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서열차서 만난 까까머리 쌍둥이…때 묻지 않은 시골도시와 무척이나 닮은…
◇ 열차에서 만난 쌍둥이

다시 열차 안에서 만난 여인이 있었다.

열차가 거의 막하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어느새 하루도 기울어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탄 열차 안에서 까까머리 쌍둥이 남자애 둘이가 얼마나 신나게 노는지 이 아이들이 우리 일행 곁을 떠나지 않고 온갖 시늉 다해 보이며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는지 그새 친숙해졌던 것이다. 특히, 무비카메라를 가지고 우리 일행은 열차안 정경이라든지 차창 밖 풍경을 계속해 녹화하고 있었는데 얘들이 이게 더욱 신기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떠들어대며 신기해하는 그 애들 얼굴모습이 무비카메라 화면에 그대로 비치니 신기하지 않을 수밖에. 중국여인인 이 아이들 엄마가 말려도 호기심은 말릴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그 젊은 중국여성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인간적인 마음은 통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과 동행한 소설가 김송죽선생은 60평생을 만주땅에서 살아온 분이시니까 김송죽선생의 중국어 대화를 빌려 듣고 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중국여성은 도착지인 막하에 살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중국땅 최북단이기도 한 막하가 초행길이었으니까 우리 일행이 막하에 내리면 다시 북극촌으로 가야하니 우리에게 나침반이 또 되어줄 줄이야, 막하에 살고 있는 이 여인은 1972년생으로 병원의 산부인과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은 고예연(高藝燕)이며 두 쌍둥이 남자애 이름은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답게 장혁, 장우였다.

친숙해진 열차승무원도 있었는데 중국인이지만 그들은 우리와 한 가족처럼 참으로 좋았었다. 중국인 젊은 여자승무원과는 열차에 내려서 기념촬영도 했는데,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가운데 손 흔들며 우릴 떨군 채 떠나가고… 이게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도 이런 데서 더욱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북쪽땅 짧은 해는 벌판 끝으로 가라앉을 준비를 하고, 삼림을 지나 낮은 수목들과 플들만으로 가득한 차창 풍경은 초원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만큼 추운 지방이라는 것도 수목을 보고 알 수 있었다.

◇ 대흥안령산맥을 만나다

그 사이 우리 일행을 태운 열차를 따라 오던 새로운 풍경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열차가 북으로 전진하는 왼쪽 차창 밖, 그리 높지도 않은 산맥이 끊임없이 열차와 평행선을 이루며 달려오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흥안령산맥이었다. 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아! 대흥안령산맥이라니, 광개토대왕이 이곳까지 와서 저 대흥안령을 넘어 러시아까지 정벌했다는 그 위용의 표상이 아닌가.

일찍이 광개토대왕이 북으로 북으로/ 북진하여 이곳에서 만난/ 저 대흥안령산맥 넘어/ 러시아까지 영토를 넓혔다는/ 최대강국의 고구려역사를 보는 듯/ 그 위용이 저렇게 북으로 뻗쳐/ 나와 동무해 함께 북진하고 있으니!/ 내가 아마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전전생에 광개토대왕 아니었을까/ 7천만 한민족 가운데 오로지/ 내가 그 길 그대로 거스르고 있으니!

-서지월 詩 '차창 밖 대흥안령산맥을 보며' 전문

◇ 중국땅 최북단 북극촌

아, 이 얼마나 먼길을 굽이돌아 왔던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득한 여정이었다. 먼저, 한국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장춘에 도착한 걸 시발로 해, 장춘에서 다시 길림으로 길림에서 두만강 도문으로 다시 내려가서, 도문에서는 다시 거슬러 올라 목단강시 그리고 하얼빈이었다. 하얼빈에서 보면 만주땅 서북쪽이며 중국땅의 최북단이 되는 막하까지 20시간 남짓 북으로 북으로 치달아 온 것이다. 한국땅에서는 아무도 밟지 않은 이 길을 일개의 남루한 시인인 내가 무슨 북풍의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흘러들었는지. 누가 가 보라고 길 가르쳐 준 일도 없었으며 갔다오면 무슨 포상이라도 준다는 장거리 경주도 아닌 것을, 내가 왜 감행했는지 나도 잘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민족 시원의 영토라는 매력 때문에 잊지 않고 살아오다가 내친 겸에 줄달음쳐 온 게 아니었을까. 도문에서는 두만강을 만났고 목단강시에서는 목단강을, 길림과 하얼빈에서는 송화강을 두 번이나 만났으며 이곳 막하에서는 흑룡강 최상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큰산으로 치면 가장 높은 산정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한두 시간 더 가야 중국땅 최북단인 ‘북극촌’이라는 곳이 나오지만, 하루종일 장거리 완행열차를 타고 봇나무 물결의 삼림을 뚫고 온 마지막 도시였으니, 오후 5시 30분, 드디어 우리를 실은 열차는 막하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 열차가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말이다. 우린 그냥 실려오면 되지만 열차는 직접 자신이 육중한 몸뚱아리를 움직여 가파른 길을 거슬러야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 일행은 내리자마자 또 바삐 움직였다. 중국인 승무원마저도 일일이 우리 일행의 손을 잡아주며 열차에서 짐 내리는 일까지 도와주었다. 까까머리 쌍둥이 애들 때문에 친해져버린 중국인 아이엄마인 젊은 여성도 우리와 함께 가까운 이웃처럼 되었다. 함께 기행에 참여한 젊은 백민시인의 여행노트에도 보면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다.

◇ 나그네에게 선심을 낸 막하의 인심

「이젠 비디오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까까머리 형제는 깔깔거리며 웃는다. 아이가 엄마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이리저리 뛰 다니고 곁에 와 개구쟁이 짓하고. 서지월선생님도 자연스레 그 아이들 장난을 받아들이신다. 덕분에 그 아이들 엄마와 자연스레 친해졌다. 김송죽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서지월선생님과 아이들 엄마가 오랜 대화를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한국어로 말씀하시는 남자인 서지월선생님과 중국어로 말을 하는 그 아이들 엄마가 낯선 땅의 열차 속에서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아, 역시 시인으로 뿐만 아니라 남성으로도 위대하신 서지월선생님이시다. 결백하며 직선적이고 한편으로 구체적인데는 따를 자 없는 큰 담력과 섬세함 자상함까지 함께 겸비하셨으면서도 옆길로 새거나 비뚠 인간정신을 용남 하지 않으실 때 너무나 과격하고 단호하신 우리 서지월 선생님께서는 조금만 있으면 열차가 멈춰 서서 함께 막하에 내릴 이런 즈음에 다정하시고 보드라우시다….」

이렇게 극적인 장면같이 묘사해 놓은 것도 가관이다. 어찌 생각하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중국 만주땅 최북단 막하다. 마침 나하고 정담을 주고받았던 까까머리 두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가족 마중을 나왔다. 우리 일행은 이곳 막하에서 북극촌까지 가야 하니 버스나 열차같은 대중교통수단은 그곳까지는 아예 없어 차량을 흥정해 가야했다 아이엄마인 그 중년여성은 우리 일행의 신변을 안전하게 해 줄 믿음직한 운전기사를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 중국여인은 이곳 막하에서 살고 있기로 자신이 안내해 주면 더욱 안전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 했던 것이다. 열차 안에서는 내 여행 수첩속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한자로 또박또박 적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 까까머리 아이들 부부가 아는 승합차 운전기사를 소개시켜 주게 되었고 차량대여 요금도 다른 승합차의 절반도 안되는 요금으로 수월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거기다가 소개받은 그 운전기사도 무척 선한 사람이었다.

북극촌으로 가는 길목이라 그 까까머리 애들 가족도 마을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꼭 한번 집으로 들르라는 친절함까지 아끼지 않았다. 아직 때묻지 않은 산골도시에는 남아있는 인정 같았다. 이렇게 자신의 마을 앞에 와서 내리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우리 일행도 고맙다는 인사의 손을 흔들어 주며 9인승 정도 되는 승합차를 타고 다시 북으로 난 외진 비포장 길을 나는 다시 바삐 떠나는 길손이 되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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