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박명호 소설가

   사랑과 사냥은 어감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비슷한 데가 많다. 사냥의 근본은 사냥감을 포획하는 것이다.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을 잘 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런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꾼’이라 한다. 물론 사랑을 잘 하는 사람과 사냥을 잘 하는 사람이 같지는 않다. 아마 원시 수렵시대에는 같았을지 모른다. 그때는 사냥을 잘하는 사내가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우연히 원시 수렵시대에나 있을법한 두 분야에 모두 뛰어난 ‘꾼’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지난겨울 사냥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멧돼지 사냥에 따라나섰다. 우리는 하루 종일 돼지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산을 헤매다가 보현산 남쪽에 있는 영천댐 호수 쪽으로 내려왔다. 부근 어느 매운탕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 저녁을 보냈었다. 그 집에서 다른 사냥꾼 일행을 만났다. 제법 이름난 사냥꾼이라 했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삼십 여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기였다.
  그 친구는 축구, 야구 등 운동을 잘 했고, 노래도 잘 했으며, 특히 구라발이 좋아 인기가 대단했다. 그런데 삼 학년 초 기독교와 관련된 어느 사이비 종교에 깊이 빠져 홀연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 뒤 들리는 소문으로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니, 완전히 또라이가 되어 부산역 근처에서 노숙자가 되었다니 했다.
  언젠가 시내버스 안에서 옛날 교복을 입은 그와 똑같은 모습의 고등학생을 봤다. 순간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졸업한지 다섯 해가 넘었는데 그가 교복을 입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눈을 의심하면서 버스를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환영을 본 것도 아니고 그것은 분명 그 친구였다. 소문처럼 정말 그가 또라이거나 아니면 무슨 죄를 짓고 도피생활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때 그가 왜 교복을 입고 다녔는지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때 그가 교복을 입은 것은 내 기억처럼 분명했기에 유쾌하지 못한 옛날 일을 새삼 재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한때의 방랑생활에서 벗어나 사냥꾼의 세계에선 제법 알려진 인물로 살아가고 있었고, 게다가 옆에는 다른 일행들이 있었으므로 그가 굳이 말하지 않는 한 과거사를 끄집어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와 어울렸다. 술자리는 그가 합석을 함으로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그는 아직도 그 왕성한 구라발로 사냥에 지쳐 있던 우리들을 즐겁게 해줬다. 그래서 술도 제법 많이 마셨다. 술이 얼큰해지자 그의 놀라운 ‘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평생 외간여자라야 기껏 노래방도우미 손목 한두 번 잡을 정도인 우리 같은 범부들에게 마치 돼지 사냥하듯 여자를 사냥하는 연애 이야기는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정말 주변에 그런 꾼이 있는지, 그도 아니면 워낙 구라발이 좋은 그인지라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밤이 이슥하도록 간간이 해설과 평까지 덧붙인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특히 그날 그가 목에 핏대를 세웠던 것은 여자와 돼지가 동일하다는 부분이었는데, 그 자리에 페미니스트가 있었다면 그는 온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생생한 그의 육담을 소설이라는 양식으로는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껏 소설을 쓰면서 나는 처음으로 소설이란 양식이 너무 제한적이고 너무 젊잖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이름은 백수다. 본래 이름은 많은 사람 중에 뛰어나라는 뜻의 백 수(白 秀)이다. 닉네임은 ‘노련한 짐승’의 뜻으로 백수(白獸)라 쓰지만 지인들은 농담을 섞어 백수건달을 줄여 백수(白手)로 부른다. 따라서 그는 사냥 시즌에도 백수(白獸)요, 사냥 시즌이 아닐 때에도 백수(白手)이며, 이도저도 아니래도 어차피 백수(白秀)인 것이다. 그는 한 해를 사냥 시즌과 야구 시즌 두 철로 나눈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사냥철에는 산돼지를 잡아 돈을 벌고, 3월부터 10월까지 야구 시즌에는 그 돈을 소비한다. 경제적으로 보면 생산과 소비로 나눌 수 있지만 사냥의 측면에서 보면 산돼지와 집돼지 사냥으로 나눌 수 있다 -그는 연애하는 것을 집돼지 사냥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같은 돼지 사냥이어서 서로 다른 기술을 연마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산돼지와 집돼지 사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가 그렇듯 둘에 몰입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찍이 상고를 중퇴하고 어찌어찌 해서 무역회사에 입사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기유학 붐에 편승해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간 마누라는 바람이 났고, 그는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니던 직장의 구조조정으로 정말 백수(白手)가 된 것이다. 물론 적지 않은 퇴직금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는 하루아침, 혈혈단신에 완전 백수의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선지 야구에 거의 광적으로 빠져들었다. 문제는 야구시즌이 끝났을 때 오는 정서적 공허함이었다. 그때 그에게 새로운 시즌이 하나 다가왔다. 그것이 바로 멧돼지 사냥이었다. 돼지 사냥에 꾼이 되면서 자연스레 연애에도 꾼이 되었다. 최소한 그에게 있어서 그 둘은 같은 작업일 뿐이었다.

   산돼지 사냥은 산에서 하고, 집돼지 사냥은 야구장에서 한다. 야구장은 언제나 쫓고 쫓기는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는 곳이기 때문에 사냥이라는 속성이 근원적으로 꿈틀대는 최고의 사냥터인 것이다. 시즌이 오픈되면 백수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고사를 지내는 일이었다.
  그날, 특히 바람이 없는 날이면 가느다란 무채색의 연기가 그의 집 뒷마당에서 솟아오른다. 이어서 노릿한 냄새가 여기저기로 퍼져나간다. 그의 집은 다행히 시내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이라 냄새에 항의하는 이웃이 없다. 작은 고사상에 올려진 돼지머리는 죽어서도 행운을 비는 듯 부처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지난 사냥에서 잡은 것 중 최고의 산돼지다. 그 돼지의 머리와 생식기를 냉동 보관했다가 야구 시즌이 오픈되는 날 고사의 제물로 받치는 것이다.
  백수가 응원하는 롯데의 좋은 승률과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도록 비는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은 사냥철이 시작될 때도 행해진다. 그 고사는 훨씬 현장감이 있다. 돼지를 대신하는 것은 여자이다. 옛날에는 인신공양도 있었다지만 최대한 인신공양의 자세로 고사를 지낸다. 해서 여자는 정결한 알몸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태워 올린다. 그 역할은 시즌 중에 사귄 여자 가운데 선택한다.
  그리고 야구 시즌이 끝나면 다시 산으로 간다. -마누라야, 잘 살아라. 아들아, 행복해라.- 이제는 스스로의 삶에 만족함으로, 갈라선 아내나 제 엄마에게 양보한 아들에 대해서도 아주 객관적으로 행복을 빌 수 있었다. 마누라에게 아들까지 양보한 자신의 결단에 대해서도 스스로 대견스러워했다. ‘갈지 마라. 그리고 인정하라.’는 그의 좌우명이 결국 그로 하여금 불행하도록 버려두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
 
  사냥은 발보기, 곧 발자국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발을 찾는 데는 코가 발달된 개가 최고다. 그래서 사냥에는 첫째가 개이고, 둘째가 다리이며, 셋째가 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백수는 여자를 사냥하는 데에도 개를 이용한다. 이 부분이 백수가 여타 꾼들과 다른 점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남자를 원하는 여자는 페르몬이라는 고유의 냄새를 풍긴다. 그 본능적 감각을 인간들은 잃어버렸다. 그런데 영리한 개들을 훈련시키면 인간에겐 이미 퇴화되어 버린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야구장으로 가는 그의 가슴은 언제나 첫선을 보러가는 숫총각처럼 가슴이 설렜다. 물론 아끼는 집돼지 사냥개 발발이와 함께다. 발발이는 고양이새끼처럼 작아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애완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고도로 훈련된 사냥개다. 발발이는 발문(사냥감 찾기)에 최고수이다. 암(癌)을 알아내는 개처럼 주인이 사랑할 여자를 기막히게 알아낸다. 그가 한 시즌 산돼지 사냥으로 번 돈을 몽땅 투자해 샀다. 비싼 만큼  어떤 여자가 사냥감인지 정확하게 알도록 훈련이 되어 있다. 마치 상대편이 자신을 원하는지 아닌지를 3초 이내에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보노보 원숭이처럼 실수가 없다. 발보기(탐색)에서 발발이는 주인의 의도까지 알고 상대 여자(사냥감)를 찾아낸다. 일단 사냥감을 찾으면 그 여자 쪽으로 튀어가서 아양을 떤다. 그러면 여자는 개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개의 주인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 그 사이 그는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찾아낸다. 그것은 발발이 코로도 알아내지 못하는 그만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손가락이나 콧구멍, 귓밥, 입술, 심지어 머리카락 같은 것들의 떨림이나 변화를 보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미세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가 없다. 그것으로 그는 여자의 마음 상태를 거의 완벽하게 읽어낸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상대방의 상태를 아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것이다. 그것이 그의 숙련된 사냥법이다. 그 사냥은 산돼지 사냥보다도 훨씬 쉬웠다.

  쉽든 어렵든 사냥에는 야구의 타율처럼 포획 성공률이란 것이 있다. 연애성공률은 야구경기 방식을 그대로 대입한다. 타석은 야구장 지정석 옆자리 손님으로 시작한다. 옆자리 손님은 투수가 던지는 공에 해당된다. 그 손님이 남자인 경우는 두말할 필요 없이 삼진 아웃이며, 여자는 일단 스윙이다. 여자 가운데도 나이가 어린 소녀나 나이가 많은 할머니급은 파울 플라이 아웃, 아줌마는 플라이 또는 까다로운 타구 아웃이며, 아가씨는 안타가 되는 것이다(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미학에서는 아가씨가 안타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아가씨도 미모의 정도에 따라 1루타, 2루타, 3루타의 등급이 매겨진다. 작업이 잘 되어 2차를 간다든지 애프터가 실행되면 타점이 올라간다. 아가씨와 아줌마를 구별할 수 없는 어중간한 경우를 야수선택이라 하는데 요즈음은 아가씨와 비슷한 아줌마 급이 많아서 특히 야수선택이 빈번했다. 
  지난 사냥시즌에서는 산돼지 80여 마리를 잡았으니 3할쯤 되는 좋은 성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야구시즌 연애사냥에서도 3할 정도의 성적을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여자는 짐승과 다름으로 포획이라는 개념과 같을 수는 없다. 위에서 말하는 타점이 있어야 하는 개념이다.
  아무튼 백수의 기대에 부응하듯 몇 년 째 바닥을 기던 롯데가 시범 경기부터 승승장구하여 사직구장은 연일 만원사례가 빚어졌다. 그래서 ‘발보기’가 한층 쉽게 되었다. 꿈을 꿔야 님을 보고, 님을 봐야 뽕을 딴다고 몇 해 동안 사직 야구장에는 손님이 없었으니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발보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모름지기 인생이란 그 어떤 기대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그 기대치는 매 순간의 확률에 얽매이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처럼 그 어떤 행운을 기대하면서 지정석을 찾았다. 그때 발발이가 가볍게 끙끙댔다. 그것은 좋은 징조를 의미했다. 최근 연속 7안타를 날리고 있었고 그때마다 발발이의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에게 일찍이 없었던 좋은 기록이었다. 과연 그러한 연속 안타의 신기록 행진이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였다. 바로 앞 타석에서도 야수선택급의 미씨와 같이 앉았다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경기 뒤에 노래방 가서 브루스까지 춘 것을 고려하면 그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굳이 그의 끼(?)를 나무란다면 세상을 너무 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무엇인가.
  잘나가던 길에 갑자기 아찔한 절벽을 만난 것 같은... 육감적으로 그는 방망이가 빗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운의 신기록 행진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줌마였다. 야수선택이라도 기대해 볼 수 없는 아줌마도 한참 아줌마였다.
  그는 기분이 완전히 구겨져 읽을거리로 사들고 간 신문마저도 접고는 잠이라도 자는 척 눈을 감았다. 그런데 발발이는 계속 끙끙 거리며 사인을 보내왔다.
  이 눔의 개가 감기 며칠 하더니 코가 이상해졌나...
  역시 개는 어쩔 수 없다며 발발이가 든 가방주머니를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그렇다고 그의 사냥이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야구 경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꾼은 항상 최고를 지향한다. 그것은 최고의 사냥감을 만나는 것이다. 최고의 사냥감에게는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야구든 연애든 뜻하지 않은 행운이란 항시 있는 법이니 쉽게 포기하는 것은 꾼으로서 자격미달이 아닐 수 없다.

  자리를 자유석으로 옮겼다. 판단이 빠를수록 기회는 그만큼 더 많아지는 것이다. ‘발보기’가 가장 좋은 6부 능선에 자리를 잡았다. 꾼들은 발을 보면 9할을 성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목을 잡는 것, 곧 위치 선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는 그 목을 잘 알고 있다. 
  야구장은 언제나 생기가 넘쳐났다. 느긋이 야구장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동안 경기가 시작됐다. 롯데에서 첫 안타가 터졌다. 와, 하는 함성이 회오리바람처럼 하늘로 몰려갔다. 그는 그 소리가 몰려가는 하늘로 눈길을 옮겼다. 발발이도 야구를 아는지 소리가 흘러가는 9부능선 쪽으로 킁킁댔다.
  글쎄. 아니... 거기는 눈부시도록 푸른 봄날의 맑은 하늘만 아니라 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 아래 노란 양산을 받쳐 든 요염한 여자가 환영처럼 앉아 있었다. 순간 옛날 기생의 모습이 겹쳐졌다. 눈을 비벼 봐도 분명 실체였다. 분명 외야수 키를 넘길 수 있는 장타급이었다.
  예로부터 여자가 특히 매혹적일 때가 있다 했다. 이른바 삼상(三上), 삼중(三中), 삼하(三下)가 그것인데, 삼상은 마상(馬上), 장상(墻上), 누상(樓上)에 있는 여자요, 삼중은 여중(旅中), 취중(醉中), 일중(日中)에 있는 여자이며, 삼하는 월하(月下), 촉하(燭下), 렴하(簾下)에 있는 여자를 말한다. 그 여자는 야구장 10부 능선 맨 꼭대기에 앉아 있었고, 거기서 눈부신 해가 내리쬐는 일중에 있었으니 삼상 가운데 담장 위(장상)와 누각 위(누상) 더하기에 삼중의 햇살 속이라는 일중(日中)까지 곱으로 멋을 풍기고 있었으니 그의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돼지로 치면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하는 최고의 사냥감인 것이었다. 마치 옷을 벗어놓고 멱을 감는 선녀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제 그는 옷만 감추면 만사가 끝나는 것이다.
  일단 선발대 발발이를 먼저 풀었다. 발발이는 곧장 그녀 쪽으로 가서 꼬리를 쳤다. 하지만 좋은 사냥감이란 언제나 쉽게 포획되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화려한 미모답게 도도했다. 개를 찾으러 가는 척 그가 가까이 접근해 슬쩍 운을 띄워봤지만 도도한 그녀는 ‘별꼴이야’는 듯 콧방귀를 쳤다. 그럴수록 더 집착이 갔다. 웬만한 여자들이면 쉽게 걸려드는 미끼들로 견제구를 날렸지만 그녀는 사슴처럼 목을 빼고는 딴전을 피웠다. 뭔가 불길했다. 지난 산돼지 사냥에서 유일하게 실패한 그 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놈은 덩치도 컸고, 아주 노련했다. 보통의 대장 돼지들은 졸개들을 앞장세우고 자신은 어슬렁어슬렁 뒤따르는 것인데 놈은 자신이 보란 듯이 아주 당당하게 나귀처럼 앞장 서 움직이고 있었다. 한 눈에도 예사 멧(산돼지)이 아니었다. 백수는 다른 돼지를 포기하고 오로지 그 놈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추적을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한 번도 그가 지키는 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놈은 민둥산 작은 소나무 아래 몸을 숨기는 등 보통 돼지들이 쓰지 않는 도피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예상은 계속 엇나갔다. 오히려 그가 놈에게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그에게는 사냥꾼의 기질, 곧 전의가 불타올랐다. 한번은 놈을 추적하다가 드디어 외통수의 지세에 돌입했다. 작은 산에서 큰 산으로 가는 길이 한 곳뿐인 절호의 기회인 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놈은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했다. 돼지들이 절대로 가지 않는 길, 곧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논 쪽으로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덕분에 논 쪽에서는 돼지를 쫓는다고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다. 자신의 작전이 간파당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놈을 포획하는 것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며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기에 자존심이 상했다. 꼭 잡아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놈의 습성을 역이용해 추적했다. 놈이라면 몰이꾼이 지나간 길을 되돌아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쪽을 지키고 있었다. 보통의 돼지들은 절대로 오지 않는 목이었다. 놈은 결국 걸려들었다. 좋은 위치에서 커다란 놈의 덩치가 모두 노출되었다. 그는 연이어 몇 발을 당겼다. 놈이 펄썩 스러졌다. 명중한 것 같았다. 때때로 사냥은 의외의 결과를 얻는다. 그동안 그의 전의를 불태우며 그렇듯 잘 피해 다니던 놈이 너무 쉽게 자신을 내 주고 말았다. 순간 그는 약간 공허한 느낌마저 들었다.

  발발이가 킁킁대기는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개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표정의 동요가 없었다. 그녀는 우아했고 빈틈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백수가 꾼이라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놈을 잡을 때처럼 작전의 변화가 필요했다. 어렵거나 복잡할 때일수록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것이 주효할 때가 많은 법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그때 그에게 뜻밖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녀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토록 평범한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백수는 요즘 잘 나간다는 티오피 캔커피를 사들고는 슬그머니 그 옆자리에 앉았다. 마침 롯데에서 안타가 터졌다.
 “안타 기념입니다.”
  그는 티오피를 내밀었다. 여자는 별 망설임 없이 반갑게 받았다. 그리곤 캔 따개를 따려할 때 그의 순발력이 발휘되었다.
  “아, 잠깐...”
  백수는 캔을 빼앗아 손수건으로 윗부분을 깨끗이 닦아내고는 따개를 따 두 손으로 다시 건넸다. 여자는 약간 감동하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그 방면에 고수인 그는 그런 표정 속에 작은 변화까지 보고 있었다. 특히 그는 꼴깍, 목줄을 타고 내려가는 그녀의 침선을 간파했다. 그것은 구십구 퍼센트 성공을 의미했다.
  도도했던 여자는 너무 쉽게 꼬리를 내리는 것 같았다.
  야구 좋아하나 보죠? 어디 사십니까? 아주 우아하십니다. 등등의 통상 연애 멘트를 날릴 때마다 명중, 명중이었다. 여자는 총을 맞은 돼지처럼 몸을 조금씩 떨었다. 그가 생각해도 너무 쉽게 진도가 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불안했다. 그쯤 되면 완벽하게 포획한 것이다.
  백수는 성공을 확신했다. 바로 손을 잡았고, 슬그머니 어깨에 팔까지 걸쳤다. 마지막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한 단계가 남았다. 백수만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 비법이었다. 마치 침쟁이가 침을 찌르듯이 세끼 손가락으로 귀밑 급소를 찌르면 여자는 전신을 파르르 떨며 그의 무릎에 쓰러질 것이다. 완전 포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영점일 퍼센트 실패 확률에 걸린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실패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낭패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 결정적 찰나에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백수 쪽으로 와르르 몰렸다. 아, 그는 난감했다.  여태 그런 일이 없었다. 급소를 찌르려는 순간 그는 약간의 뜸을 들이고 말았다. 마치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그는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이다. 다행히 여자가 뭐 이런 게 있어 하는 투로 획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가버려서 사태는 수습이 되었지만 하마터면 완전히 치한으로 몰릴 뻔했다. 여자가 가만히 있다 해서 결코 포획된 것이 아니었다. 백수는 너무나 평범한 수칙 하나를 한순간에 깜빡 한 것이다. 그것은 방심이었다.
  총 맞아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산돼지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네 다리를 들어야만 비로소 죽은 것이었다. 서투른 사냥꾼들이 그렇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가 총에 맞고 쓰러져 웅크리고 있으면 죽은 걸로 생각하고 가까이 접근하기가 십상이다. 궁지에 몰린 돼지는 바로 그 어느 맹수보다 사나워진다. 돼지가 일어나 돌격해올 때 그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것은 가히 탱크와 같다. 그 때 돼지는 온 몸이 흉기나 다름없다. 앞으로 뻗어 나온 어금니는 살상용 칼이요, 앞 주둥이는 권투선수 펀치보다 강하고, 심지어 곧추선 털까지도 모두 바늘처럼 날카로워진다. 그럴 경우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죽은 줄 알고 접근했으니 얼마나 위험했겠는가. 때로는 주둥이로 사람을 위로 쳐올려 떨어지기 전에 배구공 토스하듯이 재차 받아 쳐올리기도 한다.
  연애의 고수인 그의 지금껏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너무 평범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남자의 공격을 받은 여자가 완전히 경계를 풀었다는 것은 여자의 발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두 발끝이 안으로 움츠리거나 가지런할 때는 결코 아니다. 정확하게 사십오도 이상 벌어져야 한다. 그러면 산돼지 네 다리가 하늘을 향한 것처럼 가까이 접근해도 된다.

  지난 사냥에서 그 놈에 대한 실패도 결국 방심이었다. 다 잡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너무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놈을 보기 좋게 몇 발의 총으로 명중시켰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돼지라지만 자신 앞에는 별 수 없다. 백수는 순간 놈이 자신의 작전에 걸려든 것에 흐뭇해  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인 사살을 할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이 실수였다. 네 발을 들기 전에 결코 승부가 끝난 것이 아님을 잘 아는 그가 그날 무엇에 쓰였는지 놈을 완벽하게 포획했다고 단정했다. 열 걸음 정도 가까이 다가갔을 때 바위처럼 스러져 있던 놈이 갑자기 일어나 돌진해왔다. 아뿔싸, 그는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것인가 깨달았지만 그것은 너무 늦었다. 총을 겨눌 겨를도 없이 놈의 주둥이에 받쳐 옆으로 퉁겨났다. 퉁겨 떨어진 곳이 마침 경사가 급한 곳이었고, 큰 나무 옆이었다. 놈이 다시 방향을 돌려 그에게 돌진해왔을 때 경사가 급한 내리막이라 돼지가 약간 머뭇거렸고, 그 와중에 나무를 타고 올라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 백수는 팔과 다리, 옆구리에 부상을 입었다. 그만큼이라도 당한 것이 천운이었다. 잘못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하필 그날 여자에게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것이다. 아무튼 그날은 만사가 빗나갔다. 최악의 날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허탈해서 야구장 뒤쪽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쫒고 쫒기는 사냥터에서 그런 일들이 상시로 있는 법, 야구장 역시 엎치락뒤치락 새로운 생기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사냥터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직 야구장은 안성맞춤이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사직 야구장은 거대한 조개 같다. 그는 사직 야구장에 들어설 때 마다 꼭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 속에 빠지곤 했다. 아마 야구장 가운데가 움퍽하게 들어간 타원형이기 때문이리라. 아니 야구장이 위치해 있는 사직동 자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여자의 품 속 같다. 그것은 마치 큰 자궁 속에 또 다른 작은 자궁이 들어앉은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야구장을 설계한 사람이 그것을 고려했는지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사직동과 야구장의 어울림은 절묘했다. 정말 자신이 야구광이거나 풍수에 조예가 있다면, 아니 자연의 맛을 어느 정도 느낄 줄 아는 시골 출신만 돼도 그 해거름지는 오후 자유석에 앉아 있으면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한량없이 마음이 푸근해지는 세상 최고의 평화를 맛볼 수 있었다. 사실 그는 그것 때문에 너무 승패에 초연해져서 한 때는 야구 자체에 흥미까지 잃어버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였다. 그동안 지고 있던 롯데에서 역전의 발판이 되는 홈런이 터졌고, 함성이 그가 앉아 있는 10부 능선으로 다시금 몰려왔다.
  앗차, 주머니 가방에 있던 발발이가 없어졌다. 아찔했다. 발발이는 너무 작아 주머니를 벗어나면 위험천만이다. 아니 야구장에 개를 데리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다행히 저 만큼 새로운 발을 찾아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발발이를 쉽게 찾았다.
  급하게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아직 홈런의 함성이 야구장을 맴돌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발발이가 찾아낸 ‘발’은 너무 뜻밖이어서 그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발발이는 처음 그가 앉았던 지정석에 가 있었다. 아까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가 백수를 보더니 반가워했다. 하지만 그 아줌마는 이미 플라이아웃으로 처리된 여자였다.
  얼씨구, 이건 또 무엇인가. 그녀가 귀엽다며 발발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발발이가 폴짝 그녀 품에 안겨버렸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그녀가 빙긋 웃는 바람에 무안하게 그냥 버틸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원래 지정석에 다시 앉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맙습니다.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황한 그가 상황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야구는 홈런도 부질없이 추격이 중단되어 버렸고, 오히려 이어진 상대 공격에서 연속 안타가 터져 점수를 더 내주고 있었다. 그날은 모든 일들이 빗맞아 돌아가고 있었다. 그냥 일어서 나와 버릴까 했다.
  
  어느덧 야구장 뒷산 위로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사직동 절경 중에 하나인 아름다운 초저녁 풍경이 펼쳐졌다. 초반에 이미 대량 실점한 야구는 애초부터 글러먹은 것이어서 그는 주로 하늘 쪽에다 시선을 박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5회를 넘어서면서부터 롯데가 조금씩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응원하느라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그녀의 살결이 조금씩 부딪쳐오면서 그 어떤 촉감이 감지되어왔다. 그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더구나 여성 특유의 향기까지 솔솔 풍겼다. 그제는 굳이 몸을 움직여 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애초부터 잡친 기분은 살아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플라이아웃으로 처리된 여자이기 때문에 연애를 위한 다양한 작업이나 기술은 접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발발이었다. 그날 발발이는 초지일관 그녀에 대해 그 어떤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그 본능적 감각이 살아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가 벗겨진 노오란 귤의 속살을 내밀었다. 손 쪽이 아닌 입술 쪽이었다. 그는 엉겁결에 쏙 빨아 먹었다. 달콤말콤했다. 너무 엉겁결이어서 그녀의 입술을 빤 듯했다. 신맛이 전혀 없는 아주 잘 익은 귤이었다. 아니 약간 부끄러운 듯 웃는 그녀의 미소가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귤처럼 맛있어 보였다.
  토마토...
  ‘과일도 아니면서 과일이라 우긴다.’
  그는 문득 한때 유행했던 과일에 의한 여성론이 떠올라 혼자서 웃었다. 오십대 여성은 그런 토마토라 했다. 사십대는 잘 익어 절로 벌어진다는 석류이며 삼십대는 잘 갈라지는 수박이라고 했던가.
  정말 기발한 발상이었다. 그는 그 여성론에 경의를 표했다. 그렇다. 뜨는 해가 아름다운 만큼 지는 해도 아름답다. 기왕지사 여자를 과일에 비긴다면 과일은 익을수록 맛이 있는 것이 아닌가. 무릇 미추(美醜)란 제 눈에 안경인 것을.
  백수는 그 위대한 철학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나이를 생각했다. 여태 타율만 생각해 온 그의 나이도 어느덧 오십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미의 개념은 한 뼘도 넓어지지 못했다. 조금 전 장타의 여자에게 낭패를 당한 것도 거기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차피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타협이다. 세상은 산이고 세월은 하늘이다. 하늘을 이고 사는 이상 순간순간 흘러가는 저 세월과 타협하지 않을 자 누가 있는가. 그렇게 보면 연애도 타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고집이라면 연애는 타협인 것이다. 사랑이 최선이라면 연애는 차선이며, 사랑이 이상이라면 연애는 현실이지 않는가.
  여태 그것도 모르고 꾼 행세를 한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자리를 고쳐 앉아 다시 그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사이 벌써 한두 개의 라이트가 커졌고, 하늘에는 노을 대신에 둥그런 달이 떠 있었다. 아니, 바뀐 것은 야구장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그새 사람이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여우가 둔갑한 것 같았다. 달빛과 막 켜지기 시작한 라이트 불빛 아래 그녀는 두레박 타고 내려온 선녀처럼 황홀했다. 누상이니 장상이니 마상이니 하는 삼상과 여중이니 취중이니 일중이니 하는 삼중이 기가 막힌다지만 삼하 또한 숨이 막히는 것을, 그 중에서도 달 아래(月下)와 등불 아래(燭下) 여자야 말로 최고 경지가 아닌가.
  토마토든 석류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아니 그녀는 토마토도 석류도 아닌 달콤말콤한 귤이었다. 향기 또한 풋과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잘 익은 과일 본래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백수는 조금 전까지 마치 징그러운 벌레 대하듯이 멀리 떨어져 앉으려고 했던 자신을 나무라면서 가급적 가까이 밀착하려 했다.
  그래, 우수한 타자일수록 타구의 방향을 한쪽으로 고집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것을 확대해가야 좋은 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좋은 인간관계라는 것은... 세상에 연애감정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인간이 이기(利己)를 버리고 이타(利他)로 나아가려는 것도 연애감정의 산물이요, 생(生)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욕구도 연애감정인 것이다. 그는 여태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수많은 야구경기를 삭막하게 본 것이 안타까웠다.
  아무튼 백수는 그 생각 하나의 차이로 아웃 직전 안타를 날렸고 신기록의 행진은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제는 진루 뒤에 새로운 문제에 고심을 해야 했다.
  응원하는 척 몸을 밀착시켜 적당히 재미를 맛보는 도루(훔치기)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는 치고달리기를 감행할 것인가, 그냥 의례적인 말걸기의 번트를 댈 것인가... 그것은 정말 즐거운 고민거리였다. 도루나 치고달리기를 잘못했을 때 아까처럼 음탕한 놈으로 매도당하는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야구의 작전이란 늘 골치가 아픈 것이다.

  그가 이렇다 할 작전을 세우지 못한 채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있을 때 야구는 벌써 막바지에 치달아 있었다.  9회말 롯데의 마지막 반격이 시작됐다. 첫 타자의 깨끗한 안타가 터졌다. 모든 관중이 일어났다. 운동장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그녀가 그의 발을 밟고 말았다. 그는 괜찮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그녀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소곳이 홍조 띤 미소를 짓는 그녀는 더욱 아름다웠다. 그것은 행운의 번트 안타였다. 그녀가 다시 깐 귤의 속살을 그의 입 쪽으로 내밀었다. 행운의 진루는 계속되었다.
  야구는 어느덧 동점 투아웃에 역전 주자까지 나가 있었다. 타석에는 그날 홈런까지 친 최고의 타자 가르시아였다. 관중들은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 흥분의 열기가 폭발할 듯했다. 드디어 백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녀가 내밀었던 귤 반쪽을 물고서 그녀 입술 쪽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입술이... 아, 터질 것 같은...
  가-르시아! 가-르시아!
  관중의 함성이 회오리바람처럼 솟아올라 사직동 하늘로 퍼져가고 있었다.


  그는 끝내기 안타와 같은 한 마디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뭘 모르는 자들이 ‘돼지는 근수이고, 여자는 미모’라며 서로 대조됨을 강조하지만 돼지도 역시 잘 생긴 놈이 고기맛도 있고 쓸개도 좋은 최고의 상품입니다.”
  햐, 우리는 모두 넋이 나간 채 마지막 감탄사를 내질렀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는 것은 알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못내 의구심 하나를 끄집어냈다. 여자를 많이 사귀었다는 것은 확실한 여자 하나를 못 만났다는 것 아니냐며 다소 면박조로 물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이외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외롭습니다. 확실한 에이스가 없을 때 불펜에 많은 투수가 필요합니다. 여자도 마찬가집니다. 에이스가 없으면 내가 견딜 수 있는 고독전선이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그런대로 버틸 것 같던 선수들이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그럴수록 많은 불펜 투수가 필요하지요. 에이스가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완)


      박명호 :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5년 부산작가상 수상
      장편 ‘가롯의 창세기’, 작품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등.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