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 작가 작품선 3

그녀는 전생에 꽃이였을것이다.

   세상은 참 알고도 모를것이여서 그것이 끝을 헤아릴수 없으리만치 아득하고 복잡한것 같다가도 종이우에 씌여진 글씨처럼 펼치면 한꺼번에 다 드러나는 듯 허무하고 맹랑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고양이였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얼굴로 태여나긴 했는데 눈이며 입이며 하는 짓거리마저 신통히도 고양이를 닮아있다. 그리고 튀여나온 입이 까닭없이 돼지를 련상케 하는 천박한 얼굴이나 딱히 어디 뾰족한데가 없이도 새의 부리가 그대로 툭 불거져 나온것 같은 그런 관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여지는 그대로가 곧 세상이라고 여기지만 눈 뒤에 세상을 바라볼수 있는 창구가 하나쯤 더 있다는것은 모르고 있다. 그것은 자칫 새별처럼 빛나는 그러나 실제로 쓰잘데기 없는것들로만 채워지기 쉽상인 그 어두운 안목이란것에 가리워져 그 뒤에 신기하게 펼쳐지는 진실은 종종 잊고 사는 경우가 있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육안으로 바라보는 그 모든것이 다 허상이라는 것을. 눈 감고 모든 것이 캄캄한 그 속에 우리가 한번도 과감히 직면할수 없던 그런 진실이 펼쳐져 있다는것을. 우리는 다만 그것을 거꾸로 인식하고 차츰 거기에 질들여진것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꽃이 좋았다.

    다섯살 나던 그해 살구꽃이 피는 무렵 그녀는 갑자기 주저앉아 하늘땅이 꺼지게 울었다. 부엌에서 밥을 하던 그녀의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깜짝 놀라 물었을때 그녀는 배가 아프다고 엉뚱하게 둘러부쳤지만 실은 그게 아니였다. 진한 봄향기 밑에 넋을 놓고 서있다가 바람이 한들한들 불어 겨울날 흰 눈처럼 하르르 땅우로 떨어지는 꽃잎을 보니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렸던 것이다. 어디가 그렇게 아픈것도 아닌데 그 아이의 마음속에도 그쯤 한무더기 꽃이 지고 있었으니 바람에 지는 꽃잎과 그 아이 마음 한구석에 빗방울처럼 흩날리는 그 꽃잎들이 구름과 구름처럼 만나서는 한줄기 비가 되였던 것이다.

    그녀는 선화라는 듣기에 조금 촌스런 이름을 가졌다. 그것은 아직 임신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을때 그녀의 엄마가 꾸었다는 꿈 하나와 직접적으로 련관되여 있다. 어느날 철길을 내려오다가 지팽이를 거머쥔 어느 백발의 로인 하나가 불러서 거기로 갔더니 련못가에 꽃 한송이 피여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형언할수 없는 그런 빛을 가진 꽃이였는데 그녀의 엄마는 그것을 보는 순간 웬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였다고 한다. 그 꿈을 꾸고 며칠이 지나서 임신한 사실이 확인되였고 그것이 태몽임을 단정한 그녀의 부모님은 아이에게 선화(仙花)라는 이름을 지어줬던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가 처음 말을 배우면서 한 말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아뻐”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빠”를 부르는줄 알고 그녀의 엄마가 약간 서운해 했는데 그 아이가 가르키며 “아뻐, 아뻐”하는 것은 바로 창턱에 놓인 작은 화분이였던 것이다. “이쁘다는 뜻인가? 녀자애라서 그런지 꽃을 류달리 좋아하네.” 그녀의 엄마는 그런 아이가 제법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녀가 사는 곳은 락후하고 교통이 후진 곳이라 봄 여름 뜨락에서 몽실몽실 피여오르는 오이며 가지, 그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노랗고 자주빛 나는 꽃망울이나 교외 까칠한 수풀속에 빼꼼이 얼굴을 드러낸 시시한 들꽃들을 제외하면 꽃을 접촉할수 있는 기간은 일년치고 짧기도 짧았다. 그래도 꽃이라는 말만 들으면 기분이 왜 그렇게 붕 뜨는지 모르겠다.

“엄마, 난 꽃이야.”

“그래 꽃이구말구. ”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을 이전처럼 그렇게 쉽게 내뱉을수는 없었다.

세상 모든 녀자들은 자신이 한떨기 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은 이상하게도 입밖으로 내뱉는 순간이면 유치하고 우스워지기 쉽상이다. 남자는 녀자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결코 녀자를 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쩌다 한번씩 눈에 콩깍지가 씌여 저 녀자는 정말 꽃과 같이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반짝하고 스칠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수컷이 암컷을 보는 동물적 시각으로 교체되기 마련이다. 결국 그 어느 남자도 름름한 한그루 나무는 아니고 꽃으로 이 세상에 피여 날수 있는 녀자 또한 가물에 콩나듯 드물었다.

선화에게는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꽃을 키우고 꽃속에 사는 것, 욕심 같아서는 어느 산자락 경치 좋은 곳에 큰 정원이라도 하나 가꾸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을 초월한 허망한 꿈이였을 뿐이고 일정한 나이에 이르러서는 작은 꽃가게 하나 가지면 내사 세상 부러움 없겠다는 식으로 차츰 그 꿈이 현실적이고 소박한 크기로 줄어들게 되였다.

그 꿈 하나 바라보고 사회에 나와 출근을 하기 시작해서부터 그녀는 꼬박꼬박 돈을 벌어 모았다. 남 다 쓰는 화장품은 커녕 집에 용돈 한푼 보내본적 없다. 워낙 집안형편도 넉넉하지 못하다보니 식구들은 물론이고 먼 친척들까지 그녀를 매정하다고, 독하고 량심없는 년이라고 손가락질 해댔다. 그래도 그녀는 애오라지 자신의 그 꿈 하나 바라고 돈 모으는 일에만 개미처럼 까맣게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그녀가 출근하는 곳으로 비보 한장 날아왔다. 몇년간 병석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덜컥 저세상으로 가고 만것이다.

“그렇게 맥도 없이 죽을거면 좀더 일찌기 죽지. 병신 같으니라구.”

죽으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저주하던 아버지가 정작에 죽어버리자 그녀는 무거운 짐을 부려놓은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죽어도 그 냄새나는 집구석에 다시 발길을 돌리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떠났지만 또 그 밑굽빠진 항아리같은 아버지 병수발에 일전 한푼 린색했던 그녀였지만 그러나 그 “병신”의 딸 된 립장에서는 그날로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일이였다. 그래서 어느 구석에 들어박혀 뽀얗게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트렁크를 드르륵 끌어내고 툭탁툭탁 먼지를 털어내는데 가슴은 솜뭉치로 꽉 틀어막은듯 숨이 가쁘고 그 커다란 솜뭉치는 무엇에 젖어드는듯 점점 두 무겁기만 하다.

그날 밤 온갖 더러운 냄새가 반죽 된 3등석 렬차에 앉아 덜커덩덜커덩하는 요란한 요란한 소리에 흔들리며 북행 렬차에 몸을 실었다. 서른 시간 넘어 기차를 타고 어렵사리 집에 도착했을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석고처럼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렇게 키 크고 잘 생겼던 사람이 몇년간 아파서 드러누워 지내다보니 어지간히 마르기도 말랐을텐데 이제 그속에 간들간들 타오르던 생명의 초불마저 어느날 무심히 스쳐버린 바람 한줄기에 영영 꺼져버리고 나니 누워 있는 저 것이 구경 내 아버지가 맞기나 한것인지 보기에는 한단의 마른 벼짚이나 다름없었다.

그 오랜 병수발에 시도때도 없이 인생타령을 하며 무용지물이 되여버린 남편을 가엾이 여기다가도 어느날은 갑자기 성정이 돌변해서 누워있는 남편을 발길로 툭툭 차대며 짐승같이 천대하기도 했던 엄마가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줄 끊어진 고무줄처럼 바닥에 시커멓게 늘어져서 눈물코물 쥐여 짜고 있었다. 집안에는 동네 아낙네 몇이 모여앉아 있었는데 그 속에는 선화가 잘 아는 얼굴도 하나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아직 멀쩡할때 일이였다. 어느날 뒷마당 볏짚속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나뒹굴던 녀자. 지금 생각하기에도 천박하기 짝이 없다. 그 추운 날 어느 빈집 따끈한 온돌이라도 찾아갈것이지 그 꺼칠꺼칠한 벼짚더미 속에 나뒹굴다니, 겨울날 마당에 쌓여진 그 벼짚이 차겁고 까츨하기도 했을텐데 말이다. 지금 남자가 죽어버렸는데 녀자는 어느 동네집 소가 죽은 듯 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 선화는 당장이라도 가서 귀쌈이라도 한대 날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무식한 년이라고 아버지가 돌아간 마당에 그렇게 미쳐 날뛸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누가 가져왔는지 선화네 집 마당에는 흰 종이로 엮어 만든 꽃다발 세개가 놓여있다. 이제 하나뿐인 딸도 돌아왔고 해서 장례식은 부랴부랴 급히 치르게 되였는데 자동차에 시신을 실어 화장터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어느새 준비했는지 누런 종이로 만든 지전을 한줌씩 휙휙 쥐여뿌렸다. 늦가을이라 나무잎도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사이로 지전들이 펄럭펄럭 날리며 가끔 하나씩 둘씩 나무가지에 청성스레 매달리기도 했다.

스산했다. 모든것에서 빈티가 줄줄 흐르고 다시 돌아보기도 징그러울만치 그녀는 자기가 나서 자란 그곳이 싫었다. 선화가 어렵사리 모은 돈은 결국 아버지 장례식에 다 털어놓고 겨우 다시 떠날 차비만 달랑 몇장 남았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선화는 부랴부랴 다시 자기가 살던 도시로 돌아왔다. 무거운 걸음으로 시내 변두리에 위치한 세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선화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온 그 며칠 사이로 거기 꽃 가게 하나 들어섰던 것이다. 아른거리는 유리창 너머로 빨간 장미, 하얀 백합, 핑크색 카네이션, 노란 프리지어…… 색색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신이 한시에 뿌려놓기라도 한듯 황홀하게 아롱아롱 피여 있다.

선화는 유리창에 코를 맞대고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아버지의 령구앞에 놓여졌던 그 초라한 꽃다발과 마른 잎사귀처럼 화장터 가는 길에 이리저리 휙휙 흩날리던 누런 지전을 떠올렸다. 어찌 그리 불쌍하고 가엾을 수가 있을까. 저승으로 가는 길에 꽃 한송이 놓아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은 아버지를 보고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던 선화는 마침내 가슴을 치며 끼럭끼럭 눈물을 내쏟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주머니에 남은 얼마 안되는 부스럼 돈을 의식하며 눈물을 닦고 그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마지막으로 효도하는 셈 치고 꽃이라도 몇송이 사드리자. ”

선화는 가게 안에서 무슨 꽃을 살가 망설였다. 여직 직접 꽃을 사본적이 없어 무슨 꽃을 몇송이를 살지 궁리가 돌지 않았다.

장미꽃은 아니다.

카네이션도 아니다.

저건 노란색이여서 이상하고 분홍색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흰색이 무난할거 같은데 백합은 아니지.

저기 안개꽃인지 연기꽃인지 쬐꼬마하게 생긴게 얼핏 보면 아담지고 그럴듯 하긴 한데 다시 한번 쳐다보니 말 그대로 안개 같고 연기 같지 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주머니에 들어있는 동전 몇개를 달가닥거리면서 얻은 결론은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꽃들 중에 아버지한테 주고 싶은 꽃이 없다는 것, 그만큼 아버지한테 어울리는 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찾는 꽃이 없네?”

슬슬 출입문쪽으로 물러서고 있을때 가게 주인이 찰싹 달라붙는다.

“여기 이렇게 많이 있는데, 뭔 꽃이 필요해요? 내 당장 꺼내줄테니.”

그 말투를 봐서는 당장이라도 그 많은 꽃들을 공짜로 선화에게 안겨줄것 같다.

“내가 찾는게 없는데에.”

눈초리가 기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선화가 말했다

“그게 어떤건데?”

“여기 민들레 없지예?”

“민들레?”

“민들레 몰라요?-푸꿍잉!”

가게 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나서는데 가게 주인이 퍼러딩딩해서 초우, 하고 침을 택 내뱉는다.

워낙 자기자신이 싱겁게 타인의 심사를 건드린거라 뒤가 좀 켕기긴 했지만 시퍼런 대낮에 괜히 쓸데없이 욕만 한바가지 얻어 먹었다고 생각하니 여간 기분 잡치는 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재수없다고 툴툴거리며 숙사 문앞에 이르러 열쇠를 꺼내드는데 얼핏 눈에 띄이는게 있다. 저기 저 한쪽 모퉁이에 노랗게 웃고 있는건 뭔가.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사자니 마땅한 꽃이 없어서 민들레 찾는다고 아무렇게나 헛소리를 쳤더니 저기 한쪽 켠에 노랗게 피여있는게 곧바로 민들레란 그 녀석이 아닌가. 너무도 희한한 일이여서 선화는 그자리에 서서 입을 딱 벌리고 서있었다.

거기는 실내 화장실이 없는 세집에 살고 있는 선화가 가끔 저녁에 화장실 가는것이 귀찮을때 쪼크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곳이였다. 참 신기하기도 한 것이지. 수없이 드나들어도 거기 민들레가 자라는 것은 여태  한번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배설물을 먹고 자랐을 그 민들레가 해시시한 표정으로 선화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영양소가 심히 결핍한것인지 높이 자라지도 못하고 배들배들 땅바닥에 찰싹 붙어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래도 명색이 꽃이라서 그런지 크기는 새끼손톱만큼 작을진데 색갈은 노오라니 산뜻하기만 했다.

“그래 딱이다, 바로 이거지.”

선화는 얼룩지고 흙이 묻어있는 그것을 툭툭 털어 세송이 뜯어서는 방으로 모셔갔다. 그리고 언제 식탁에 부딪혀 금이 갔으나 미처 버리지 못했던 물마시던 컵에 수도물을 조금 받아 그것들을 띄웠다.

“아버지, 이거 아버지한테 주는 꽃입니다. 민들레가 참 곱게도 폈지요. 아버지한테 잘 어울립니다. 이 꽃을 따다가 거기 좋은 곳에서 좋은 녀자 만나 행복하게 잘 사시오. 엄마는 다시 찾아오지 말구 예.”

그러고 나니 저도 모르게 코마루가 시큰해났다. 급기야 두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더니 흑흑 하는 울음으로 번져 버렸다. 그렇게 한참 울다가 선화는 또 갑자기 푹, 하고 웃어버린다.

“아버지, 이건 보라고 뜯은 꽃입니다. 민들레라고 물에 훌훌 씻어 초장에 찍어 뚝 찍어 드시면 안되는 거라요. 예?”

    어쨋거나 그것은 선화가 그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정성스레 마련한 아버지를 보내는 마지막 길이였다.

 

 

가게에서 한동안 일하고 어느정도 생활을 이어갈수 있는 돈이 축적되였을때 선화는 직장일을 때려치웠다. 그러나 회사에서 맡아준 숙소만은 그 자신이 임대비를 내는걸로 하고 그냥 그자리에 눌러 앉았다.

언제부턴가 꽃가게 녀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 가게 안에는 녀자 대신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어느날 선화는 꽃 사는 척 하고 들어가서 남자를 지껄여 보았다.

꽃가게 남자주인인 그 남자는 허초(何超)라는 이름을 가졌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날 녀주인이 선화에게 내뱉은 말은 근본 욕이 아닐수도 있는 것이였다. 허초는 한달전 이미 녀자와 리혼을 했다고 한다. 원래는 가게를 팔아 넘기려다 장사가 이외로 잘 되는것 같아 그 남자 적성에 어울리진 않지만 잠시 꽃 파는 남자로 눌러 앉았다고 한다 .

“화, 시간나면 자주 놀러와.”

선화가 자리를 뜰 무렵 남자가 다급히 쫓아오며 내던진 그 한마디 말은 찰떡처럼 점성이 대단해서 오래오래 그녀의 등뒤에 찰싹 들러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꽃가게에서 그녀의 숙소까지는 불과 백미터도 되지 않지만 그러나 선화는 그날부터 두문불출했다. 집안에서 먹고 뒹굴고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라야 정해진 그 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소변을 보는 일이였다.

그렇게 한동안 지나서 선화는 정성껏 차려 입고 가게 앞을 한번 언뜰거렸다. 기다렸다는 듯 가게 안에 남자가 정신없이 뛰쳐 나왔다. 그런 과정을 몇번 반복하면서 석달도 지나지 않아 그들 둘 사이에는 놀랍게도 결혼말이 다 오가게 되였다.

“화, 우리 결혼하자.”

“리혼한지 얼마 됐다고 벌써 결혼이야?”

선화가 눈을 부라리자 남자가 비굴하게 웃었다. 

“우리 아무래도 보통 인연이 아닌거 같아. 이름만 봐도 나는 초(草), 너는 화(꽃), 얼마나 신기해.”

선화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끝내 결혼식을 올렸고 선화는 꿈과 같이 꽃가게의 녀주인이 되였다.

 

 

선화네 가게에서 사선으로 맞은 켠 자리에 수의점(壽衣店) 하나가 들어섰다. 선화는 그게 여간 찝찝한게 아니였다. 거기 주인은 목숨이 간들간들한 웬 로인네였다.

선화는 가게안에서 그 많은 꽃들의 향기에 흠뻑 취해 있다가도 무심결에 몸을 돌리는 순간이면 어쩔수 없이 그 수의점을 마주해야 했다. 그럴때마다 기분이 여간 맹랑한게 아니였다.

허초는 그냥 풀이 아니라 벌레가 무성한 그런 한무더기 잡초였다. 그가 가게에 발길을 끊은지도 이미 몇달 되였다. 선척적인 바람둥이 허초는 그쯤 여우 같고, 염소 같고, 호랑이 같기도 한 가지각색 녀자와 마음껏 놀아나고 있었다.

“이번만 봐줘. 다시는 안그럴게. 그리고 내가 정말 잘해줄께.”

처음 바람피다 잡혔을때 허초는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무슨 용서까지 빌고 그래. 마음대로 하라구.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선화가 그렇게 나오자 허초는 이외라는 듯 눈을 둬번 껌벅거리더니 그 뒤 며칠 아주 잠잠해 있다가 하루는 술에 녹초가 된 상태에서 그녀에게 걸고 들었다.

“나를 아예 남편으로 안본다 이거지, 아무짓이나 해도 괜찮다 그거지, 그래. 이제 알것 같다. 나하고 결혼했던 이유가 뭔지. 넌 내게 시집온게 아니라 이 가게에 시집온거야. 이 꽃들에 시집을 온거지.”

그러면서 허초는 꽃 몇송이 쥐여서는 흐흐, 하고 웃더니 그 꽃들을 한잎한잎 뜯어 바닥으로 휙휙 집어던졌다.

“화치”란 꽃에 취한 사람인가, 녀자에 눈이 먼 사람인가? 선화는 그 남자가 “화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한 허초는 꽃을 뜯어서는 그것을 한잎한잎 허공으로 날리는데 자신의 손이 꽃의 가시에 찔려 피가 나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자의 그런 행위는 알알이 굵은 소금알과 같이 싱거웠던 그녀의 일상에 적당한 간을 맞춰주고 있었다. 그 과정의 허초가 제법 멋스러워 보이기 까지 하는건 왜일까?

그래, 난 꽃에 시집왔다. 너가 꽃에 장가를 가듯이.

선화와 허초가 부부의 연을 맺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흘러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보니 혼인이라는 그 하나의 우물안에 서로 신통히 닮은 두 사람의 얼굴이 비쳐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얼핏 보기에 그들은 얼마나 판이한 모습들을 하고 있는가. 두 까마귀가 물병 하나 발견한 것이 아니면 개구리 두마리가 같은 연못을 바라본 경우였을 것이다. 그것은.

가게는 허초가 전 안해와 리혼하면서 갖게 된 것이라고 한다. 남자가 꽃가게의 주인이 되기까지 거기 얼마나 희한한 에피소드들이 얼기설기 뒤엉켜 있는걸까? 허초는 그 상세한 내막을 털어놓진 않았지만 그것은 선화가 나름대로 상상할 여지를 만들어 줘서 가끔 이런저런 숱한 가능성들을 강가에서 주어온 돌멩이 다루듯 선화는 그것들을 임의로 굴러보며 모름지기 즐거운 마음이 되기도 했다.

접련화(蝶戀花)

조금 상투적인 이름이긴 하지만 꽃가게 치고 그만큼 잘 어울리는 간판도 없을 것이다.

 

나비가 꽃송이를 찾아 왔느냐

꽃송이 나비를 손짓했느냐

 

선화는 오래된 가사 하나 흥얼거리며 대략 그 정도 의미로 리해하고 있었지만 우연히 주어들은 얘기에 의하면 허초에겐 좀 지우기 어려운 그런 한단락 과거가 있었는데 허초가 첫사랑 그녀를 부르던 애칭이 “호접”이였다고 한다. 아마도 꽃을 좋아했을 녀자를 그리는 마음에 허초가 안해를 꼬드려 꽃가게를 차렸고 “접련화”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들어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재산을 가를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가게를 기어코 자기의 몫으로 챙겼을 것이다—물론 이것은 상상력이 지극히 풍부한 선화가 그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떨어뜨린, 털이 보스스한 두 세가닥의 깃털 그 이상이거나 그 썩 이하일수도 있는 것이다.

“호접 좋아하네, 호박이래라.”

선화는 피씩, 웃음을 날린다. 어쨋거나 매일 싱싱한 꽃들이 때를 맞춰 제시간에 가게로 올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남자의 공로였다. 허초는 가게에 별로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지만 나름 가게 일을 위해 신경을 써줬고 꽃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것 같으면서도 꽃에 대해 아는 것이 선화보다 훨씬 많았다. 그 남자는 꽃이라는 상품의 구매 경로와 가격은 물론이고 꽃의 향기나 특성에 대해서도 낱낱이 궤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선화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바이고 그녀가 아주 놀라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지금 그녀의 일은 가게를 가꾸고 꽃을 파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것이 최상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허초와의 혼인은 그녀가 꿈꾸던 사랑이나 혼인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나름 지금이라는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꼭 가게가 잘 되여야 생활이 유지될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그런 여유가 마음에도 평화를 가져다 주고 있었다. 이젠 그 가게가 아니여도 충분히 먹고 살수 있다는 물질적 넉넉함이 꽃을 바라보는 그녀의 정신을 고상하게 하고 꽃을 향해 던지는 시선이 순수함을 잃지 않게 했다.

“저 수의점이 아무래도 맘에 걸려.”

어쩌다 허초가 가게에 발을 들여놓자 선화는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꺼냈다.

“신경 쓰지마. 우리는 그냥 우리 일을 하면 돼.”

“매일 눈앞에 띄이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쓰고 살아.”

선화가 투덜거리자 허초는 잠시 창밖에 시선을 던지고 생각에 잠겨 있는것 같더니 드디여 선화가 원하는 답을 준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한번 가서 설득시켜봐. 가게를 내놓을수 없는지.”

그리하여 선화는 그 수의점을 직접 찾아가게 되였다.

선화는 어려서부터 그 곳이 딱 질색이였다. 그녀가 살던 고장에도 그런 수의점이 둬곳 있었다. 허옇고 꺼먼 종이로 만든 꽃들, 뻘겋고 퍼런 색갈까지 섞여 커다랗게 만든 근조화환이 그녀에게 알수 없는 공포를 심어줘서  선화는 수의점 앞으로 지나는 것조차 싫었고 꼭 피해갈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엎어져 코가 닿을만치 가까운 거리도 골목 몇개 멀리 에돌아서 가군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신의 가게, 그 가게에 피여 있는 그 많은 꽃들을 위해 부득불 로인의 수의점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였고 앞으로도 다시 그럴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그녀는 수의점 문앞에서 서성거린다.

“계셔요?”

그녀는 안으로 들어갈 념도 못하고 밖에서 소리쳤다.

“들어오게.”

로인의 목소리가 작고 어두침침한 곳에서 선화가 마주 선 좁은 문밖으로 흘러 나온다.

“저…… 미안합니다만 제가 좀 바빠서 그러는데 밖에서 뵐순 없을가요?”

“자네만 바쁜가? 난 더 바뻐.”

그 퉁명한 한마디에 선화는 머쓱해서 그 자리에서 서성거리다가 큰 마음 먹고 어두운 가게 안으로 발길을 떼고 들어섰다.

“뭘 사려고 그러는가?”

로인은 가위질을 하면서 시선 한번 주지 않고 물었다. 선화는 긴장해서 로인만 바라볼뿐 초점 한번 흐트러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 속에 서있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공포로 다가온다. 죽은 사람을 위한 가게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어둡고 으스스한 기운이 감도는 거긴 웬지 저승과 같다. 그나마 그속에서 느리게 움쩍거리는 로인만이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사자(使者)와 같이 그녀에게 일종의 위안으로 다가올 뿐이였다.

“무슨 일인가?”

선화가 말이 없자 로인이 다시 물어왔다.

“저기, 그러니까… 혹시 이 가게 비우실 생각 없는지요?”

“가게 비우다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린가?”

“저기 저 앞에 생화점에서 왔어요. 이 가게를 살가 해서요.”

“얼마를 낼건가?”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가위질을 하고 있던 로인이 얼굴을 들고 선화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비용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시가보다 훨씬 높게 드릴테니깐요.”

선화는 그때라고 제빨리 한마디 추가한다.

“싫다면 어쩔건가?”

“아니, 설마요.”

“난 여기가 좋다네.”

“그럼 여기 계속 있으셔도 되죠. 꼭 비우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단지 수의점을 하지 말았으면 해서요. 그 손실은 제가 넉넉히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리유가 뭔가?”

“저희가 꽃장사를 하니 분위기가 중요한데 여기 수의점이 있으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않나요?”

“무슨 상관인가? 그쪽은 그쪽 장사하고 난 내 할일을 하는데.”

“아니, 그래두요.. 좀 생각해보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쪽 분위기만 분위긴가. 그만 가게. 어서 돌아가라니까!”

로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 말해봤자 소용이 없을거 같아 선화는 풀이 죽어 수의점을 나왔다. 등뒤에서 썩뚝 하는 가위소리가 나자 그녀는 등골이 오싹해난다.

“참 고집불통 령감이네, 돈 줘도 싫다지, 돈 하고 뭔 원쑤진 일이라도 있나?”

그녀는 로인을 뭐라 하는것으로 그 어두운 두려움속에서 간신히 벗어나려고 한다.

“분위기? 분위기 좋아하고 계시네. ”

선화는 로인이 수의점에 대해 “분위기”를 운운한 일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한다. 거기 뭔 분위기가 있다고? 털어봤자 먼지나 퀴퀴한 냄새밖에 없을텐데.

선화는 뒤에서 정체불명의 무엇이 휘리릭 날아와서 금방이라도 그녀의 목덜미를 잡을거 같아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후에도 선화는 몇번이고 수의점을 더 찾아가야 했다. 혹시나 령감을 설득할수 있을가 해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번마다 헛탕을 치고 말았다. 처음에는 기껏해야 로인이 가격을 올리자는 속셈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거 같았다. 로인은 상상외로 완고했던 것이다.

로인은 그 안에 판매하고 있는 것들 대부분을 혼자서 직접 만드는 것 같았다. 가끔 그의 일손을 도와주는 젊은 남자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차츰 그녀가 수의점에 눈길을 돌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거기는 수의나 화환외에도 수공으로 만든 “궁궐”이 있는가 하면 종이로 된 말이나 양, 룡 같은 띠별 가축물의 조형물도 있었다. 그것은 돌아간 사람의 생초(生肖)와 같이 만들어서는 고인이 외롭지 않게 시신 곁에 두었다가는 함께 화장하는 용도로 쓰이는것 같았다.

선화네 생화점은 장사가 잘 되고 젊은 축을 상대로 한것이라면 그 수의점의 장사는 그리 잘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가끔 사가는 사람이 있었고 고객들도 대부분 중년이나 로인이 주를 이루었다. 이쪽에서는 사랑에 들뜬 젊은이들이 향기 가득한 꽃 한묶음 받아안고 싱글벙글 하며 돌아섰고 저쪽에서는 무표정한 덤덤한 사람이거나 슬픔이 어린 얼굴들이 화환을 안고 언뜰거렸다.

   선화는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가게 맞은켠에 수의점이 있다는 것이 우울했고 그 수의점 앞에 홍보용으로 놓인 화환을 보고 아버지 돌아가실 때가 생각나서 우울했다. 허초를 보면서 가끔 생화점으로 시집 온 자신이 우울했고 그런 자신을 보며 허초나 가게안에 꽃들마저 우울하긴 매 한가지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꽃가게와 수의점 사이에 놓여진 그 한갈래의 길은 마치 생과 사를 잇는 아치형 다리와도 같이 보였다. 저쪽 수많은 눈동자들이 유리창을 뚫고 꽃송이를 날아넘어서는 그녀의 몸에 먼지처럼 뽀얗게 내려않는거 같아 그녀는 두렵고 무서웠다. 어쩌면 거기에 아버지의 눈길이 섞여 있는것은 아닐까. 그녀는 생전에 꽃 한송이 사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부분의 남자와 같이 종래로 꽃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을 겉으로 드러낸 적이라곤 없는데 그녀는 뭔가 꼭 했어야 할 중요한 한가지 일을 영영 기회를 놓쳐버린거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때 맞춰 피여났던 민들레는 그녀에게 단 하루의 짧은 위안이였을 뿐이였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쏠리는 시선을 그녀가 시도때도 없이 느끼는것과 마찬가지로 꽃속에 앉아있는 그녀의 시선은 화답이라도 하듯 저쪽 수의점 화환에 가 오래오래 머무르군 한다.

그녀는 그 알수 없는 술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방법은 언제나 찾기 나름이였다. 그녀는 실내 인테리어로 그 뜻밖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가게 안에 구조를 적당히 변경시키고 수의점을 향한 유리창을 가리웠다. 그것은 언뜻 보면 유리 그대로 인듯 투명한 빛깔이면서 차단효과가 뛰어난 그런 신기한 재질의 커텐이였다. 그리고 카텐들이 채 가리지 못한 그녀가 가게 안을 오가면서 쉽게 수의점으로 시선이 닿을수 있는 곳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키 높이 자란 식물들로 시야를 가리웠다.

모든 것이 마음 탓이렸다.

거기 수의점이 있다고 해서 종래로 그녀 가게의 장사에 영향이 미친것도 아니고 고객이 그 점을 꺼린 적도 없었다. 다만 그녀 혼자서 필요이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뿐이였다. 이제 마음을 껄끄럽게 하던 그 부분을 완미하게 커버하고 나니 그녀는 정말로 기분이 홀가분해진듯 싶었다.

이제 시선이 가닿지 않는 곳에는 마음마저 차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다시 어렵사리 꽃 속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흔들렸던 시선을 다시 꽃에 돌리고 가게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가게일을 하며 그녀에게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었다. 생화는 꽃의 신선함이 중요했지만 꽃의 포장도 중요했다. 선화는 그 자신의 령민한 상업적후각으로 언녕부터 그것을 알아챈것이다. 꽃 가게의 꽃들은 고작해야 신선도나 그 종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금씩 차별이 생길뿐 그것들 사이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거기에 상인들 대부분 쉽게 홀시하고 넘어갈수 있는 그런 맹점 하나 존재하는데 가게 안의 인테리어로 분위기 조성이 중요한건 누구나 알고 있는 정도라지만 상품으로 판매되는 생화의 포장은 그때까지 그닥 중시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포장도 대게 조잡한 상태였다.

    선화는 남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가지각색의 소재들을 꽃의 포장에 사용했고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녀는 고객들을 위해서 정교하고 예쁜 카드를 항상 준비해뒀고 케익이나 쵸콜렛, 캔디나 인형을 꽃과 함께 배달할수 있는 서비스도 그 지역에서는 그녀가 선참으로 나서게 되였다.

    가게의 장사는 점점 잘 되였고 어느덧 분점까지 두군데 내오게 되였다.

    선화가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녀자일줄 생각지도 못했던 허초는 이제 선화를 전혀 다른 눈길로 쳐다보게 되였다. 그로써 선화는 자신이 하마트면 허초 가게의 부속품으로 전락될뻔 했던 굴욕에서 간신히 벗어날수 있게 된 것이다.

“안에 사람 있소?”

어느날 밖에서 석쉼한 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꽃을 손질하다 말고 그녀는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어험, 하는 헛기침 소리를 내며 수의점 령감이 허리가 구부정해서 들어왔다. 그는 가게 안을 휙 둘러보더니 실내를 진동하는 꽃 냄새가 갑자기 적응이 되지 않았던지 쿨럭쿨럭 이제 비로소 진짜 기침을 깇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가요?”

선화는 걸상을 옮겨 자리를 내주며 물었다.

“그냥 심심해서 들렸소.”

로인은 호주머니 안에서 담배를 꺼내 한대 물었다. 그리고 다른 호주머니 안에서 성냥을 꺼내더니 칙, 하고 불을 붙여 길게 한모금 빨았다.

담배연기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생화점에 처음으로 피여오른 그 한가닥 연기가 선화는 그리 싫지는 않았다. 흔들리는 연기속으로 보이는 꽃들이 안개속에 핀 듯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로친이 죽었다네.”

령감은 묻지도 않은 말을 스스로 내뱉었다.

로친이 죽었다니, 그럼 가게라도 팔 생각인가? 선화는 묘한 눈길로 로인의 얼굴을 마주 하고 있었다.

“내 손으로 화환 하나 큰거 만들어줬지.”

령감은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우리 로친은 자기가 죽으면 내가 꽃을 만들어줄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행복해 했다네.”

“그럼 이제 가게는 어쩌려구요?”

선화는 외로운 령감을 어떻게 좀 위로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입을 여니 말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그냥 해야지. 아직 만들 몫이 남아 있는데.”

아직 만들어줄 몫이 남아 있다니? 선화는 여태 잡고 있던 마지막 끈이라도 놓아버린듯 퀭하게 뚤린 로인의 눈길을 마주하자 그 자신도 가슴이 뻥하구 구멍이 뚤리는것 같았다.

가게를 팔것도 아니면서 왜 찾아왔지? 설사 판다고 해도 선화는 이제 그걸 돈 들여 살 마음은 없었다. 그 자신은 지난날 어두워서 지나치기마저 두려웠던 그 골목 하나를 자신의 힘으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생각 하고 있던 터였다.

로인은 수의점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거기는 오래전 이미 선화가 차단해 버린 상태여서 로인은 자신의 가게를 바라볼수 없다. 선화는 잠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과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였다.

로인은 이제 한마디 말도 없다.

그는 뿌연 눈길로 선화의 가게안을 다시 한번 쓸어보았다. 웬지 그 로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유리장우에 모리알을 한줌 쥐여 부비듯 찌륵찌륵 기스가 나는것 같다.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간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워낙 체구가 왜소한 령감은 그 뒷모습이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마른 옥수수대와 같다.

 “저기요.”

선화는 문밖으로 사라지는 로인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바로 앞에 놓여진 꽃더미 속에서 대여섯송이 닥치는대로 쥐여서는 령감에게 쑥 내밀었다.

령감은 입을 씰룩거리더니 그것을 받아쥐고 말없이 돌아선다.

무슨 꽃이였던가?

선화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내내 그 커다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장미꽃을 줄걸.

카네이션을 줄걸.

그 녀는 자신이 방금 로인에게 내민 그 꽃이 될수록 진하고 화려한 빛갈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선화는 지금 수의점으로 들어서는 로인의 뒷모습을 보는것 같다. 구부정한 로인의 등뒤로 꽃내음이 꾸역꾸역 몰려가고 있다. 수증기처럼 엷은 그것은 점차 끈적끈적한 것으로 응고되여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들이 어지럽게 한데 어울려서는 커다란 소용돌이가 되여 휘리릭 돌고 있다. 그것은 터미널과 같이 그녀의 어두운 공간 하나 뻥 뚫고 지나간다. 오래만에 그녀는 자기가 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선화는 심심하면 한번씩 자기가 죽은 뒤의 모습을 상상해보군 한다. 그녀는 어떠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을 것이고 이제 누가 와서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 볼것인가? 이상한 것은 그렇게 눈을 꼭 감고 있어도 세상을 여느때보다 더 환하게 굽어볼수 있을것 같은 착각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 왜일까? 눈을 감으면 세상을 더 잘 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죽었다. 그쯤이면 누군가 나에게도 꽃 한송이 놓아주진 않을까? 그러고보니 그녀는 서른살이 되도록 여직 누구에게 생화 한송이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수의점 령감이 로친에게 선물했다던 커다란 화환의 모습이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요즘들어 부쩍 꽃비위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날 오후 문득 들이닥친 허초가 선화에게 불쑥 내민 것은 편의점 전자렌지에서 금방 돌려냈다는 탱탱 부풀어오른 팝콘 한봉지였다. 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른 작은 꽃 한송이 살며시 입안에 베어 물며 그녀는 이제 령감마저 잃어버린  우리집 로태태(老太太) 지금쯤 거기서 혼자 뭘하고 있을가 궁금해진다.

그해.

그 도시.

그 골목.

그 제일 끝.

새로 일어선 가게 이름이 폭미화(爆米花)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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