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작년 초 도쿄에서 열렸던 ‘한중일 우정의 콘서트’ 행사에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가 비올라 연주자로 직접 참여했었다. 그때 나루히토 왕세자는 연주를 마친 뒤 ‘귀중한 추억을 갖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한중일 3국의 우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례적인 즉석연설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 사실이 있는데 2005년 여름쯤이었을 것이다. 아키히토 천황이 싸이판 섬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한국평화기념탑을 참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여러차례 일제 군국주의의 한반도 지배에 대해 사과를 표명했다.

나는 일본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아키히토(明仁) 일 황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를 무척 존경하며, 고이즈미 전(前) 총리를 비롯한 우파정치인들이 군국주의 패권의식을 조장하려고 했던 사실에 대해 일왕실이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변해주기 위해 무척 애쓴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상당히 호전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런 변화를 가져온, 그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이 바로 고 이수현군이다.

그즈음 일본에선 지하철에서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 군을 기리는 추모영화가 개봉됐다. 그런데 그 영화 개봉에 앞서 시사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일왕부부가 참석한 일이 화제가 됐었다.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제목의 영화개봉을 앞두고 아키히토 일왕은 이수현군의 부모를 왕궁으로 초청해 위로하며 영화가 개봉하면 시사회에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했었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일왕이 한국 관련 민간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일왕실이 한ㆍ일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으며, 동시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일본의 우파집단에 대한 무언의 압력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식을 접하면서 조금 다른 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일왕이 이수현 군의 기일에 참석해서 이군의 부모와 했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런 일왕실의 행보에 일본국민들이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이수현군을 국민적 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뜻 깊게 여겨졌다. 살신성인의 사랑! 한 한국청년의 그 희생적인 사랑의 힘이 전 일본국민을 감동시킨 것이었다.

아직도 일본이나 일본인을 생각할 때 결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우리들이다. 일본인들도 그 사실에 대해 결코 냉정해지지 못한다. 그 해묵은 감정의 벽은 그동안의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그런 한국에 대해 일본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한국청년 앞에서만은 그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벽이, 아무런 장애도 위력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수현군이 보여준 희생의 의미를 단순한 미담으로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 한류스타들에게 열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이수현군에 대해서는 마치 일본인 자신처럼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사랑이란, 모든 벽을 허무는 절대적인 힘이란 사실을 다시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한일 관계 속에 이 사랑이라는, 흔하디 흔한 개념을 적용시킬 생각은 한국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수현군의 죽음은 그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할 수 없는 천만가지 이유가 있다 해도 일단 사랑하는 것,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마저도 내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허물지 못할 장벽이 어디 있으랴.

 

경쟁을 포기하라. 이기고 싶다면

200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발간한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은 182개국에서 32개 언어로 번역된 초(超) 베스트셀러다. 저자 한국인 김위찬 교수는 프랑스 파리 유럽경영대학원(INSEAD) 석좌교수로 있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그는 저서에서 현대의 산업공간을 바다에 비유해 레드 오션(red ocean)과 블루 오션(blue ocean)으로 분류했다. 레드 오션은 유혈의 경쟁공간으로 시장 참가자들은 제한된 시장안에서 서로 목을 조이는 출혈경쟁을 벌인다. 반면 블루 오션은 가치혁신을 통해 다시 창출된 새로운 시장공간으로, 공존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가치 도약을 통해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김위찬 교수는 그의 파트너인 마보안 교수와 함께 지난 120년 동안 역사에 기록된 동서양의 혁신 사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전략적 사고의 차이가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략적 사고에는 ‘환경 결정론’과 ‘재 구축주의’의 두 가지 패러다임이 있다. 그리고 혁신에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후자 쪽이며, 그들은 가치혁신을 통해 환경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아예 환경자체를 새로 구축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경쟁으로 붉게 물든 유혈의 바다에서 벗어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신세계로 나아가는 전략 ― 블루 오션의 사고방식과 방법론을 먼저 체득하는 기업과 국가가 21세기의 세계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그가 주창한 블루오션은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을 포기하라”

역사시대 이래 인류가 지켜왔던 문명의 세계에는 다음 두 가지 가치론 이 있다. 하나는 소유가치요, 다른 하나는 존재가치이다. 전자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심에 이끌리는 가치요, 후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이 이끄는 삶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동시에 두 사람이 경쟁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소모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기준에 의해서건 비교우위를 가지는 분야를 서로 공유하면서 함께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여름 일본의 저명한 지역경제 및 물류 전문가인 야나이 마사야(일본 동북학원대학)교수는 독특한 ‘찌개’론으로 한일경제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일본 도야마에서 열린 한국관련 경제포럼에서 동아시아 경제를 찌개를 끓이는 것에 비유하면서 각국이 서로를 상호 보완하는 분업과 교역을 통해 각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분야(재료)를 한데 모아 완제품(찌개)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정의했다. 한국과 일본도 이처럼 서로 비교우위를 갖는 분야에서 상호 협력한다면 큰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는 특히 첨단기술과 물류분야에서의 교류를 그 예로 들었다.

야나이 교수는 물류컨설팅업체인 J&K 로지스틱스의 조사자료를 인용해 일본 내 10개 주요 지역이 도쿄와 오사카를 물류 허브로 이용하는 것에 비해 부산항을 허브로 이용하는 것이 12.4%나 물류비용 절감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미쓰비시의 소형 제트 여객기 개발사업처럼 기술력이 높고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 한국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신종사업 분야로 개척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즉, 한일간의 FTA를 통해 물류분야에선 한국이 일본을 돕고 일본은 한국에 첨단 신기술을 이전, 공유한다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경쟁을 하는 대신 자신의 장점을 상대와 공유함으로서 함께 발전하며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결국 모두가 목표를 이룰 수 있고, 거기에 더 중요한 건, 경쟁 상대였던 사람과 둘도 없는 협력관계가 되는 블루오션을 이룰 수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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