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공정”, “공평”, “정의”라는 가치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그 이후의 정치적 행보이다. 다른 하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출판계를 풍미해 온 자기계발서와 전혀 궤를 달리하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3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는 “공병호”로 상징되는 개인 경쟁력 강화를 통한 개인적 출세, 행복 노선에 대한 회의감 내지 좌절감이 사회 저변에 널리 퍼진 징표 일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이 역설한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는 8월 중순 우연찮게 터져 나온 유명환 전외교부 장관 딸의 특채 파문에 힘입어 더욱 널리 회자 되었다. 어쨌든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는 8.15 경축사에서만 한번 언급하고 망각 속에 묻어버리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 이대통령의 정치, 정책적 행보를 볼 때 명백하다. 어쩌면 진보가 이구동성으로 부르짖는 “복지” “민주”의 대항마로 선진화나 성장 대신에 “공정”을 상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경남도정의 4대 기조의 하나로 일찍부터 “공평 경남”을 표방해 왔다. 나머지 셋은 클린 경남, 복지 경남, 번영 경남이다. 김 지사는 도지사 집무실에 고교시절부터 좌우명으로 삼고 있던 “불환빈(不患貧) 환불균(患不均)” 이라는 글씨가 쓰인 큰 족자를 걸어 두고 있다. 이는 공자 계씨편에 있는 내용(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인데, 번역하면 ‘(제후와 사대부는 토지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불공평)을 걱정하며,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되지 않은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13억을 통치하는 중국 공산당은 위 문장에 나오는 불균(不均)을 불평등으로 해석하지 않고, 불공평으로 해석하고, 핵심적인 국정(조화사회 건설) 원리로 삼는다.

“중국에서 조화사회 건설의 당면 고려사항은 첫째, 사회 공평의 추진이다. 사회 전체가 공평과 공정의 원칙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회를 만들고 이런 원칙 하에서 각계 군중과 계층은 각각의 장점을 살리고, 타인의 장점을 인정․공유하여 천하 대동세상을 만든다”

일본 민주당도 강령이나 다름없는 “우리의 기본 이념”(1998.4.27 발표)에서, 당의 첫 번째 목표로 “투명·공평·공정한 룰에 근거한 사회”이다. 두 번째가 “경제사회에 있어서는 시장원리를 철저히 하는 한편, 모든 사람들에게 안심·안전을 보장하고, 공평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공생 사회의 실현”이다. 이로부터 일본 민주당 역시 공평과 공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인간의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연구의 진전과 다양한 동물 실험 등을 통해서, 주고받음의 균형을 의미하는 공평 감각이 동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일종의 원초적 본능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지식사회의 공정과 공평에 대한 무관심과 혼동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가치를 표현하는 추상적 개념은 본래 사물의 어떤 측면은 집중 조명하고 어떤 측면은 무시하는 ‘편광 안경’ 역할을 한다. 또한 흐릿한 사물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일반 안경 역할도 한다. 또한 정치․사회적 에너지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알려주는 잣대와 가이드 역할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공정과 공평 개념의 모호함과 특히 공평 개념의 실종은 국가, 사회적으로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단적으로 성장, 시장원리(자유), 기강, 안보, 감세 등을 강조하는 한국 보수나 복지, 양극화 해소, 국가와 사회의 개인에 대한 책임성 제고, 대화와 타협, 증세 등을 강조하는 진보는 공히 불공정과 불공평을 문제 삼지 않고, 공자 계씨 편의 표현을 빌리면 단지 모자람(寡)과 가난함(貧)을 문제 삼는다.

진보가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대안을 도출할 때 사용하는 핵심 개념인 “양극화”는 큰 격차를 문제 삼기에 언뜻 보면 고르지 못함(不均)을 문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격차의 성격(불공평)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는 저질 서비스로 손님이 없어서 파리 날리는 식당과 양질의 서비스로 손님이 줄 서는 식당 간의 격차와 정규직-비정규직, 원청대기업-하청중소기업, 정교수-시간강사, 수도권 요지 부동산 소유자-비소유자, 신의 아들(군 면제자)-사람의 아들(현역 병), 요즈음 국감에서 난타 당하는 신의 직장-사람의 직장 간의 격차를 구분하지 않는다. 전자와 후자의 격차는 전혀 성격이 다르고 따라서 대책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사회 발전을 억누르는 핵심적인 모순.부조리는 공정, 특히 공평의 안경으로 보면 선명하게 보인다.

한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하는 사회운영의 원리, 즉 질서는 유한한 자원을 둘러싼 인간(집단)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경쟁(게임) 규칙이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서야 사회가 가진 자원, 에너지와 사회 구성원이 갈망하는 가치가 적재적소로 흘러가서 지속적인 성장과 통합이 가능하다. 요컨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회의 성장과 통합의 요체는 합리적 경쟁 규칙이다. 승자도 패자도 억울함이 없어서 그 결과에 승복하는 합리적 경쟁 규칙이다.

합리적 경쟁 규칙은 경쟁 방식과 목적의 합치를 전제로, 경쟁 입구=출발선(starting line)에서의 평등과 경쟁 출구(finish line)=결과에서 합리적 불평등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만족하지 못하면 합리적인 게임 규칙이라고 할 수가 없다. 경쟁 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공평한 기회)을 의미하는 공정이 경쟁의 입구를 관리하는 기준이라면, 경쟁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공평은 경쟁의 출구를 관리하는 기준이다. 공평은 사회적 상벌체계(incentive-penalty system)의 핵심으로, 승자/강자(현세대 포함)의 몫(이익 수준)과 패자/약자(미래세대 포함)의 몫(배려 수준)을 결정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잘 작동하는 시장에 맡기면 답이 나오는 문제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도 많다. 수많은 공평 문제는 대체로 정치적이고, 철학적이고, 공학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어렵고 복잡하고, 철학적이고 공학적인 문제라고 해서 국민들이 외면하지 않는다. 알박기 하는 자, 부동산 불로소득자, 거액 세금 탈루자, 신의 아들, 신의 직장에 분노하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의 뿌리는 한마디로 불균(不均)이다. 극심한 양극화가 아니라 극심한 불공평이다. 이놈은 불합리한 경쟁 규칙 내지 불합리한 상벌체계가 낳은 괴물이다. 예컨대 지금 한국 사회는 다양한 층위에 걸쳐 경쟁 규칙 또는 상벌체계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철저히 사회적 강자나 기득권자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있다. 대체로 승자/강자에게 너무 크고 영속적인 이익이 주어진다. 따라서 돈이든, 권력(재정 할당권, 처벌권)이든, 단결투쟁력이든, 독점권과 진입장벽이 확고한 자격증이든, 유력자와 연고든, 매체든, 도심요지 부동산이든 뭐든 ‘한 칼’이 있는 갑(甲)적 존재들의 처우는 국제기준으로 볼 때 매우 높고 안정적이지만 ‘한 칼’ 없이 시장 경쟁에 내팽개쳐진 을(乙)적 존재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노력이나 능력 보다 소속, 줄(연고), 부모(배경)가 팔자를 바꾸니 전근대적 특권, 특혜 시비가 일어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신분상승의 사다리 아래에서는 경쟁은 치열하지만 일단 사다리를 올라가고 나면 마치 귀족이 된 것처럼 경쟁은 너무 적다. 사다리 아래 혹은 성 밖에서는 너무 가혹하고 과도한 시장이 존재하지만, 사다리 위 혹은 성 안에서는 너무 온화하고 과소하고 불합리한 시장이 존재한다. 승자 재신임전에 인색한 만큼 패자부활전이 원활할 수가 없고, 신진 세력의 도전 기회가 풍부할 수가 없다. 관점을 달리하면 한국 사회는 오른쪽으로도 확 굽어지고(과잉 시장, 과소보호) 왼쪽으로도 꽤 굽어진(과소시장, 과잉보호) 이중 왜곡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몰염치한 우파적 가치의 과잉과 몰염치한 좌파적 가치의 과잉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의 뿌리는 결국은 취약하고 때론 사악한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이 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특히 정치와 언론이 있다. 사상 이념적으로는 공평 사상의 실종에 있다. 공평은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공정한 사회)”를 넘어 “사상 이념적, 사회경제적 인프라”다. 공평은 자유와 시장도 완성하고 평등과 국가도 완성하는 가치이다. 불공평은 자유와 시장의 적이자, 평등과 사회적 최소한의 적이다. 진보와 보수의 공적인 것이다. 한국 사회는 투명, 공정, 공평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끝-
<사회디지인연구소 김대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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