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하시 대흑하도를 가다

흑룡강 얼면…아이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중국과 러시아를 넘나든다

◇ 흑룡강에서 삼강평원까지 답사

▲ 흑하시에 있는 한 식당의 창문. 장구 치는 조선족 여인상이 그려진 모습이 이색적이다.
만주땅의 넓이는 한반도의 6배에 달한다고 한다.

좁은 국토를 가진 한국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넓이가 아닐 수 없으며, 대흥안령산맥을 넘어서 러시아까지, 그리고 북경까지 뻗었다는 대고구려의 광활했던 영토를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넓이인 것이다. 그 땅을 지금까지 소유하지 못하고 남북한마저 두 동강이 난 상태이고 보면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씁쓸하다.

필자는 만주땅 최북단이며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중국에서 세번째로 긴 강 흑룡강 최상류 막하에서 최하류인 삼강평원까지 두루 답사해 보았다. 이곳까지가 현재 우리의 영토라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며 필요로 하는 땅이었겠는가. 조상이나 부모가 소유한 재산을 후손이나 자식들이 대대로 이어오지 못하고 남의 명의로 넘어갔을 때 괴로워 가슴 아프고 잠 아니 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민족 5천년 역사의 시원의 땅으로 아직도 숨쉬고 있는 그 흙냄새가 애인처럼 그리운 것이다.

지도를 펴놓고 들여다보면 한반도의 중심에 서울이 위치해 있듯이 중국의 중심에 서안이 위치해 있으며, 만주땅 한복판에 하얼빈이 위치해 있다. 이곳 하얼빈에서 흑룡강 7천리의 중상류쯤에 해당하는 흑하까지 가는 데 열차로 12시간이 소요되는 대하드라마같은 장정이다. 필자는 하얼빈에서 만주땅 최북단 흑룡강까지 몇 차례 오르내리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한겨울에 흑룡강까지 갔을 때는 차창 밖으로 끝도 없이 흰눈으로만 덮인 장엄한 만주벌판 풍경에 그만 넋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 혹한의 흑하시

▲ 흑하시 흑룡강 풍경. 강 건너편으로 러시아 도시 블라디비센스코가 선명하게 보인다.
한겨울의 흑하시는 영하 40℃인데 나는 그걸 이겨내고 이곳에 당도해 한도없이 흑룡강을 바라보고 바라보았던 것이다. 하얼빈에서 저녁 7시 무렵 출발하는 3층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려 이튿날 새벽 7시쯤 흑하역에 도착했다. 갈 곳 몰라 망설이는 이방인에겐 모든게 낯선 풍경이다. 요기를 위해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간 곳은 한글 간판의 식당이었다. 유리문에 흰 저고리에 남색치마를 입고 장구를 치고 있는 조선족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식당이었다. '베이징 덕' 즉 오리요리 식당이었다. 주방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옷 다 벗은 알몸의 청둥오리가 목욕을 다 하고난 것처럼 서너 마리가 매달려 있었는데 나는 새끼돼지인 줄 알았다. 그만큼 오리가 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흑룡강으로 갔는데 거기 섬으로 이루어진 대흑하도(大黑河島)가 있었다.

'자유무역청'이라 하여 중국과 러시아산 상품이 가득한데, 두 나라 사람들은 자유로이 국경무역을 한다. 흑룡강이 결빙하는 11월~이듬해 3월 얼음 위로 상품교역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마음대로 스케이트를 즐기며 두 나라를 넘나든다.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군은 영하 40℃의 한겨울에 얼어붙은 흑룡강 빙판 위로 30t짜리 탱크를 몰고와 일본군을 공격했다. 바로 그 장소가 지금은 한국자동차의 빙판위 성능시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중국국제상업무역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쇼핑센터와 같았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온갖 잡화, 옷가지, 식품, 기념품 등이 매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특이하게 눈에 비친 풍경은 미인으로 소문난 러시아 아가씨였다.

러시아에서 흑룡강을 건너 쇼핑하러 나온 정말이지 후리후리하고 늘씬한 몸매의 러시아 여인들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여인들은 모두가 007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보였다. 센터를 빠져 나온 일행은 강가로 갔다. 바라보는 흑룡강이 아니라, 직접 강가에 와 돌멩이도 만져보고 강물도 만져보았다. 강 건너 가까이 바라보이는 도시가 러시아의 블라디비센스코였다.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강상(江上)에는 러시아 국기를 단 군함도 떠 있었으며 나무를 가득 실은 뗏목배도 있었다. 물새들까지 날고 있는 한적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필자가 여기서 착상한 인생에 대한 시가 있다.

산다는 게 뭐 별 것 있는가/ 강으로 나와 흐르는/ 물살 바라보던가, 아니면/ 모여있는 수많은 돌멩이들/ 제 각기의 모습들처럼/ 놓인 대로 근심걱정 없이/ 물소리에 귀 씻고 살면 되는 것을// 산다는 게 뭐 별 것 있는가/ 강 건너 언젠가는 만나게될/ 사람 그리워하며 거닐다가/ 주저앉아 풀꽃으로 피어나면 되는 것을/ 말은 못해도 몸짓으로/ 흔들리면 되는 것을// 산다는 게 뭐 별 것 있는가/ 혼자이면 어떤가/ 떠나는 물살 앞에 불어오는/ 바람이 있는 것을/ 모습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그 모두가 우리의 분신인 것을/ 산다는 게 뭐 별 것 있는가/ 하늘아래 머물렀다가도/ 사라지는 목숨인 것을 (서지월 시 '산다는 게 뭐 별 것 있는가' 전문)


◇ 통한의 흑하사변

▲ 대구시인학교 '흑룡강 7천리를 가다' 깃발을 모래사장에 꽂은채 흑하시 흑룡강변에 앉아있는 서지월 시인.

혼자 이곳 흑룡강에 와 아무 근심걱정 없이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천하제일의 가객' '천하제일의 풍운아'같이 느껴졌다. 흑룡강에 와서 느낀 심사는 이러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대흑하도를 빠져 나와 흑룡강공원으로 향했다. 강둑에 서서 강 건너 러시아 땅을 바라보니 이국땅을 보는 듯한 감회에 푹 젖었는데 당장이라도 방금 잠에서 깬 러시아 여인이 물살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흑룡강은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여 만주땅 국경을 따라 동으로 흐르다가 러시아의 하바로브스크에서 북동류하여 오호츠크해로 흘러드는 장장 4천350㎞로 세계에서 8번째로 긴 강이다. 만주에서는 헤이룽강, 또는 '헤이허강(黑河江)'으로도 불린다.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Amur), 몽골과 퉁그스인은 하라므렌(검은 강이라는 뜻)이라 부른다.

이곳 흑하는 일제치하 한국독립운동의 최대 비극의 사건인 '흑하사변(黑河事變)'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920년 독립군이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 등에서 대승을 거두자 참패당한 일본군은 일개 사단병력을 만주에 투입하여 독립군 소탕을 위해 토벌작전을 벌이자 우리 독립군은 일단 흑하에서 재집결하여 러시아령인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로 들어갔으나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의 적군(赤軍)이 우리 독립군을 포위하고 무장 해제를 요구한다. 이에 독립군 부대와 교전을 벌여 전사 272명, 917명이 러시아군에 체포, 행방불명이 250명, 31명은 흑룡강에 투신해버린 대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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