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호(유한대 총장.국제동아세아공동체학회 공동대표)

 우리는 동아세아공동체를 흥부전 모델로 접근하기를 좋아한다. 봄이면 제비는 한국이나 중국 중부 이북으로 날아들지만 추위가 다가오면 동남아로, 중국 남부 따뜻한 곳으로 날아간다. 동아세아는 사람들이 국가의 국경으로 갈라놓았지만 철새들이 계절 따라 이동하며 사는 공동생활경제권이다.

 흥부전의 제비도 동아세아 철새공동체의 한 철새이다. 동북아 각 곳으로 떠나 살던 제비가 늦가을이면 동남아로 모여들어 각 곳의 온갖 정보가 집합되고 그 정보의 하나로 흥부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리고 제비는 「박씨」를 물고 중국을 거쳐 황해를 건너 조선 천지를 돌다가 남원을 거쳐 흥부집 마당에 박씨를 떨어트린다. 「박씨」에는 제비가 각 곳을 돌며 수집한 모든 정보가 내재된다. 흥부가 그 「박씨」를 키워 「대박」이 열리고 그 대박에서 흥부전의 이본(異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동북아의 온갖 특산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날 기업은 한국이든 중국이든 베트남이든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곳으로 이동하여 기업활동을 하는 철새경제권의 철새기업이다. 줏대 없이 왔다갔다 하는 정치인을 철새정치인이라고 하는 것은 철새를 모르고 하는 잘못된 비유이다. 철새가 가장 많이 모여들게 하는 곳이 철새고을이고 기업이 가장 많이 모여들게 하는 곳이 부자지방이다.

 사람도 철새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는 지역을 공동시장(Common Market)이라고 한다. 나는 정부에 들어갔을 때 3D 업종에 외국의 저임금 노동자가 몰려오는 나라가 아니라 고급 기술인력이 몰려오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골드카드제를 실시하였다. 전문기술 능력이 인증되면 골드카드를 주어 자유롭게 한국을 드나들며 자유롭게 활동하고 어디에든 취업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현재 약 8000명의 러시아 기술자, 인도 IT전문가들이 골드카드를 받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이 제비이다. 이 제비는 박씨를 물고 온다. 만일 동아세아 전체에 골드카드제를 실시하고 한국에 그 인증본부를 두면 어떠할까. 아마도 농산물 제약이 많은 FTA보다 훨씬 쉬우면서 산업의 엄청난 재편과 경쟁력의 비약이 가능하지 않을까.

 서울 어느 길거리에 『제비가 박씨 물고 오는 집』이란 찻집이 있다. 간판에 끌려 들어가 보았다. 그 찻집에 들어오는 모든 손님이 제비이다. 주인은 처음 보는 제비를 반겨주었다. 먼저 냉수 한 잔을 주며 새벽에 산에서 직접 길어온 약숫물이라 했다. 판소리 음악이 아늑하다. 지리산 야생녹차를 정성스레 다려 질감 좋은 찻잔에 내어놓는 범절이 예사롭지 않다. 한과도 내놓는 정성이 흥부가 상처난 제비새끼 돌보듯 한다. 손님마다 이렇게 정성을 쏟으면 피곤하지 않느냐고 하자 “복이지요.”하고 웃는다. 나는 그 찻집에 가끔씩 들른다. 때로는 여럿이고 때로는 모임도 갖는다. 그 찻집에 전시회가 열리면 돈 있는 친구들에게 권하여 사주기도 한다. 나도 그 찻집에 박씨 물고 오는 제비이다. 이 찻집에 오는 모든 손님이 박씨 물고 오는 제비가 될 수 있다.

 박씨를 물고 온다는 대가를 기대하고 정성껏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대하면 결과적으로 박씨를 물고 온다. 한국에 오는 모든 방문자, 모든 기업이 박씨 물고 오는 제비가 될 수 있고 동아세아지역에 오는 세계의 기업, 인재, 정보, 돈이 모두 박씨 물고 오는 제비가 될 수 있다.

 모든 박씨는 흥부처럼 정성을 다하면 대박이 될 수 있다. 언젠가 내가 강의 중에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돌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라고 실언해버렸다. 학생들의 폭소를 듣고서야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으나 순간 이 실언이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차돌맹이에서 반도체가 나오지 않는가. 은행잎에서 징코민이 나오지 않는가. 바닷가에 지천으로 많은 게 껍질에서 키토산이 나오지 않는가.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은 다나까라는 젊은 과학자가 회사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다가 큰 과학적 발견을 하게 되었는데 “조롱박에서 황소가 튀어나오더라.”고 했다. 조롱박이 대박이 된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어느덧 「티끌 버려 태산」이 되더니 「쓰레기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하고 요즘 도시쓰레기는 에너지, 희귀 금속, 비료 등을 뽑는 「도시광산」이 되고 있다. 쓰레기에서도 대박이 터지는 것이다. 뉴질랜드에는 굉장히 높은 벼랑이 많은데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것 같던 벼랑을 이용하여 번지점프 산업을 발전시켰다. 벼랑에서도 대박이 나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순신 장군도 남해의 울돌목의 거친 물살을 이용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지금은 그 물살을 이용하여 조류발전을 일으킨다고 하니 거친 조류에서도 대박이 터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흥부기행」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다양한 「박씨」에서 「대박」을 터뜨린 사례를 목격했다. 인산동천에서 소금을 대나무로 구워 죽염을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사례라든지, 구례군에서 지리산 야생화에서 세계 최고급의 향수를 개발한 사례라든지, 괴산군에서 생태농법으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라든지, 함평에서 나비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라든지...... 얼마든지 많다. 이 세상에 뻔한 게 없다. 우리가 방법을 모를 뿐이다. 세상에 수많은 생물 중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활용하는 것은 2~3% 이내이고 대부분은 어디에서 대박이 터질지 모르는 「박씨」일 뿐이다.

 과거 70년대 근대화 열기가 한창일 때 나는 흥부 죽이기에 앞장선 적이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자기 유산도 못 챙기고 자식은 많이 낳아 책임도 못 지고 제비에게 박씨를 얻어 부자가 되었다는 타력의존적, 신비주의적 흥부상은 젊은이의 모범이 될 수 없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다가 근대주의나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식이 자라면서 흥부 긍정론, 놀부 비판론에 기울게 되었다.

 언젠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방한 인터뷰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귀하의 활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나에 대한 무관심이 내 활력의 원천이오.”라는 대답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렇게도 재미없이 읽은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온통 나라 걱정, 병사 걱정, 어머님 걱정 뿐인데 정작 자신의 처지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 책이 새삼 감동적이었다.

흥부의 자신에 대한 걱정은 흥부전 어느 구석에도 없다. 젊을 때는 동네 궂은일은 도맡아 하던 사람이라 유산 챙기는 일에는 관심도 없었다. 가족의 굶주림에 대한 책임감에 대신 매 맞는 일도 힘든 줄 몰랐다. 자신을 때리는 형이나 형수의 팔 아픈 것을 걱정하지 자신의 아픔은 관심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는 무소유인이다. 젊을 때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유산 챙기는데 관심이 없었고 대박이 터진 후 제 일성이 “대문을 활짝 열어라. 가난한 이를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놀부가 대박을 터뜨린 비법을 묻자 노하우를 다 가르쳐준다. 또 대박에서 나온 가장 진귀한 보물도 놀부에게 아낌없이 준다. 「돌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창조적 혁신가이면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무소유인이다.

세계사에서 16세기를 연 인간상은 돈키호테적 인간상이었다. 17~8세기를 연 인간상은 로빈슨 크루소적인 인간상이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는 카우보이적 인간상이 열어나갔다. 이제 21세기는 어떠한 인간상이 열어나갈 것인가. 나는 흥부적 인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21세기의 인간은 권리개념이나 권리의 행사를 위한 자유보다는 책임개념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사회와 자연환경, 그리고 이웃에 대한 책임의식이 중심이 되는 인간이다. 흥부는 젊은 시절부터 「춘하추동 사시절에 남의 일만 모두 다 하는」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에 젖어 있었으며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온갖 고초를 피하지 않는 자세를 견고하게 갖고 있었으며 부자가 된 다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아...... 오늘부터 기민(饑民)을 헐란다.”고 하고 부자의 책임을 다 한다. 그는 책임개념으로 산 인간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책임의식은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는 뱀에게 쫓기는 제비를 구해주는데 지극한 가족사랑과 같은 경지를 보여주면서 뱀에 대해서는 “무정타, 저 대맹아. 너 먹을 것 많았구나. 어이타 내 집에 와서 제비새끼를 먹느냐.”하고 꾸짖어 쫓는다. 뱀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H. 소로의 『월든』에서 고슴도치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경지이다. 이것은 자연계의 생물 간의 삶의 관계를 인간이 질서유지자로 역할하는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비며 박을 키우는 정성이 가족사랑의 모습이다. 자연생물계의 일 구성원으로 생명 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한 환경책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불란서의 철학자 아탈리는 21세기는 이타적 기업인이 돈을 버는 시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타적인 것이 경제적인 시대라는 것이다. 흥부는 그러한 모델의 개인적 형태이지만 이제 그것을 사회시스템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현재의 세계적 경제위기는 놀부적 이기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귀결이다. 이 위기는 단순히 경기순환 과정 상의 침체라거나 머지않아 이 침체가 회복되어 호경기로 돌아온다거나 하는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이기적 시장지상주의 경제의 위기이며 구 질서에로의 회복은 있을 수가 없다. 새로운 자본주의, 새로운 시장경제가 탄생되는 진통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사회책임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사회책임을 강조하는 CSR 조류가 이 위기 과정에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돈의 사회책임을 강조하는 SRI 금융이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기금융을 대체하는 주류 금융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 또한 소비자 주권의 개념에서 소비자 책임의 개념으로 커다란 전환을 보이고 있다. CSR은 SRI에 의해서 더욱 촉진되고 있고 SRC에 의해서 더욱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CSR, SRI, SRC를 더욱 촉진하고 북돋아 주는 것이 사회책임정부(SRG)의 역할이다. 사회책임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등장한다는 것은 아탈리가 말하는 이타적 기업이 돈을 버는 시대 현상이다.

한국 자본주의도 세계경제위기에 의해서 위기가 전염된 측면도 있지만 세계경제위기가 오지 않았더라고 위기에 처했을 것이다. 이병철, 정주영 자본주의는 많은 돈을 벌어주고 세계 13위권의 경제로 성장시켜 주었지만 너무 많은 반자본주의 정서, 너무 심각한 반기업 정서를 양산하여 이대로는 10리도 못가서 발병날 자본주의다. 이병철, 정주영 자본주의는 유일한 자본주의로 혹은 사회책임 자본주의로 혹은 흥부 자본주의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 18-9세기의 흥부는 개인적으로 시범적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이제는 사회적으로 흥부적 인간상이 대박을 떠뜨리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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