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미 교수의 수필]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인 김밥∙어묵∙떡볶이처럼, 한국보다 유난히 싼 중국 맥주와 먹었던 양꼬치의 맛을 중국여행 또는 중국생활의 추억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중국 유학시절, 다른 양고기요리는 못 먹어도 양꼬치가 갖는 중독성(?)으로 인해 필자 역시 여럿이 어울려 길거리에서나 값싼 대학가 술집에서 양꼬치를 꽤나 즐겨 먹었고, 귀국 후 중국생활을 추억하기 위해 이집 저집을 순례하면서 양꼬치를 먹으러 다니게 되었다.

양꼬치점은 언제부터 우리주변에 자리를 잡았을까?

한국에 있는 양꼬치점은 대부분 재중동포들이 운영하고 있고, 그 수가 제법 많다.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가게 이외에도 대도시 대학가 주변에 한 두 집 씩 자리를 잡고 있다. )

양꼬치점이 한국인들에게 회자되기 시작 된 것은 10년 전 즈음인 것 같다. 중국과 국교수립 이후, 재중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 그들의 집거지를 중심으로 고향음식점을 차리면서 양꼬치를 팔기 시작했고, 그 후 중국과의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중국유학생이 몰려있는 대학가에도 당당하게 맛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양꼬치의 유래와 문화교류?

양꼬치는 유목민족의 음식으로 원래 신강 위구르족들이 개혁개방 이후 대도시에 유입되면서, 호구지책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양꼬치를 구어서 팔았고, 양꼬치는 그 독특한 맛으로 인기를 얻어 중국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연변에는 개혁개방의 진전에 따라 1980년도 말에 들어와 1990년대 들어서는 양념을 독특하게 한 연변식 양꼬치 맛이 자리를 잡았다. 신강의 전통적인 양꼬치는 화덕에 굽고 쯔란(孜然)이란 향신료를 약간 뿌려 양고기 원래의 맛을 강조하는 반면에 연변식 양꼬치는 매운 고추가루 양념을 첨가하여 자극이 훨씬 더 강해, 매운 맛을 좋아하는 민족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킨 연변음식문화의 하나가 되었다. 게다가 연변에서는 화롯불에 고기를 구어 먹던 습관을 변형시켜 고객이 탁자에 숯불을 올려놓고 직접 꼬치를 익혀 먹도록 하여, 고기 굽는 즐거움을 덤으로 주면서, 탁자에 숯불이 내장되는 형식의 대형 양꼬치점(串店)이 생겨났고, 점차 중국의 대도시에도 연변식 양꼬치점이 하나 둘씩 자리잡게 되었다. (필자가 최근에 가본 북경의 ‘ㅍ ㅁxx’은 초대형 양꼬치 전문점(串店)으로 저녁 예약이 필수이고, 한족손님이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뭐든 다 꼬치로 만들어 제공하는 메뉴가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서북지역 신강의 음식문화가 중국의 동쪽 끝 연변에 와서 현지음식문화와 결합하여 연변식 양꼬치로 변화되는 과정은 민족의 왕래로 인한 문화의 교류와 융합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렇듯 인적 왕래가 시작되면 문화의 교류는 필연적인 것이어서, 우리나라에 재중동포의 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독특한 연변문화가 들어오고 있고 연변식 양꼬치는 이제 재중동포, 중국 유학생, 한국사람들 모두 즐겨 찾고 있는 별미식이 되었다.

한국에서 필자가 가 본 양꼬치점은 대략 세 종류로 나뉜다. 첫번째는 재중동포 집거지에 있던 양꼬치점으로 간판이나 위치 찾기가 쉽지 않아, 재중동포만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이었고, 두번째는 대학가 전철역 주변에 있는 양꼬치점으로 한국대학생, 재중동포, 한족들이 어울려서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음식점이었다. 세번째는 한국의 달달한 돼지불고기 양념을 듬뿍 칠하고, 나물류의 밑반찬이 나오는 한국식으로 변형된 술집형태의 음식점이었다. 이렇듯 양꼬치점은 첫번째 유형에서 세번째 유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문화교류의 장이 되는 두번째 유형의 양고치점이 좋다. 고급 프랑스요리에 와인이 아닌 아시아의 음식을 함께 맛보고 즐기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양꼬치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 머지않은 장래에 소주에 삼겹살을 구어 먹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민문화에 양꼬치를 즐기는 문화가 더해져 다양해지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해 본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