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은 나 혼자라 해도 쓸쓸하지를 않다. 아들애의 설 인사면은 충분했다. 하여 나도 자식 된 도리 때문에 친정에 전화를 했더니 기분들이 흥실덩실했다. 총지휘에 나선 팔십 고령을 넘으신 어머니의 목소리, 낡은 녹음기에서 흐르는 경쾌한 음악소리, 오래된 그릇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커다란 가마솥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 부엌아궁이에서 장작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는 소리, 세배 돈을 받은 증손들이 윗방과 정주간 사이를 뛰노는 소리, 젊은 여자들이 애들을 걱정하는 소리, 남편들의 한가한 웃음소리, 올케와 언니가 밖의 음식을 나르며 손이 시리다고 수다를 떠는 소리, 수돗물이 얼어 조카들이 밖에 있는 펌프로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 참으로 복잡한 도시의 생활을 떠난 시골의 정경이다. 이에 태평세월이 왔나, 콤플렉스시대가 사라졌나 하는 화창한 기분이라 하려던 일을 그만두고 때 아닌 토란을 놓고 설왕설래한다.

경쟁을 싫어하는 나는 토란을 먹어도 한번도 토란의 경제가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토란의 이름 때문에 한 때 무던히 애를 먹었던 일만은 있었다. 그 일로 하여 토란이 감자보다 못생기고 맛도 못하지만 고향 땅 어머니의 터전의 맛나는 감자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내가 처음 토란을 먹어본 일은 2003년 늦가을과 초겨울이다. 연대로 온 나는 난생 처음으로 교편을 잡았다. 이듬해 학기를 끝내면서 총결이 있었고 향후 총장을 비롯한 모든 교원들이 화려한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커다란 식탁 위에는 갖가지 요리들이 올랐건만 내 눈에 안겨오는 것은 오직 맨 나중에 오른 알 수 없는 음식이었다. 새로운 음식이라 나는 멋도 모르고 그것부터 먹기 시작한 것이 마지막 끝날 때까지 먹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먹는다는 것이 하도 어색하고 무식해서 옆의 동료하고 물어보았더니 역시 동북태생이라 초면강산이었다. 그 식물은 껍질이 흙색이었으며 맛은 감자내음에 흙 내음이 많았고 씹을 때면 진득진득한 풀기가 많은 것이 타액이 분비되듯 했으나 먹을 수록 입맛을 당겼다.

이듬해 봄, 나는 교편을 그만두고 청도로 오면서 오랫동안 그 식물을 보지 못하다가 어쩌다 시장에서 그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을 보았다. 세상만물은 그 모양이나 내용들이 서로 다르다 보면 이름도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만물의 천태만상 때문에 사람들은 식물학자나 생물학자가 되는 재미가 있으리라. 지금 생각하니 그때 식당에서 먹은 것은 깨끗이 씻은 후 찐 음식이라 금방 땅에서 파내어 흙과 털이 그대로 있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식물에 흥취가 있은 나는 시장의 노인하고 이름을 물어보았다. “노인님, 이것은 무엇입니까?” “우자라고 하네.” “네?” “우두라고도 하네.” “네?” 처음 듣는 이름에 토박이 말씨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낯 설은 노인하고 글자를 물어 보기에는 좀 그랬다.

청도에 오래 있노라니 내 눈에는 그 식물이 자주 띄었다. 그럴 때마다 그 신비한 식물을 기어코 알고 싶었다. 그런 까닭에 기회가 있으면 그 “존함”을 캐어 물었더니 어떤 사람들은 토련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마령서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우자(芋子) 혹은 우두라고 했다. 간혹 토란(土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자면 어떻고 우두는 어떨까? 이렇게 헷갈리던 나는 회사의 본 지방 젊은이하고 물어보았더니 먹을 줄은 알아도 이름을 모른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도시에서 자란 젊은이들이란 대개 그런 것이니 웃을 것 없었다.

나는 포공영과 민들레를 헷갈렸던 일과 영춘화는 련교요 련교는 개나리라 영춘화도 개나리가 아닐까 하며 수다를 떨던 일들을 상기하면서 꼭 그 이름만은 확실히 알아내리라 작심했다. 좀 복잡하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이름을 놓고 곰곰이 따져보았다. 말하자면 우자나 우두는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우자나 우두였고 토련는 바람이 불 때 이는 파도의 수문이라 청도에 물 파도는 있어도 흙 파도가 있을 리는 없겠고 마령서는 감자나 이러루한 식물의 총칭이라 구태어 물을 것이 없었다. 그러니 토란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중했다. 흙 속에서 줄지어 달린 귀엽고 탐스러운 알들, 곤충이 쓸어놓은 듯한 생명체의 무수한 알들, 어머니의 태아 속에서 꿈틀거리며 자라는 생명체의 알들, 그렇기에 토란이라 부르도록 됐고 게다가 어떤 것은 남성의 사랑주머니와 똑같이 생겨 여성들을 깜짝 놀라게도 하는 신비도 있어주니 어찌 토란이 아니라고 할까?

마침 어느 날인가 청양시내로 나갔다가 시장을 지나면서 그 식물을 보았다. 한 농사꾼이 커다란 토란 무지를 앞에 놓고 “금방 땅에서 파낸 싱싱한 우자요.”하며 사구려를 높이고 있었다. 나는 흥정도 없이 다섯 근을 샀다. 헐값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 물에 담궈놓고 솔로 흙을 없애고 머리털 같이 가는 뿌리를 뜯어낸 후 다시 헹구었더니 얼마나 싱싱하고 탐스러웠지 몰랐다. 한데 감자를 정리하는 일보다 훨씬 품이 많이 들었다. 이러는 동안 나는 연대에서의 의문을 풀었다. “오, 워낙 연대에서 먹었던 것이 토란이었구나!” 나이 50을 넘으면서 수다를 떨기 좋아하는 나는 젖은 손을 공중에 휘저으며 행주치마를 나풀거렸다.

토란을 먹음직했다. 토실토실한 껍질은 커피 색에 무늬가 있었다. 얼핏 보면 바람에 잔잔한 파도가 일어 주름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사막에 보래파도가 있다면 청도에 흙파도가 있다 하리. 실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흙파도의 수문 토련이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자에는 형용사에 명사가 풍부한 까닭에 식물의 이름들은 절대 왜곡되지 않고 있다. 나는 깨끗해진 토란을 바라보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얼마 후 그것을 시루에 놓고 찌니 방안에 향기가 꽉 찼다. 한 알을 꺼내어 먹어보았더니 연대에서 먹었던 것과 같이 감자 맛에 흙 맛에 세계 일미였다. 이튿날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먹으면서 재차 물어보았더니 한국사람들은 토란이라고 말했다. 토란, 나는 끝내 우리의 언어로써 그 이름을 확인했다.

우자요, 우두요, 마령서요, 토련이요, 토란이요 하는 일에 열심하고나니 한결 마음이 흐뭇하여 어린 시절 아버지가 부엌아궁이에서 훌훌 불며 감자를 구어 주시던 일과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후 어머니가 계속하여 불꽃과 재를 홀홀 불면서 구어 주시던 일들을 앙가슴에 노랗게 피어 올리며 감자는 감자요, 토란은 토란이요 하는 것에 연정이 인다. 슈퍼에서 파는 고급스러운 것에 습관되지 않은 나는 헐값에 가장 원시적인 식물 토란을 좋아한다. 기후와 토질 관계로 고향은 토란을 심지 않는지는 몰라도 나는 고향에 가면은 토란과 옥신각신 다투던 일을 꼭 떠올리면서 잿불 속에서 나오는 감자를 대신한다. “어머니, 토란을 구어 줄래요?” “뭐냐? 토란이라니?”

하지만 오늘만은 토란 응석을 부릴 데가 없다. 나 왜 올 구정에 그깟 토란을 먹겠다고 철없이 놀까? 영희야 이러지 마, 내일이면 누군가 너에게 토란을 가득 갖다 주면서 우자냐, 토련이냐, 우두냐, 토란이냐 하면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 줄 거야.

머리 들어 창 밖을 바라보니 벌써 연화가 쏟아지는 하장의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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