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동포 연구소 곽재석 소장

 사주팔자나 음양오행의 동양철학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작명이 중요한 것은 동서양과 고금의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다. 이름은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바램과 꿈 따위를 함축적으로 대표하고 그 핵심가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개인과 조직의 주체적 행동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까지 규정하기도 한다. 기업이 의욕적으로 시장에 내 놓은 신제품이 과연 히트를 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브랜드 이름이 얼마나 소비자들의 구매욕구와 기호를 자극할 수 있는지에 의해 판가름이 나기도 한다.

 2007년에 기존의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라는 새 이름을 걸고 출범하였다. 세계화에 따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급증하고 그들의 체류 유형도 다양화 됨에 따라 과거 관리와 통제 위주의 출입국관리 업무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을 더욱 풍부하고 다이내믹하게 만들어내는 외국인들의 이주와 체류를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이 정말로 중요한 분야로 대두되었다. 이 분야는 향후 한국의 외교와 문화까지 그리고 나아가 국가이미지까지 관련되는 너무나 중요한 미래 국가발전의 블루오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사회가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외국인들이 생활하는 새로운 이주의 땅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출입국관리국을 『이민정책본부』로 작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민업무는 정부조직법 상 외교통상부의 고유업무라는 이유로 사용할 수 없었다. 외교통상부는 소위 송출이민(emigration)을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주 외국인의 체류 관리 및 지원 업무와는 전혀 내용과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결국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라는 기억하기도 쉽지 않고 발음하기도 참으로 어려운 기묘한 이름으로 작명하게 되었다. 세계화의 흐름을 읽는 혜안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부처간 업무조정을 통하여 명실상부하게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이 만들어졌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오늘날 한국의 외국인정책 분야, 아니 이민정책이 지금보다는 더욱 발전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현재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하는 업무가 모두 외국인 이민업무이기 때문이다. 살짝 이름만 바꾸면 되지 않나 하는 짧은 생각을 해 본다. 

 돌이켜 보면 2000년도 중반에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만들어지게 된 이면에는 외국인 이민의 급증이라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외국인 투자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전문직 종사자, 외국인근로자, 재외동포 등 실로 다양한 형태의 외국인들이 있다. 그런데도 정부 업무 그 어디에도 아직 공식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들을 “이민자”로서 담당하는 정책부서가 없다. 이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이방인, 즉 단지 외국인으로서 존재하고 관리될 뿐이다. 내국인과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통합되어지고 또 그래서 국가와 정부가 지원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외국인정책’과 ‘이민정책’이 이음동의(異音同意)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도 된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시대에 우리 사회가 왜 이민사회로 이행되어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인식시키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실로 다양한 형태의 외국인들을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유도하기 위한 총체적인 마스터플랜의 수립과 집행, 그리고 이들의 모국과의 미묘한 외교적 관계 문제까지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는 정말로 이민문제를 관리하는 이민부처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2000년대 중반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참으로 큰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 우리 사회가 체류 외국인 100만을 훌쩍 넘어 외국인이 인구의 2.0% 이사을 차지하게 된 이면에는 재외동포의 대규모 유입이 자리잡고 있다. 2009년 12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국적 동포는 40여만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이 아니면서도 ‘외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국적의 동포 중에 半외국인근로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방문취업제 동포만 해도 30여만명으로 장기체류 등록외국인의 3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 단순노무 분야 외국인근로자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제도상으로는 5년간의 한국 체류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한국의 이민 추세를 정확히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한국 땅에서 이들 중국동포들의 보이지 않는 정주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것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이들 중국동포의 이주문제는 조만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커다란 정책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외국인과 중국동포의 이주 및 사회통합은 이제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재진행 중인 중차대한 정책적 과제이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정부와 민간의 모습을 보면 뭔지 현실은 잘못 읽고 있지 않나 싶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온 나라가 다문화 이슈의 늪에서 너무 깊이 빠져 있지 않나 염려스럽다. 결혼이민자의 증가에 따라 다문화가정의 문제가 당장의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이들 가정에서 자라는 2세대 자녀들이 한국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 모두가 다문화 담론의 홍수 속에서 단지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책, 예산, 이슈 등에만 너무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다문화가정도 중요하지만 40만여명에 이르는 외국적동포를 포함하여 외국인근로자, 유학생, 전문직 종사자, 외국인투자자 등 모든 형태의 이민자에 대한 균형잡힌 정책적 관심과 배려가 너무 아쉽다. 이제 우리 사회가 외국인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와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영역에서 ≪이민≫이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조선족 동포의 문제도 진지하게 해결해야 한다. “이민”과 “다문화”는 동의어가 아니다. 다문화정책이라든지, 외국인정책 등으로는 물밀듯 증가하는 외국인 이주의 본질과 현상을 제대로 꿸 수 없다. 정말로 이제 이주, 즉 이민정책을 논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작년에 이주·동포정책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사실 앞으로 얼마나 큰 일을, 얼마만큼 잘 해낼지 스스로 의문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열악한 인적 및 재정적 기반과 아직 축적되지 못한 관련 분야 전문지식과 역량 때문에 적잖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그렇다고 정부의 든든한 후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누구라도 이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에서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를 통해 이제 이주와 동포 분야에서 민간의 요구와 목소리를 정확히 정부에 전하고, 정부의 정책을 민간에 제대로 알리면서 한국 사회의 <이주 가버넌스(Migration Governance)의 형성>에 의미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불신이 팽배한 한국의 이주정책 및 민간분야의 미래 발전을 견인하고, 상호 신뢰와 배려를 놓아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제 이주·동포 종합 전문 저널인 『미드리』(MIDRI: MIgration and Diaspora Research Institute)를 조심스럽게 세상에 내 놓는다. 소박하게 시작하는 첫걸음에 많은 격려와 성원을 기대해 본다.

사단법인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소장  곽   재 석 /미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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