으로 금방 개업한 개장집의 주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안되여 막내 인자가 들이닥쳐 언니들의 살림에 합세했다. 언니. 농촌에 남은 애들은 다 머절사 하지 않으면 빠리빠리하지 못한 애들이야. 노래방 아가씨 해도 한달에 삼천원은 번대. 그러더니 정말 노래방을 전전하기 시작했고 몇달을 하더니 큰돈을 번다고 북경으로 갔고 이듬해 구정을 쇠러 와서는 청도에서 일한다고 했다. 완전히 도시 여자가 되어버린 동생을 보면서 큰언니 숙자는 한참이나 혀를 입안에 넣지 못했다. 너 무슨 일을 하길래?

  무슨 일이든 관계가 뭐야? 돈만 벌면 되는거지. 돈이 없어봐. 잘사는 집 발바리만도 못해. 잘사는 집들에서 발바리 한마리 키우는데 한달 얼마를 쓰는지 알아? 천원이 넘어!

  그게 어디 사람이 하는 짓이니? 세상에 못사는 사람이 얼만데? 그돈 못사는 사람한테 주면 안된다니?

  언니 머리 좀 바꿔야겠어. 지금 어느 시대인데. 내 힘으로 돈벌고 내힘으로 번 돈 내 맘대로 쓰는 세상이야. 언니, 그렇게 살다가는 늙어서 빌어먹을데도 없을거야.

  설을 쇠고 청도로 돌아가면서 인자는 둘째언니 금자를 꼬셔가지고 청도로 갔다. 언니, 한나이 젊었을 때 팡팡 잘살아봐. 농촌에서 죽어 번져져봐. 환한 날이 있는가. 인생은 자기가 사는거지 다른 사람이 살아주는게 아니지 않아.

  금자는 남편을 속이고 다만 시내(주: 도시라는 말의 함경도속어)에 가서 일자리가 있는가 알아본다고 했다. 청도로 떠난후 금자는 더는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았고 남편은 찾으려는 생각조차 포기하고 있었다. 개간나새끼, 찾기만 하면 짝을 째놓겠다! 그러나 그에게는 안해를 짓이겨놓을 기회마저 없어졌다. 소문에 금자는 한국으로 갔고 거기서 지방의 어느 읍에서 구멍가게를 하고있는 남자와 아이까지 낳고 산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었다. 세상이 망하려는거다. 에익 씨, 다 망해라, 콱 망해라! 그러면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었다.

  비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바람은 기승을 부리고 비구름은 계곡을 핥으려는듯 낮게 산등성이를 핥아댔다. 우뢰소리가 으르렁거리며 귀가에서 쾅쾅 터졌다. 난지는 장 안중의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가슴에 꽉 서려 있는 불안 때문에 돌아서서 아버지가 제비를 뽑아 소유하게 되었다던 창고로 들어갔다. 서쪽벽에 커다란 구멍이 뚤러져 있어 바람이 그 구멍을 비집고 들어와 묵은 먼지들을 보얗게 휘저어대고 있었다. 갑자기 무엇이 부서지면서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장 안중이 살던 집이 보이지 않고 먼지기둥만이 광풍을 따라 밀려가고 있었다. 수십년간을 빈 집으로 터를 지키다가 이 순간에 자취를 감추려고 서두는것이 난지에게는 숙명처럼 느껴졌고 당황함과 공포를 몰아왔다. 비바람속에 사라지다...

  한겨울의 추위속을 떨면서 큰언니는 안발자로 부모를 보러 간다고 떠났다. 한식당에서 일하는 중국인 주방장을 데리고 집을 몇번 드나들더니 돈이 좀 생겼는지 멋도 좀 부리고 금목걸이도 걸어보던 언니가 고향에 가 자랑이라도 하고싶었는가고 난지는 생각했다. 달포가 지나 난지의 세집문앞에 잡동사니를 가득 실은 자동차가 멈춰서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 숙자가 내렸다. 마을이 망해가더라. 다 이사를 가고 몇집 안남았다. 죽던 살던 우리가 부모를 모시고 살자. 딸도 자식이지 않니?

  싫어! 아버지가 언제 날 자식취급을 한 적이 있어?

  그래도 자식인거야. 자식한테는 자식의 도리가 있는거 아니니? 자식 밉다는 부모가 어디 있니?

  그럼 언니가 같이 살아. 내가 떠날게.

  가다니 어딜 간다는 말이니?

  연길로 가겠어. 지금 여자들이 어딜 가서 밥먹고 살지 못할가 근심이야?

  그럼 직장은 그만두고?!

  까짓 월급 못준지도 넉달이야. 지금 직장에 붙어있는 사람이 머저리인 세월인데.

  가겠으면 가라고 해라. 저 되눔 간나하고 살다가 내가 되 죽겠다. 죽던지 살던지 안보는게 더 편하다고 해라! 아버지는 인사조차 변변히 하지 않고 간다고 떠드는 난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저애가 누굴 닮아 저모양이니? 그래도 직고(직업고중의 략어. 난지가 중국어략어만 말했으므로 어머니는 딸이 다닌 학교이름이 <직고>인줄 알고 있었다.)를 다니게 대주었더니 이제 나 몰라라구나. 자식이 애물이지. 이 꼬라지 보자고 내가 저 앨 키웠나? 가겠으면 가라고 해라. 너 신세 지지 않을테니. 어머니는 자식 키워서 무슨 복이 있느냐고 넉두리를 했다.

  이튿날 난지는 퇴직신청도 하지 않고 입던 옷가지만 꾸려가지고 연길로 떠났다. 등뒤에서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간나야, 눈앞에서 영 꺼져라!

  난지는 울고 있었다. 그래도 부모인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난지는 야금야금 저축했던 돈 삼천원을 살림에 보태라고 언니에게 맡겼다. 안녕, 다시는 이곳에 머리를 디밀지 않겠다... 그러나 난지는 이 락언을 실행하지 못했다. 수년후 아버지가 술마시고 쓰러져 위태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난지는 이 도시로 왔고 딸의 신분으로 아버지의 림종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난지에게 있어서 연길은 생소한 도시였다. 싸구려 려관에서 며칠을 전전하면서 직장을 찾으려고 돌아다녔지만 패션디자이너로서 일할 곳은 없었다. 아는 사람한테 전화를 해보아도 지금은 기업들이 경기가 좋지 않아서 사람을 쓰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깊게 사귀여온 사람은 없고 풋면목이나 아는 사람은 열정적으로 도우려 하지 않았다. 모두 먼산에 불보기었다. 싸구려 려관이라지만 하루에 이십원이 넘었고 먹고 다니고 하다 보면 하루 소비가 오십원은 들어갔다. 이제 당금 가지고 온 돈이 바닥이 보였다.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니, 돌아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세집이었고 정들어 살만한 집이 아니었다. 난지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결심을 내리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전에는 거들떠도 안보던 식당이나 노래방의 문에 붙어있는 <<복무원모집>>이라는 포스터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우아하게 인테리어를 한 출입문위에 <<고구려노래방>>이라는 상호가 커다란 샘물체로 붙어있고 그 아래에는 <<고구려종합복무유한공사>>라는 글이 있었다. 출입문 옆 벽에 컴퓨터로 타자한 글씨로 <<직원을 모집함>>이라고 붙어 있었다. 좀은 망설이다가 난지는 문을 밀었다. 머리를 짧게 깍은 이십대의 총각이 난지를 보고 어서 오십시오. 몇분입니까? 했다. 난지가 아, 아닌데요.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왔어요. 라고 하자 총각이 아가씨 할라고 그램까? 했다.

  그렇다고 하려다가 난지는 머리를 저었다. 직원을 모집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총각이 아가씨는 필요한데 다른 건 모르겠슴다 하는데 난지의 등뒤에서 서울말씨로 손님하고 그런 말투를 써서 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각의 눈이 내리 까지고 허리가 굽혀졌다. 사장님이십니까? 일자리를 찾는 사람임다.

  난지가 돌아서자 보통 키에 오동통한 사내가 서 있었다. 마주보는 눈길에 자신감이 보였고 세련미가 풍겨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데요.

  사내는 사람이 민망스럽지 않을 정도의 시간동안 난지를 흩어보았다. 그러세요? 그럼 사무실로 가요. 그러면서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웃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은 작았으나 아담하고 실용적으로 꾸며 있었다. 가구들에 싱싱한 냄새가 잦아있었다. 앉으세요. 사장이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사무상에 앉으며 난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학교는 어딜 나오셨지요?

  직업고등학교까지요. 전공은 패션디자인이였어요.

  오, 저희 회사는 패션하고는 관련이 없는데요, 알고 들어오셨겠지요? 접대아가씨가 필요하긴 한데 거절하시는 것 같던데요?

  녜, 패션하고 관련이 없더라도 괜찮지만 사무직이나 다른 기타라면 자신이 있어요.

  사무직에는 자리가 없습니다만, 말씨가 틀리는데 고향이 연변이 아니세요? 사장은 약간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래요. 연변과는 좀 떨어진 곳이얘요. 부모는 경상도가 고향이었구요.

  사장의 얼굴에서 가느다랗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한고향 사람이네요. 그런데 우리 말을 참 잘하시는데요? 그쪽 사람들은 중국말은 잘하던데, 우리 말은 잘 못하는것 같던데요?

  어려서부터 조선족마을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러나 조선글은 쓸줄 몰라요. 볼 수는 있지만.

  사장의 얼굴 미소가 웃음으로 번져갔다. 중국이니까 중국글만 깨쳐도 괜찮겠더라구요. 지금 저희 노래방에 카운터 직원이 필요하기는 한데요, 어때요?

  카운터? 해본적이 없는데요. 배울 시간만 주신다면 해볼 생각이 있기는 해요.

  사장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가져갔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 성실하면 되는거애요. 연변 여자들은 성실하지 못해서 믿음이 안가요. 고민이었는데... 해보실래요?

  난지는 고개를 끄덕었다.

  하나둘 비방울이 떨어지는 빈도가 높아지더니 산 저쪽에서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사위는 거멓게 죽어가고 빗줄기가 휘뿌려지면서 눈앞이 부옇게 흐려왔다. 와당탕, 와당탕 우뢰가 터지고 세계말일이 닥친듯 하늘과 땅은 빗물속에서 하나가 되어버렸다. 오래동안 수선을 하지 않은 지붕을 뚫고 빗물이 새기 시작했다. 누런 빗물이 후둑후둑 떨어지더니 잠간새에 밖에서 내리는 빗물과 다를 바 없이 내리부었다. 갑자기 난지는 이 집안이 소나기를 피하는 집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더욱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난지는 튕기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람이 치마를 감아올렸다. 후려쳐지는 빗물에 얼굴이 얼얼해나고 원래 얇은 여름옷이 온 몸에 착 달라붙었다. 난지는 페허로 된 고향마을에서 이 무서운 소나기를 피할 곳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가슴에서 한없이 커다란 외로움과 슬픔이 솟구쳐 올랐다. 엄마-아!

  한국인 김사장의 말과 같이 노래방의 카운터를 본다는 것은 성실하면 되는 것이었다. 언제나 꼭 같은 품목 몇가지, 그리고 보충되는 맥주나 안주들을 잘 적으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때때로 들이닥치는, 맥주 한 박스씩 처마시고는 돈 백원짜리 한장을 내려고 깡을 부리는 손님과 실랭이를 하는 일이 불쾌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습관이 되고 미립이 트자 방법도 생겼다. 노래방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아가씨들과 서서히 면목도 익혀졌고 그들의 삶에서 어떤 우월감까지 느껴가면서 난지는 성실할 만큼 성실하면서 일해갔다. 김사장은 하루의 영업액을 체크하면서 난지씨 수고 많았어요 라고 했다.

  평범한 날이었다. 손님중의 한 중년남자가 유심히 난지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쁘다는 소리를 들을만 했던 난지는 그런 눈길에 습관이 되어 있었다. 난지? 소리가 들렸다. 난지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 보기만 하면 난지의 머리를 다독여 보고야 물러서던 집체호의 아저씨,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진삼아저씨!

  그래 네가 맞구나! 면목이 있다 했더니. 언제 연길에 왔니? 난지라고 부르는거 맞지?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너희 집은 딸이 넷이었다. 몸이 금방 부풀기 시작한 진삼아저씨는 반색을 하며 두서 없이 묻고 있었다. 이십여년 전의 파랗던 진삼아저씨가 지금은 완전한 중년남자로 되어 있었다. 너두 인젠 서른살이 되었겠지? 결혼이랑 했겠구나. 그러면서 진삼아저씨는 손님들에게 불려 룸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좀 있다가 애기 하자. 반갑구나... 했다.

  그후로 진삼아저씨는 손님들을 데리고 몇번은 더 왔고 올 때마다 난지의 어깨를 툭 쳐주며 네가 카운터를 본다니 더 오고 싶다. 아무데서나 돈은 그만큼 파는데 여기에 와 파는게 더 마음이 편하다 라고 했다.

  어느날 진삼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난지니? 잘 지내는거지? 나 오늘 친구들 모임이 있는데 와주겠니? 오래동안 와 있었는데 한번도 맛있는 것 사주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조용히 한번 이야기라도 나누자.

  난지는 진삼아저씨가 약정한 음식점으로 갔다. 문밖에서 진삼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다가 난지를 보고 반가와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잘 왔다. 제대로 찾겠는가 근심했댔다.

  옛식 조선족농가를 본따 인테리어를 한 음식점은 고풍스럽고 소박하면서도 친근감을 주었다. 진삼아저씨는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난지를 소개했다. 농촌에 하향했을 때 한마을에서 살던 애라네. 그땐 영 쪼꼬만 계집애였는데 지금은 보시는 바와 같이 이쁜 숙녀로 자랐네. 그리고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난지를 소개했다. 어디의 경리고 주임이고 부장이고 하는것이 사회의 주역들이 된, 여유있는 중년남성들의 모임이었다. 그속에 어느 다방이나 가계의 주인 여자들이 끼어 있었다. 돈냄새들이 물신 풍겼고 근심걱정 없이 인생을 즐기는, 목소리를 높이며 살아가는 그런 유한 여자들인 것 같았다. 난지의 젊음과 이쁨에 한순간의 적의같은 것을 보였으나 술이 몇순배 돌자 그런 불신과 적의는 사라지고 친절하게 동생이라고 불러주었고 난지는 되는대로 돌아가며 언니라고 부르며 술을 따랐다. 김언니, 조언니, 박언니, 장언니...

  술상이 끝나자 연길 사람으로는 거의 판에 박은 메뉴인 노래방으로 갔다. 난지의 체면을 고려하여 일동은 <<뉴코리아노래방>>이라고 부르는,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고 현대적 기분이 다분한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방에 근무하는 난지었지만 손님으로는 처음으로 노래방에 간 그였다.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들을 추었다. 이런 파티가 종종 있어 서로가 잘 아는 사이인지 중년의 남자들로는 점잖치 못하게 춤을 추면서 여자들의 젖가슴을 슬적슬적 만져댔고 여자들도 습관이 되었는지 지려 하지 않고 남자들의 그쪽에 서슴 없이 손을 가져갔다. 그래서 간간히 웃음들이 터져나오고 속된 상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난지로서는 중년들의 이런 파티가 처음이었으므로 신기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그의 파트너가 되어 있는 진삼아저씨가 점잖게 춤을 추고 다른 동작을 하지 않았기에 난지는 다른 사람들이 장난질하는 것을 재미있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저씨들은 너무 재미있어요. 이런데서는 꼭 이렇게 놀아요?

  다 그런건 아니다. 특수한 구룹에만 이렇게 방자하게 노는거지. 이제 연길이라는 도시에서 오래 살다보면 습관이 될거야.

  질탕하고 방자하고 질척했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을 끌어 놀지는 않았다. 둬 시간 가량이 지나자 누군가가 인젠 일어나지 라고 하자 누구든 항의 없이 그래 그래야지 하고 미련 없이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자 서로의 작별인사가 끝나자 진삼아저씨가 난지의 어깨를 감아안았다. 우린 어데가서 좀 이야기나 하다가 가자. 아직 우린 길게 이야기한 적도 없구나.

  목소리가 부드럽고 웃사람의 인자함이 따스하게 난지의 가슴에 닿아왔다. 난지는 노래방에서의 흥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전 오늘 하루 청가를 맡았으니까 아무래도 괜찮아요.

  클래식음악이 있는 다방에서 그들은 마주 앉았다. 부조가 있는 벽에서 부드러운 조명이 탁자우에 떨어지고 은은한 음악속에서 쏘파에 배여있는 가죽냄새가 기연가미연가 떠오르고 있었다. 난지는 뭘로 하겠니? 저녁이니까 난 커피는 그만 두고 차로 하련다.

  저두요. 못하는 노래 자꾸 했더니 목이 타요.

  레지가 작은 찻잔과 깜찍한 차주전자를 가져다놓고 가면서 맛있게 드세요. 했다. 급하게 차주전자에 손을 가져가는 난지를 보면서 진삼아저씨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좀 기다려. 차가 우러나게.

  갑자기 그들과 몇상 떨어진 좌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왔다. 삼십대의 남녀들이 자기들의 기분에 젖어 여자들은 깔깔거리고 남자들은 쿡쿡거렸다. 그것에 눈살을 찌프려 보이고 진삼아저씨는 주눅이 든 고양이처럼 옹송그리고 있는 난지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야기 좀 해라. 연길에는 어떻게 오게 되였니?

  진삼아저씨의 목소리가 그토록 부드럽게 들려왔다. 난지는 좀은 장황하게 연길에 오게 된 경과를 이야기했다. 다 듣고나서 진삼아저씨는 한숨을 지었다. 고생 많았겠구나. 연길에 있는 줄 알면서 찾아나 볼거지. 너두 고지식한 애구나. 그래가지고 연길에서는 살기가 힘들어. 대낮에 코 베어가는 세상인데.

  아저씨를 찾으려 해도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 수가 있어요? 그리구 이젠 이십년이 다 되지 않아요? 그동안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있겠어요.

  진삼아저씨는 회억에 잠길 수 있는  것이 즐거운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래, 이십년이 다 되는구나. 그때 넌 병아리 같은 계집애였는데... 결혼은 했댔니? 안했어? 하긴 지금 결혼하려는 여자애들이 몇이나 된다고... 지금 월급은 얼마나 받니? 힘들지는 않아?

  힘들지는 않아요. 월급은 처음 오백원을 받다가 지금은 육백원을 받아요.

  진삼아저씨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머리를 저었다. 그것가지고 화장품값이나 되니? 먹구 자는건 회사에서 책임져준다 해도 그것으로는 힘들걸. 연길은 소비가 많은 도시여서 웬만한 여자애들도 중국제 옷은 입어도 안보아. 연길은 좀은 환장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지.

  난지는 진삼아저씨의 말을 듣고 어린애처럼 웃었다. 아저씨도 연길사람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나도 환장은 한 사람이지. 나라고 뭐 다를데가 있는 줄 아니? 환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데.

  난지는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진삼아저씨가 아버지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연길은 생기가 있는 도시같던데요? 무어나 분위기 있고 사람들도 통이 크고.

  진삼아저씨는 어린애를 어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네가 연길을 모르고 노래방에만 근무했기 때문이야. 도시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런 것 만은 아닐거다.

  레지를 불러 더운물을 더 붓게 하고 그러는 동안에 이야기는 두서없이 이쪽 저쪽으로 오가고 시간 가량이 흔적없이 사라져갔다. 시계를 보며 진삼아저씨가 우습꽝스럽게 눈을 치떴다. 이젠 갈가? 늦었구나. 넌 회사로 돌아가려니? 늦었는데 우리 집으로 가도 괜찮고.

  난지에게는 진삼아저씨를 만났을 때부터 묻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혜숙언니 잘있어요?

  진삼아저씨는 난지를 보면서 아래 입술을 살작 깨물었다. 글세, 잘있겠지. 지금은 대학교의 교수님이 되였어. 할머니처럼 많이 늙었지. 너 집체호 때 일을 기억하고 있구나?

  난지는 얼굴을 붉혔다. 아니, 그저 묻고 싶었어요.

  언젠가 만났는데 너를 참 똑똑한 애라고 하더라. 자, 일어나자.

  택시안에서 진삼아저씨는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나 집사람은 한국에 간지 몇해 돼. 애는 외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지금은 나 혼자 사는거야. 부담 갖지 마.

  진삼아저씨의 집은 탄탄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부귀가 가득차 있었다. 인테리어에 딸린 가구들이 생기있는 색갈을 내뿜고 운치를 낸 그림들과 족자들이 몇점 걸려있었다. 당당했으나 화려하지 않았고 책장에 꽂힌 책들은 경영학 위주로 위인전기들과 중국의 력사를 재조명한것들이 주역을 하고 있었다. 집이 너무 좋네요!

  진삼아저씨는 옷을 벗어 옷장에 걸면서 잘사는 집은 안되지. 너무 못한건 아니고 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모콘을 쥐고 텔레비를 보겠니? 하고 물었다.

  재미있어요?

  진삼아저씨는 이모콘을 눌렀다. 화면이 밝아지면서 서울말이 울려나왔다. 대선을 앞두고 여, 야 쌍방은 색갈론에서 공방을 거듭하다가...

  한국텔레비애요?!

  응, 위성방송이야. 내가 먼저 사워를 할테니까 좀 보고 있어라. 냉장고안에 과일도 있고 마실 것도 있으니까 꺼내 먹어라. 옷도 벗고.

  난지는 냉장고에서 한국산 쥬스를 꺼내 마시며 텔레비를 보기 시작했다. 생각과는 달리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진삼아저씨가 샤워를 하는 소리가 났으나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마음은 평온하고 시름이 없었다. 마치 자주 다니던 친척집에 온 듯 안온한 기분이었다. 욕실에서 나던 물소리가 멎고 진삼아저씨가 남은 물기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왔다. 욕의를 걸친 모습에 년장자의 당당한 풍채가 풍겼고 젊은 시절 오래동안 체력로동을 해온 탓인지 근육들이 무성한 것이 보기에 좋았다. 너두 샤워하렴. 욕의는 욕실 안에 있다. 집사람이 입던건데 너한테 맞을거다. 그리구 여성용화장품도 화장대의 작은 서랍에 있다. 알아서 쓰거라.

  난지는 욕실에서 천천히 옷을 벗었다. 거울에 라체의 모습이 이쁘게 빛나고 있었다. 자주 사우나에 다니기는 하는 난지였지만 이렇게 혼자서 자기의 라체를 흠상하여 보기는 처음이었다. 몸매도 고르러웠고 다리도 미끈했다. 농촌에서 자랐지만 농촌 일이라고는 방학간에나 해본 난지로서는 몸매가 흐트러질 사이가 없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가슴은 탄탄하게 내밀고 있었고 아래배가 약간 볼록한 것이 오히려 성적으로는 더더욱 매력이 있어보였다. 난지는 오래동안 몸을 씻었다. 씻는다기보다는 자기흠상에 빠져 어루쓸었다는것이 정확할 것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난지는 화장대의 작은 서랍을 열었다. 로션, 크림, 화장수, 여성들이 쓰는 화장품은 하나의 품목도 빠짐이 없이 다 있었고 일체 한국제 아니면 일제였다. 화장품에 대하여서는 집착한다고 할 만한 난지었지만 그로서는 이 많은 화장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난지는 호 하고 한숨을 지었다.

  연미빛 욕의를 입은 난지가 욕실에서 나올 때 진삼아저씨는 잠간은 눈이 부신듯 눈에 힘을 주더니 팔을 벌렸다. 너 정말 미인이구나. 물에서 나온 연꽃같이. 오나, 나좀 안아보게.

  난지는 이미 약속이라도 있은 듯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진삼아저씨의 무릎에 앉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저씨, 제가 정말 이뻐요?

  이 바보야, 난 이젠 젊은 여자면 이쁘다 라는 생각을 할 나이야. 하물며 너처럼 정말 이쁜 애야 말할 것이 있겠니? 진삼아저씨는 말하면서 난지의 폼있는 허리를 감아 안았다. 애기같구나.

  난지는 튼튼하고 한없이 넓어보이는 진삼아저씨의 가슴에 자기의 촉촉한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이나 격동으로 뛰는 소리가 아니라 률동적이고 박자가 고르러운 박동소리었다. 이 가슴이 너무너무 자애롭다고 난지는 생각했고 이 가슴에 오래도록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다고 난지는 자기에게 속삭였다. 아저씨, 저는 아저씨가 아빠처럼 느껴져요.

  진삼아저씨는 가볍게 난지의 눈가에 입술을 스치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마음대로 하렴.

  아니, 아빠는 싫어요.

  진삼아저씨는 하나의 예술품을 흔상하듯이 오래도록 난지를 애무했고 난지의 몸과 정신이 하늘에 뜬듯 허공에 떠버렸을 때에야 조급함이 없이 그의 몸에 들어왔다. 몇번이고 혼백이 다 날아나는듯한 절정이 있었다. 처음으로 난지는 중년남자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았다. 모산이는 젊었다지만 너무 서투르고 성급하게 성에만 매달려 있었으나 진삼아저씨는 성을 즐거움으로 리드해 나가고 있었다. 아저씨, 행복해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오빠라고 부르고싶어요.

  진삼아저씨는 한쪽 팔로 난지를 안고 한쪽 손으로는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오빠라면 서로가 어색해질거다.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그게 서로에게는 편할거니까.

  난지는 진삼아저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손으로 가슴의 봉긋한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나 아저씨 애기 낳고싶어요.

  바보야, 중년남자에게 집착하지 마. 그것이 유부남이고 어렵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 그래. 책임앞에서 중년사내는 다 한걸음 물러서게 되어 있는거다.

  아니얘요. 아저씨는 그렇지 않을거야요. 저는 그렇게 믿어져요.

  진삼아저씨는 스치듯 미소를 지었다. 나도 중년남자임은 틀림이 없는거다. 정열적인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많이 세상을 알아버렸어. 그만큼한 정열도 없고. 우리 세대는 이미 이 사회에서 자리를 낼 준비를 해야 하는 세대야. 얻은 것은 버릴 수가 없어진 세대지. 너하고 나는 년령적으로 틀려.

  그럼 애인하고 말래요. 연길 사람들 좀 한다 하면 다 애인이 있다면서요?

  그래도 안돼. 너는 너로서의 인생이 있는거야.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니까. 너는 너대로의 인생을 살아야 돼. 나한테 구속받을 필요도 없어. 언제든지 좋은 상대가 있으면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돼. 알았니?

  녜. 난지는 얼떠름해서 대답했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아저씨를 꼭 잡아둘래요.

  그럼 그래 보렴. 진삼아저씨는 난지의 머리를 헝클어 놓으며 웃었다.

  이튿날 아침 난지는 아침상을 정성껏 차려놓았다. 어딘가 긴장해져서 진삼아저씨의 평을 기다렸다. 차려놓은 밥상에 앉으면서 진삼아저씨는 놀라는 눈길을 보냈다. 재간이 있구나. 김치찌개까지 할줄 알고... 훌륭한 주부가 되겠다. 오래만에 여자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사는 멋이 있는 것 같다.

  너무 춰주지 말아요. 그럼 부끄러워지거든요. 난지는 진삼아저씨의 어깨에 매달리며 까불었다. 이제 그냥 식사 차려드릴게요.

   아침식사가 끝나 커피를 마시며 진삼아저씨가 난지의 손을 끌어다 자기의 옆에 앉혔다. 너 그냥 노래방에 출근하려니?

  그렇지 않구요? 당금 할 일도 없지 않아요?

  알았다. 그 일 그만 두도록 하여라.

  그럼 아저씨가 절 먹여살려요?

  바보같으니라구. 내가 뭐 천만금 부자인 줄 아니? 너 절로 무언가를 해보라는거지. 나하고 거래가 있는 한국 사장이 한국상품전문점을 꾸리면 어떻겠는가 문의를 하더라. 네가 맡아서 경영해봐. 월급받기보다 나으면 되는거야. 일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해봐라. 자금은 내가 일시 대줄테니까...

  난지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비바람은 사정없이 난지를 후려쳤다. 머리우에서 번개가 치며 꽈르릉 우뢰가 터졌다. 안돼! 난지는 소리를 지르며 창고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빗물과 함께 집이영을 이었던 지푸라기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난지는 이 집도 이제 당금 무너져내리리라는 예감에 튕기듯 다시 밖으로 뛰여나왔다. 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어데로 갈곳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은 신음하는 수목과 풀들 뿐, 그의 주위는 페허만이 빗바람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살려줘요! 난지는 무릎을 꺾고 땅에 꿇어앉았다. 길다란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진삼아저씨의 말대로 한국상품전문점을 경영하면서 월급받기보다는 수입이 좋았다. 경험이 없고 미립이 트지 않아 처음에는 조마조마 했지만 연길 사람들이 한국상품을 선호하고 들어오는 상품도 괜찮은 것들이었으므로 차츰 경영은 호황을 보이기 시작하었다. 직원도 하나 더 두고 지경리(사장의 다른 이름)라는 호칭도 받아보면서 난지는 파아랗게 돋아나는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동남아경제위기가 터졌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난지는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로 평안한 마음으로 텔레비 뉴스를 보군 하였다. 그러나 그 위기는 한국으로 파급이 되어갔고 끝내는 IMF라는 충격파가 난지의 전문점을 덮쳐왔다. 상품을 대주던 한국사장은 난지의 상품 예약금조차 갚을 수 없이 부도가 나 한지로 나앉았고 시장은 불경기에 빠지면서 침체되는데 IMF를 타고 한국의 재고품이고 처리품이고 싸구려상품들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모든 것은 적치, 적치, 적치었다. 하루의 매상이 푼전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아저씨, 이러다가는 아저씨 본전까지 다 말아먹게 생겼어요!

  흑색의 나날이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진삼아저씨의 사업도 갈수록 심산이었다. 주요한 수입국이던 한국이 그 모양이니 계약실행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근데다 어음은 근심없이 리자만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이럴 때는 일하기보다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더 총명한 방법일 수도 있는거다.

  난지는 모든 상품을 본전만 된다면 다 처리해버리고 가게의 문을 닫았다. 임대 맡은 건물의 예약금을 받고 난지는 진삼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아저씨, 임대예약금 받았어요. 근데 왜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야, 전화 잘했다. 그러잖아도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어.

  다방에서 난지는 진삼아저씨에게 돈을 내놓았다. 본금은 다 찾았어요. 집주인이 계약일자가 안되었다고 주기 싫어하는걸 겨우 달랬어요.

  진삼아저씨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난지가 내놓은 돈을 도로 난지 앞에 밀어놓았다. 내게 그 돈은 큰 돈이 아니야. 그동안 직업도 없겠는데 사는데 보태 써라. 그리구 인제는 가게에서 잘 수도 없으니 세집을 맡을 생각을 해라.

  아저씨네 집으로 가지요 뭐. 아침 식사도 해 드리게. 난지는 응석을 부리고 싶어졌다.

  진삼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저었다. 며칠은 될 수 있을거야. 다음달 초에 한국에서 집사람이 돌아온대.

  아주머니가요?!

  그래, IMF때문에 돈벌이가 안된대. 그래 돌아올 결심을 했다고 전화를 하더라. 아마 너하구 일이 어떻게 귀에 들어간 눈치더라. 그래서 서두는지 모르지.

  난지는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기둥처럼 믿었고 그처럼 의지가 되던 아저씨었다. 언제나 만나면 안온함을 가지고 푸근해지던 난지었다. 그럼 리혼해요. 저하구 살아요! 아저씨 절 사랑하는거 아니얘요?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리혼했다 하더라도 너하구는 못살아. 인간은 이상으로 사는게 아니라 살아졌기때문에 사는거야. 우린 생명자체의 법칙을 어길 수 없게 생긴 동물이야. 사랑이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하는 물건은 아니라는 걸 알아둬.

  언제나 아저씨한테 기대고 살고 싶었어요. 그동안 의지가 되어 살았는데 이제 전 어떻게 해야 돼요? 난지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끝없이 슬퍼지고 외로워지는 자기를 보며 난지의 눈물은 샘으로 솟구쳐 올랐다. 나 죽고 싶어요.

  진삼아저씨는 들먹이는 난지의 어깨를 끌러안고 한동안 침묵을 했다. 그로서도 어떤 안위의 말이 막혔는 모양이었다.

  난지가 울음을 그치고 정서를 안정하자 진삼아저씨는 두 손으로 난지의 얼굴을 받치더니 자기에게로 돌렸다. 너 한국에 시집을 가겠니? 오래전부터 거래가 있던 한국사람이 자기 조카한테 연변처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어. 너를 소개할가 하다가 옆에 두고 싶어 여지껏 말을 꺼내지 않았댔다. 사람이 성실하고 차분하대. 지방이여서 그렇지 직장도 좋대. 안해는 교통사고로 잃고 세살짜리 여자애는 부모들이 키우고 있다더라....

  난지는 진삼아저씨의 목을 안은채 죽어라고 머리를 저었다. 싫어요! 저 시집 안가요. 아저씨 애인이 되든 종이 되든 아저씨하고 같이 있을래요!

  그날밤 난지는 진삼아저씨네 집에서 잤다. 괴롭고 지루하고 구슬픈 밤은 눈물로 밤을 새운 난지는 새벽에 일어나 오랜 시간을 들여 조반을 지었다. 밥상앞에 마주앉아 까맣게 죽은 얼굴로 진삼아저씨를 마주보며 난지는 힘겹게 한마디를 했다.

  나 한국 시집갈게요!

  피할 길 없는 이 비바람 속에서 난지는 차츰 자기의 존재를 잊어갔다. 빗물이 내를 이루며 흐르는 땅위에 무릎을 꾼 그대로 난지는 하늘에서 무엇이 내리든 아랑곳 없다는 듯 미동하고 있었다. 어디서 거센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골물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난지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차거운 빗발이 얼굴을 후려쳤다. 난지는 그 빗물이 시원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 노아의 방주를 생각했다.

  살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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