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 끼고 우회전, 편의점 골목 직진, 문자에 찍힌 대로 풍전이라는 회사를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일하러 왔습니다."했더니, "아, 면접 오셨어요?"하면서 회의실로 안내한다.

그렇네. 면접도 안보고 무슨 일부터 해? 전화만 한번 달랑 해본 용역업체에서 교포도 된다고 보냈으니 작업반장이 현장에 데려가 바로 일 시킬 줄 알았다.

인사부 부장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단, 나이 지긋해 보이는 면접관이 나와 단독으로 마주앉았다. 어? 규모도 있음직한 회사인데 용역업체에서 보낸 단순작업용 교포를 부장님께서 친히 면접 보시다니? 이력서 보자고 하신다. 한국 와서 이력서 써본지도 오래다. 외국인등록증만 확인하면 바로 작업에 투입되었었다. 한참 속셈을 하여 졸업년도 적고, 경력사항은 식당 일일 파출부를 전전긍긍한 날들이 많았으니깐 별로 적을 것이 없었다.

이력서 잠깐 보신 부장님이 회사소개부터 내가 하게 될 일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이셨다. 김장철이라 냉장고가 잘 팔려 주문이 폭주하니 매일 4시간 잔업, 주말에도 특근한다고 했다. 돈 되니 좋다고 웃자 부장님도 따라 웃으신다.

"남들보다 더 많이 하려고도 하지 말고 열심히 따라 하시기만 하면 되요. 그렇다고 손이 너무 느리면 퇴보예요." 교포 분들 일자리 자주 바꾸는 것 같은데 쭉 오래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면접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잡으시는 부장님이다.

"회사 오다 적어지면 저희 같은 용역이 나가줘야 하잖아요."

수긍하며 웃으시는 부장님, 면접이었다기보다 즐겁고 편안한 대화였다. 회사와 나는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했다. 회사는 바쁜 대목에 임시용역 쓰는 거고, 한 곳에 오래 매여 있기 싫어하는 나는 때가 되면 미안함 없이 떠날 수 있는 거다.

내일부터 편한 신발 갖고 와서 일하라는 말을 듣고 밖을 나오니, 가을햇살이 눈부시다. 한국에서 잊지 못할 마지막 일터가 될 거라는 예감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알바구인정보를 낸 용역업체로부터 문자안내 받고 찾아온 회사였다. 직원 120여명, 100%내국인이라고 한다. 오다가 많을 때만 용역업체로부터 외국인근로자를 알선 받는다고 한다.

이튿날 회의실에 일찍 도착해 신문을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사 동기 될 분들이라 한다. 그중 동반 입사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튼튼한 체격의 교포도 섞여있었다. 교포는 용역업체를 통해서만 올 수 있다고 하자 함께 온 한국 언니에게 떠듬거린다. "정직원 해야 1년 지나면 F쓰비자로 바꿔준단 말요."F쓰는 F4를 말하는 것인데 한국 언니들은 알아나 듣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식당에서 교포언니가 "물로 콱 충(沖)해버리시오."하니 한국 언니가 물을 확 뿌리신다. 중국말 아냐고 물으니, 못 알아들어도 눈치로 알만하다고 한다. 더불어 함께 해온 시간에서 몸짓, 눈빛, 마음으로 통하는 게 있나보다.

한국 언니는 그 교포가 일 똑소리나게 잘하니 정직원으로 안되냐고 부장님께 간청을 해보지만 내국인만 받는 회사라서 안 된단다. 안전교육 받고나서 나는 4층에 배치되었다. 화장 진하게 하고 머리 예쁘게 틀어 올린 오십대 반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유리관에 링 끼우고 힘주-어 당겨야 하는 작업, 힘 잘못 주면 유리관이 깨져 손 다친다고 불안한 손동작을 언니들이 시정해주신다. 하루 12시간 부동자세로 서서 일하니 허리가 끊어질 듯 뻐근하고 손목이 시큰시큰해진다.

"식당보다 더 힘드네요. 하루 종일 뚝배기 들고 다녀도 괜찮았는데, 식당도 12시간이잖아요"했더니 언니들이 한참을 웃는다.

뚝배기 날라봐서 이런 일쯤이야 하고 우습게 생각했냐? 일주일은 지나야 좀 괜찮아져. 언니들 모두가 통증 가라앉히는 약을 복용하고 휴식시간이 되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어 부기를 빼고 있었다. 내가 계속해야 되나? 쑤시는 몸뚱이는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내지만 마음은 어느새 즐겁다는 신호를 연발하고 있었다.

잔업 4시간 하고 퇴근시간이 되어 아픈 허리 겨우 굽혀 구석구석 바닥을 쓸고있는데, 언니들은 어느새 빗자루를 청소도구박스에 내동댕이치고 우르르 계단을 내려 가버렸다. 혼자 남은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일 끝나면 1초라도 빨리 내 보금자리로 가고픈 것, 사람 사는 게 다 같은 이치인가 보다. 삼십대든 오십대든 마찬가지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감대를 느끼면서 측은지심과 친근감이 몰려온다. 웃었더니 마음이 확 밝아진다.

3년 전 한국 오면서 취업생활을 통해 현지의 정서와 문화를 피부로 느껴보겠다는 생각이었고 그동안 한 곳에 안주 할 줄 모르는 나는 이곳저곳 움직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모든 것을 느끼고 그 정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려 노력해 왔다. 지금 그 어떤 느낌들이 아리숭하게 그득그득 내 감성과 의식을 자극하지만 말로, 글로 잘 표현이 안 되는 것이 바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지사람들의 정서라는 걸까?

4층 작업장, 출입문만 나서면 널찍한 옥상이다. 주변 산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도 볼 수 있고, 따사로운 햇빛도 즐길 수 있다.

"향미야, 이리 와" 휴식시간 되면 햇볕 쪼임 하자고 부른다. 허리 휘휘 돌리며 체조하는 언니, 다리 아프다고 제자리 뜀을 하는 언니, 땅바닥에 주저앉아 손가락 주물럭거리는 언니, 그런 언니들 속에 묻혀 따스한 햇볕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집에 돈도 많은데 하필이면 아픈 몸 끌고 와서 고생하냐고 걱정스레 말해주는 승기언니와, 돈 없다고 구구히 설명하며 얼굴 붉힌 채 언성 높이시는 점순언니, 여든이 되는 친정엄마를 십여년 모셔오다가 며칠 전 지방에 있는 언니 집에 모셔다드리고 울적해있는 은숙언니, 아들은 엄마를 안모시겠대? 부모가 언제부터 자식들한테 짐이 됐노? 하시며 끝없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항상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여 듣기만 하는 나에게 불쑥불쑥 화제가 바꿔진다.

향미야. 애 보고프지? 중국 가려면 배 타고 보름은 가야 한다며?

아이고. 중국비행기만 탄다고? 중국비행기 무서워 어떻게 타니? 하긴 난 그 흔한 비행기도 못타봤다야. 에이^^

휴식시간이 끝나 일을 시작할 때면 풀렸던 근육이 긴장하면서 힘도 못쓸 정도로 오른쪽 어깨죽지에 심한 통증이 온다. 아야, 아야 신음소리 내면 양쪽에 있는 언니들이 달려들어 주물러주신다. 그러다가 근육이 슬슬 풀리면서 일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푹 빠져 일하는 재미도 배가 된다. 링 끼운 유리관을 검사할 때는 양측을 잡고 비틀어 각도도 맞춰줘야 해서 가장 팔 힘이 들고 위험했는데, 서로 눈치 보며 한 타임이라도 더 검사하려 해서 아예 순위를 정하고 한다. 내가 힘든데 너라고 안 힘들겠냐? 다 같은 몸인데~ 오가는 말 한마디에 아픈 팔들이 서로 치유 받는다.

반장님은 누가 듣던 말든 하루 종일 특유의 억양과 입담으로 구수한 연설을 늘어놓으신다. 향미야. 3층에 니 친구 왔다. 중국사람이래. 2층에는 세 명이 입사했대. 그런데 이튿날 신입생 포함해서 네 명이 그만뒀대. 에이. 향미 친구는 점심 먹고 가버렸다. 밥값도 못했어. 젊은 시절 아름다웠을 반장님은 40여명 부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눈길의 소유자지만 관리자의 너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분이다. 적성에 맞는 일을 배치하는 건 물론 언니들 사이의 미묘한 트러블도 증폭될 우려가 있으면 각자 입장을 배려하면서 무난히 해소시켜 똘똘 뭉친 팀을 이끌어 가신다. 반장님이 하루 종일 수다에 가까운 연설을 하시는 것도 단순작업의 지겨움을 달래주려는 취지에서 출발한 의식적인 노력이 아닌가 싶다.

어쩌다 반장님이 자리를 비우면, 조용하던 작업장이 떠들썩해진다. 입 달린 사람은 모두 수다를 떠는듯하다. 그러다가 누군가 "시끄러워"소리치면 다들 킥킥 웃으며 조용해진다. 불량 때문에 부장님께 욕먹고 오셨다는 반장님은 눈치 없이 계속 수다 떠는 두 언니에게 다가섰다. "뭐야? 라디오 틀어놓았어?" 킥 웃음이 나온다. 반장님은 하루 종일 라디오 틀어놓으시더니~~ 꾸밈없이 소탈한 반장님이 좋은지 언니들도 하나같이 잘 따라준다.

쉬는 날 없이 연속 석주 일하니 모두들 피곤에 초긴장이 되는 것 같다. 툭하면 싸울 듯 신경이 예민해지면서도, 인내하고 잘 풀어나가려는 노력들이 보인다. 일이 힘드니 잘 먹어야 한다고 간식 가져오는 언니들이 많아졌다. 사과, 포도, 떡, 빵, 감, 때로는 홍어무침까지 나온다.

"이건 누가 가져왔어? 미순이가?"

"어제 일찍 퇴근해서 미안하다고 사왔댜, 미순아, 잘 먹을게"

매일 마다 내 호주머니에는 삶은 잣, 대추, 오징어로 가득하다. 체면 차리고 못 먹을까봐 언니들이 막 넣어준다. 반장님이 식당에서 삶은 계란을 큰 냄비에 담아 휘청거리며 가져오신 적도 있다.

먹어야 일하지, 두 개씩 먹어. 향미는 하나 더 먹어. 일도 말없이 잘하고 잔업도 빠지지 않아 얼마나 이쁜지 몰라. 중국 갈 때까지 그냥 여기서 일해라 잉?

반장님과 언니들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언니들이 표현을 하면 황송하고 쑥스러워 죽는 나다. 나는 계란을 들고 구석에 가서 앉는다. 정주지 말아요. 이곳을 떠날 때 어떻게 떠나라구요. 휴식시간에 40여명이 시끌벅적대며 허기진 배를 채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시 사람은 먹어야 해. 이래서 살맛나는 거야.

어느 날 화제는 중국배추, 중국 생선이었는데 내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

"언니, 중국배추는 일부러 기생충 뿌려서 키웠을까요? 생선도 같은 바다에서 뛰놀던 것을 한국인이 잡으면 한국산, 중국인이 잡으면 중국산 되는 거 아닌가요?"

"향미야. 난 그래도 중국산이라면 싫어, 어떻허니?" 큰 죄나 지은듯 용서를 바라는 듯한 눈길을 연출해서 또 폭소가 터졌다. 언니는 애국자예요.

"아, 슬퍼, 울고싶어. 가을이 되면 자꾸 슬퍼져." 유리관에 실리콘 바르는 금녀언니가 애절한 눈빛으로 창밖을 보며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금녀야. 너 울고있니? 며칠 전에도 울었잖아. 남편과 또 다퉜어?

아니.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잖아요. 슬퍼져요. 남이 울 때는 그냥 좀 놥둬요. 문득 내 마음이 찡해온다.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며칠 고민하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늘은 큰 맘 먹고 반장님께 말씀드려야지.

"아이고. 어쩐댜? 향미가 중국 가야 된대."반장님이 언니들을 향해 소리쳤고 언니들도 발칵 뒤집힌 듯하다. 나는 죄 지은 느낌이다. 사랑을 배반하고 무책임하게 떠나는 기분이다. 미안한 마음에 이튿날 아침 떡을 사갔더니, 반장님이 3층까지 돌리셔서 떠나는 날까지 내 이름이 3,4층 언니들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다.

에구. 착하지. 우리 한국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그만두는데 간다는 얘기도 미리 하고, 그러니 반장님이 더 아까워하는 거야. 향미야. 정말 잘했어. 다음에 또 교포가 오면 우리가 더 잘해야겠어.

휴식시간이 되자 반장님이 국수를 담은 냄비를 휘청거리며 들고 오신다. 엊저녁 직원들이 먹다 남은 국수를 식당언니가 선심 써서 반장님께 준 것이란다. 향미 많이 먹어. 언니들과 바닥에 쪼크리고 앉아 국수 훌훌 먹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향미야. 너 중국 가서 우리 생각나면 어떻게 할래? 이렇게 국수 먹던 생각 하면 울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은 일하면서 먹을 궁리만 한다고 중국 가서 욕하지 말아 잉? 이젠 향미 국민체조 못 보겠구나. 웃겼는데."

반장님은 나를 한쪽으로 부르시더니 저녁에 꼭 시간을 내란다. 뭐든지 해주고싶어. 정말이야. 정말이야! 반장님의 애절한듯한 표정에 황송하다는 생각이다. 몸둘바를 모르겠다.

난 그저 본분을 지켜 열심히 일했을 뿐이고, 한국이라는 나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공감대를 만들고 그 정서에 융합되려 노력한 것 뿐이다.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섰고 그래서 숨소리를 그대로 느끼며 함께 호흡 할 수 있었을 뿐이다.

가보지도 못한 용역업체에서 전화 왔다. "향미씨는 교포분이죠? 적응 잘하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역시 나의 예감이 맞았다. 한국취업생활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마지막 일터, 잊지 못할 일터가 된 것이다.

수다쟁이 반장님과 지지고 볶으면서도 맡은 일에 충실하던 언니들, 칠순에 가까운 까다로운 사장님, 성격이 불같은 욕쟁이 식당언니, 작업장 밖 옥상에서 바라보던 가을단풍~ 드라마 같은 잔잔하고 애틋한 풍경이 내 맘속 여운으로 오래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중국 잘 가, 우리 잊지 마, 중국가면 너 집에 놀러갈거야!

잊지 않을게요. 잊지 못할 거예요. 사랑 듬뿍~ 행복 듬뿍~ 싣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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