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 시인의 만주 이야기

장장 11시간의 침대칸 열차…여인은 1층 침대 나는 2층
어쨌든 내 아래 당신 눕고 당신위에 내가 누워 자는데 이만한 인연 세상에 있을까
◇쟈그다치행 밤열차 속에서

▲ 쟈그다치에서 막하로 가는 도로변의 획일화된 산촌 마을풍경.
만주땅에 발 디딘지 1주일.

이제부터 본격적인 '흑룡강 7천리 기행'의 7천리나 되는 흑룡강 최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하얼빈역에서 만주땅 서북변방으로 북진하는 코스였다.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길잡이는 조선족 소설가 김송죽 선생이다. 필자가 김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 KBS TV '대고구려-속편'으로 '추적 60분-흑룡강 7천리를 가다'를 통해서다. 김좌진 장군의 전기문학인 '설한'을 출판하기도 했으며, '탄알을 훔친 사나이'와 '설한'이 길림성 우수도서상과 흑룡강성 우수도서상을 각각 받았다. '북조선작가동맹'의 리기영 주석과 서신교환이 탄로나 한때 매국적 특무(간첩)로 간주되었는가 하면 김일성 전기를 써 달라는 북한의 요청을 받기도 했다 한다. 현재 하얼빈시 도리구에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으며, 독립운동대하소설 집필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후 7시45분 하얼빈발 쟈그다치행 밤열차에 몸을 실었다. 늘 그러하듯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북적거리는 하얼빈역이었다. '왜 이리 사람이 많나?' 하는 것은 만주땅에 와 보면 실감한다. 만주에서 심양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가 흑룡강성 성도인 하얼빈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 5명이 매표한 곳은 침대칸 열차였다. 11시간 정도 온밤을 가야 했다. 침대칸 침대는 3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맨 위칸이 150위안, 중간이 154위안, 맨 아래칸이 160위안으로 요금이 각각 달랐다.

쟈그다치는 중국어표기가 아닌 몽골어 표기다. 쟈그다치는 옛 몽골땅인데 중국 주권의 땅이 되었으나 지명이름은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흑룡강 최상류와 근접한 도시가 막하다. 곧장 가는 열차노선이 없기 때문에 쟈그다치에서 갈아타야 한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흑룡강 7천리를 가다 - 만주기행 - 대구시인학교'라고 쓰여진 삼각깃발 두개를 펄럭이며 필자와 이별리·우이정·백민 시인과 조선족 소설가 김송죽 선생이 동행했다. 늘 그러했듯이 만주기행에서는 버스를 타거나 장거리 열차를 타면 중국인들이 처음에는 낯설어도 10~20분만 지나면 낯설지가 않다.


◇ 중국 여성과 한 침대칸에서

▲ 하얼빈발 쟈그다치행 열차안에서. 왼쪽부터 한국 이별리·서지월·우이정 시인 그리고 조선족 소설가 김송죽 선생.
앉아서 쉴 때면 어김없이 승무원이 와서 표검사를 할 때 중국말로 먼저 물어온다. 그러면 대답을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니까 표만 내밀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동행하는 김 선생께서 중국말로 무어라 말을 건네준다. 그렇게 동승한 승객들과도 서로 친숙해짐을 느끼고, 사진촬영도 함께 하며 환한 웃음을 건네며 대화를 대신한다. 이런 것들이 만주여행의 매력이다. 종이와 펜을 꺼내 대화를 하기도 하며 금방 마주앉거나 나란히 앉아서 간다. 침대칸 열차는 양쪽이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침대가 놓여있다. 매표하다 보면 일행끼리 못 앉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내가 2층침대, 그러니까 중간 침대이고 중국여인은 아래칸 침대였다. 처음에는 모두 아래칸 침대 좌우 양 옆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게 마련인데 아래칸 가운데 하나가 중국여인의 침대이니 자연스럽게 함께 앉게 되었다.

눈인사를 먼저 건네게 되고 서로 있다보면 어색하지 않게 된다. 나도 중국 한족여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구체적인 말은 김 선생께서 통역을 하신다. 이 중국 여인은 35세로 친정어머니 약을 사서 가는 길이라 한다. 소학교 6학년인 13살난 남자애를 하나 두고 있으며 남편은 림관구에서 공작(사업)을 하고 있다 했다. 중국에서는 사업하는 일을 '공작'이라 하는데, 우린 북한 간첩의 공작이란 고정관념 탓에 공작이란 불순한 행위의 일을 하는 어휘로 여겨져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족들도 한국인들처럼 '사업한다'고 말하지 않고 '공작한다'고 하니 처음엔 부담스럽게 들렸다.

'이 한밤중에 여인 혼자서 7~8시간 소요되는 하얼빈까지 다녀간다니'라면서 놀랄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겐 그게 일상인 것이다. 그녀 이름은 점소분으로 한국 시골여자 이름처럼 촌스러웠다. 어디 가 본 적 있느냐 하니까 대련엔 가 본 적이 있다 한다.

"중국이 개방되어 살아가는 게 만족스럽다"고 말하는가 하면 반면에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한다. 열차칸마다 밤 11시가 되면 일제히 소등이 되고 실내는 캄캄해진다.

달리는 열차의 차창밖은 어둠뿐이다. 그 어둠이 우릴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는 것이다. 열차 한 칸에도 주어진 각자의 공간에서 내일을 향해 편안한 잠에 빠져들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 중간칸에 누웠고 아래칸에는 30대 중반의 중국여인이 자고 있는 탓도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즉흥시 '당신은 1층 여자, 나는 2층 남자'를 적었다.

하얼빈에서 저녁 7시30분에 출발해 /이튿날 새벽 7시48분에 /쟈그다치에 도착하는 /장장 11시간의 침대칸 밤열차 /당신은 8호칸 下 1층 침대 /나는 8호칸 中 2층 침대 /당신 위에 내가 눕고 /내 아래 당신이 누워 자는데 / 1, 2, 3층 침대칸 열차 /창가의 커튼은 하나 /2층에서 내가 커튼 드리워 /당신 편히 잠들게 하고 /나는 잠이 안와 차창 밖 /끝없는 밤의 평원 바라보며 /실려 가느니 / 아, 당신은 8호칸 下 1층 여자 / 나는 8호칸 中 2층 남자 / 살다보니 이런 인연도 보기 드문 일! /어쨌든 내 아래 당신 눕고 /당신 위에 내가 누운게 분명하니 /이만한 인연도 세상에 잘 있을까? (서지월 시'당신은 1층 여자, 나는 2층 남자'전문)


◇ 대흥안령산맥을 만나러

만주기행에서는 이런 묘미도 있는 것이다.

▲ 하얼빈 송화강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유람선.
재미있지 않은가. 위의 시는 내 여행기록에 밤 9시53분에 쓴 걸로 메모되어 있다. 푸른 물감빛이 튀는 듯한 옥색 투피스를 입고 우리 일행과 함께 섞여 담소를 나누던 중국 여인, 한때 내 기나긴 만주대장정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하얼빈에서 쟈그다치로 뻗어가는 이 길은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인 대흥안령산맥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광개토대왕이 만주정벌에 나섰을 때, 대흥안령산맥을 넘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 당시 고구려 영토가 대흥안령 너머 러시아땅까지 뻗쳤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하는 역사적 중요한 단서가 되는 바로 그 곳으로 내가 가고 있었다. KBS TV 역사스페셜 '대고구려'에서도 다뤄진 바로 그 대흥안령산맥을 만나러 가는 행로이기도 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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