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박사의 연변리포트]

에필로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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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시 <꽃> 중에서

조선족사회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전체 조선족동포의 15%이상이 한국에 진출해 생활하고 있으며 25%이상이 중국 연해도시에 있는 한국관련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 결과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 2006년 한 해 동안 해외노무송출로 벌어들인 돈이 대외무역 총액(11억1천만 달러)에 버금가는 10억5천만 달러에 달했다.(<연변일보>, 2007년 8월 31일)

이런 점에서 조금 과장해 말하면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한국사회에 달려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족사회의 미래에 대한 한국사회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자관계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조선족사회의 미래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상황만으로 보면 그 영향이 꼭 순기능적이지만은 않다.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잘못된 길을 가기도 하고 한국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떠밀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그것은 현실이고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위해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교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치유하는 것은 물론 눈에 드러나지 않은 문제조차 파악해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새로운 관계맺기에 필요한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천할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조선족사회만을 위함이 아니다.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한민족과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한민족공동체와 동북아시아공동체 건설과정에서 조선족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족사회가 연변에서 창창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민족의 미래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미래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명제 -- 역사의 동시성, 연변의 탈영역화에 이은 재영역화 그리고 민족주의를 넘어 동북아시아 공존공영 -- 를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조선족사회와 함께 연변을 미래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장정에 나서야 한다.

연변과 조선족이 지니고 있는 문제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한민족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이다. 긴 단절의 시간을 뒤로하고 새로운 관계맺기가 시도되는 상황에서 눈앞의 이해관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지난 세기의 질곡의 역사를 청산하고 한민족과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눈을 들어 미래를 지향하여야 한다.

한국사회는 우선 마음으로부터 연변과 조선족사회를 끌어안아야 한다. 조선족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함께 미래로 나아갈 우리의 동반자이다. 연변은 조선족이 살아가는 한반도 밖의 한민족 문화영토 경제영토이다. 역사와 과거의 인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한국사회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조선족동포들이 한국 입출국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조선족동포들의 입출국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조선족사회의 일탈현상 등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물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갈등도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조선족동포들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문제는 중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들이 이미 원하는 자국민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적극 검토하여야 한다. 중국 역시 자국민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이미 한국에 30만 명 이상의 조선족동포가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노동시장의 혼란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입출국이 자유로워지면 장기체류가 줄어들어 일정기간이 지나면 한국으로 진출하려는 동포들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로는 조선족동포들이 연변에서 자리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한 조선족사회와 부강한 연변 만들기에 동참하는 일이다. 조선족사회와의 다양하고 건전한 관계맺기를 통해 조선족동포들이 밝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연변이 부강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활로를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연변에 대한 투자는 조선족의 한국 유입을 줄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연변 러시를 꾀함으로써 연변지역의 경제사회적 지형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한민족의 문화 경제 영토가 크게 확장되는 것이다.

셋째, 건강한 조선족사회와 부강한 조선족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사회가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 조선족사회가 스스로 자각하여 미래를 준비할 때만 조선족사회의 미래가 담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네트워크 형성은 중요하다.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인 관계맺기를 도모함으로써 양자관계를 질적으로 제고하는 동시에 조선족사회가 스스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조선족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어떤 이는 조선족사회가 새롭게 중국전역으로 확대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반면 어떤 이는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써 중국사회에 동화될 위기로 보기도 한다. 각각의 주장이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기회이기 보다는 위기에 가깝다. 아니 분명히 위기다. 중국에서 소수민족들이 한족에 동화되어 온 역사와 함께 조선족동포들이 친 중국적 의식을 키워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절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따라서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하지 않거나 막연하게 괜찮겠지 하는 자기중심적 낙관주의에 빠져버리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장은 마음이 아프지만 현실을 위기로 보는 것이 연변의 미래에 더 바람직해 보인다. 노력만 하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을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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