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시대를 이끌 것인가(이승률 著) 中-

나는 여기서, 오래전에 썼던 「테라우치 문고와 나의 아버지」란 글에 덧붙여 한 가지 뜻깊은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그것은 선친께서 테라우치 문고의 반환 과정을 통하여 선조의 유품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귀한 일이었지만, 이런 일을 통해서 더욱 가깝게 이해하게 된 선조 이암(李嵒, 1297~1364년) 선생의 독특한 민족 역사관에 깊이 매료된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에 가셨다가 테라우치 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진귀한 자료들을 사진으로 여러 장 찍어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보름 후의 일이었다. 부산에 출장을 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대구 본가를 들렸던 날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선친께서 대구에 살고 있는 막내 동생과 나를 당신의 좁은 서재로 불러 나란히 앉히셨다. 그런 다음 일본에서 찍어 오셨다는 사진들을 방바닥에 쭉 늘어놓으신 채 그동안에 있었던 답사 과정을 일장 훈시조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평소 조용하신 성품과는 달리 가끔 큰 소리로 웃기까지 하시면서 의기양양하게 말씀을 이어 가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시면서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승률아! 너는 행촌 어른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알고 있나?”

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아버지께서는 그것 보란 듯이 꾸짖는 표정을 지어 보이시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서가에서 누렇게 변색된 책 한 권을 꺼내 내 코앞에 불쑥 내밀어 보이셨다. 표지에 ‘한국사의 원류, 주해(註解) 환단고기(桓檀古記)’라 적혀 있고, 그 밑에는 ‘단군은 아시아를 통일했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지은이는 김은수(金殷洙)였고, 1985년 기린원출판사에서 초판 발행한 역사물 번역서였다. 아버지께선 짐짓 엄중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이렇게 말씀을 이어 나가셨다.

“너도 이젠 집안 종사 일에 좀 관심을 가져라. 학교 일 한답시고 중국으로 어디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선조들의 행적도 모르고서야 어떻게 남들 앞에 나서겠나. 이번에 학자들을 만나 봤더니, 행촌 어른에 대해서 나보다도 더 잘 아시는 분들이 많더라.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 책인지 모른다. 행촌 어른께선 글씨도 잘 쓰시고 고관대작을 지내신 분이셨지만,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 책을 더 높이 평가하더라. 고조선에 대한 역사서로선 매우 귀한 사료가 된다고 하는구나. 애비 생각에도 이 책은 두고두고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네가 먼저 읽고 나서 동생들도 다 읽히도록 해라.”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하면 그때 들은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난생 처음으로 접한 『환단고기』라는 책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그보다도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받고 있는 ‘단군세기(檀君世紀)’를 편찬한 분이 나의 20대 선조 되시는 행촌 이암 선생이었다. 또한 그의 현손인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께서도 조부의 영향을 받아 『태백일사(太白逸史)』를 저술함으로써,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고대 민족사 정립을 위해 충성을 다 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아버지께서 주신 책을 받아 들고 처음엔 좀 얼떨떨했으나,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격동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날 이후 나는 『환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는 고조선의 기원과 한민족 역사에 대한 자존 의식을 단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 고대사 기록의 진위를 논하기 이전에, 그 책에 녹아 있는 웅휘한 민족정신과 잃어버린 역사의 회복을 위한 열망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내 마음속에 차고 넘쳤다. 내가 지금 동북아 시대를 표방하며 이 지역을 기반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에까지 이르는 신(新)실크로드의 새 길을 열어 보고자 꿈꾸고 있는 것도 어쩌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 잃어버린 고토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이 길은 험하고 힘들겠지만 언젠가 우리 한민족 역사의 부흥을 위해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는 이정표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환단고기』를 처음 접했던 날, 책의 앞부분 몇 장을 뒤적여 보는데, 이 책을 지은 김은수 선생의 서문이 우선 눈에 띄었다. 나는 독자들을 위해, 한국사의 원류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해 보이는 방법으로서 그 서문을 전문 그대로 수록하기로 한다.

나는 한동안 이 책이 주는 충격에서 거의 벗어날 수가 없었다. 『三國史記』나 『三國遺事』 같은 냄새나는 책만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국민들도 앞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얻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桓檀古記』는 우리가 檀君朝鮮이나 高句麗에 기대했던 요구량을 훨씬 뛰어넘어 비운의 역사 속에 무참하게 매몰되어 버림받던 과거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할과 웅장한 모습을 정확한 전거와 뚜렷한 필치로 되살려 주고 있다. 桓雄과 檀君은 동아시아를 완전하게 통일하였으며 지구상에 인류 문화의 첫 등불을 밝혀 놓았던 것이다.

『桓檀古記』는 옹기그릇에 담아 땅속에 매장하여 日帝의 마수를 벗어나게 된 가장 소중한 역사책이다. 주로 渤海의 전적을 근거로 한 이 책은 고려 말엽의 충신 杏村 李嵒이 編著한 『檀君世紀』와 이조 中宗 때에 撰修官을 지낸 一十堂 李陌이 撰한 『太白逸史』를 雲樵 桂延壽가 1898년에 合編著한 후, 거기에 다시 1911년에 신라 사람 安含老의 『三聖記』와 고려 사람 元董仲의 『三聖記』, 그리고 范樟의 『北夫餘紀』上下 및 『迦葉原夫餘紀』를 합편한 모두 5권으로 된 책이다.

1948년에는 필사본 초판이, 1979년에 재판이 나온 바 있다. 雲樵는 이 책을 庚申年(1980년)이 되거든 공개하라고 하였다.

『桓檀古記』는 桓國,•倍達•朝鮮•夫餘•高句麗•渤海•高麗 등의 활동상은 물론 정치•철학•종교•문학•문자•음악•고고학•민속학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 흉노와 몽고, 선비족의 기원을 명시하고 있는가 하면, 箕子朝鮮•雲障•滿潘汗•衛滿•漢四郡•任那에 얽힌 허위 사실을 백일하에 들춰내고 있으며, 儒敎와 道敎 및 佛敎와 基督敎의 사상이 모두 우리의 三神思想에서 발원한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실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인류 문화의 근원을 밝혀 주는 책인 것이다.

나는 『환단고기』를 접하면서 우리 집안 선조들의 행적에 고무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경각심을 함께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나 역시 후손들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설립이라는 대역사에 동참함으로써 남다른 보람과 긍지를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막연하게나마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선조들이 우리 민족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행적을 남기셨다면, 나는 우리 민족의 미래상을 그리는 과정에 기여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 해답을 연변과기대 권영순 교수의 연구실에서 찾게 되었다. ‘동북아경제공동체연구소’라는 조그만 팻말이 붙어 있는 연구실은 그의 연구 업적에 걸맞지 않게 10㎡가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었다. 나는 그의 연구실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곤 했는데, 그는 그런 작은 연구실의 사방 벽면과 천장에 지도를 벽지처럼 잔뜩 붙여 놓은 다음 그 지도 위에 자신의 꿈과 비전을 하나하나 그려 나갔다. 두만강유역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 3성 지역과 한반도•연해주를 한 덩어리로 묶는 교통 인프라 계획을 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 중요 도시들 간의 연합을 통한 광역경제권개발계획까지 세워 지도 위에 선을 긋고 울긋불긋 색칠해 나갔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외교관으로서 멕시코•베네수엘라•파라과이•몽골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오랜 기간 동안 대사직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여생을 연변과기대 사역에 봉사하면서, 마지막 꿈을 불태우고 있는 주제가 ‘동북아경제공동체’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충격은 심히 컸다. ‘아! 여기에 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게 나의 첫 소감이었다. 그런 다음 그의 연구실을 방문할 때마다 내 마음의 갈피 속에 차곡차곡 쌓인 것은 다름 아닌 ‘아시아의 재발견’에 대한 비전이었다. 그리고 그 비전은 결국 나의 발걸음을 미래로 향한 ‘Fusion Roadmap’의 길로 인도했다. 그것이 곧 ‘동북아공동체연구회’라는 NGO 단체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나는 그를 이 단체의 국제 담당 고문으로 모시고 함께 동역하면서 많은 배움과 격려를 얻고 있다.

2007년 9월 18일 창립대회를 개최한 후 통일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을 마침으로써 본격적인 연구 활동에 들어가게 된 이 단체의 캐치프레이즈는 ‘Asian Fusion Society is Our Future Vision’이다. 동북아 3국인 한•중•일을 하나의 기초 집단으로 결속시킨 후 이 기반 위에 동아시아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나아가 인도•중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아우르는 대단위의 ‘One Asia’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들의 최종 목표다. 이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립 취지와 사업 목표를 제시했다.

오늘날 지구촌 사회는 지난 세기 냉전 시대를 주도했던 이념의 장벽들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국제 협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남북한의 문화 교류와 경제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통일의 꿈을 이루어 내는 일은 이제 남한과 북한만이 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국제 협력을 통해 함께 이루어 내야 할 과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동북아공동체연구회는 바로 이와 같은 국제 정세의 변화를 깊이 인식하면서, 10년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즉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는 동북아 역내 시장의 자유화와 경제공동체 조성을 위한 국제 협력 방안을 연구하고, 정책 대안 개발, 자문 및 용역 등의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한 국제 환경 조성과 동북아공동체 형성에 기어코자 하는 데 그 기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본 전략으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 중국과 일본을 한반도의 양 날개로 접속함으로써 동북아가 ‘한 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일본 열도와 한반도•중국 대륙 및 러시아 극동 지역을 한마당의 통합시장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교통망•물류 유통망•정보 통신망 등을 연구•개발하여, 실질적인 비즈니스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동북아 사회를 유기적인 국제 협력의 경제공동체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 한반도가 명실상부한 동북아공동체의 중추적인 중립 지역이 되고, 그 결과 우리들의 숙원 과제인 남북한 통일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함께 꿈꾸며 나아갑시다. 동북아공동체 실현을 위한 노력이 곧 남북한 평화 통일을 위한 지름길이요, 남북한 경제협력체 건설이 곧 동북아 통합시장으로 나아가는 길목임을 깨닫고, 우리 다 함께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어 나가는 일에 한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당일 창립대회 행사 시 회장 수락 인사 말씀의 끝에 가서 다시 한번 이런 표현으로 내 심경을 굳게 밝혔다.

여러분, 참새는 방앗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닭은 마당에 떨어져 있는 눈앞의 모이만 주워 먹다가 끝내 하늘을 날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고공의 기류를 이용하여 활공하는 독수리는 하늘 높이 비상합니다. 일본과 중국이라는 양대 진영을 우리 몸에 독수리 날개처럼 매달 수만 있다면 우리 한반도는 자동적으로 독수리의 몸통으로 변신하게 될 것입니다. ‘동북아공동체연구회’가 나아갈 길은 궁극적으로 우리 한반도를 동북아 지역의 중추지대로 변화시킴으로써 아시아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진 한국이 되도록 기획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 그 실천적 대안을 수립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독수리의 꿈을 꿉시다. 급부상하는 중국과 선진국 일본을 양 날개로 활용하여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갑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계의 기류를 잘 이용하는 첨단 한국이 되어 이 시대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맡겨진 애국 애족의 사명이요, 하늘이 부여해 준 시대적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환단고기』에 깃들어 있는 선조들의 기개와 환상을 가슴 깊이 새기며, 이를 동력으로 삼아 21세기 아시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역사의 일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신념이 결국 동북아공동체사회를 향한 나의 비전이 되었다. 그 후 이러한 신념은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기본 이념이 되었고, 실천적 기초 역량이 되어 주었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