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회장의 퓨전로드맵

나는 요즘 짜릿한 긴장감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이 일에 동참해온 한·중·일의 수많은 관계자와 전문가들 사이에 소리 없는 긴장감이 퍼져가고 있다.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온 이 땅이 다가올 새 시대의 중심지가 될 거라는 사실, 그리고 그 시대를 우리 손으로 개척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긴장감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오랜 삶의 터전이 세계 역사 가운데 찬란하게 떠오르는 시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그 시대의 징후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그러나 한·중·일 삼국 곳곳에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동북아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뛰고 있다. 무엇보다 중화패권주의와 평화공존의 기로에서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모색이 당면과제중의 하나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상생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중심위치에 있는 두만강유역개발사업이다.

1990년 초 중국은 21세기 국가균형발전전략의 하나로 ‘동북진흥전략’이라는 거시적 구상을 표명하고 이와 관련해 길림성 훈춘시를 중심으로 두만강유역 국제협력개발사업을 추진해 왔다.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및 내몽고자치구를 포괄하는 중국 동북지역은 연해지역인 요령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물류 수송로의 다양성이 취약하고, 이로 인해 물류적체 및 병목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동해로의 교통․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두만강유역에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이를 활성화함으로써, 동북지역의 새로운 경제성장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게 계획의 요지다. 훈춘-나선간 ‘도로․항만․구역 일체화’ 프로젝트를 통해 동북 3성과 북한을 한데 묶는 개발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 즈음 러시아도 블라디보스톡개발계획 의사를 밝히자, 세계의 낙후지역개발사업을 발굴, 지원하고 있는 UNDP가 동북아지역발전을 위해 두만강유역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다자간 경제협력프로젝트 형태로 두만강유역개발사업에 나섰다.

초기에는 북한 청진, 중국 연길, 러시아 나훗카를 잇는 사업으로 출발했으나 중국, 러시아, 남북한, 몽골이 참여하는 5개국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중국의 동북3성과 내몽고,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 몽골 동부지역, 한국의 동해 연안 항만, 러시아의 연해주 등 동북아 일대를 포함하는 ‘대두만강 지역협력(GTI)'사업으로 확대됐다.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등 5개국의 참여로 중단기적으로는 두만강 유역의 교역과 투자를 촉진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교통 및 물류 수송망을 구축, 물류․관광․제조의 중심지로 발전시키자는 게 목표였다. 이로써 두만강유역개발사업은 중-러, 중-북 사이의 해양통로 개척뿐만 아니라 수출가공, 보세가공, 무역서비스, 기초 인프라 건설, 투자 환경개선 및 전문인력 양성, 자원 및 환경에 대한 공동개발 등으로 다양화되어 관련 국가들의 다자간 경제협력이 어느 지역보다도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동북아경제권은 그동안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공식적인 경제협력과는 달리 이념적, 정치적 대립관계로 지리적 근접성에 기초한 기능적 상호주의에 의존하는 물류체계를 답습해 왔다. 더구나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돼 동북아 물류체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흐름이 생명인 물류체계에 동맥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동북아가 결정적인 장애요인으로 인해 경제협력체를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와중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지역블록화현상이 급속히 진전되고 있었다. 2007년 7월 현재까지 GATT, WTO에 보고된 지역무역협정 건수는 205건에 이르렀고, 그 이후로도 각 지역에서 빠르게 지역 블록화가 확산되어 왔다. 그 뿐인가. EU의 회원국수는 27개국으로 증가했고, 미주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어 전 미주 국가 중 34개국이 미주자유무역지역(FTAA)을 추진 중이다.

머지않아 대륙 차원의 양대 무역블록이 예견되는 가운데 세계 인구의 1/4, 세계경제의 1/5를 점유하고 있는 동북아 지역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지역무역협정이 없는 지역으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 동북아 국가중에 지속가능한 다자무역협정체제를 이끌어 낼만한 지역을 살펴보면, 중국(동북 3성), 러시아(연해주), 한반도가 접경지역으로 연결되어 있는, 두만강유역이야말로 단연코 가장 유력한 후보지다.

하지만 무려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 두만강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특구 연계사업은 사회 간접자본의 부족과 다자간 협력체제의 부정적 속성 그리고 국제협력에 관한 경험부족과 접경 국가들 간의 법적, 제도적 장치의 미비로 인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각국의 막대한 예산 및 정책적 지원이 요구되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의 뚜렷한 목표의식과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가 뒤따라야 했음에도 그러질 못했고, 또한 남북한, 러시아, 중국의 삼국이 공통의 목표를 결정하고 이를 추진해야 할 확실한 논거를 공유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에 있어 두만강 지역의 중요성은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한마디로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회이다. 때문에 나는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모두에게 성공적으로 두만강유역개발을 이루어내어 동북아경제협력체 시대로 가기 위해 ‘접경국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가장 먼저 유념해야 할 점은, 동북아경제협력체는 유럽경제공동체(EU)와는 확연히 다르고 동북아 국가들이 EU와 같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독립적 주권결정기구에 자국의 주권 일부를 이양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APEC 보고르 선언의 목표시점인 2020년을 목표로 하여 그 이전에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을 핵심으로 하는 ‘접경국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먼저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이 협정은 우선적으로 관세, 비관세 폐지를 통한 대다수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부문의 자유화, 무역․투자의 원활화 및 개발 협력, 기술협력을 포함한 상호호혜주의 시장경제협력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두만강유역 접경국가간에 경제특구형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함으로써, 이를 통해 동북아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최초의 자유무역 국제협력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동안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이 참여하는 5개국위원회에서 선정한 <GTI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표 참조)

이와 같은 6개 분야 10개 항목의 신규 프로젝트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두만강유역개발사업에 참여하는 5개국이 접경 3국인 중국·러시아·북한을 중심으로 ‘접경국가간 경제특구’를 우선적으로 성사시킬 수 있도록 협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나서 이 5개국 위원회를 확대하여 그동안 북한 핵문제 타결을 위해 협력해 왔던 6자회담 당사국들까지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기구’, 즉 중국, 러시아, 남·북한, 몽골, 일본, 미국 등 7개국이 참여하는 협력기구를 만들어 ‘대 두만강 지역협력(GTI)’사업을 중심으로 동북아 지역 이해 당사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포괄적인 국제자유무역지대를 결성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이와같이 ‘대 두만강 지역협력(GTI)’사업은 다자간 협력에 의해 교통&#8228;물류&#8228;에너지&#8228;통신&#8228;관광&#8228;환경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복합적으로 진행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기초항목이 SOC 건설, 즉 교통&#8228;물류 분야이다. 이는 지역 간 통합발전의 근간이 되는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구축하는 일로서, 이를 바탕으로 길림성의 연변&#8228;훈춘,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나훗카, 북한의 청진·나진지역이 먼저 강력한 ‘트라이앵글 인프라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두만강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동북지역 및 인접 러시아&#8228;북한 지역 간의 경제특구형 자유무역지대가 실질적인 생산성과 가득률을 높이면서 장차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환동해 초광역경제권’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는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내 경기부양책으로 4조 위안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여 철도 노선을 확장하고 교통인프라를 개선시키는 SOC 건설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올해 들어오자 말자 착수한 장춘 ― 연길 ― 훈춘간 고속철도 건설이 그 한 예이다. 이 고속철도는 이미 운행중인 북경 ― 심양 ― 장춘간 노선에 연결되어 중국 동북지구의 내륙을 환동해 지역으로 연장시키는 대동맥이 될 것이며, 나아가 그동안 답보 상태에 빠져있던 ‘대 두만강 지역협력(GTI)’사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첩경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두만강하류 델타지역을 대규모의 국제공원지구로 기획함으로서 오늘날 세계적인 과제로 등장한 ‘기후변화협약’에 부합하는 녹생성장 국제협력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최근 발표된 북&#8228;러 국경 재획정협상에 의하면 중국이 동해 통행권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일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중국으로 하여금 두만강하류일대에 풍력 및 태양광발전을 이용한 신&#8228;재생 에너지형 국제환경생태공원도시를 건설하게 하여 인접국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까지 누구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Free Trade Green Zone’을 조성한다면, 이 일은 아직도 이념적·정치적 대립이 잔존하고 있는 동북아 지역을 평화와 상생의 땅으로 변화시키는 위업이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 지금까지 여러 가지 장애요인으로 침체일로에 빠져 있었던 두만강유역개발사업도 지속가능한 유력사업으로 세계적인 관심과 타당성을 인정받아 발전적 원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아가 다자간 협력을 통해 인접국가들의 교류협력과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상징적인 국제협력 모델로도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국가들간에 신뢰와 상호협력의 경험을 쌓다보면 (한·중·일 3국뿐만 아니라 미국, 북한, 러시아, 몽골을 포함한) 동북아 대 통합경제협력을 위한 다자간 FTA(Grand FTA) 역시 조기에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과 함께 중국을 뛰어넘어 동북아지역 발전을 위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 관문이 있을 수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발전 방식을 기초로 하여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더욱 폭 넓게 확장시켜가는 보편가치 지향의 정책이 동북아 평화발전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또한 황사의 발원지인 네이멍구(內蒙古區) 일대에 녹색장성을 건설하고 생태계를 복원함으로써 공공의 적인 사막화(沙漠化)를 저감하고 예방하는 환경공동체운동을 장려하는 것도 좋은 실례가 된다.
그리고 IMF사태 이후 한·중·일 3국간 교류협력의 새 길을 모색하는 한 방편으로 성립된 ‘환황해 경제·기술교류회의’가 21세기형 동아시아 지중해 경제권을 준비하는 한 창의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이제 두만강유역을 기반으로 접경국가 다자간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환동해 초광역경제권’개발사업이 새로운 희망의 관문을 열어젖히는 히든카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사회가 입지해 있는 두만강 유역이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그곳이 바로 중국, 한반도, 러시아, 일본의 접경지역일뿐만 아니라 북한과 직접 결속되어 있는 금단의 구역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이래서 늘 다면적이고 역동적이다. 그 중심에 살고 있는(남북한과 연변지역을 포함한) 한민족 사회가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국면을 맞을수도 있겠지만,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오히려 주변 국가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경쟁력과 투지력을 갖고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나갈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다. 내가 들고 다니는 명함에 찍혀있는 ‘연변’과 ‘동북아’란 용어가 결코 싫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바로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희망의 역사’의 시발점이 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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