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된장 밸리

 

▲ 누룩이 뜬다
어린 시절 생각하면, 잔칫날, 뒤집어 엎어놓은 솥뚜껑위에 치치 소리 내며 전들이 익어갈 때, 엄마들 부지런한 손옆에는 깻잎말아 만든 기름 솔과 김 모락모락 나는 단술이 있었다. 잔칫상 준비하는 엄마들끼리 나눠 먹는데, 슬금슬금 훔쳐 먹던 그 맛이 참으로 좋았다. 대학 때부터 서울살이를 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식혜랑 단술이랑 같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엄마들이 잔칫날 끓여먹던 단술은 내 고향 전주에서는 분명히 식혜랑은 다른 것이었다.

옆집 아이들은 가끔 이 비슷한 것을 먹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양조장에서 버린 술찌겡이를 걷어다가, 흑설탕 타서 끓여서 먹던 것이었다.

이를 콩나물 해장국집에서는 모주라고 불렀다. 요새, 막걸리에 감초 넣고, 집마다 다른 ‘비방’의 약초를 넣어서 끓인 술을 모주라고 통칭해서 부르는데, 어린 시절 먹던 모주랑은 조금 차원이 다른 것이다.

전주 모주라 불리우는 이 ‘술같지 않은 술’은, 알코홀 돗수가 끓여내는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도 내외이니, 그리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모주라는 말의 유래가 뭐인지는 정설이 없지만, 그냥 밑술(덧술하기 전에 먼저 담근 술)을 칭하는 말, 또는 청주(약주) 떠내고 남은 술을 막걸리 의 모주라 했다는 설, 왕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부르다가 모주라 줄여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어느 고을에 술 많이 마시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어머니가 한약재를 달여 먹였다고 해서 모주라는 설, 한말 서울에서 술지게미로 만든 술을 겨울 새벽에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해장 겸 아침 겸으로 먹었던 술이라는 설 등이 있는 것 같다.

이중에 가장 역사적으로 그럴 듯하게 퍼져있는 대비 모주설은(대동야승(大東野乘)』에 나온다함),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부인이 광해군 때 제주도에 귀향가서 술지게미를 재탕한 막걸리를 만들어 섬사람에게 값싸게 팔았는데 왕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고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부르다가 모주(母酒)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막걸리를 모주라 부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모주는 콩나물 해장국과 함께 해장술로 마시는데, 뜨거운 해장국과 함께 마시면, 땀이 흠뻑 나면서, 피로도 풀리고, 지난 밤 술 때문에 쓰린 속도 풀어주는데, 누군가는 모주(母酒)가 아니라 새벽 어두컴컴한 때 마시는 술이라 하여 모주(暮酒)라 한다는 시적인 작명설이 더 있다.

하여튼, 전주에서는, 막걸리에 생강, 대추, 계피, 배등 집마다 서로 다른 여러 가지(4~8가지) 한약 재료를 넣고 끓여서 내는 것으로 안다.

유래야 어떻든, 지금 현재는 술찌갱이의 화려한 부활보다는, ‘막걸리 베이스 약재 칵테일‘로 이해해야 더 낫게 보일 판이다.

그러나 과연, 모주의 정체성을 가난한 시절의 몸부림 같은 것으로 보기보다는, 막걸리의 부흥기에 걸맞게 후자로 보는 것이 더 나을까?

그럼 모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비빔밥 식당을 운영하는 어떤 이는, 모주는 ‘애피타이저로서’로서 제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 식당에 가보면 걸쭉하게 죽처럼 나오는데, 이걸 떠 마시고 식사를 하면 입맛이 훨씬 좋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좀 상관없는 말인 것 같지만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주에는 ‘전주 백반’ 이라는 한식이 있는데, 이는 ‘한정식’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고차원적인 배려가 있는 상차림이라는 것이다. 오래전에(어려서) 전주에서 백반상을 받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작은 상에 이중 3중으로 차려진 상에서 위부터 찬을 걷어내며 먹게 되는데, 이는 한마디로 ‘한상에 차려낸 코스음식’이라 불러야 한다.

서양 사람들 흉내로 한두 가지씩 음식이 순차로 서빙되는 ‘한식으로 차려낸 서양정식‘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을 한정식이란 이름으로 불러서는 그 내포된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모주는 백반상에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 ‘음식’으로 폭 넓게 생각해보면 ‘반주로서의 모주’라는 존재가치가 있다하겠다.

모주의 미래를 위에서는 가양주의 유래에 대하여 착안해볼 필요도 있다. 가양주는 집집마다 담궈 먹던 술을 말하는데, 사전에는, ‘지방에 따라, 가문에 따라 또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갖가지 방법과 기술을 발휘한 가양주들이 등장하여 맛과 향기를 자랑했다’고 나와있는데, 지금보다 훨씬, 식료적 개념을 보지했을 우리 조상네들이 단순히 집안의 솜씨를 보이기 위하여 만든 술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사전에, 가양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식과 부식으로 삼는 곡식과 천연발효제인 누룩과 물을 원료로 하고, 여기에 가향재나 약용약재를 첨가하여 발효, 숙성시킨 술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나온다. 이 정의에 나오는 ‘가향재‘라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각 지방과 집안에는 풍토병과 가족 질환이 있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양념화 된 가향재(역시 양념이 약념이었는 것에 착안)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가양주는, 각 지방의 풍토에 맞게, 또는 집안의 체질에 맞게 보식의 개념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설 하에 보면, 술 담궈서 제일 먼저 떠낸 술을 ‘약주‘라 불렀던 것도 비로소 일관된 뜻으로 보이게 된다. 다시 말해서 모주는 약주의 기능을 가진, 그중에서도 숙취와 피로회복에 좋은 기능성 술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벌이고 있는 ‘약차 약술 캠페인’은 이런 점에 착안한 것이다. 희석식 소주에 약재를 넣어 우려낸 것을 약주라 부를 수는 없는 일!

멀리서 수입 해 마시는 포도주는 보르도 좌안이 어떻고, 우안이 어떻고 해가며 그 맛을 구분해 마시며 호사를 다하는데, 우리 차와 우리 술에 관해서는 과연 그 반의 반이라도 알고 있는 것인지 부끄럽다. 그러다가 아침에 감기 기운 있을 때 먹는 차, 저녁에 피로회복을 위하여 먹는 차, 아내와 함께 마시는 저녁술 등, 제대로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다.

모주의 미래는, 이런 실용성과 역사성, 그리고 그가 내포하고 있는 생태적 감수성에 착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주도 아니고, 세계화의 술도 아닌 모주, 막걸리의 발흥에 편승할 일도 아니고, 그 제대로 된 기능을 아는 것만이 그 존재가치를 제대로 회복할 수 있다 하겠다.

세계화 되지 않으면 어떤가? 우리 땅에서 우리 몸에 더 잘 맞는 술을 회복하는 것만이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맥주의 고장으로 알려진 독일 사람들이 집집마다 해먹는다는 슈납스에 대한 이야기도 감동이 있다. 맥주나 포도주를 담그고 남은 찌겡이를 증류해서 먹는 술인데, 집집마다 수작업으로 만든 ‘슈납스 머신‘의 다양함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보면, 꼭 자기가 마시는 술을 세계화라는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슈납스에는 증류과정에 중간에 꽃(플로랄 에센스)등을 필터로 설치, 소위 동종요법의 베이스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먹는 약주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새삼, ‘문화 컨텐츠'로서의 술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우리네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폭탄주라는 것도, 그냥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술을 타서 술을 빚는’ 술 제법이 있는 걸 보면 이것 역시 우리의 문화유전자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허시명 저, 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 과하주 부분 참조)

내가 생각하는 모주의 미래는 한마디로 ‘약주’이다.

이 말을 하고보니, 막걸리에 대해서도 한마디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희석식소주는, 맥주는, 제대로 된 이 땅의 술에 자리를 내주고 말게 될 것이다. 막걸리는 그 과정에서 우리 술로 옮겨가는 촉매제로서 그 기능을 다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세계화 운운하는 우리 술의 미래는 약주이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는 세계의 표준에 맞아야 한다고 보면, 물탄 술을 술이라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세계화는 결국 술다운 술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본 청주와 다른 컨텐츠인 한국 약주가 그 주역이 될 것이라고 것이다. (내 의지가 아니라, 그냥 장삿속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한식세계화 관련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동반 수출해야 하는 막걸리를 위해서, 어떤 분이 ‘디스펜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맥주가 독일에서 가양주 수준일 때는 그런 용기가 필요없었을 것 같다. 그런 준비도 해야겠다.

그런 노력의 끝에, 아마도 우리 술은 결국은 약주라는데 귀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모주의 미래 이야기가 먼 데로 뻗어나간 것 같은데, 모주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같은 문화 컨텐츠의 일환인 주변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는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모주의 원주라는 말을 쓰는데, 모주의 모주는 막걸리가 아니라, 약주의 창조적 변용이었다고 보는 것다. 더 솔찍히 말하면, 술찌겡이의 재활용이 그 근원이 아니었을까?

이건 놀라운 이야기로 진화할 것이다.

모주는 엄마 땅의 술이다. 산삼이 나는 나라 땅에서 난, 지속가능하고, 재생적이고....문화적 상상력과 생태적 감수성이 녹아 있는 술!

누구나가 집집마다 술 담구고, 그 재생적 삶이 주는 생태적 미래를 만끽하게 할, 모주는 우리 술의 미래인 약주, 그 끝의 끝, 꼽사리 술인 것이다.

[출처] 모주는 우리의 미래다- 막걸리학교 발제문 (지식PD씽크넷)

|작성자 조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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