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함께 고생해 다시 한국 찾으니 감회 커

김순남씨는 올해 3월 자진귀국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재입국한 지 한달 남짓한 시간을 보냈다.

 김씨는 95년 고향에서 여생을 나고자하는 열망으로 고국땅을 밟았으나 한국 생활은 애초의 예상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동포이기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지만 한국은 같은 이유로 자신을 소외하기도 했다.

 김씨는 한국 생활 중 겪은 동포들에 대한 여러 차별을 보면서 동포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

그녀는 2003년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운동’과정에 있은 모든 농성과 단식 일정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10일 동안 정말 물도 거의 먹지 않았죠. 제가 단식활동을 한 교회 주변에는 풀이 거의 없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풀과 민들레를 가져다 먹어서 그렇게 된 거였어요. 그때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힘든 농성의 과정 속에서 그녀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도 함께 견뎌야했다. 당시 그녀는 임시로 식당을 맡아 운영했는데 운동에 참여하는 동안 식당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돈이 그렇게 많은갗 ‘식당을 닫고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갗 등의 비판이 일었다.

또한 김씨에게는 한국에서 받지 못한 3000만원이라는 큰 돈의 체불액이 있었다. 이에 아들은 김씨에게 “어머니 8년 동안 불법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무엇 때문에 돌아가시겠다는 것이냐”며 반문했고 “1년만 더 한국에 머물면서 받지 못한 돈의 일부라도 받아서 돌아가시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특히 김씨의 아들은 “지금 중국에 다시 돌아가면 벌금 3000만원을 내거나 감옥에 가는가 하면 한국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하면서 농성단에 들어가는 것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녀는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교회 등과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문의하고 되도록 소문보다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를 하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결정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녀는 얼마 전 뿌듯한 경험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자신에게 밀린 임금을 주지 않은 한국인을 입국 이후에 다시 찾아간 것이다. 김씨는 “그 사람이 자신을 보고 ‘이 사람이 진짜 왔는갗하며 놀라는 눈길을 보면서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는 사실을 가장 실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농성과 단식 등의 운동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감격이 크다. 한국 정부의 혜택을 받고 이렇게 다시 고국땅을 밟으니 모든 사람이 고맙고 한국 사람도 다 좋게만 보인다”며 한사코 힘든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민들레도 뜯어먹고 풀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래도 힘들지 않았냐는 재차의 질문에김씨는 ‘힘이 들기는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지금 결과가 좋다보니 힘든 것도 한국에 대한 나쁜 인상도 모두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았다고 정정해주었다.

그녀는 앞으로 2년 후에 60세 이상 동포자로서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그녀는 다시 앞으로 한국생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크게 바라는 것은 없다. 선하게 큰 욕심 없이 생활하고 집에 돈을 좀 부쳐주면서 한국에서 신앙인으로서 믿음을 세우며 살 수 있다면 크게 만족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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