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엔 '마늘' 왼손엔 '쑥'…
18m·520t 웅녀상 세상을 호령하듯
동굴 같은 터널에 곰 조각상도 곳곳에
산 전체가 단군신화 테마공원 다름없었다

 ◇만천성국가삼림공원 백의신녀 신녀봉 공원

왕청(汪淸)을 아시는지.

▲ 백의신녀(웅녀)상이 있는 신녀봉 정상 . 산 전체가 마치 '단군신화 테마공원'이나 다름없다.
중국 길림성 연길에서 1시간 가량 위쪽으로 가면 나타나는 산골인데 한국으로 말하면 의성이나 성주 정도 크기다. 왕청을 가기 위해 연변공산당위원회에 근무하는 심예란 시인과 연변대학 조문학부 전서린·림아미양이 동행했지만 처음 가는 낯선 길이라 설렘이 앞섰다. 왕청은 심 시인의 어릴적 고향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호수와 유람선까지 있다고 해 그녀 안내로 하루 바람 쐬러 갔던 것인데 거기서 단군왕모 웅녀상을 만났다.

출발은 연길시내 어느 시외버스정류장이었다. 한국처럼 대형고속버스는 전혀 보이지 않고 24인승 버스밖에 없었다. 이는 도문이나 용정으로 가는 시외버스정류장처럼 출발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손님이 다 차야 출발한다. 아직도 여자 차장이 딸려있는데 손님이 다 차고난 뒤 여차장이 고함 소리로 차를 출발시키는 것이 퍽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왕청 백초구(百草溝) 부근에서 우측으로 접어드니 인면향 천성호(天星湖)의 서쪽 풍광이 한눈에 펼쳐졌다. 천성호는 동서로 10.5㎞, 남북이 5.4㎞ 넓이의 탁트인 호수이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섬처럼 생긴 용구도(龍龜島)라는 이름의 산줄기가 호수 안으로 들어와 있다. 만천성(滿天星) 신녀봉(神女峰)이 있는 곳으로 산정상 부근에 세워놓은 커다란 석상은 멀리 호수 바깥에서도 눈에 띄었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상(熊女像), 즉 단군신화에 나오는 시조모상이었다.

'천성호락원' 이라고 이름 붙인 곳에 도착했는데 식당과 숙소, 그리고 부두가 있었다. 배를 타고 20분 정도 호수의 물길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이 섬처럼 생긴 용구도 선착장이었다. 이름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국가삼림공원(滿天星國家森林公園)의 백의신녀(白衣神女) 신녀봉공원이었다. 부둣가에 내려 올려다 보니 신녀봉(神女峰)으로 오르는 입구가 나타났다. 꼭 신전에 온 것처럼 화려한 조각상들이 이목을 끈다. 나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잘 찾을 수 없는 내가 좋아하는 풍경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돌계단을 밟아 오르니 신전처럼 양쪽 두개의 흰 기둥이 입구에 서 있었다. 기둥마다 물동이를 이고 있는 조선여인상이 입체적으로 앞뒤로 조각되어 있었다. 발밑에는 연꽃이 아니라 흰 마늘이 이 상을 호위하며 떠받치고 있었다. 두 기둥 위에는 난간을 만들었고, 한복판에는 백의신녀상을 세우고 그 양 옆에는 호랑이와 곰이 앞을 보며 엎드려 있는 형상이었다.

◇ 산전체가 단군신화 테마공원

▲ 신녀봉 올라가는 길목에 보이는 곰 조각상. 발 아래 마늘과 쑥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보인다.
산줄기 전체가 '단군신화 테마공원'이나 다름없었다.

등산로 곳곳에도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 모형이 세워져 있었으며, 동굴을 연상케 하는 터널도 만들어져 있었다. 단군신화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용과 거북 조각상도 보였다. 그 아래 새긴 팔괘(八卦)와 붉은 지붕의 정자 두채는 완연히 중국풍이었다. 이 모든 것이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자명하다. 중국 당국이 석상을 세운 것은 2001년 9월로, 2002년 2월 동북공정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한다.

왕청현에 속하는 만천성국가삼림공원은 가야하(河)의 물길을 끼고 있는 국가급 유원지로 여러 풍경구들로 산재해 있는데 이곳은 신녀봉 풍경구역이다.

백의신녀라는 이름이 붙여진 흰색의 대형 석상이 가파른 계단 바로 위로 우뚝 솟아 있었는데 왼손에는 쑥, 오른손에는 마늘이 들려져 있었다. 이 상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보다 2m 더 높다. 중국 현지자료에는 백의신녀로 소개되어 있는 이 웅녀상은 높이가 무려 18m, 무게는 520t이나 된다. 웅녀조각상은 2001년 9월18일에 완공, 용구도 북쪽 신녀봉 꼭대기에 우뚝서 있어 주변의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안내판에는 '백의신녀는 조선민족 고대신화에 나오는 시조모'로 곰이 사람으로 변해 환웅과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해 놓았다. '이들의 자손이 고대 조선민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중국 조선민족 부녀 근로·용감·선량·미려까지 표현하고 있다'고 써 놓았는데 안내판 어디에도 '웅녀'나 '단군'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오랜 옛날 한 동굴에 곰족과 호랑이족이 살고 있었으며, 천신에게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이때 천제의 아들 환웅이 쑥 한 다발과 20쪽의 마늘을 주면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이것을 먹으면 인간이 될 것'이라 했다. 호랑이는 백일을 참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나가 사람이 될 수 없었지만 곰은 21일간 참아 마침내 미녀로 변신한다. 이 미녀가 백의신녀로 환웅과 혼인하였다. 이렇게 하여 고대 조선민족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적혀있다. 백의신녀는 고대 조선민족 시조모이다. 이 웅녀상 앞, 청동기로 만든 방정(方鼎·네모난 솥)은 기자조선과 관련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이 지역까지 고조선의 영역이었음을 인정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풍경구 관계자는 "조선족 자치주이기 때문에 관광객 유치목적으로 조선민족의 시조모 석상을 세운 것"이라고 했다.

◇ 한민족의 시조모로서가 아니라 조선족의 시조모로 자리매김
▲ 선녀봉 정상의 백의신녀(웅녀)상. 오른손에는 마늘을, 왼손에는 쑥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는 단군상을 세워도 목을 잘라버린다. 그 어디에도 웅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중국에서는 웅녀를 한민족의 시조모로서가 아니라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만주땅에는 만천성국가삼림공원 내에 단군신화를 테마로 한 대형공원이 존재하고 있으며, 거대한 웅녀상이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것은 단군 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발굴된 곳이 전혀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나 조선족을 위한 관광지로 산 전체를 단군신화 테마공원으로 개발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본래 이곳은 고조선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자기 돈으로 조성한 관광지라서 씁쓰레한 심정을 지울 길 없었다. 만천성은 '이곳에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1만개의 별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곳 호수이름인 천성호에서 따온 듯 하다. <계속>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