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조선족민속축제를 가다

붉은 중국깃발 사이 '아리랑 깃발'을 보는 순간

◇ 조선족민속축제가 열리는 날

▲ 하얼빈 조선족 여인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손에 손 잡고 강강술래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9월1일은 조선족민속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설과 중국 국경일과 더불어 조선족에게는 세 번째 큰 명절이라 한다. 축제 가운데 조선족 합동결혼식까지 축제분위기 속에서 거행돼 참으로 이색적이면서 보기좋은 광경이었다. 조선족민속축제가 열리고 있는 하얼빈공업대학 체육관은 국제급 규모의 운동장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 이국적 삶을 살아가면서도 민족 고유정서를 그대로 살리며 살아가는 하얼빈 일대 조선족 동포들의 민속축제 현장은 온통 붉고 푸른 꽃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부르짖고 싶었다. 한국시인 서지월이 왔다고! 고유한 민족정서에 매달려 시를 써온 한국시인이 왔다고! 민족단합의 축제행사에 나도 한 관객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비록 하얼빈 조선족동포들의 소수민족축제로 열리고 있지만 이곳 하얼빈공업대학 하늘에는 붉은 중국깃발이 중앙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좌우 양측에는 아리랑 깃발 두개가 똑같이 펄럭이고 있었다. 아리랑 깃발을 발견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는 중국의 조선족동포들을 상징하는 것만이 아닌, 우리 한민족 전체의 얼이 담긴 그 표상으로 여겨졌다. 남북한 문화교류나 체육행사에서 한반도 깃발이 사용되고 있는데 비해, 만주땅에서는 아리랑 깃발이 펄럭인다. 나로서는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무대에도 둥근 마크에 아리랑을 상징하는 삼색 로고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다섯 개 별이 그려져 있는/ 중국의 붉은 깃발은/ 중앙에 펄럭이고 있고/ 우리 민족 고유의 얼의 상징인/ 아리랑 깃발은 좌우 양측에/ 중국깃발과 똑같은 높이의/ 공중에서 펄럭이고 있었으니/ 아아, 장하다 장하다/ 비록 태극깃발은 오르지 못해도/ 하얼빈조선족 민족축제 현장에는/ 아리랑깃발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 서지월의 시'아리랑 깃발'전문

▲ 축제현장 하늘에 펄럭이고 있는 붉은 중국 깃발과 아리랑 깃발이 인상적이다.
수 천명이 넘는 조선족들이 한데 어울려 4년마다 한번씩 펼치는 민속축제의 규모는 대단했다.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달리고 그네를 뛰는 한복 입은 아낙네들, 남정네들은 지게를 지고 달리기를 하는가 하면, 어린이들은 색동 한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사방을 에워싼 조선족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눈물나는 것은 조선족 소학생의 개막선언이었다. 남학생이 중국말로 먼저 진행하면 여학생이 조선말로 다시 받아 진행하는 것이었다. 두 어린 학생이 깜찍하게 진행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 이 행사가 치러진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말이 조선민속축제이지 중화인민공화국 번영을 위해서라니, 그러나 어쩌랴! 조선족 아이들의 춤사위에서도 이 민족의 아픔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피는 조선민족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아이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조선어도 배우고 있지만 그들의 교과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그 본령인 것이다.


◇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붉은 중국 깃발

점심시간이 됐다.

▲ 조선족 소학교 아이들이 깃발을 하나씩 손에 들고 입장하고 있다.
물론 음식을 손수 준비해 와 관객석이나 통로 등에서 북새통을 이루며 가족과 이웃이 어울려 먹고 있었다. 한국의 운동회때나 다름없는 정겨운 풍경들이었다. 운동장 밖에는 토산음식가게까지 진을 쳤는데 거기에도 인파로 북적댔다. 조선족 소설가인 김송죽 선생과 우리 일행도 운동장 밖에 나와 토산음식가게의 국수를 한 그릇씩 시켜 먹었다. 식사 직후 아리따운 한복을 차려입은 조선족 여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상시 밀락향에서 왔다는 박윤애씨 등이었다. 박씨는 오상시 밀락향 밀락조선족중학교 무용교사로 이 축제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팀이 보여준 춤은 '봄이 왔네'였다. 우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그분들과 기념촬영도 하게 되었는데 마침 박씨는 나와 1955년생 동갑내기라 더욱 반가워 서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네뛰기도 너무나 토속적이었다. 초록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차려입은 그대로 그네뛰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손에 손에 중국 깃발 하나씩 들고 나가 현대무용을 보여줬다. 또 다른 아이들은 대형 깃발을 받쳐들고 그 아래 조그만 중국깃발 하나씩 들고 수십 명이 누워 중국깃발을 일렁이며 깜찍한 모습을 보여줬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태극기가 아닌 중국깃발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머리에 해바라기 꽃을 화관으로 만들어 쓴 여학생들과 기념촬영도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민족고유의 것을 잊어버리거나 내던져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국의 실정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 옛날 우리 운동회를 연상케 하는 점심시간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한 하얼빈조선족 민속축제였다.

▲ 관람석에서 조선족 소학교 아이들과 함께 한 필자.
수 천년을 내려온 아리랑민족의 얼이 이 축제 한마당 속에 모두 들어있었던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형형색색 한복차림으로 민속축제를 연출하고 있었다. 한민족의 빛깔이 분명했다. 북·장구·꽹과리·징·나그네·물동이·화관 ·부채 등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닌 게 없었다. 좀 더 잘 살고 도시문명화 되고 서구문화화 되어버린 한국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민속축제였다. 점심 시간 때도 각종 음식과 밥을 싸가지고 와서 난간이나 구석에 펴놓고 둘러앉아 오순도순 식사하는 모습은 우리의 옛 풍경 그대로였다.

▲ 하얼빈공업대학 운동장에서 개막되고 있는 하얼빈 조선족 민속예술제 개막 장면.
축제의 막바지는 조선족소학교 학생들의 노래와 춤으로 꾸며졌다.

학생들의 의상도 한결같이 한복차림이었다. 우리 일행은 처음부터 축제가 끝나는 시각까지 줄곧 현장을 지켜봤다. 참으로 보기 드문 소중한 광경을 체험한 기분은 뿌듯했다. 아무리 서구화되고 바삐 살아가지만 우리의 것은 우리의 것, 지켜나가야 할 것은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주땅 하얼빈에서 울러퍼진 이 축제는 '한민족의 대함성'이었다.

세월은 흐르게 마련이고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문화는 누가 지켜주는 게 아니다. 반드시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저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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