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회장의 퓨전로드맵]

중국, 패권주의와 평화공존의 기로에 서다

중국은 지난 몇 년간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정말 눈물겨운 노력과 정성을 들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참가국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국의 성취감에 중점을 둔 전략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올림픽을 8월에 개최한 것이다. 북경은 봄이 짧고 가을이 길다. 9월 중순부터 10월의 북경 날씨는 하늘도 청명하고 공기도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기온도 서늘하고 비도 거의 오지 않는다. 그래서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도 10월초에 했었다. 그런데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고집스럽게도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시작됐다. 참가국 선수들이 더위와 탁한 공기와 황사에 시달리건 말건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중국 사람들에게 부를 상징하는 8자를 세 개 겹치게 하기 위해 강행한 결정이다.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는 8자가 많이 들어가는 차량 번호와 핸드폰 번호를 구입하려 난리라고 한다. 한마디로 물질만능주의와 주술적인 미신행위가 합쳐진 천민자본주의 형태의 사회풍조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런 풍조가 민간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부 당국조차 이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듯한 분위기여서, 중국은 정말 용이 지배하는 미신대국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중국을 무척 많이 오간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나라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에 가장 경악했던 것은 최근 중국 외교안보분야의 아킬레스 건으로 떠오르고 있는 티벳 사태다. 무자비한 학살과 강경진압광경을 영상을 통해 지켜본 나는 중국의 집요한 중앙통제식 지배구조의 정책을 전율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 사태에 관하여 부시 미대통령과 브라운 영국 총리는 물론 유럽에서 중국과 가장 친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조차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하라고 강경하게 요구했었다. 후진타오주석과 원자바오총리는 이에 대해 분명한 내정간섭이라며 불쾌함을 표시했었다

티벳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중국 정부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행동을 피하면서 티베트가 원하는 것은 독립이 아니라 자치라는 입장을 계속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티베트의 천연자원과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가치 즉, 인도와의 사이에 완충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을 직접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따라서 물리적, 군사적 조치를 해서라도 티베트를 중국 내 통치지역으로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티벳의 자치를 인정할 경우 위구르, 몽골 자치구 등으로 파급될 우려가 있어 중국 정부로선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은 베이징올림픽 표어로 내걸었던 ‘One world, One dream’이라는 문구가 무색해질 정도로 비정상적인 경찰국가의 행태를 보임으로서 세계 많은 국가들과 인권 기관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했다.

재미중국교포 2세이기도 한 예일대 에이미 추아교수도 이런 중국의 아집에 대해 강도높게 경고했다. “중국은 민족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3억 인구와 세계로 뻗어나간 화교 등 인 적 자원이 풍부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한 인종과 종교집단에서만 최고의 인재가 나올 수는 없 다. 당나라 때는 위구르, 돌궐, 아랍 등 세계 각지에서 장안에 몰려와 사업을 하거나 관직에 등 용되는 등 인재 풀이 컸기에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중국은 그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중국 지도부에 조언할 기회가 있다면 민족주의의 환영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을 위한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아는 중국인은 역사상 가장 협상에 능한 민족이다. 아무리 낯선 문물이 들어와도 그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협상해서 그것을 중국화하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던 민족이며, 중화는 중국인이 본능적인 협상 감각으로 구축해온 인류역사상 가장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즉,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협상력이 오늘날 중국을 이룬 ‘중화’의 핵심능력이다.

이런 중국인이 티베트와의 관계에서 고작 지금과 같은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중국은 자신의 최대 장기인 협상의 능력을 발휘해서 티벳과 화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미국 등 국제사회와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 현명하다. 앞으로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보여주어야 할 ‘관용’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구 13억의 대국이 달라이 라마라는 한 사람의 지도자를 단두대위에 올려놓고 악성비난으로 욱박지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세계 최대 규모의 공항을 건설하고 중화(中華)의 힘이 응축된, 비늘을 세우고 세계를 향해 곧장 뛰쳐나갈 것 같은 형상의 용의 모습이라고 자화자찬 해본들 아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중국이 티베트를 섬기면, 세계가 중국을 섬기게 될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달라이 라마를 북경으로 초대하면 세계 모든 국가 지도자들이 그를 향해 존경과 우정의 손을 내밀 것이다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상대방의 요구(position)가 아닌 욕구(interest)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창의적인 대안을 가능케 한다. 지금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가 바라는 것이 ‘독립’이라는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존심을 갖고 살아가고 싶은 ‘자치’에 대한 인간적 욕구가 관건이라면 과감히 그 욕구를 수용하라. 그리고 중국의 법질서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지키며 인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라고 요구하라. 즉 상생의 동반자가 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일 후진타오주석이 이렇게 제안한다면 달라이라마는 백악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옮겨 후진타오주석에게 달려와 그의 손을 높이 들어주지 않았을까.

조선족 사회 대망론(待望論)

중국과 함께 중국을 뛰어넘는 일은 이 시대의 국제정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이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외국 국적을 가진 특수계층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중국안에 있으면서도 중국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중국을 바라보며 중국과 세계를 합목적(合目的)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지식인들과 기업인들, NGO 단체들, 그리고 여러 소수민족과 사회기관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세계화시대에 적응하면서 중국도 이젠 국가정체성과 체제 유지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실 생활면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 30년의 업적은 연평균 10%에 가까운 경제성장과 세계 3위의 경제규모를 기반으로 중국 특유의 정치제도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해 년말 개혁개방 30주년 기념사에서 “이 모든 성과는(우리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선포했다.
그는 이어서 “부단한 정치체제 개혁 없이는 지속적인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가 이뤄질수가 없다”고 전제한 뒤 “우리는 인류 정치문명의 유익한 성과를 참고하겠지만 절대로 서방 정치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중국의 학자 가운데는 최근 중국의 발전 양식을 ‘중국 모델’ 또는 ‘베이징(北京) 컨센서스’라고 부르며, 하나의 모델로 전파 할 때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북경 주재 하종대 특파원(동아)은 “중국 개혁개방의 성공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와 결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어서 “개혁개방은 자유와 민주, 인권과 법치 등 인류 보편의 가치와 결합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시장경제의 채택으로 국가가 속박했던 개인의 경제자유를 보장했기 때문에 초고속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학계에서도 지도부의 ‘중국 특색’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학자가 적지 않다.
상당수 학자는 중국이 자유와 평등, 인권, 민주 등 세계보편의 가치와 함께 갈 때만이 개혁 개방, 나아가 중국의 최종 목표인 현대화가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개혁개방 30주년 기념사에서 ‘중단없는 개혁개방’과 ‘중국 특색의 정치체제 개혁’을 외쳤지만 이 ‘특색의 정치체제’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의 학자들 사이에 중국이 과연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정치 가치는 무엇인지를 활발하게 토론하고 있어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하종대 특파원의 칼럼을 읽고나서 필자는 문득 지난해 3월 말 북경대 컨벤션 센타, 즉 ‘영걸교류중심’의 프래스 홀(Press Hall)에서 열렸던 ‘21세기 동북아협력과 「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출판발행좌담회’를 떠 올리며 여러 가지 깊은 상념을 갖게 되었다.
그 좌담회는 다름 아닌 필자의 졸저인 「‘동북아시대의 조선족’ 2007년, 박영사 출판」의 중문판 출판을 기념하여 북경대 동북아연구소가 주최해 준 행사였다.
좌담회 식장에는 중국사회과학원, 북경대, 인민대, 중앙민족대 등에서 다년간 국제관계와 소수민족문제를 다뤄 온 전문학자들과 주요 기관장, 기자단, 축하객들이 많이 참석했었다.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출판좌담회의 주요 맥락은 한마디로, 동북아 국제협력에 있어서 유능한 매체집단으로 등장한 조선족 사회를 보다 더 창의적이고 생산성있는 단계로 이끌어 내어 한·중간, 북·중간, 중·일간의 공동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일어와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선족 사회의 복합문화력을 장차 도래할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징검다리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으로 육성하자는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중국의 교육문화 핵심기관인 북경대에서 이러한 논의가 진지하게 토론되고 협의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민족애’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애’는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동시에 뿌리의식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감정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닫힌 민족주의’가 결국 순수한 민족애로 끝나지 않고 악독한 국수주의로 변질되어 그 민족 자신을 멸망의 길로 이끈 사례들을 우리는 세계역사를 통해 뚜렷이 알고 있다. 독일의 파쇼집단이 그랬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랬다. 내가 조선족사회에 관한 책을 쓰면서 줄곧 주장한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윈윈 패러다임(Win-Win Paradigm)의 정신이었다. 즉 Open Mind & Network, Global Standard, 그리고 Positive Sum Game 에 임하는 정신자세와 태도였다.

특히 오늘날 국제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세계화’와 ‘지역화(블록화)’의 이중적 갈등구조를 풀어가는 데는 세계와 지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람의 지각과 상호관계 속에서 생겨난다고 보는데, 이런 관점에서 최근 구체화되고 있는 중화경제권에 대응하면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그리고 크게는 일본과 북한까지 포함하는 동북아의 관계를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는 집단이어야만 한다. 이런 시각에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소수민족 공동체가 있으니 바로 조선족사회다.

일찍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시기는 유리한 지형만 못하고 유리한 지형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화합이란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조선족은 좋은 시기와 유리한 위치 그리고 사람의 화합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조선족의 중국 이주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 년 전인 조선 말기부터 시작됐다. 그러다가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시작된 이후 1918년까지 집중적으로 늘어나 약 40만명으로 집계되었다. 이후 그들은 일제강점기 조선민족의 항일독립투쟁에 참여했고, 해방 후에는 중국공민의 일원으로 편입돼 변경지역의 폐쇄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숱한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면면히 조선민족으로서의 민족문화를 지켜왔다. 현재 약 200만명으로 늘어난 조선족 사회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과 한중수교(1992)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인재 집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흔히 21세기는 신문명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에 와 있다. 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트가 말하는 ‘탈(脫)중심화’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접경국가들 사이에서는 중층성 다공화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즉 민족, 영토, 국가와 같은 전통적 규범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적인 경향을 바탕으로 EU와 같은 초국가연합체를 지향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변화 속에서 한국은 지금 남북분단과 중국 및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사이에 끼어있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국가발전 정책의 주요한 이슈로 삼고있다.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들 가운데 한반도가 처하고 있는 지정학적 환경을 최선의 지경학적 조건으로 변환시켜 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책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해보자.

우선 한미동맹의 굳건한 기초위에 6자회담 당사국간의 진전된 합의를 통하여 북한을 불가침 중립화지역으로 선포하고, 이를 토대로 주변 4대강국들로 하여금 북한의 일정지역(신의주, 남포, 개성, 금강산, 원산, 청진, 나진 등)에 아일랜드 형 투자방식으로 무관세, 노비자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협력특구를 조성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법을 구상해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UN(반기문 사무총장)과 협의하여,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독립국가(CIS)등 과거 공산권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에 설립했던 유럽개발은행(EBRD)과 같은 동북아개발은행(가칭)을 설립하여, 북한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과 정치 안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기초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남북한 당국에서도 「남북경제협력청」과 같은 특별기구를 신설하여 북한 전 지역을 대상으로 경제개선조치 및 산업발전을 위한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지금의 국제정세 흐름을 활용하고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논의와 함께 중국과 일본을 한반도의 양쪽날개로 매달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을 병행하도록 기획해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동북아FTA 및 통합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특히 3통(통행, 통신, 통관)을 위한 대중교통인프라 건설에 치중하여, 1차적으로 한·일 해저터널을 건설하여 TCR, TSR, TMR등과 같은 기존 북방노선과 연계하는 한편, 2차적 대안으로 평택 또는 인천 앞바다에서 산동반도로 건너가거나, 아니면 북한을 경유하는 방법으로 황해도(용연)-경기도(백령도)-산동성(위해)를 연결하는 한․중 해저터널을 건설하여 한·중·일 3국(또는 한·중·일·북한 4국)이 합동으로 환황해경제권을 개발, 세계적인 초 광역경제협력구역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큰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대중교통인프라 구축은 동북아 국제협력의 시너지를 갖고 오게 할 뿐 아니라, 한반도가 자연스럽게 동북아경제공동체의 몸통(Hub Zone)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창의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이런 논의를 자꾸 하다보면 북한 핵문제와 남북한 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중․일 3국간에 빚어왔던 과거사문제, 영토분쟁, 무역수지 역조등과 같은 모든 현안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One Stop Solution’을 갖추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앞서 말한바 대로 ‘도랑치고 가재잡기’식 전략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이러한 전략이 ‘개방형 클러스트 국가’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만일 이러한 발상이 꿈이 아니고 실제상황으로 진전된다고 가정해볼 때, 이런 시대적 변화의 과정을 통해 동북아지역안에서 완충적이고 중간매체적인 역할을 감당해줄 초국가적 집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중국 조선족 사회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지난해 일본 구마모토 시에서 ‘제7회 환황해 경제·기술교류회의’가 열렸다.
이 국제회의는 한·중·일 3국의 산·학·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수준높은 엘리트 그룹의 행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어느 한 섹션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1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그룹, 2가지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그룹, 그리고 3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그룹을 별도로 구별해보았다. 그 때 모인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의 대부분은 1가지 언어 또는 2가지 언어 사용자 그룹으로 모였는데, 유독 조선족출신의 일본유학생들과 취업인력들만이 3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심으로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조선족은 태어나자마자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배운다. 중국과 한반도 양대 국가사이에 끼어 있는 변경 소수민족으로 이중문화를 무리없이 융합하고 재창조하는 유연한 문화적 감성적 특질을 생래적으로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변연복합문화(邊緣複合文化)형의 구역가치와 경쟁력을 갖춘 집단으로 성장 해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인정이 많고 우애롭다. 남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미덕을 잃지 않고 있다. 여기에 근면한 성품과 명석한 두뇌로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에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업에 있어서도 이들은 소수민족 중에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 중국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대사업가가 상당수다.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 초기 때 전국 10대 기업가로 추앙받은 「창녕그룹」의 석산린 총재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시장경제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북한과 국경인접지역에서 다양한 변방무역이 성행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조선족기업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례로, 북한 나진항의 무역특구같은 곳에 조선족 건설업계가 진출하는가 하면, 두만강 무산지역에 버려져 있던 폐석을 북한측으로부터 사들인 것도 북한과 교류가 빈번한 조선족 기업이다. 두만강변 무산지역에는 북한이 캐다가 버린 폐광석이 널려 있다. 북한은 이것을 재가공할 산업시설이나 기술이 없어 아무 대책없이 이를 강변에 버려두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조선족 기업에서 폐석을 사들여 북한 경제에 도움을 주고 반대급부로 이 기업은 폐석을 재가공해 팔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하루 15톤 트럭 100대가 무산지역을 드나들 정도였다. 그 과정을 통해 북한은 버려진 폐석들 조차도 기술이 있으면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고, 또한 조선족과의 거래가 중국인들과의 거래보다 훨씬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경험했을 터이니 나는 그런 면에서 이러한 사실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실 조선족사회는 이런 대형 기업들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일개 보따리 장사들까지 북한주민들에게 시장경제를 훈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소위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도매로 의류나 여성용품들을 사 들인 뒤 이를 중개무역형태로 되팔기 위해 북한 국경을 넘나드는 조선족 보따리 장사들은, 폐쇄적인 김정일 체제 속에서 시장경제를 전혀 모르는 북한 주민들에게 배급이 아니라 재화의 교환형태로 이루어지는 시장경제의 매카니즘을 가르치고 그 요령을 알게 하는 경제의 첨병들이다. 장차 통일이 될 때를 대비하여,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이들이 줄여주고 있으니 우리로선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지금 조선족은 동북아시대의 패권을 놓고 중국, 일본, 한국의 기업들이 모두가 탐내는 최고의 인재 그룹 파트너로 성장해 있다. 타고난 지리적 혈연적 특수성으로 인해 다문화사회에 적응하는 유연한 기질과 재능을 갖춘 조선족들은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매우 적합한 이상적인 촉매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인구수가 적고 중국의 소수민족 통치방식에 묶여 있어서 중국 사회속에서는 여전히 약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장차 인재양성과 국제교류 등으로 왕성하게 거듭날 수 있다면 조선족 사회는 초국가주의 신문명시대를 준비하는 ‘코스모폴리탄 매트릭스’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이 동북아사회를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거듭나게 하는 일에 유용하게 쓰임받는 선구자적 위상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책에서도 결론부문에 썼지만)조선족 사회를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을 활성화시키고 맛깔스럽게 만드는 소금과 같은 집단이 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북경대 컨벤션 센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행사는 이와같은 여망을 갖고 진행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성황리에 잘 마쳐졌다. 한족, 조선족, 한국인 등 세 부류가 모였으나 우리들은 모두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협력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고, 또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 한․중․일 3국간에도 모두 유익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과 함께 중국을 뛰어넘는 세계화시대의 또 하나의 진취적인 역량이 아닐까
그동안 30년간의 개혁개방과 함께 시장경제의 채택으로 국가가 속박했던 개인의 경제자유를 보장했기 때문에 초고속 발전이 가능했음을 인정한다면, 조선족사회가 갖고 있는 이러한 시대적 역량을 증진시켜 앞으로 중국을 동북아공동체사회의 튼튼한 기초 베이스로 만드는 일에 촉진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시말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결합하는 또 하나의 창의적인 통로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내가 조선족사회에 거는 기대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비록 중국안에서 200만명 밖에 안되는 소수민족이지만, 그 마이너리티(Minority)의 한계를 뛰어넘어 중국, 한반도(남·북한), 러시아, 일본 사이에 위치한 구역가치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마침내 중국의 국가발전과 함께 자신들의 지위를 상승시키는 한편, 중국사회의 현대화와 미래지향적인 국제정치관계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하는 첨병인재집단이 될 수 있어야 하겠다.
편협한 민족주의에 의한 값싼 동정심으로서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의 순수한 인류애(人類愛)적 차원에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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