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매

한밤중 빗소리를 듣고 창문을 열어보는 농부는 주인이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종이다. 

주인의 눈에는 꽃이 한 송이만 시들어도 눈에 띄지만
종의 눈에는 정원 전체가 말라가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종은 남의 눈치를 살피지만, 주인은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종은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지만, 주인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행동한다

고도원의 아흔아홉 번째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인용해보았다. 주인과 종의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지만 주인은 스스로 알아서 할 일과 하지 않을 일,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판단해서 결정하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종이란 말 뒤에는 ‘근성’이 따라붙고 주인이란 말 뒤에는 ‘의식’이 붙는다. 근성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하고 의식은 우선 상황 판단을 하고 잘못되었을 때는 스스로 고치도록 노력한다.

주인 의식은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가리고,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스스로 분별한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즐겁고 성취에 대한 보람도 갖는다. 실패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긴다. 그렇다면 재한조선족은 이 땅에서 주인의식으로 살아왔는가? 종의 근성으로 살아왔는가?

재한조선족, 이제는 이 땅에서 주인공으로 되어야...

중국조선족과 한국 국민은 피를 나눈 동족이며 언어와 문자를 비롯한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동일민족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냉전시기 조선족과 한국인은 각기 다른 이념과 사회체재 하에서 색다른 삶을 살아왔다. 남남으로 살아오면서 한민족의 동질감과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뒤늦게야 극적으로 상봉하였다.

중국조선족의 최초의 한국방문은 1978년 한국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차균희의 부모와 동생이었던 흑룡강성 살던 차씨車氏 일가족 3명의 전라북도 방문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이는 중국정부와의 물밑작업 끝에 이루어졌다. 그 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수천 명 조선족인사들의 한국현지 경기 관람 및 친지방문, 1992년 중한수교를 계기로 친지방문 등으로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대거 입국은 20세기 중반의 ‘산업연수생 투입, 21세기의 고용허가제 실시와 방문취업제의 시행 등에 의해서다.

2008년 6월 한국법무부의 통계에 의하면 90일 이상 장기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은 362,292명, 불법체류자 27000명인데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 여파로 취업이 어려워지고 한화가치가 절하되자 중국으로 돌아가는 조선족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동포는 30만 명을 훌쩍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앞으로 일부분은 중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일부분은 모국에 남아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해나갈 것이며 현재 한국국적에 귀화한 10여만 명과 함께 이 땅에 정착하면서 한국사회의 일부분을 형성하며 발전해나갈 것이다.

중국조선족이 모국인 한국을 향한 이주 여정은 거의 30년, 그동안 재한조선족은 개인적인 경제적인 문화적인 부를 이룩하는 데만 급급했다. 전체적인 재한조선족공동체 단합 내지는 이미지는 한국사회에서 미미한 편이고 전반적인 한국사회에서의 큰 중시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재한조선족의 한국사회에서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확립된 위치 형성 나아가서 재한조선족공동체사회의 형성과 발전, 한국인들과의 화해와 공존은 시급하면서도 장기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내 유대인들의 성공사례는 재한조선족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내 인구의 약 3%인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유대인들은 미국내 정치, 외교, 군사, 언론, 경제 등 다방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1999~2001년 회기 중 미국 20여개 주 상원의원 11명, 하원의원 30명을 배출하여 의회에서 왕성한 정치활동을 전개하는가 하면 미국에서 자영업에 성공하여 경제적 부를 이루고 자녀를 엄격하게 관리하여 자식들을 출세시켰다. 전문가들은 유대인들이 150여년 미국 내에서 타문화와 동화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공적으로 미국 땅에 발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은 정교하게 조직된 유대인 네트워크, 그들의 근면과 성실, 결속력과 조직력, 혈연적 연대 의식과 독특한 종교 신앙 문화 등에 기인한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중국내 조선족들의 성공사례도 재한조선족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중국내 인구의 약 0.0014%인 192만 명(2000년 중국 전국인구조사)으로 통계되는 중국조선족도 중국의 유대인으로, OK민족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2.6%밖에 안 되는 인구지만 16번째로 가는 비교적 큰 민족의 하나로 되어 중국 땅에서 어엿한 개척자, 보위자, 건설자로 자리를 굳혀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일제강점기 항일혁명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 형제민족들과 손을 잡고 일제를 몰아낸 조선인 독립투사들과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대거 만주로 이주하여 공산무주空山無主의 황무지 땅을 개간한 조선인 이주민들이 이룩해놓은 지난 한 세기의 공헌과 직결된다.

위의 두 가지 성공사례를 보면 정착 시간이 100년에서 150여년 정도 된다는 것, 정착지에서 주인의식을 발휘하여 땀과 피를 흘려 많은 공헌을 하여 인증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재한조선족의 경우, 이주시간은 길지 않지만 모국에서 거주하였다는 점은 이주 환경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한국에서의 스스럼없는 언어 환경과 동일한 민족 정서와 문화, 조상들의 터전이었다는 점은 재한조선족이 이 땅에서 생활함에 친근감과 동질성을 갖게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서로 다른 정치체재와 이념 속에서 생활해왔기에 문화적 차이, 경제적 차이, 인식적 차이, 세계관 차이 등으로 이질감을 느끼며 한국사회에서 한국인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재한조선족이 한국사회에서 한국인들과 갈등을 줄이고 화해와 공존의 공동체로 나아가려면 우선 주인의식을 갖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간단한 소견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재한조선족은 주인의식을 갖고 어떻게 일할까?

첫째, 더욱더 조직적이고 통합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야 한다.

미국내 약 3천5백 개에 달하는 유대인 단체는 인터넷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유대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고 대변하고 있다. 현재 재한조선족의 언론, 민간단체들도 속속들이 형성, 발전되고 있다. 대표적 언론단체들로는 동북아신문, 흑룡강신문(한국판), 한민족신문, 법률신문, 중국동포타운신문, 한중동포신문, 한중법률신문 등이 있고 사단법, 민간 등 기타 단체들로는 귀한동포연합회(법무부 지정), 한중경제교류친선협회(사단법인),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재한동포연합회, 한마음협회 등이 있다. 그 외 기타 동호회, 향우회, 친목회 등등이 있다. 이런 단체들은 정기적인 행사와 모임, 연합적인 모임을 조직함으로써 재한조선족의 소통과 단합을 꾀하고 있다. 그 속에서 성공한 재한조선족 엘리트들도 속출하고 있다. 네트워크의 역할은 바로 이런 단체들과 한국에서 성공한 사람들 간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결 속에서 상부상조하고 재한조선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재한조선족의 네트워크는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직 규모가 작고 세분화되지 못했다. 계속하여 유익한 단체의 창출과 단체들 사이의 더욱 조직적이고 결속력 있는 유대와 한국인들도 포옹하는 더 넓은 범위의 네트워크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재빨리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전반적인 자질을 높이고 기술력을 갖추어야 한다.

현재 재한조선족 총 수자는 대략 45만여 명에 가깝다. 그중 국적취득자 10여만 명 (국적 회복자 2만여 명, 결혼이민자 7만여 명), 방문취업제 H-2비자 소지자 33만 여명, F-4비자 소지자 5천여 명이다. 방문취업자격 소지자가 73%로서 가장 많은 비례를 차지한다. 한국의 건설업계에 인력이 부족하면서 이후에도 H-2비자 소지자들은 계속 늘어날 추세이다. 한국사회에 재빨리 적응하여 자신의 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스스로의 자질을 높이고 자신이 지향하는 바 업계의 기술을 열심히 연마하여 그 분야 기술자,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장기간 한국 내에서 쌓아온 기술력은 한국에서나 이후 중국에 귀국해서나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것이다.

넷째, 자원봉사활동은 자아실현의 지름길이다.

자원봉사활동은 자아실현의 지름길이다. 이 활동은 현장 체험을 통하여 남을 돕는 것 같지만 그보다도 봉사자는 별다른 삶을 체험하면서 자아존재의 가치를 인식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즉 이 활동은 자아정체성과 도덕성을 포함한 개인적 인성함양에 도움을 주며 사회전체의 공익증진과 공동체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귀한동포연합총회 ‘깔끔이 자원봉사단’의 지역청소와 노인 돌보기,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클로버 봉사단’의 치매환자센터 봉사, 컴퓨터 교육봉사 등은 모두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은 재한조선족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되며 원주민과 동포들이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창출하는 주민으로 융화되도록 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재한조선족의 자아봉사활동에 대한 인식 제고가 급선무인 것 같다.

넷째, 선거권을 행사하여 재한조선족 정치인을 배출하고 동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주동포정책연구소 곽재석 소장은 일전에 현재 재한조선족 중에서 경제인, 문화인 등은 있어도 정치인이 없어 아쉽고 안타깝다는 심경을 털어놓았다. 지난 30년 재한조선족은 2000명 모여 투표하면 당선된다는 구의원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다. 재한조선족은 적극적인 선거권을 행사하여 구의원, 나아가서 시의원, 국회의원 선출하여 재한조선족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한국정부의 지원과 협조 없이는 재한조선족의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재한조선족은 적극적인 자세로 한국정부에 동포문제를 전문 연구하는 정책기관의 신설을 요구하고 아울러 재한조선족문제, 동포문제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연구하여 끊임없이 동포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다섯째, 중한친선 및 경제문화교류, 남북한 통일을 위해 중개역할을 해야 한다.

한중관계는 21세기에 들어서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였다. 한중간의 경제문화교류와 발전, 남북한의 민족화합과 통일문제에서 재한조선족내지 중국조선족은 양쪽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감안하고 있기 때문에 제3자로서 중개역할, 유대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나 한국에서 경험과 자력, 및 인맥관계를 충분히 쌓아서 삼국의 화합과 공존의 공동체를 이뤄나가는데 한몫을 담당해내야 한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